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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③ 폭염 | 기후재난의 시대, 메가 이벤트의 딜레마

2025-07-10 최민욱 기자

폭염 속 드러난 탄소중립 파리올림픽의 한계


역대 가장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한 2024년 파리 올림픽은 기후위기의 현실 앞에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개막을 앞두고 조직위원회는 탄소 배출량을 이전 대회 절반 수준인 약 158만 톤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신규 경기장 건설을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저탄소 자재를 활용하는 한편, 선수촌에도 과감한 친환경 조치를 도입했다. 바로 선수촌 숙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다.


파리 시장 안 느 이달고는 “매우 높은 기온에도 쾌적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해 선수촌엔 에어컨이 필요 없게 했다”고 자신했으며, 실제로 선수촌 건물은 지열 냉각 시스템과 건물 배치를 통해 실외 기온보다 6℃ 정도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홍보되었다. 60%를 채식 위주로 구성한 식단, 재활용 골판지 침대 등도 이러한 녹색 올림픽 구상의 일부였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최를 두고 1만 명이 넘는 선수들과 수천 명의 관계자, 경기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메가이벤트가 기후위기시대에 과연 맞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출처 https://globalclimatecare.in/climate-south-america/f/1000-died-in-mecca-heatwave-an-alarming-voice-for-paris-olympic
2024년 파리 올림픽 개최를 두고 1만 명이 넘는 선수들과 수천 명의 관계자, 경기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메가이벤트가 기후위기시대에 과연 맞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출처 https://globalclimatecare.in/climate-south-america/f/1000-died-in-mecca-heatwave-an-alarming-voice-for-paris-olympic

폭염 대비책을 두고 대회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파리의 7월 최고기온이 43℃를 기록했고, 지구온난화로 올여름 더 심각한 폭염이 예상된다는 보고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올림픽 개막 시기 파리에는 섭씨 36~37℃에 이르는 폭염이 들이닥쳤고, 남부 마르세유 등 일부 개최지는 41℃를 넘나드는 혹서에 시달렸다.


대회 개막 직전까지도 각국 선수단은 “에어컨 없는 선수촌”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다. 스탠퍼드대 환경생리학 전문가 크레이그 헬러 교수는 “도쿄 올림픽 때처럼 매우 덥고 견디기 힘들 수 있다. 이런 온도 상승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일부 국가들은 혹서 속에서 선수 건강과 성적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며 냉방 대책 보완을 요구했다.


선수촌 ‘에어컨 제로’ 실험의 실패와 폭염 피해


현실은 우려대로 전개되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는 선수단의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계획을 철회하고 에어컨을 들여오도록 허용했다. 개막을 약 3주 앞둔 7월 초, 조직위는 각국이 비용을 부담해 휴대용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게 방침을 바꾸고 2500대에 이르는 이동식 에어컨을 주문했다. 애초 “에어컨 없는 지속가능한 선수촌”이라는 꿈은 폭염 앞에 무너진 셈이다. 프랑스 언론조차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 대회로 불렸던 파리 올림픽의 꿈이 에어컨 2500대를 주문하면서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예견된 폭염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2024 파리올림픽. 각국은 선수단의 온열질환 예방 및 경기력 보존을 위해 에어컨을 따로 구매해야 했다. 사진. 연합뉴스
예견된 폭염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2024 파리올림픽. 각국은 선수단의 온열질환 예방 및 경기력 보존을 위해 에어컨을 따로 구매해야 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러한 급선회는 국가별 대응 격차에 따른 형평성 논란도 불렀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가 에어컨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영국·호주·일본 등 부유한 국가 대부분은 선수단 숙소에 자국 예산으로 이동식 에어컨을 비치하겠다고 나섰다. 호주 올림픽위원회는 선수단 냉방을 위해 10만 호주달러(약 9천만 원) 이상을 기꺼이 지출할 뜻을 밝혔고, 영국·독일·이탈리아 등도 앞다퉈 장비를 마련했다.


반면 우간다처럼 예산이 부족한 나라들은 “우린 돈이 없어 뜨거운 방에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는 과거 경험을 언급하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동일 선수촌 내에서도 부유한 나라 선수들은 시원한 방에서, 가난한 나라 선수들은 찜통 속에서 지내는 ‘투-티어(two-tier) 올림픽’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실제 루마니아 탁구 대표 베르나데트 소치 등은 “방에 에어컨이 없고 작은 선풍기만 돌아가는데 너무 덥다. 밤에는 문을 열어 놓고 잔다”며 불만을 호소했고, 프랑스 선수단처럼 자체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한 팀과 대비된다고 토로했다. 조직위 대변인은 선수들에게 물을 충분히 마시고 밤에는 창문을 열어둔 채 블라인드를 치고 자라는 등의 대책을 안내했지만, 근본 처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폭염 속 경기·관람 환경도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올림픽 기간 테니스와 축구 등 야외 종목은 규정을 바꿔 경기 중 추가 휴식 시간을 도입했고, 선수들에게 얼음 조끼와 샤워를 제공하는 등 응급조치를 시행했다. 땡볕의 비치발리볼장은 모래 온도가 공기보다 20℃나 높아 선수들이 수시로 얼음주머니를 뒤집어쓰고 쉴 수밖에 없었다. BMX 경기장에선 선수들이 양산 아래 선풍기로 몸을 식혔고, 승마 종목에서는 열화상 카메라로 말의 상태를 관찰하며 물을 뿌려 식히는 특별계획까지 가동되었다.


관중과 시민을 위한 조치도 즉각 이뤄졌다. 한낮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경기장에 물안개 분사기와 살수용 호스를 동원해 관중을 적시는 장면이 연출됐고, 곳곳에 그늘막과 무료 급수대가 설치되었다. 파리 시내엔 임시 분수대와 분무기가 등장했고 대중교통 운영사는 지하철역 등 70여 개 거점에서 250만 개 이상의 생수를 배포하며 시민들을 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염에 지친 관객들은 “한증막에 있는 기분”이라며 모자와 휴대용 선풍기, 얼음물을 스스로 챙겨와야 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국 테니스 선수 잭 드레이퍼는 “코트에 둔 물병들이 순식간에 뜨거워져, 뜨뜻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경기했다”고 털어놨고, 다른 선수들도 “훈련으로 단련된 몸이지만 경기 중 느끼는 폭염은 차원이 다르다”며 고충을 밝혔다. 세계적 체조스타 시몬 바일스마저 “선수 버스에 에어컨이 없어 45분간 9천 도를 견뎌야 했다”며 소셜 미디어에 불만을 표출해 화제가 됐다.


기후위기 시대 메가 이벤트의 딜레마


파리 올림픽의 폭염 해프닝은 기후위기 시대에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여실히 드러냈다. 대회 조직위는 “인류 생존을 위해 선수들의 일시적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신념으로 저탄소 전략을 밀어붙였지만, 정작 극한의 기후재난 앞에서는 안전과 공정성 확보에 실패하고 말았다. 올림픽이라는 국제 경쟁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각국은 이상론보다 자국 선수 보호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친환경 구상은 빈껍데기가 되었다. 파리 올림픽 환경책임자 조르지나 그레뇽조차 각국의 에어컨 반입 러시에 대해 “안타깝다(It’s a pity)”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파리시는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고 주요 관광지 입장료까지 인상해 올림픽 특수를 누리려 했는데, 이를 두고 “적자를 피하려 비용을 줄이고 수익만 챙기면서 ‘친환경’ 명분을 내세운다”는 비판도 나왔다.


기후위기 속 메가 이벤트를 치르는 과정에서 누가 부담을 지는가라는 물음, 그리고 환경과 안전 두 가치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난제가 부상한 것이다. 언론들은 “역설적이게도 파리 올림픽은 지구를 구하겠다는 이상과 폭염이라는 현실이 충돌한 현장이 됐다”고 평했고, 일각에선 올림픽 같은 거대 행사의 운영 방식 전반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지속가능 행사 평가 툴킷 ‘그린피겨스’

그린피겨스 홈페이지 갈무리. https://www.greenfigures.net
그린피겨스 홈페이지 갈무리. https://www.greenfigures.net

파리올림픽 사례는 기후위기 속 대형 이벤트가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벤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스포츠 경기든 음악 축제든 사회적 연결과 지역 경제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후재난이 상수가 된 시대에도 이런 행사를 어떻게 계속할지,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탄소배출을 어떻게 관리할지다.


국제적으로는 이러한 고민이 축제와 이벤트 기획의 전 과정에 스며들고 있다. 유럽의 대형 음악 페스티벌은 관객 교통 데이터를 바탕으로 셔틀버스 운영을 늘리거나 철도 이용을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재생에너지를 무대 전력으로 활용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도입하는 행사도 있다. 각국의 사례를 보면 배출량을 한번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매년 측정과 평가, 계획 수정을 반복한다.


이런 접근은 완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관객 교통처럼 주최 측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 크다. 하지만 데이터 기반의 개선 노력이 이어지는 이유는, 행사 자체가 지역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이익을 감안하면서도 환경 부담을 줄이는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시도가 ‘그린피겨스(Green Figures)’다. (사)시민자치문화센터가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문화행사 주최 측이 탄소 배출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감축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린피겨스의 관객 설문 화면. 방문자가 배출한 탄소발자국을 가늠하기 위한 설문이다. 사진. 그린피겨스
그린피겨스의 관객 설문 화면. 방문자가 배출한 탄소발자국을 가늠하기 위한 설문이다. 사진. 그린피겨스

그린피겨스가 제공하는 툴킷은 관객 이동, 무대 전력, 식음료 소비, 폐기물 발생 등 다양한 항목별로 탄소 배출량을 산출할 수 있게 설계됐다. 엑셀 기반 계산기와 설문조사 앱을 활용해 각 항목을 세밀하게 기록·계산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감축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한다.


국내에서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리슨업 기후정의 음악제 등이 이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적용했다. 리슨업 음악제는 관객 이동, 무대 전력, 폐기물 처리 등 주요 항목별 배출량을 산출해 공개하고, 향후 감축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단일한 감축 기준을 강제하기보다는 각 행사의 특성과 여건을 반영해 자발적인 개선을 유도하는 접근이다. 축제마다 규모, 예산, 관객 구성, 지역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린피겨스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적 수치를 기반으로 한 자가 진단이 감축 계획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제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시작 단계에 가깝다. 유럽의 일부 페스티벌들은 배출량 측정을 의무화하고 결과를 공개하며 교통 인센티브 제공,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 구체적인 계획을 운영의 일부로 편입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변화를 위해선 행사 주최 측의 관심과 의지가 중요하다. 그린피겨스 같은 시스템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측정과 기록 없이는 실질적인 계획이 세워지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일회성 홍보에 그치지 않고 매년 반복적으로 측정하고 개선 방향을 고민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기후위기가 상수가 된 시대, 축제와 이벤트는 여전히 우리 삶의 중요한 일상이다. 문제는 그 일상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고 변화시킬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자원을 덜 쓰고, 배출을 줄이고, 지역과 함께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앞으로 더 많은 주최 측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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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15일

'그린피겨스'와 같은 긍정적 실험이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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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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