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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⑤ 태풍 | 한국 태풍 100년사, 하늘의 분노에서 과학의 경계까지

최종 수정일: 7월 25일

2025-07-23 김복연 기자

태풍은 한국 사회의 100년 역사를 관통하며 변화해 왔다. 조선 시대의 천명이라는 해석부터 오늘날의 관측, 예보, 대응체계에 이르기까지 태풍 대응의 역사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엿보게 한다. 오늘날은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하늘의 경고에서 사회적 재난으로

일성록. 사진 국사편찬위
일성록. 사진 국사편찬위

정조 9년(1785년), 경기와 강원 지역에 폭우와 강풍이 몰아쳤다. 초목은 뿌리째 뽑히고 다리는 끊어졌으며, 백성들의 삶터는 쑥대밭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조는 “내 정사가 미흡해 하늘이 진노하신 것”이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 내용은 《일성록》(日省錄) 정조 9년 8월 20일자 기록에 전해지며, 그는 신하들에게 "하늘의 징조를 무겁게 받아들이라"고 명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의 재해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바람과 물은 왕의 덕치를 시험하는 하늘의 심판으로 읽혔고, 그 여파는 곧 정치적 책임으로 번졌다.


태풍, 예측 불가능성의 역사


태풍은 그만큼 예측할 수 없는 위협이었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존재로 여겨졌다. 2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슈퍼컴퓨터와 정지궤도 위성을 통해 태풍을 분석하고, AI 모델로 진로를 예측하지만, 정조가 느꼈던 무력감은 여전히 반복된다. 태풍이 몰아칠 때면 기상청을 향한 대중의 분노가 터져나온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대응 체계가 정밀해진 시대임에도, 태풍 앞에서의 인간의 불안과 분노는 놀라울 만큼 과거와 닮아 있다.


태풍 기록의 암흑기

부산 임시 관측소는 부산과 경남 지역의 기상 관측을 위해 1905년 4월 28일에 설치된 2층 규모의 목조건축물이다. 1934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복병산으로 기상청 건물이 신축되기 전까지 기상 관측을 담당했다. 사진 문화재청
부산 임시 관측소는 부산과 경남 지역의 기상 관측을 위해 1905년 4월 28일에 설치된 2층 규모의 목조건축물이다. 1934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복병산으로 기상청 건물이 신축되기 전까지 기상 관측을 담당했다. 사진 문화재청
부산기상관측소는 1934년 복병산에 자리 잡은 이후 부산의 대표 관측지점으로 기상관측업무를 수행 중이며, 2017년에 세계기상기구(WMO) 100년 관측소로 선정되었다. 사진 부산지방기상청
부산기상관측소는 1934년 복병산에 자리 잡은 이후 부산의 대표 관측지점으로 기상관측업무를 수행 중이며, 2017년에 세계기상기구(WMO) 100년 관측소로 선정되었다. 사진 부산지방기상청

하지만 한국 사회는 태풍이라는 자연현상에 무력하게만 반응해 온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읍지에 남겨진 태풍성 재해 기록에서부터, 근대 이후 기상 관측 체계의 구축, 오늘날의 위성 기반 기상 정보와 국제공동연구에 이르기까지, 대응은 꾸준히 진화해 왔다. 한국의 태풍 100년사는 단지 날씨의 기록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사회적 대응이 맞물려 발전해 온 복합 재난의 역사이자, 재해를 대하는 사회의 거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04년, 한국 최초의 근대 기상관측소가 설치되며 과학적 기상관측이 시작되었다. 당시 태풍 관련 정보는 일본기상청 주도로 수집·분석되었고, 한반도에서 발생한 피해는 통계로 정리되기보다는 일본 열도의 부속 피해로 취급되었다. 1936년과 1940년대 경상도·전라도 일대에 큰 바람과 물난리를 일으킨 기록은 있지만, 체계적인 피해 대응은 없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라는 국가 위기 속에서 재해 관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산업화 시대, 무대응에서 초기 대응으로

태풍 사라 기상도. 사진 NOAA Central Library
태풍 사라 기상도. 사진 NOAA Central Library

1960년대 접어들며 본격적인 태풍 대응의 역사도 시작된다. 1959년, 일본과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사라’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주택 수천 채가 유실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기상 예보와 재해 복구 체계를 정비하는 데 나섰지만, 사회 인프라와 과학기술 수준은 여전히 초기 단계였다.


1970년대와 80년대는 연평균 2~3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주던 시기로, 농경사회에서 도시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재해에 대한 대응 체계도 전환점을 맞는다. 1977년 태풍 ‘테스(Tess)’는 남해안을 강타해 마산, 진주 등지에 강풍과 폭우를 퍼부으며 주택과 농경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1987년 태풍 ‘셀마(Thelma)’는 인천과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수도권 공단과 항만 지역에 정전과 침수 피해를 남겼다. 이처럼 태풍의 영향 범위가 내륙 산업지대로 확장되면서, 산업단지와 도시 기반 시설의 피해가 본격적으로 발생했다. 이 시기부터 기상청의 예보체계가 정비되고, 방송을 통한 대국민 재난 정보 전달이 일상화되었다.


전환점이 된 두 개의 태풍, 루사와 매미


전환점은 2002년과 2003년에 찾아온다. 2002년 태풍 ‘루사’는 강릉에 무려 870mm가 넘는 폭우를 퍼부었고, 이듬해 태풍 ‘매미’는 중심기압 950hPa의 초강력 상태로 남해안을 관통하며 국가 기간산업에까지 타격을 입혔다. 루사는 산사태와 침수를 동반해 200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남겼고, 매미는 부산과 포항 일대의 항만·공단을 마비시켰다. 두 태풍은 한국 사회가 ‘기상재난’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국가 위기관리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국가재난안전시스템(NDMS), 풍수해보험, 지역 재난대응 매뉴얼 등 법제도적 기반이 본격화된다.


도시는 견딜 준비가 되었는가


2010년대 들어 태풍의 양상은 더욱 복합적이 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북서태평양 해역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태풍은 더 늦은 시기에 북상하고, 한반도에 도달하는 시점에서도 강한 세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2016년 태풍 ‘차바’는 울산과 포항의 도심 하천을 순식간에 범람시켜 산업단지 전체가 침수되었고, 2018년 ‘콩레이’는 도시 배수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 시기에는 ‘도시 기반 시설’에 대한 재난대응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스마트 홍수 예보, 지하차도 자동 차단 시스템 등이 확산된다.


기후위기 시대, 태풍은 바뀌고 있다

2022년 인공위성 천리안2A호에서 촬영한 태풍 힌남노

2020년대 한국은 태풍을 전 지구적 기후 현상으로 인식하고, 국제 공동연구와 위성 기반 조기경보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2020년 3개의 태풍이 잇달아 한반도에 상륙했고, 2022년 태풍 ‘힌남노’는 포항 제철소 침수라는 산업재해로 이어지며 경각심을 높였다. KIOST와 NOAA, 프랑스, 대만 등과의 공동 연구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태풍의 강도와 이동 경로가 기존과 달라지고 있다”는 통계적 증거도 제시되었다.


오늘날 태풍은 단지 바람과 비의 문제가 아니다. 정전과 통신두절, 산업 생산 차질, 사회적 약자의 이탈과 고립 등, 재난은 복합화·장기화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의 재난 관리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예보 정밀화, 고해상도 수치모델 개발, 지역 맞춤형 경보체계 등이 그 일환이다.


100년의 태풍, 100년의 대응


100년 동안 한국을 스쳐간 태풍은 단지 바람의 흔적이 아니다. 그 흔적 위에는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 기술과 사회가 함께 진화해 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과거에는 하늘의 경고로 읽혔던 태풍이, 지금은 데이터와 모델로 분석되고 있지만, 그 예측 불가능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불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태풍 100년사는 단지 기상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재난을 통해 스스로를 시험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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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8일

태풍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 일텐데, 갈길이 아직 먼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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