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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인프라, 숲 | 숲을 베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이익인 시대

2025-10-14 김복연 기자

탄소크레딧 제도는 숲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수치로 증명해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시스템으로, 나무를 베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 곧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든다. 산주는 숲을 관리해 크레딧을 발급받고 기업은 이를 구매해 배출량을 상쇄하며, 국가는 저비용으로 감축 실적을 확보한다. 숲을 훼손하는 개발은 단기적 수익을 주지만 국가의 탄소회계엔 손실로 남는다. 따라서 정부는 산주와 지자체가 숲을 보전할수록 경제적 혜택을 얻는 제도를 구축해야 진정한 탄소중립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숲을 관광지로 이용하는 것보다 탄소 제거 기능을 활용하는 측면이 이익이 될 수 있다, 광릉수목원. 사진 국립수목원
숲을 관광지로 이용하는 것보다 탄소 제거 기능을 활용하는 측면이 이익이 될 수 있다, 광릉수목원. 사진 국립수목원

나무를 심는 것보다 지켜 내는 일이 더 큰 일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완전히 자라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그러나 그 나무를 베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다. 숲은 느리게 쌓여가는 자본이다. 그 느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비싼 것을 가장 싸게 판다.


최근 정부와 기업이 주목하는 ‘탄소크레딧(carbon credit)’ 제도는 바로 그 느림의 가치를 경제 언어로 번역한 시스템이다. 숲을 통해 흡수된 이산화탄소를 수치로 환산하고, 그 흡수량을 화폐처럼 거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제 나무를 새로 심는 일보다, 이미 서 있는 숲을 지켜내는 일이 곧 이익이 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탄소가 화폐가 되는 방식 — 신뢰 위에 세워진 숫자


탄소크레딧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변화를 ‘가시적 수익’으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누군가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숲을 가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 그만큼의 양을 톤CO₂e(이산화탄소 환산톤) 단위로 측정해 인증한다. 그 결과물인 ‘크레딧’은 1장당 1톤의 감축 실적을 의미하며, 기업은 이걸 사서 자신들의 배출량 일부를 상쇄한다.


이 구조는 기술과 신뢰에 의존한다. 숲이 실제로 얼마를 흡수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측정(Measurement), 보고(Reporting), 검증(Verification)—을 거쳐야만 시장이 작동한다. 숲의 면적, 나무의 종류와 생장률, 토양 탄소량, 위성·드론 데이터까지 모두 동원돼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이 데이터를 독립기관이 검토해 승인하면, 정부 또는 인증기관이 크레딧을 발급한다.


‘베이스라인’ —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숲


임목조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플래닛03
임목조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플래닛03

탄소크레딧을 계산하려면 반드시 기준선, 즉 베이스라인(Baseline)이 필요하다. 이건 ‘그 숲이 아무런 보호나 관리 없이 방치되었을 때 탄소가 어떻게 변했을까?’를 가정한 수치다.


예를 들어, 산주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매년 100톤의 CO₂가 자연적으로 흡수되거나, 혹은 훼손으로 20톤이 배출되었을 수 있다. 이때 산주가 조림·보전·관리개선 활동을 통해 실제로 150톤을 흡수했다면, 추가로 감축된 50톤이 바로 ‘상쇄 가능한 감축량(Additional Reduction)’, 즉 발급 가능한 탄소크레딧의 양이 된다.


이 베이스라인은 일종의 “무엇을 하지 않았을 때의 시나리오”이자, 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장치다. 모든 탄소 상쇄 사업은 이 기준선 위에서만 “추가성(additionality)”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베이스라인이 어떻게 설정되느냐가 크레딧의 품질과 신뢰도를 결정한다.


산주와 기업 사이에서 오가는 ‘공기의 계약서’


예를 들어 강원도 홍천의 한 산주가 20ha의 숲을 관리하고 있다고 하자. 조림과 숲 가꾸기를 통해 연간 300톤의 CO₂를 추가로 흡수했다면, 정부는 검증 후 300장의 크레딧(1장=1톤CO₂e)을 발급한다. 산주는 이를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거래가 곧 사회적 신뢰를 사는 일이다. 예컨대 한 제조기업이 연간 배출량 10만 톤 중 일부를 상쇄하기 위해 1000장의 크레딧을 구매하면, 그만큼의 배출을 ‘0’으로 처리할 수 있다. 기업은 이 상쇄분을 ESG 보고서나 탄소중립(Net Zero) 목표 이행 성과에 반영한다.


크레딧을 구입한 뒤 기업이 이를 ‘상쇄(retirement)’ 처리하면, 해당 크레딧은 등록부에서 ‘사용 완료’ 상태로 기록되어 다시 거래되지 않는다. 이 시점에 기업의 감축 실적은 영구적으로 확정된다. 반면 산주는 숲을 계속 관리하며 다음 해에도 새로운 흡수량을 만들어 낸다. 숲이 지속적으로 숨 쉬는 한, 수익도 계속된다.


심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확실한 이유

2021년 산주 현황. 탄소 감축을 위해 산주와 소규모로 나눠 산림을 제도적으로 묶는 일이 시급하다. 사진 산림청
2021년 산주 현황. 탄소 감축을 위해 산주와 소규모로 나눠 산림을 제도적으로 묶는 일이 시급하다. 사진 산림청

묘목을 심는 일은 상징적으로는 아름답지만, 탄소회계상으로는 ‘느린 감축’이다. 나무가 어린 시기에는 탄소 흡수량이 미미하고, 토양을 뒤엎는 과정에서 오히려 배출이 일어나기도 한다. 반면 이미 형성된 숲은 안정적으로 탄소를 저장한다. 숲 1헥타르는 연간 10~15톤의 CO₂를 흡수한다. 하지만 그 숲을 없애는 순간, 나무와 토양이 품고 있던 수백 톤의 탄소가 즉시 공기 중으로 풀린다. 즉, “숲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배출을 막는 행위”인 셈이다.


그래서 국제탄소시장에서 ‘산림 훼손 방지형(Avoided Deforestation)’ 프로젝트는 새로 나무를 심는 조림형보다 더 높은 신뢰도를 인정받는다. 한국의 산림탄소상쇄제도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심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빠르고, 더 확실하다.


크레딧의 생애주기 — 신뢰로 만들어지고 신뢰로 유지된다


탄소크레딧은 발급된 순간부터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발급(issuance): 검증기관이 흡수량을 승인하면 크레딧이 생성되어 등록부에 기록된다.

거래(transfer): 산주 → 기업, 정부로 소유권이 이동한다. 이 단계까지는 크레딧이 ‘조건부 유효’ 상태다. 숲이 실제로 유지되어야 가치가 보장된다.

상쇄(retirement): 기업이 감축 실적으로 공시하는 시점. 이때 크레딧은 더 이상 거래되지 않으며, 국가 탄소회계에도 ‘감축 실적’으로 확정된다.

이 구조를 통해 하나의 톤CO₂e가 두 번 쓰이지 않게(이중계상 방지) 하고, 모든 이동이 공공 등록부에 투명하게 기록된다.


리스크 관리 — 나무가 쓰러져도 신뢰는 남게


숲은 살아 있는 생태계이기에 언제든 재해를 입을 수 있다. 태풍, 산불, 병충해 등으로 탄소저장량이 줄면, 이미 발급된 크레딧의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제도는 ‘버퍼풀(Buffer Pool)’이라는 안전장치를 둔다. 크레딧이 발급될 때 일정 비율(보통 10~20%)을 공동계좌에 적립해두고, 재해로 손실이 발생하면 그만큼 버퍼풀에서 차감해 보전한다.


따라서 이미 기업이 상쇄한 크레딧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 책임은 산림사업자와 제도 시스템이 함께 부담한다. 산주는 훼손된 면적을 복구하고, 이후 다시 흡수량을 회복하면 새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산림탄소상쇄제도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신뢰의 유지 시스템이다. 숲을 지키는 의지가 곧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숲을 깎는 순간, 국가가 적자가 된다


많은 지방정부는 여전히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산을 깎아 골프장·리조트·산악관광단지를 짓는다. 하지만 그 숲은 단지 경관이 아니라, 국가 탄소감축 목표의 일부다.


골프장 하나(100ha 규모)를 조성할 때 평균 2만 톤CO₂ 이상이 배출된다. 이는 해당 지역 산림의 10년치 흡수량에 해당한다. 지자체의 세수는 잠시 늘겠지만, 그 배출량은 국가 탄소회계에 ‘적자’로 기록된다. 결국 다른 산업 부문이 더 비싼 비용으로 그 손실을 메워야 한다.


숲을 개발로 잃는 순간, 지자체는 눈앞의 예산을 얻지만 국가는 탄소 적자를 떠안는다. 이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선 지방 차원의 보전형 인센티브 구조가 필수다. 숲을 지키는 지자체가 개발하는 지자체보다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


숲을 지키는 일이 곧 국가의 감축 실적이다


숲은 기술이 아니라 생명으로 탄소를 줄인다. 그 감축 비용은 산업부문보다 10분의 1 이하이고, 동시에 지역경제와 생태계를 함께 살린다. 결국 한 그루의 나무를 지켜내는 일은 국가의 탄소 목표를 지키고, 산주의 생계를 지키며, 기업의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


탄소크레딧 제도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시장의 논리가 아니다. 그건 지키는 일이 이익이 되는 세상이라는 새로운 질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 질서를 법으로, 정책으로, 제도로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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