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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동물 | 인간 중심 도시계획의 실패, 비인간 생명체의 서식처로서의 도시설계 필요해

2025-12-18 최민욱 기자

도시에는 어떤 자연이 숨어 있을까. 빌딩 숲과 아스팔트로 채워진 도시는 흔히 인공적인 공간으로만 여겨지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 생태계의 균형을 지탱하는 수많은 생명체가 엄연히 존재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종한다"는 경고는 인간의 생존이 비인간 생명체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도시의 삶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잡초로 치부되는 풀 한 포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벌레, 도심 어디서나 마주치는 비둘기, 그리고 흙 속의 미생물 한 줌까지, 이들은 수분과 유기물 분해, 배수 및 토양 보존 등 필수적인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동안 놓쳐 온 도시 생명체의 역할은 도시 환경이 인간의 일방적인 관리가 아닌, 무수한 생명체들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고양대덕생태공원 뱀주의 푯말. 사진. Planet03 DB
고양대덕생태공원 뱀주의 푯말. 사진. Planet03 DB

잡초, 도시 틈새를 메우는 자연의 엔지니어


도시 화단에 자란 잡초와 비둘기. 사진. Planet03 DB
도시 화단에 자란 잡초와 비둘기. 사진. Planet03 DB

도시의 인도 틈새, 폐허가 된 공터, 개발 예정지 등 인간의 관리가 중단된 공간은 '잡초'로 불리는 야생 식물의 주요 서식지가 된다. 쇠뜨기, 강아지풀, 달맞이꽃, 개망초 등은 척박하고 오염된 환경에서도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도시 적응 식물이다. 특히 쇠뜨기는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에서도 생존하며, 유해 물질을 흡수·축적해 토양을 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게 정착한 식물군은 곤충에게 서식지와 먹이를 제공하고, 사멸 후에는 분해되어 토양 유기물을 공급함으로써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폐공장 지대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지로 천이되고 생물다양성이 회복되는 현상은 이러한 선구 식물들의 활동에 기인한다.


이러한 자생 식물군은 별도의 인위적인 관리 없이도 핵심적인 도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첫째는 빗물 관리 및 토양 보전 기능이다. 식물의 뿌리는 토양의 공극을 넓혀 빗물의 지하 침투를 촉진하고 수분을 함유하여, 도심 홍수 예방과 가뭄 완화에 기여한다. 또한 뿌리망은 토양 입자를 고정해 침식과 붕괴를 막고, 미세먼지와 중금속을 흡착해 환경 오염을 저감한다.


둘째는 곤충과의 공생을 통한 자생적 녹지 확산이다. 도시의 자투리땅에서 식물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주요 기제 중 하나는 개미를 이용한 종자 산포다. 빙엄턴 대학교의 크리스텐 프라이어(Kristen Prior) 박사는 개미가 식물의 씨앗을 운반하고 보관하는 과정이 숲과 녹지의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즉, 도시의 버려진 땅에서 일어나는 녹화 현상은 식물과 곤충(개미)의 협력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결과이며, 이는 훼손된 도시 자연이 스스로 복원되는 생태적 기초가 된다.


곤충, 해충 퇴치와 수분을 책임지는 작은 동물들


도시에서 곤충은 흔히 기피 대상이나 해충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생태계의 순환과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능 수행자다. 이들은 낙엽과 사체를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상위 포식자인 조류와 양서류의 먹이원이 되며, 수분(受粉) 매개와 해충 개체군 조절이라는 필수적인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이 유해하다고 분류하는 곤충조차 특정 생태적 지위에서는 먹이사슬의 연결고리이자 분해자로서 기능한다. 즉, 다양한 곤충군집이 유지되는 도시야말로 생태적 회복력과 건강성을 갖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농약 없이 키워 낸 목화잎 뒤에 달라붙은 해충. 사진. Planet03 DB
농약 없이 키워 낸 목화잎 뒤에 달라붙은 해충. 사진. Planet03 DB

곤충의 대표적인 생태적 기여는 포식 활동을 통한 해충의 생물학적 방제다. 잠자리는 모기의 주요 천적으로, 성충 한 마리가 월간 1200~3000마리의 모기를 포식하며, 유충(수채) 단계에서도 3000여 마리의 모기 유충을 섭취한다. 1983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잠자리 유충 한 마리가 27일간 모기 유충 1415마리를 포식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무당벌레 역시 식물 성장을 저해하는 진딧물의 천적으로, 성충 1일 기준 약 60마리의 진딧물을 포식한다.


이러한 천적 관계를 정책적으로 활용하는 시도 또한 확대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지자체가 추진하는 ‘친환경 천적 이용 해충구제 지원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축산 농가 등에 파리의 천적인 배노랑금좀벌을 공급해, 기생벌이 파리 번데기에 알을 낳아 유충을 사멸시키도록 유도한다. 이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곤충의 본능을 이용해 해충 밀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포식 곤충이 개체 수를 억제한다면, 꿀벌과 나비 등 수분 곤충은 도시 생태계의 '생산'을 담당한다. 도시의 공원, 가로수, 그리고 최근 늘어나는 도심 텃밭과 옥상 정원의 작물들은 곤충의 수분 활동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농작물의 3분의 1이 곤충의 수분을 통해 생산되는데, 이는 도시 농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히려 단일 작물 재배와 농약 사용이 잦은 농촌보다, 다양한 꽃이 피는 도시가 꿀벌들에게는 안전한 피난처이자 서식지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 내 꿀벌의 생존이 곧 전체 수분 매개 곤충의 보존과 직결된다고 경고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도시 식물의 번식이 멈추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식량 생산 기반인 곤충 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작은 곤충들은 해충을 잡아 질병을 막고, 부지런히 꽃가루를 날라 삭막한 도시에 생명을 틔움으로써, 거대한 인공 생태계가 멈추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엔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류, 해충 잡고 쓰레기를 치우는 자연 청소부


도시의 소형 조류는 곤충을 주 먹이원으로 삼는 포식자로서 해충 개체군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참새, 제비, 박새 등이 대표적인 식충성 조류다. 참새는 화단이나 풀밭에 서식하는 나방, 메뚜기 등을 섭취하여 지표면과 관목층의 해충을 제거한다. 제비는 공원 상공을 비행하며 날아다니는 곤충을 포획하고, 박새류는 가로수 가지와 잎에 붙은 나비목 유충 등을 집중적으로 잡아먹어 수목의 병해충 피해를 경감시킨다. 이러한 조류의 포식 활동은 인위적인 살충제 사용 없이도 해충의 밀도를 억제하는 '생물학적 방제' 기능을 담당하며, 도시 녹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까마귀. 사진. Planet03 DB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까마귀. 사진. Planet03 DB

도시 조류와 야생동물은 '생태적 청소부'로서 유기물을 소비하고 분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비둘기, 까마귀, 직박구리 등은 도심 곳곳의 음식물 쓰레기나 방치된 유기물을 섭취해, 부패로 인한 악취 발생과 해충 번식을 억제하는 데 기여한다.


멧돼지와 너구리 역시 낙엽, 떨어진 열매, 음식 잔반 등을 섭취하고 배설을 통해 영양분을 토양으로 환원하는 분해자적 기능을 담당한다. 도심 외곽에서 쓰레기 봉투를 훼손하는 행위는 인간에게 관리상의 문제를 일으키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이 배출한 잉여 유기물을 자연 순환계로 되돌리는 섭식 활동의 일환이다. 또한, 까마귀와 솔개 등은 로드킬로 발생한 동물 사체를 처리하여 부패로 인한 2차 오염과 질병 확산을 막는다. 이들은 단순한 비행 생명체가 아니라, 지상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물질 순환을 돕는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조류는 도시 녹지의 확장과 재생산을 돕는 종자 살포자 역할을 수행한다. 과실을 섭취하는 조류는 배설 과정을 통해 식물의 종자를 원거리로 이동시켜 식생의 지리적 확산을 유도한다. 특히 어치와 까치 등은 먹이를 땅속에 저장하는 저식 습성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회수되지 않은 종자가 발아해 묘목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러한 조류의 매개 활동은 인간의 인위적인 식재 없이도 공원 외곽이나 유휴지의 식생이 자생적으로 복원되고 순환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또한 도시 조류는 환경의 질을 가늠하는 생태 지표이자, 거주민의 정신적 건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조류의 청각적 신호(지저귐)와 생물 종 다양성이 도시민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낮추고 정서적 만족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류는 단순히 도심을 비행하는 객체가 아니라, 종자 확산을 통해 녹지를 조성하고 인간의 생활 환경에 생태적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기능한다.


토양 속 미생물, 분해와 정화의 숨은 공로자


도시의 지하 생태계, 특히 토양 미생물과 미세 동물군은 눈에 띄지 않지만 도시 환경 유지의 필수적인 기반이다. 토양 미생물은 유기물 분해의 최종 단계를 담당하며, 식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순환 고리의 핵심이다. 가을철 대량으로 발생하는 낙엽과 식물 잔해는 흰개미, 톡토기 등 토양 곤충(분해자)에 의해 1차적으로 파쇄되고, 이후 세균과 곰팡이가 이를 무기물로 완전히 분해해 토양으로 환원시킨다. 이러한 생물학적 분해 과정은 도시 녹지의 부패를 방지하고 매년 식생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는 천연 비료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지렁이길. 사진. Unsplash
지렁이길. 사진. Unsplash

또한 미생물은 토양 오염을 저감하는 '생물적 환경정화(Bioremediation)' 기능을 수행한다. 특정 미생물군은 중금속이나 유류 오염 물질을 분해하거나 독성을 완화하는 대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폐공장 부지와 같은 오염된 토양에서도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는 것은 내성 미생물이 유해 물질을 흡착하거나 전환해 완충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 활동으로 축적되는 환경 오염 부하를 미생물 군집이 일정 부분 상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렁이와 같은 토양 무척추동물은 물리적인 토양 개량 효과를 제공한다. 지렁이의 굴착 활동은 토양 내 공극을 형성해 통기성을 높이고 빗물의 지하 침투를 촉진한다. 연구에 따르면 지렁이가 서식하는 토양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배수 속도가 최대 10배 빠르며, 이는 도심 녹지의 우수 침투 능력을 향상시켜 국지적 침수 예방에 기여한다. 또한 지렁이의 배설물(분변토)은 미네랄이 풍부한 유기질 비료 역할을 해 식물 생장을 돕는다. 결국 미생물에서 시작되어 토양 동물, 곤충, 조류로 이어지는 먹이망과 물질 순환은 인공적인 도시 환경 하부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며, 도시 생태계의 건전성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도시 생명체들의 보이지 않는 생태 서비스에 감사하며


도시는 인간의 배타적인 관리로 유지되는 공간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비인간 생명체들의 광범위한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하여 작동한다. 도시의 곤충, 조류, 미생물 등은 각자의 생태적 지위에서 해충 방제, 유기물 분해, 오염 정화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인공 조명과 소음 등 가혹한 도시 환경에서도 이들은 진화적 적응을 통해 생존하며, 역설적으로 도시 생태계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강화하는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도시가 물리적 인프라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네트워크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인간의 안전 및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생물종의 소멸이 생태계 전반의 연쇄적인 붕괴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화분 매개자인 벌의 실종은 식량 생산 체계의 위협으로, 포식성 곤충의 감소는 특정 해충의 대발생과 농작물 피해로 이어진다. 따라서 매미 소리나 조류의 지저귐이 사라진 도시는 단순한 정막이 아닌, 토양과 하위 생태계의 기능 정지를 알리는 신호로 해석되어야 한다. 결국 인간 중심의 도시 계획은 한계에 봉착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 관리는 다양한 생물종과의 공존을 전제로 한 생태학적 접근 방식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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