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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④ 폭염 | '이상'한 날씨가 '이상하지 않은' 시대로

2025-07-17 최민욱 기자

폭염은 이제 더 이상 견딜 만한 여름철 무더위가 아니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구조적 문제들이 뒤얽혀 나타나는 일상적 기후재난이다. 단순히 일기예보로 더위를 알리는 수준을 넘어, 폭염 경보 발령부터 취약계층 복지와 노동 현장 대책까지 아우르는 통합 대응 체계가 요구된다. 폭염을 하나의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응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기후위기가 바꿔 놓은 여름, 한 달 빨라진 살인폭염


올해는 예년이면 7월 말에야 찾아왔을 폭염이 6월부터 한반도를 뒤덮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로 6월부터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폭염에 갇혔다. 스페인 남부 도시에서는 한낮 기온이 46℃까지 치솟아 “불구덩이에 들어온 듯하다”는 말이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수천 곳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파리의 에펠탑 꼭대기 관람이 통제되었으며,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유명 관광지도 내부 온도가 치솟아 임시 폐쇄되었다. 불과 나흘 만에 4500명이 넘는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까지 나올 정도로 폭염은 전 지구적 재난이 되고 있다.


더위는 더 이상 계절의 일부가 아니다. 사라진 장마와 한 달 이상 앞당겨진 무더위는 우리가 살아가는 기후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폭염은 기후위기와 맞물려 우리 사회에 상륙한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다. 이제 폭염을 예외적인 날씨가 아닌 늘 상존하는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걸맞은 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산업화 이후 가장 뜨거워진 지구와 한반도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열기가 결국 지구의 온도를 바꾸어 놓았다. 산업화 이후 전 세계 평균기온은 1℃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 지구 지표면 온도는 1850~1900년 대비 1.1℃ 높아졌고,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약 1.55℃ 상승하여 역대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으로 발표했다. 특히 2015년부터 2024년까지가 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10년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지구 기온 상승으로 계절 경계가 허물어져 봄과 초여름부터 극심한 폭염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여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된다.


한국도 온난화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국립기상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0여 년간 한반도 평균기온은 약 1.4℃ 상승했다. 1912~1941년과 1988`2017년 두 기간을 비교했을 때, 연평균기온이 12.6℃에서 14.0℃로 크게 높아진 것이다. 그 영향으로 한국의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졌다. 한 세기 동안 여름 지속기간은 98일에서 117일로 19일 늘어난 반면,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18일 줄어드는 변화가 관측됐다. 계절의 시작 시기도 앞당겨져 봄은 예전보다 보름가량 빨리 오고, 여름 역시 열흘 이상 이르게 찾아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인이 익숙했던 사계절의 리듬을 흔들어 놓고 있으며, 특히 여름철 폭염의 토대가 더욱 넓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갈수록 잦아지는 극한 폭염의 경고


한반도의 폭염 발생에는 해마다 자연 변동성이 크게 작용해 왔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은 어떤 해에는 기록적 폭염이, 어떤 해에는 비교적 온화한 여름이 교차하며 장기적인 추세를 단정하기 어려웠다. 최근 기후위기의 영향이 뚜렷해지면서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전례 없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린피스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2014~2023) 동안 이틀 이상 연속되는 폭염 발생 일수는 40.56일로, 20년 전(2004~2013)의 14.68일에 비해 2.7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폭염이 한 번 오면 단기간에 그치는 대신 며칠 이상 지속되는 경향이 강해졌음을 보여 준다.


폭염 지속기간뿐 아니라 발생 빈도와 최고 기온의 강도 역시 증가 추세라는 분석이 나와 있으며, 이제 무더위의 양상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장마 전후 7, 8월에만 집중되던 폭염이 5월과 9월까지도 나타나는 비정상이 반복되고 있다. 2011년 9월 이례적인 늦더위로 전국에 대정전 사태가 벌어졌고, 2016년 5월에는 1973년 이후 최고 5월 평균기온을 기록하며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한여름뿐 아니라 늦봄과 초가을까지 계절 외 폭염이 출현하면서, 더위에 대한 대비 기간도 길어지고 있는 셈이다.


‘살인 더위’가 남긴 상처와 불평등한 피해


폭염은 가장 조용하면서도 치명적인 재난으로 꼽힌다. 기록을 돌이켜보면,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자연재해가 1994년 여름 폭염이었다. 당시 약 3384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추정되며, 이는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해 못지않은 최악의 인명 피해였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는 근래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1년부터 매년 열사병·열탈진 등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한 결과, 폭염으로 인한 환자 수가 최근 크게 늘고 있고 사망자도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8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되며 공식 집계된 폭염 사망자만 48명에 달했다. 2024년에도 폭염이 길어지면서 열사병 등으로 34명이 숨져 2018년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냈다.


2024년 여름철(6~8월) 전국 평균기온은 관측 사상 최고인 25.6℃를 기록해 평년보다 무려 1.9℃ 높았고, 열대야도 평년 대비 13.7일이나 더 많은 20.2일 발생했다. 폭염 일수는 전국 평균 24일로 관측 이래 세 번째로 많았다. 그만큼 폭염의 강도와 지속시간이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올 여름에는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 환자가 3700명을 넘어 전년도보다 30% 이상 급증하기도 했다.


쿨링포그 아래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쿨링포그 아래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폭염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불균형적으로 집중되는 경향도 드러난다. 1994년 대재앙 때도 홀로 지내는 노약자가 특히 위험했다는 분석이 있으며, 최근 통계에서도 온열질환 사망자의 약 80%가 실외에서 발생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고령층에 몰려 있다. 한 연구는 국내 폭염 사망자가 65세 이상 노년층, 옥외 노동자, 무직자 등 취약계층일수록 현저히 많다고 지적한다. 가령 2024년의 경우 폭염 사망자 34명 중 29%가 80대 이상 노인이고, 대다수가 논밭이나 건설현장 같은 야외 작업 중에 숨졌다. 모두에게 똑같이 덥게 내리쬐는 태양이지만, 그로 인한 고통과 희생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게 집중되는 불평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폭염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


구립시설에서 양산을 빌려주는 성동구
구립시설에서 양산을 빌려주는 성동구

일상이 된 이상 기온, 폭염이 한국인의 여름 일상 풍경을 바꾸고 있다. 그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가 양산 쓰는 사람들의 증가다. 한때 중장년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양산이 이젠 남녀를 불문하고 폭염 속 생존템으로 떠올랐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한여름 거리에서는 정장을 입은 직장인 남성도 검은 양산을 펼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 30℃를 훌쩍 넘긴 뙤약볕 아래에서 양산 그늘 속에 들어간 시민들은 표정이 한결 여유롭다. “더위를 피하는 일에 성별은 상관없다”는 인식이 퍼지며, 주변 시선보다 체감 온도 1℃라도 낮추는 현실적 이익을 택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패션업계 조사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남성 고객의 양산 구매가 크게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여름철 남성용 양산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에 “남자에게도 양산은 필수품”이라는 상품 후기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제 양산, 모자, 선글라스, 휴대용 선풍기, 냉감 의류, 자외선 차단 기능의 양산 겸 우산 등 다양한 개인용 폭염 대처 용품이 여름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와 사회의 대응 풍경도 변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거리와 공공장소 곳곳에 더위를 피할 그늘과 쉼터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정부는 매년 5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전국에 걸쳐 약 1만4천 곳의 무더위 쉼터를 지정해 운영한다. 동네 경로당과 주민센터는 물론 은행 지점과 관공서 로비까지 시원한 휴식처로 개방하여 누구나 들어가 열을 식힐 수 있게 하고 있다.


나무 그늘이 귀한 도심 광장에는 물안개를 뿜어내는 쿨링포그 시설이 등장했다. 대구시의 한 공원에는 안개처럼 분사되는 냉각수를 이용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쿨링포그가 가동되어 시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폭염이 심한 날이면 도로 살수차가 도심 도로에 물을 뿌려 열기를 식히고, 지자체별로 버스정류장 그늘막과 쿨링팬(냉풍기)을 설치하는 등 폭염 저감 시설을 늘리고 있다.


건축과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변화가 모색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건물 지붕을 흰색 차열 페인트로 칠하는 쿨루프 사업, 아스팔트 도로에 열기를 덜 머금는 냉각 포장재를 사용하는 실험 등이 추진되고 있다. 도심 건축물에 더 많은 녹지 공간과 차양을 확보해 뜨겁게 달궈진 열섬 현상을 완화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폭염을 견디기 위한 이런 아이디어들은 이제 도시 생활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뙤약볕 아래에서 작업하는 작업자를 위해 양산을 씌워주고 있다. 사진. Planet03 DB
뙤약볕 아래에서 작업하는 작업자를 위해 양산을 씌워주고 있다. 사진. Planet03 DB

노동과 경제 현장에서도 폭염 대응에 따른 변화가 감지된다. 한여름 야외 작업장은 말 그대로 “펄펄 끓는 가마솥”이 된다. 과거에는 근로자 개개인의 인내심에 맡겨지던 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노동 현장의 안전 규칙으로서 폭염 대책이 강조되고 있다.


예컨대 건설현장이나 농촌에서는 폭염주의보·경보가 발령되면 정오부터 오후 5시 사이의 작업을 자제하고, 1시간 작업마다 10~15분씩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권고된다. 또한 시원한 물과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게 하고, 얼음조끼나 냉각팬 등 폭염 대응장비를 지급하는 사업장도 늘었다. 정부는 매년 폭염 시기마다 옥외근로자 보호를 위한 특별 점검을 시행하고, 폭염 5대 안전수칙 준수를 지도하고 있다.


한편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연중 전력 수요 피크가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바뀔 정도로 여름철 냉방 수요가 폭증했다. 무더운 날씨에 백화점, 대형마트, 카페처럼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 공간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러한 장소들이 피서지 역할을 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시장이나 노점상 등 노출된 경제활동은 폭염에 직격탄을 맞는다. 한낮에는 손님이 뜸해져 아예 “영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 되고, 대신 해가 진 후 저녁 시간대에 장사를 하는 등 경제활동 시간표 자체가 조정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농축산물 생산량 감소와 품질 저하, 작업 효율 저하 등도 경제 전반에 서서히 누적되는 비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폭염의 시대에 맞춰 생활양식과 경제활동 전반의 풍속도가 바뀌어가고 있다.


더 뜨거운 미래, 2030년대 한반도의 폭염 전망


지금의 폭염이 힘겹다면, 앞으로 다가올 더 뜨거운 미래를 상상해 봐야 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2030년대 이후 한반도 여름은 폭염이 ‘뉴 노멀’(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한·미 연구진의 기후모델 분석에 의하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경우 2030년대부터는 매년 여름철 기온이 과거 평년보다 항상 더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쉽게 말해 앞으로는 예년보다 선선한 여름이 올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하고, 해마다 당연하게 폭염 수준의 더위가 찾아오는 기후 뉴 노멀이 전개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처럼 이어지는 경우에 해당한다. IPCC 보고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강화될 경우 한반도가 이런 새로운 폭염 일상에 들어서는 시기가 2040년대 중반 이후로 늦춰지거나, 일부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끝내 그런 단계에 이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결국 지금부터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이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 여름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후변화의 일정 수준은 이미 피하기 어렵게 고정된 현실이기도 하다. 설령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2℃ 수준에서 억제한다 해도, 그 안에서 한국의 여름은 현재보다 더워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폭염 대응에는 이중의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탄소중립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동시에 이미 예정된 온도 상승에 맞춰 사회 시스템의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 더 이상 폭염을 드문 이례로 취급하며 “버티라”고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폭염을 하나의 재난으로 받아들이는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기후위기 대응 및 도시·사회 전반의 회복탄력성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뜨거워지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우리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폭염이 깔고 앉은 한반도 위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과 대비로 미래를 맞이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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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1일

앞으로 날씨를 두고 이상하다거나 비정상이라는 말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예측하기 힘든 어떤 돌발 현상도 예상되는 때 이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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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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