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③ 폭염 | 아스팔트 위의 재난, 도시 폭염
- planetssong03
-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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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 김성희 기자
도시의 폭염은 기후위기와 도시의 구조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재난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시 전체를 생태적이고 회복력있게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자연기반 해법에 기반한 녹지 연결과 접근성 강화는 도시 폭염 시대에 시민의 생존을 지키는 전략이 되어야 한다.
도시 폭염, 더 불평등하게, 더 치명적으로 작동 중
"대프리카", "밀프리카"라는 신조어는 더 이상 유머가 아니다. 폭염은 이제 한국 도시에서 반복되는 여름 풍경이자,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 재난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상청 분석과 시나리오 예측은 폭염이 더 이상 일회성 재난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이 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최근 30여 년간 우리나라의 폭염일수는 뚜렷이 증가했으며, 2018년에는 31일로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특히 고탄소 배출이 지속될 경우 수도권의 폭염일수는 지금의 7.8일에서 세기말에는 86일 이상으로 10배 넘게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피해가 단순히 선형적으로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33℃ 이상에서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온열질환자 수는 약 1.5배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상대습도나 일조시간이 길수록 피해가 더욱 가중된다. 단순한 온도 관리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이유다. 폭염 대응은 이제 기온, 습도, 일조시간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도시 구조와 생태계를 재설계해야 하는 과제로 바뀌고 있다.
폭염은 단지 날씨가 더운 것이 아니다. 도시에선 기온이 더 이상 인간의 생존 조건을 보장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단순히 기후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도시 구조와 생활 방식, 불균형한 사회경제 환경이 얽히며 폭염은 더 불평등하게, 더 치명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위는 모두에게 찾아오며, 도시는 지금 생존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아스팔트 위의 재난, 도시가 식지 않는 이유

도시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은 폭염을 증폭시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같은 불투수 재질은 낮 동안 태양열을 흡수하고 밤에도 쉽게 식지 않아 지면과 주변 대기의 온도를 높인다. 식생이 부족한 도시에서는 기온을 낮추는 증산작용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건물과 도로는 바람길을 차단한다. 여기에 자동차, 에어컨 등에서 나오는 인공열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며 도시는 24시간 내내 열을 품고 있는 구조가 된다.

서울연구원에서 열섬 분포를 장기적으로 분석한 연구(서울도시연구, 2021)에 따르면, 동북부 지역(강북·성북·중랑구 등)과 서남부 지역(양천·영등포·금천·송파구 등)에서 반복적으로 고온핵이 형성되며 열섬 현상이 고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랑구는 2012년, 송파구는 2019년 각각 열섬 강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15년간 평균 열섬 강도는 0.1℃ 이상 상승했으며, 열섬 면적은 줄어들고 고온은 더욱 집중되는 ‘열 집중화’ 경향도 관찰됐다. 이들 지역은 공통적으로 녹지율이 낮고, 다세대 밀집 주거지가 많으며, 고령자와 저소득층 등 열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열섬은 폭염과 상호작용하며 도심 기온을 추가로 0.4~3℃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도시는 농촌보다 폭염의 임계기온이 낮아, 온열질환 사망자 증가가 더 빨리 시작된다는 점이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농촌은 31℃부터 온열질환자가 급증하는 반면, 도시는 29℃만 넘어도 사망 위험이 본격화된다. 2018년 기록적 폭염 당시 서울의 온열질환자 수는 평년 대비 6배 이상 폭증했다. 식지 않는 도시의 열 축적 구조는 전력 수요 증가와 냉방 취약계층의 생존권 위협, 쉼터 접근성 불평등 등으로 이어지며 기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조각난 재난 정책, 이어지지 않는 대응
한국은 2018년의 기록적인 폭염을 계기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해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했고, 이후 정부는 행정안전부 총괄로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참여하는 폭염대책 점검회의를 매년 열어 ‘폭염 종합대책’을 수립해 왔다. 이 대책은 공사장 야외근로자, 고령층 농작업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의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무더위 쉼터 운영, 그늘막 설치, 쿨루프·쿨링포그 도입, 도로 살수, 도시 숲 조성 등을 추진했으며, 2022년 기준 전국의 무더위 쉼터는 실내 5만 개소 이상, 야외 6900여 개소로 확대됐다.
하지만 지자체 별 계획 수립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전국 161개 지자체 가운데 126곳이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세웠지만 27곳은 계획이 없거나 폭염 대책이 빠져 있었고, 수립된 계획의 목표 연도도 제각각 달라 광역과 기초 간 연계가 어렵다. 폭염대책 사업의 57.8%가 노인과 취약계층 건강관리 같은 단기적 대응에 집중된 반면, 산림·생태계나 도시 열섬 완화 같은 구조적·중장기 대책의 비중은 낮았다.
특히 최근 2년간 도시의 평균 폭염 발생일수는 농촌보다 2.7일 많고 온열 질환자 수도 평균 25명 더 많아, 도시가 농촌보다 평균 4배 많은 예산을 계획하는 등 대응 격차도 뚜렷하다. 일부 대도시는 5년간 1900억 원 대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으며, 지자체 별로 사업 수와 예산 규모에 따라 적극적·소극적·단기·중장기 대책형으로 나뉘며, 피해 규모와 재정 자립도 차이가 지역 별 대응력을 가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 격차를 줄이는 폭염 대응 체계 필요해
한국의 폭염 대응 체계는 다 부처가 협력해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진전을 이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처별 사업이 파편화돼 장기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지자체의 ‘기후변화 적응대책 세부시행계획’을 보면, 폭염 관련 사업의 57% 이상이 고령자와 독거노인 등 건강 영향 완화에 집중돼 있어 단기적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산림·생태계 분야는 11%, 적응·에너지 부문은 3%에 불과해, 도시 공간 전반을 기후위기에 맞게 재설계하려는 중장기 전략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 게다가 지자체마다 목표연도조차 달라 지역 간 연계가 어려워, 폭염 대응이 광역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예산 역시 큰 걸림돌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무더위 쉼터나 그늘막 설치 같은 기본적인 폭염 대비책조차 지역별로 불평등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피해 규모나 시급성과 무관하게 사업이 지역 여건에 맞춰 조각조각 진행되다 보니 대응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런 현실은 폭염이 단발적 재난이 아닌 반복되고 심화되는 기후위기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이 여전히 단기 처방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기반 해법, 뜨거운 도시를 식히는 가장 현실적 방법
폭염을 완화하기 위해 도시에서는 다양한 자연기반 해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심 속 물길과 식생을 복원하는 대표적 사례로 서울 청계천 복원은 지하도로로 덮였던 하천을 되살리고 수변 녹지를 조성해 도심 기온을 최대 5.9도까지 낮췄으며 야간 냉각 효과도 입증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도시 내 녹지율을 10% 늘리면 지표온도가 평균 0.5~0.8도 낮아지고 열대야 현상도 완화되는 것으로도 확인되었다. 옥상녹화는 건물의 콘크리트 지붕보다 표면 온도를 10도 이상 낮출 수 있고, 건물 외벽과 도로의 반사율을 높이는 '쿨루프'와 '쿨페이브먼트' 기술, 그늘막과 가로수 설치는 보행자의 체감온도를 실질적으로 낮춘다. 대구·세종시의 시뮬레이션 연구에서는 도로 가로수와 옥상녹화를 50% 적용할 경우 평균기온을 최대 10.6도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도시 내 녹지와 물, 반사 자재를 활용한 다양한 자연기반 해법은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도시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원을 잇는 생태 네트워크, 도시 기후 회복력을 높여
이런 상황에서 공원·녹지는 단순한 여가 공간을 넘어서 도심의 기온을 낮추고 냉방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자연기반 해법이자 필수적인 기후위기 적응 인프라이다. 나무의 그늘과 증발산 효과는 주변 열을 흡수하고 바람길을 조성해 도심 온도를 낮추며, 녹지가 잘 배치된 도시는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줄이고 에너지 비용까지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얼마나 많은 공원이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서울, 수원, 용인 등 일부 지자체는 주거지에서 도보 5~10분 내 접근이 가능한 ‘공원 서비스 소외지역’을 해소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지만, 국가 차원의 법정 계획에서는 여전히 1인당 면적 기준만 규정되어 접근성 기준이 부재하다.

영국은 폭염과 홍수 피해가 심각해지자 국가기후적응계획을 수립하고, 기존의 분절된 녹지를 연결해 생물다양성과 탄소 포집을 동시에 달성하면서도 시민들이 극단적 폭염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린인프라 전략을 추진 중이다. 런던 외곽의 산발적 녹지대를 생태 네트워크로 묶어 기후탄력성을 높이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서는 공원 정책이 이미 양적 기준을 넘어 접근성·연결성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 뉴욕은 모든 시민이 도보 10분 내 공원을 누릴 수 있도록 계획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영국은 ‘주거지로부터 300m 이내 2ha 이상의 자연녹지’라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지자체 계획에 반영하도록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폭염 저감 효과를 현실화하려면 단일 기능의 공원 조성에서 벗어나 자생 식생을 도입하고 녹지를 연속적으로 연결하며, 시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계획과 관리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공원 면적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역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사람과 생태가 함께 살아남는 도시를 위하여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폭염현상은 이제 재난의 일상화를 넘어 기후위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미래에는 더 강력한 기후재앙이 예측되며, 도시처럼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열섬현상이 심화되고, 도시홍수와 가뭄, 산사태가 빈발하며, 인명 피해와 시설물 붕괴 같은 1차적 피해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 질병 증가 등과 같은 2차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서울시의 2030 녹지계획은 공원 면적을 확대하고 생활권 접근성을 강화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원’ 비전을 실현하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폭염 등 기후위기에 지속가능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시 전반의 생태축을 연결하고 자생 식생을 도입해 생태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통합적 계획이 필요하다. 숲과 습지 등과 연결된 그린인프라는 홍수, 폭염, 대기질을 조절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적절한 식생과 관리는 산사태를 방지하며 동식물의 서식지를 제공한다. 또한 토양과 식생은 탄소를 흡수해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한다.
그레이 인프라는 각 요소가 단절되면 시스템 전체가 회복 불가능해지는 한계가 있어, 규모와 예측이 어려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 공원·녹지는 스스로 회복성을 지니며 도시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돕고, 시민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지탱하는 쉼터가 된다.
난개발과 양극화가 만들어 낸 취약한 도시 구조는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을 키워 왔다. 사람과 생태계의 편익을 함께 고려한 공원·녹지 중심의 통합적 도시계획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도 회복력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도시숲은 도시 미화가 아니라 도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