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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⑦ 기후질병 | 감염병, 계절 유행이 아닌 기후 따라 이동하는 질병

2025-08-06 김성희 기자

기후위기는 수인성 식품 매개 감염병의 발생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이제 감염병은 단순한 ‘계절적 유행’이나 ‘위생 문제’로만 볼 수 없으며, 기존의 방역 체계로는 예측 불가능해진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를 핵심 요인으로 반영한 새로운 방역 패러다임과 통합 대응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


기후가 만든 감염병의 새로운 경로


매년 반복되던 계절성 질병의 주기가 무너지고 있다.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노로바이러스는 이제 봄까지 남아 있으며, 한여름에나 경계하던 비브리오패혈증은 봄철인 5월에 사망자를 냈다. 콜레라균은 해안선을 따라 넓게 확산되고 있고, 장마철 이후에도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의 경고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이제 기온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다. 예측 가능한 질병이 예측 불가능한 계절에 찾아오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은 기온, 수온, 위생 인프라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질병군이다.

2025년 7월 10일 대구광역시 감영병관리지원단은 대응 실무자 교육을 진행했다. 김태운 대구광역시 보건복지국장은 “기후변화와 국제 이동의 증가로 감염병 발생 위험이 상시화되는 가운데, 지자체 차원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번 실무자 교육은 이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한 투자”라고 말했다. 사진 대구광역시 감염병관리지원단 https://daegucidcp.kr/notice/gallery.html?tb=zbbs_photo&sw=v&rowid=214
2025년 7월 10일 대구광역시 감영병관리지원단은 대응 실무자 교육을 진행했다. 김태운 대구광역시 보건복지국장은 “기후변화와 국제 이동의 증가로 감염병 발생 위험이 상시화되는 가운데, 지자체 차원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번 실무자 교육은 이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한 투자”라고 말했다. 사진 대구광역시 감염병관리지원단 https://daegucidcp.kr/notice/gallery.html?tb=zbbs_photo&sw=v&rowid=214

이제 감염병은 더 이상 국지적 문제가 아니다. 세계는 ‘기후에 의해 이동하는 질병’을 맞이하고 있다. 익숙했던 질병이 낯선 계절에 찾아오는 이 변화는 단지 통계의 변화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식탁을, 일상을 바꾸는 신호다. 감염병의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써야 할 방역의 지도 역시 새로 그려야 한다.


수돗물 이전의 세계 – 질병과 함께한 인류의 역사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은 인류의 오랜 동반자였다. 깨끗한 물과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던 시절, 이들 질병은 전염병 대유행의 주범으로 군림해 왔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부터 산업혁명을 거친 19세기 영국까지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은 오염된 물과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폭발하듯 확산됐다.

19세기 콜레라로 죽는 사람을 표현한 작품
19세기 콜레라로 죽는 사람을 표현한 작품

특히 1854년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콜레라 유행은 현대 공중보건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존 스노우 박사는 브로드가의 펌프가 콜레라의 발원지임을 밝혀 내며 '수인성 전파'라는 개념을 증명했다. 이후 상하수도 시스템 정비와 도시 위생 인프라 구축은 수인성 질환 발생을 크게 줄이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장티푸스, 세균성 이질, A형 간염 등 수인성 질병은 간헐적으로 발생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위생 개선과 예방접종 확대에 따라 전반적인 발생률이 감소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안정적인 물·식품 위생 환경이 유지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그 환경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인프라 부족이 원인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기후’가 문제다. 해수면 상승, 폭우와 가뭄의 반복, 평균기온의 지속적 상승은 병원성 미생물이 증식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다. 과거 ‘빈곤의 병’이었던 수인성 질환이 이제 ‘기후의 병’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가 만들어 낸 새로운 보건 리스크


폭염과 집중호우가 일상이 된 시대,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식탁 위 음식, 마시는 물, 그리고 일상적인 건강을 위협하는 전 지구적 보건 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2024년 발표한 「2025~2029 글로벌 연간-10년 기후 업데이트」에 따르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초과할 가능성은 80%에 달한다. 이는 파리협정이 경고해 온 임계치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의미하며, 새로운 기후 체제로의 돌입을 예고한다. 


특히 고온은 병원성 미생물의 생존과 증식을 가속화해 식중독과 수인성 감염병의 발생 조건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폭염 일수가 하루 늘어날 때마다 식중독 환자가 평균 2.14% 증가하고, 기온이 1℃ 상승할 때는 그 수치가 4.2%에 이른다. 


독일, 캐나다 등에서도 기온 상승과 함께 살모넬라, 대장균, 캠필로박터 감염률이 6~10%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특히 학교 급식소나 노인 요양시설처럼 대규모 식사 제공 환경에서는 고온·다습한 조건이 병원체의 폭발적 증식을 유발하고, 식중독 피해를 집단적으로 키우는 경향이 뚜렷하다. 더욱이 이러한 감염병은 단 하루의 폭염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고, 1~2일 후에 급증하는 '시차(lag effect)'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폭염 대응 역시 단순한 당일 조치에 그쳐선 안 된다. 


기후위기의 위협은 눈앞의 수치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을 바꿔 놓는 속도와 범위에 있다. 고온과 강우의 변화는 상하수도 시스템, 식품 보관 체계, 위생 기준, 조기 경보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보건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1.5℃는 단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이 아니라, 인간 건강과 생존 환경의 균형이 무너지는 임계선이다.


기온과 강수의 변화, 수인성 감염병의 기폭제


기후변화는 이제 감염병의 경로와 규모까지 바꾸고 있다. 특히 물을 매개로 퍼지는 수인성 감염병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기온 상승과 극단적 강수, 해수면 상승, 수질 악화 등 다양한 기후 현상이 병원성 미생물의 증식과 확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 해안선이 콜레라균 전파에 더 적합해지고 있다. 사진 Lancet Countdown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 해안선이 콜레라균 전파에 더 적합해지고 있다. 사진 Lancet Countdown

란셋 카운트다운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인해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의 전파 조건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의 경우, 2003년부터 2019년 사이 전 세계 해안 지역에서 전파에 적합한 환경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2020년 기준 저개발국(Low HDI)의 해안선 중 무려 98%가 콜레라균 전파에 적합한 상태로 분석되었다. 같은 해 중간개발국(Medium HDI)은 92%, 고개발국(High HDI)은 88%, 매우 고개발국(Very High HDI)은 70% 수준으로 나타났다. 해수면 온도 상승과 염도 변화는 병원성 비브리오균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며, 안전한 식수와 위생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국가일수록 감염 취약성이 심화된다. 여기에 더해, 가뭄과 홍수 등 극단적 기후 현상은 식수 오염 및 식품 유통의 위생 문제를 악화시켜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의 확산 위험을 상시화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이 예견되고 있음에도 세계 각국의 대응은 여전히 ‘계획’ 단계에 머물고 있다. WHO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국가는 식수와 위생(WASH) 정책은 수립했지만 실행 가능한 재정과 인력을 확보한 국가는 불과 3%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해안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는 정화 시스템이 미비해 빗물과 오수가 쉽게 섞이며, 감염병이 반복해서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가장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며, 5세 미만 아동의 사망률은 매년 폭우와 함께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기후위기를 WASH 정책에 통합한 국가는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중에서도 별도 예산을 확보한 경우는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수인성 질병 확산, 그리고 구조적 불평등은 단절된 위협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겹친 복합재난이며, 지금의 정책적 공백은 그 위험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기후위기가 바꾼 식탁 위 감염병, ‘식품 매개 감염병’


노로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어린이가 손을 씻고 있다. 사진 시사저널
노로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어린이가 손을 씻고 있다. 사진 시사저널

산업화 이후 확대된 냉장 유통 체계, 도시락 및 급식 문화는 식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동시에, 식품 오염이 한 번 발생할 경우 수십에서 수백 명까지 동시에 감염되는 집단감염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식품 매개 감염병' 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상온 보관, 대규모 배식,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병원성 미생물이 빠르게 증식하거나 식재료가 교차오염될 가능성은 기하급수로 커졌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다습한 환경, 집중호우, 정화 시스템의 불안정성 등이 결합되며, 과거에는 여름철 무더위 속에 일시적으로 증가하던 '식중독', '병원성 대장균', '노로바이러스' 같은 식품 매개 감염병이 이제는 계절을 앞당기고, 끝나는 시기도 늦어져 발생 빈도와 확산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2024년 11월부터 12월까지 단 5주 동안 노로바이러스 환자는 3.6배 급증했으며, 전체 환자 중 영유아(0~6세)가 무려 58.8%를 차지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키즈카페 등 영유아 보육시설의 위생 관리가 사실상 방어선의 최전선이 된 셈이다. 반면, 비브리오패혈증은 예년보다 빠른 5월, 해수 온도 상승과 함께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5년 17월 주요 감염병 통계’에 따르면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 집단 발생 260건 중 무려 234건(90%)이 식품 매개 감염이었다. 특히 병원성 대장균(49건), 노로바이러스(48건), 살모넬라(28건), 장염비브리오(23건) 등이 주요 원인균으로 확인됐으며, 이들 대부분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증식력이 강해지며, 2025년 1~7월 집단 발생 260건 중 90%(234건)가 식품 매개 감염병으로 보고됐다.


더위 속 유통·보관 오류, 집중 호우에 따른 조리시설 오염은 감염 확산을 가속화시키며, 캠핑장·도시락 제조소·단체 급식 현장에 다수의 식중독 사고를 일으켰다. 이처럼 식품 매개 감염병은 더 이상 개인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맞물린 구조적 재난이며, 감염병 대응 체계는 위생 인프라부터 조리 환경, 고위험군 보호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전환이 요구된다.


기후변화와 세계 유통망, 식품 감염병을 키우다


식품 매개 감염병의 위협은 국경을 넘는다. 글로벌 식품 유통망이 확장되면서 한 국가의 식품 오염이 타국의 감염병으로 번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5년 6월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의 한 유기농 달걀 농장에서 공급된 달걀이 살모넬라균에 오염되면서 10개 주에서 134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했다. 유럽에서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이탈리아산 발아 씨앗으로 인해 9개국에서 500명 이상이 살모넬라에 감염되었고, 2024년에는 멕시코산 생굴을 섭취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주민 179명이 노로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됐다. 국경을 넘는 감염병은 단순히 식품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위생 기준과 대응 체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식품 매개 감염병은 단순한 개인위생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다습한 환경, 해수 온도의 상승, 집중 호우에 따른 위생 기반 시설의 마비는 병원체의 증식과 확산을 가속화하며 감염병의 발생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여기에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식품 유통망까지 더해지며, 한 지역의 위생 문제는 이제 세계적 감염병 위협으로 확장된다. 단지 ‘익혀 먹고 손 잘 씻자’는 수칙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식품 위생은 이제 조리 시설의 기후 적응력, 공급망 관리,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보호 체계까지 포괄하는 문제이며, 기후와 연결된 보건 인프라의 총체적 전환 없이는 이 확산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이는 감염병 대응이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 구조적이고 국제적인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기후위기 시대, 감염병을 ‘기후위기의 일부’로 재정의 필요해 


2025년 수인성 식품매개감염병 6대 예방수칙 포스터. 사진 질병관리청
2025년 수인성 식품매개감염병 6대 예방수칙 포스터. 사진 질병관리청

기후위기가 구조적으로 감염병의 발생 환경을 바꾸고 있는 지금, 대응 방식 또한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감염병 대응은 여전히 ‘기후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 질병관리청은 해마다 손씻기·익혀 먹기 등 기본 예방수칙을 반복 안내하지만, 실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선제적 관리나, 기후 요인과 연동된 감시 체계의 정교한 운영은 부재한 상황이다. 특히 기온 상승, 해수온 변화, 폭우로 인한 침수는 병원균 증식과 확산 조건을 급격히 바꾸고 있지만, 국내 대응은 여전히 사후적 통계 감시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염병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와 란셋 카운트다운 2021 보고서는 ‘원헬스(One Health)’ 전략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한다. 인간-동물-환경의 연결고리를 기반으로, 감염병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고 예방하는 이 전략은 특히 기후변화에 기인한 감염병의 조기 감지 및 대응에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해수 온도, 대기 온도, 강우량, 위생 인프라 상태 등을 연동한 ‘통합 질병 감시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며, 단기 유행에 그치는 현재의 통계 중심 감시에서 벗어나 장기 예측이 가능한 ‘질병 예보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더불어 노후 상하수도 인프라 개선과 침수에 취약한 정화 시스템의 전면 재정비 없이는 감염병 재난에 대한 회복력 또한 확보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방역과 도시 설계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염병은 더 이상 계절적 유행이 아닌, 기후위기의 지속적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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