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햇빛과 바람이 농촌, 어촌, 산촌을 다시 살린다
- sungmi park
- 6월 20일
- 3분 분량
도시의 성장 뒤에는 지역의 희생이 숨어있다. 지역이 소멸되는 ‘기본사회’는 없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햇빛, 바람, 물이 에너지가 되고 돈이 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날씨에 따라 좌우되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날씨연료’라고도 한다. ‘화석연료’와 대조해서 말이다. 화석연료와는 달리 청정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다. 무한에 가깝게 풍부한 에너지 원료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사용 하는 평등한 공유 자원이기도 하다. 햇빛, 바람, 물은 오랫동안 연료라기보다는 ‘이용 가능 자연’ 이라고 간주되었다. 인류는 줄곧 이를 가지고 농사를 지어 살아왔다. 동물도 마찬가지고 식물의 광합성이 가능한 것도 햇빛, 바람, 물이 있어서다.
날씨연료는 자연에 기반한 에너지원이기에 친환경이지만, 동시에 불확실성과 변동성이라는 고유한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적인 중앙 집중식 전력망 구조와 잘 맞지 않아 확산에 제약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러한 한계는 극복되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 기술의 효율은 꾸준히 개선되었고 초기 설치비용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발전 단가는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에너지 저장 기술, 분산형 전력망, 스마트 그리드 등과 같은 보완 기술의 발전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변동성을 완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의 경제성과 안정성을 높이며, 날씨연료가 미래 에너지 체제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어 가고 있다. 날씨연료는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대안이 되고 있다. 햇빛, 바람, 물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력적인 ‘사회 안전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 농업, 어업, 임업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진행된 중화학 제조 중심의 초고속 산업화는 대한민국을 경제 규모 세계 10위에 육박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산업화의 열매가 도시로 집중되는 와중에도 도시를 먹여 살리는 건 농어촌, 산촌의 몫이었다. 식생활이 바뀐다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이 한계에 몰려 생산력이 떨어지고 생산물이 부족해지자, 도시와 국가는 외부에서 수입해 오는 걸로 해결했다. 공장을 돌려서 나오는 돈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원인은 결국 산업과 사회 구조의 문제로 귀결된다.
구조적 모순은 지역 인구 감소, 고령화, 부의 편중 등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역 생산물에 대한 가격지지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격지지는 임시방편일 순 있지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처방으론 적절하지 않다. 양곡 수매를 둘러싸고 농민단체와 정부당국 간 평행선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혜 시비가 없이 정당하고 지속가능하게 작동하는 묘안이 필요하다. 영세한 규모, 부재지주, 기반시설 부족, 수입 강제, 기후변화 등은 우리나라 농어촌, 산촌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다.
날로 궁핍해가는 지역사회에 ‘햇빛 바람 연금’은 한 줄기 빛이다. 햇빛 바람 연금은 태양광과 풍력 등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수익을 지역 주민에게 배당하거나 기초소득처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햇빛과 바람은 공공자원이므로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은 지역 주민에게 보편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2050년 탄소중립’은 꼭 가야 할 길이다. 갈 길이 먼데 대한민국은 ‘기후 악당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총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 합의는 필요조건이다. 햇빛 바람 연금은 에너지전환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소득재분배 수단이다.
햇빛 바람 연금의 상위 개념으로 ‘이익공유제’가 사회적으로 검토되고 논의되고 있다. 공공 자산을 활용하거나 지역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개발에서 발생한 이익을 사회 전체 또는 해당 지역과 공정하게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다. ‘신안 해상풍력 사업’은 국내에 실현된 대표적인 이익공유제 실증 사례다. 주민이 발전 사업에 지분 투자하여 배당금을 수령하는데, 수익의 30%까지 지역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주민참여형 이익공유제 모범사례다. 남은 건 검증된 모델의 확산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 시행이다.
바야흐로 햇빛과 바람이 돈이 되고 그 돈이 지역에 분배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중앙으로 집중되고 발전 수익이 소수 기업과 기관에 과점되는 ‘화석연료’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관건은 속도다. 세상은 분명 이익공유제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 시대가 만들어 놓은 관성은 무시할 수 없는 만큼 크다. 화석연료에 기반 하여 꿀맛을 보던 기업과 집단은 할 수 있는 만큼 저항할 것이고 속도를 늦추려고 할 것이다. 기존의 거센 파고를 넘어서 순항하려면 지역주민과 시민의 합의가 준비되어야 한다. 합당하고 안정적인 보상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태양 복사량이 풍부하고,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풍력 자원이 존재하며, 관련 과학기술 역량 또한 세계적인 수준을 갖추고 있는 국가다. 이처럼 풍부한 날씨연료 잠재력과 기술 기반을 감안할 때, 현재 우리 수준은 지나치게 낮아 실망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다. 이익공유제, 햇빛 바람 연금과 연결 된 재생에너지 총량 확대는 농어촌, 산촌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본사회위원회’를 직속으로 두고 기본사회 실현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더 늦기 전에 지역을 챙겨야 한다. 지역이 소멸되면 ‘기본사회’도 없다.

햇빛 바람 연금은 일종의 자연기반해법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