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⑩ 양수발전 | 국내 양수발전 46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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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9 최민욱 기자
국내 양수발전 40년은 이주·수몰·환경훼손·안전사고의 역사다. 청평은 주민 이주 기록이 없고 삼랑진·무주는 농지 소멸과 미기후 악화로 소득이 감소했다. 무주·양양은 백두대간 훼손으로 2005년 보호법이 촉발되었다. 산청은 태풍 때 관리도로 동시 붕괴, 예천은 2020 침수·2023 산사태로 부실과 책임 회피가 드러났다.
청평양수발전소, 보이지 않는 이주의 기록
1980년, 대한민국 최초의 양수발전소인 청평양수발전소(1980년 완공, 400MW)가 가동을 시작했다. 정부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수력 개발을 국가 과제로 추진했다. 상부 저수지인 호명호수와 진입도로 부지에 살던 주민들은 터전을 떠났다. 이주 가구 수나 보상 내역은 공식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국가 주도 개발 사업에서 주민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성과 중심의 기록만 남았다. 주민 희생이 공적 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은 당시 개발 정책의 우선순위를 보여 준다.

삼랑진·무주·예천 양수발전소, 수몰과 미기후 변화와 생계 위협
삼랑진양수발전소(1985년 완공, 600MW)와 무주양수발전소(1995년 완공, 1200MW)는 대규모 수몰을 동반했다. 무주 상부댐의 수몰 면적은 1.3㎢에 달해 농지와 임야가 대거 사라졌다. 주민들은 대대로 이어온 농경지를 잃었다. 보상금은 실제 토지 가치와 생계 손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피해는 재산 손실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공호수가 지역의 미기후를 바꾸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예천양수발전소의 경우 호수 조성 이후 안개 발생일수가 연평균 15일 이상 늘었고, 습도가 높아졌다. 농작물 병해율이 증가했고, 농가 소득은 5~10% 줄었다. 농업 기반이 약화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높은 습도로 인한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사례도 나왔다. 양수발전소 건설은 단순한 토지 수용에 그치지 않았다. 지역 공동체의 생활 환경과 경제 구조 전체를 뒤흔들었다.
무주·양양양수발전소, 분절된 백두대간
무주양수발전소(1995년 완공, 1,200MW)는 덕유산 국립공원 내부, 보전 가치가 가장 높은 녹지자연도 8·9등급 지역에 건설됐다. 발전소는 대규모 설비를 확보했지만 대가도 컸다. 환경영향평가 조건에 따라 이식된 구상나무 113그루는 모두 고사했다. 주목의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다. 보전 가치가 높은 고산식물 군락이 소멸했다.

양양양수발전소(2006년 완공, 1000MW)의 파급력은 더 컸다. 상부댐과 하부댐을 연결하는 지하 터널이 백두대간을 직접 관통했다. 부지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점봉산 원시림이었다. 국내 유일의 연어 회귀 하천인 남대천은 생태계 훼손 위험에 놓였다. 희귀 식물 군락도 수몰 위기에 몰렸다. 주민 126명이 사업 취소를 요구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사례는 제도적 변화를 촉발했다. 무분별한 개발이 백두대간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시키자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됐다. 2005년 「백두대간보호법」이 제정됐다. 국가 주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 파괴를 뒤늦게 인정한 입법적 반성이었다.
산청양수발전소, 동시에 붕괴된 26개의 관리도로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산청양수발전소(2001년 완공, 600MW) 송전탑 공사용 관리도로 26개 구간이 동시에 붕괴했다. 수천 톤의 토사가 계곡을 따라 흘러내렸다. 폭 2~3m였던 계곡은 최대 200m까지 넓어졌다. 하류 반천리 마을은 가옥과 농경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급경사 지형과 연약한 지반에 무리하게 도로를 개설했다. 배수와 사면 안정화 같은 기본 안전 조치가 빠져 있었다.
사고 이후 대응은 부실했다. 발생 8개월이 지나도록 본격적인 복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 사이 붕괴 현장 주변에서는 폭 10~20㎝, 깊이 1m 이상의 균열이 새로 34곳에서 발견됐다. 추가 붕괴 위험이 상존했다. 한국전력과 지방정부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주민들은 위험 속에 장기간 방치됐다.
예천양수발전소, 관리 부실이 일으킨 인명 피해
2023년 7월, 경북 예천군 금곡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 2명이 사망했다. 원인은 예천양수발전소(1999년 준공, 800MW) 상부댐으로 이어지는 관리도로였다. 이 도로는 해발 700m 능선에 놓여 있으며 마을과는 약 1.5㎞ 떨어져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건설·관리해 온 발전소 부속 도로로, 산 능선을 깎아 만든 S자 곡선 구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중호우 때 빗물이 배수되지 못하고 고였다. 성토면이 약화되었고, 사면이 무너지며 도로와 가드레일이 함께 붕괴했다. 흘러내린 토석류는 계곡을 따라 하류 마을까지 밀려들었다.
감사원 감사는 붕괴 지점을 자연 사면이 아닌 관리도로 성토면으로 판정했다. 산사태 조사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이 지적한 '임도 성토면 붕괴' 원인은 최종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한국치산기술협회가 제출한 보고서는 '자연 사면에서 발생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관리도로에 대한 책임은 공식 기록에서 제외되었다. 예천 산사태는 상부댐 관리도로의 부실 설계와 관리로 발생했다. 사후 조사 과정에서 책임이 은폐된 사례다.

예천양수발전소, 부실시공으로 인한 침수 사고
2023년 산사태가 발생하기 2년 반 전, 예천양수발전소에서는 이미 대형 사고가 있었다. 2020년 6월, 지하 재순환 배관이 파열되면서 폭 25.8m, 높이 54.5m, 길이 129.1m에 이르는 거대한 지하 발전소 전체가 침수됐다. 발전기와 설비까지 물에 잠겼다. 조사위원회는 외부 충격이 아닌 부실시공을 원인으로 결론냈다. 이종 금속을 잇는 용접부가 기준에 맞지 않게 시공돼 파단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설비용량 800MW인 예천양수발전소는 약 2년 9개월 가동이 중단됐다. 기름 누출에 따른 수질오염 복구와 설비 수리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
예천양수발전소의 2020년 침수 사고와 2023년 산사태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동일한 시설에서 발생한 두 가지 증상으로, 설계·시공·감리·유지보수 전반에 걸친 구조적 결함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 침수 사고 후 발전소 전반에 대한 안전·품질 감사가 이뤄졌다면, 2년 반 뒤의 산사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면밀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인명 피해를 낳았다.
신규 양수발전, 과거를 답습하지 말아야
과거 양수발전소가 남긴 희생과 사고의 기록은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질문을 던진다. 정부는 탄소중립과 안정적 전력 수급을 명분으로 영동, 홍천 등지에 신규 양수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40여년간 반복된 절차적 문제와 안전성 논란, 환경 파괴의 역사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없이 추진되는 신규 사업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과 잠재적 위험을 내포할 뿐이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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