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한국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반복되는 역사, 달라진 세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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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윤효원
1950년대에는 미국이 미군을 직접 투입해 전쟁을 주도했지만, 2020년대에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직접 개입조차 하지 못한다. 2025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일 국가의 분쟁을 넘어 유럽의 정치·사회적 기반을 뒤흔들며, 유럽연합이 수십 년간 지향해 온 사회적 유럽의 가치를 대체하는 군사적 유럽의 부상을 촉발하고 있다. 전쟁의 장기화로 군비 확대와 방위산업 강화가 각국의 정책 우선순위를 점령했고, 복지·노동·환경 의제는 주변화되었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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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지정학, 국제질서로 본 두 전쟁 해석
2025년 겨울,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비공개 협상이 진행되면서 정전 프레임이 형성되고 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 구조의 주요 플레이어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이는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에서 대한민국이 배제되었던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전쟁 개시는 민주당 대통령이, 전쟁의 종결은 공화당 대통령이 주도한다는 미국 정치의 리듬까지 거의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도 두 전쟁은 결정적으로 다른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전쟁은 전쟁 전과 유사한 경계에서 정전이 이루어졌지만,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 러시아가 장악한 약 11만5000~11만6000㎢(전체의 약 19%)라는 거대한 영토를 상실한 채 전쟁을 끝낼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이번 칼럼에서는 두 전쟁을 노동·지정학·국제질서의 관점에서도 깊이 있게 재해석해 보고, 한국전쟁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역사적 반전 구조에 담긴 의미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950년대에는 미국이 미군을 직접 투입해 전쟁을 주도했지만, 2020년대에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직접 개입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을 통해 미국 국력의 현실적 변화까지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의 몰락을 살펴본다. 2025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일 국가의 분쟁을 넘어 유럽의 정치·사회적 기반을 뒤흔들며, 유럽연합이 수십 년간 지향해 온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의 가치를 대체하는 군사적 유럽(Military Europe)의 부상을 촉발하고 있다. 전쟁의 장기화로 군비 확대와 방위산업 강화가 각국의 정책 우선순위를 점령했고, 복지·노동·환경 의제는 주변화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확전을 억제하며 평화를 촉진했던 유럽은 이제 오히려 전쟁 장기화와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호전적 블록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유럽의 문제를 넘어, 전후 세계질서가 더 군사화되고, 더 불평등해지며, 민주주의·노동권·환경 등 인류 보편의 가치가 후퇴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등장을 예고한다.

전쟁 개시는 민주당, 전쟁 종료는 공화당: 반복되는 미국 정치의 주기
한국전쟁은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 시기에 미국이 전면 개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는 봉쇄전략의 첫 시험대였던 만큼 미국은 유엔군을 조직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희생이 커지면서 미국 사회는 피로감에 빠졌고, 1952년 대선에서 아이젠하워가 “한국에 평화를”을 약속하며 대통령이 되었다. 새로 집권한 공화당 정부는 즉시 정전협상을 밀어붙였고, 결국 1953년 전쟁이 종료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이 패턴을 거의 반복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의 바이든이었다. 미국은 막대한 무기·정보·재정지원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목표로 했지만, 전쟁이 3년 이상 지속되면서 미국 내부에서도 비용 문제·정치적 피로감이 누적되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이후 미국의 기류는 완전히 바뀌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전쟁을 빨리 끝낸다”는 기조를 앞세웠고,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종전 프레임을 만드는 구도 속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은 사실상 배제되었다.
두 정권의 공통점: 내부 부패·무능, 외세 의존
이승만 정부와 젤렌스키 정부 사이에는 시대적으로, 제도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두 정권은 부패·무능·외세 의존이라는 구조적 공통점을 공유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행정 기능이 마비되고, 군·경찰 조직은 부패와 무질서로 가득했다. 국군의 붕괴와 후퇴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가 낳은 구조적 문제였다. 미국조차 이승만 정부를 통제 대상으로 보았고, 결국 협상 자리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젤렌스키 정부 역시 초기에는 민주적 정통성과 개혁 의지가 높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방위산업·보급 체계·지자체에서 각종 비리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서방 내부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부패 문제는 지원 지속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공개 지적되었다.
이처럼 내부적 취약성은 두 정권이 스스로 전쟁을 감당할 능력을 제약했고, 그 결과 외세 의존도는 절대적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리고 외세 의존은 전쟁 종결 협상에서 당사국 지도자가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사국 지도자의 협상 배제: 이승만과 젤렌스키의 공통된 운명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대한민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의 정전 반대가 전쟁 종결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했고, 중국·북한과 직접 협상을 마무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젤렌스키는 거의 동일한 경험을 겪고 있다. 미국 특사와 러시아 고위층이 마이애미, 앙카라 등에서 비공개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젤렌스키 정부는 초기 단계부터 배제됐다. 유럽연합(EU) 역시 배제된 상태다. 이는 약소국이 외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순간 전쟁의 결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
한국전쟁은 ‘원상회복형 정전’, 우크라이나 전쟁은 ‘점령지 확장형 정전’
한국전쟁은 수백만 명의 희생이 있었지만, 휴전선은 전쟁 전 38선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전쟁 결과로 잃거나 얻은 영토는 거의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2025년 기준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는 약 11만5000~11만6000㎢,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19%에 달한다. 이는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경제·전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을 포함한다. 러시아는 이미 이 지역을 법적으로 ‘자국 영토’로 병합했다. 정전이 체결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 상실한 이 땅을 되찾지 못한 채 전쟁을 끝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차이는 두 전쟁의 본질적 차이가 미국 국력과 국제 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국전쟁은 미군이 직접 개입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미군이 개입하지 못한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주도국이었다. 미국은 수십만 병력을 파병했고, 공군과 해군력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이 담당했다. 육군 지상전에서도 미국의 병력과 전투력은 한국군을 압도했다. 이는 단순한 동맹 지원이 아니라 패권국이 세계 전략 체제의 중심에 서 있던 시기의 군사력 투입 방식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미국이 단 한 명의 미군도 전투에 투입하지 않았다. 무기·정보·재정 지원은 가능했지만, 미국은 러시아와의 직접 충돌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 GDP의 세계 비중은 1950년대 40~50%에서 2020년대 20%대로 반감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경제력·군사력·기술력에서 미국을 실질적으로 추격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중동·아시아라는 3대 전선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데, 러시아와의 직접전은 곧 중국과의 충돌 위험으로 연결된다.
무엇보다 미국 내부적으로 정치가 분열되어 있고, 제조업 쇠락으로 군수 체계가 지연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즉,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직접 투입할 수 있었던 미국 절대 패권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뜻이다.
이 구조적 변화 때문에, 한국전쟁은 ‘미군 개입 → 전선 고정 → 원상 회복’이라는 경로를 거쳤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군 비개입 → 러시아 점령 지속 → 점령지 확정’이라는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중국이 북한을 도왔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이 러시아를 돕는다
한국전쟁에서 결정적 요인은 중국의 개입이었다. 중국 군대는 100만 명 이상을 투입했고, 이는 유엔군과 한국군이 처음 맞이하는 가장 강력한 전투력이었다. 중국의 개입은 전쟁의 향방을 바꾸었고, 미국 단극체제를 본격적으로 시험한 첫 사건이었다.
2020년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대규모 병력에 더해 포탄·미사일·단거리 로켓을 러시아에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70년 전에는 중국이 북한을 도왔지만, 70년 후에는 북한이 러시아를 돕는 이 반전 구조는 세계질서가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노동·지정학·국제질서의 관점에서 두 전쟁을 다시 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사회·경제·노동·환경을 아우르는 유럽 전체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과거 유럽연합이 지향했던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의 가치—사회적 연대, 노동권 강화, 복지국가, 환경적 전환, 평화적 공존—이 전쟁을 거치며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유럽의 지형은 이제 점점 “군사적 유럽(Military Europe)”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이는 전후 세계질서가 얼마나 암울한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첫째, 전쟁은 유럽을 사회적 가치에서 군사산업 중심 구조로 전환시키고 있다
전쟁 전 유럽연합은 사회적 권리 기준을 강화하고 기후위기를 중심축으로 하는 녹색전환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군비 확장·무기 생산·방위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회복지·노동권·환경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났고, EU 예산의 우선순위는 평화·복지·전환이 아니라 군비·억제·전술적 대응 체계로 이동했다. 사회적 유럽의 철학은 지속 가능한 노동, 인간다운 삶, 시민권의 확장에 있었지만, 지금 유럽은 디폴트 상태로 “군사적 동원체계”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둘째, 유럽연합 자체가 약화되고 있고, NATO가 사실상의 정치기구로 변질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은 EU가 아니라 NATO의 전략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있다. EU는 외교·안보의 주도권을 상실했고, 전쟁 관련 핵심 의사결정은 NATO 회의와 미국의 전략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는 전후 수십 년 동안 유럽이 추구해온 ‘자율적 유럽’이라는 꿈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치·경제·사회 정책에서 EU는 점점 ‘형해화된 기구’로 전락하고, NATO는 군사동맹을 넘어 유럽의 정치적 방향성까지 주도하는 초국가적 정치기구로 올라서고 있다.
셋째, 유럽 내부에서 사회·환경·노동의 가치는 더욱 심각하게 침식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정책이 후퇴하고, 친환경 전환이 지연되며, 긴축정책이 강화되고, 이주민·난민 정책에서는 배제와 억압 기조가 강해졌다. 노동권은 전쟁경제·군수산업 구조 속에서 압박받고 있으며, 복지 축소의 압력이 강화되었다. 사회적 유럽의 핵심 가치였던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파트너십 모델’도 군사안보 우선주의 속에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독일·프랑스·동유럽 국가들이 극우화·반전환·반노동 기조로 이동하는 것은 이러한 구조적 후퇴의 징후다.
넷째, 한국전쟁 당시 유럽이 했던 역할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51~53년 한국전쟁 시기 유럽 각국은 미국의 ‘원자전쟁 계획’과 중국 본토 공격론을 비판하고 억제하는 견제 역할을 했다. 영국,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전쟁 확전 반대’와 ‘정전 우선’이라는 기조로 미국에게 압력을 넣었고, 이는 결국 정전협정이 성사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유럽은 전쟁을 축소시키려는 방향에서 국제적 균형추 역할을 했다.
지금의 유럽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럽 다수 국가는 정전 반대, 전쟁 장기화, 군사적 승리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보다 더 강경하게 러시아 제재·승리 목표를 주장하고, 외교적 절충과 정전 모색을 오히려 방해하는 쪽에 서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평화 촉진자 유럽’이 아니라, 지금의 유럽은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전쟁을 확대·장기화시키는 ‘호전적 블록’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 이후의 세계가 민주주의·노동권·사회권·환경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서 얼마나 멀어지는지를 예고한다. 전쟁경제가 지배하는 다극화 세계체제에서 노동권은 주변화되고, 환경정책은 후퇴하며, 사회적 보호는 약화될 뿐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도 냉전적 진영논리에 갇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국가 간의 충돌이 아니라, 사회적 유럽의 붕괴, 국제노동규범의 후퇴, 민주주의·환경·평화라는 인류적 가치의 축소를 동반하는 문명사적 전환점에 가깝다. 이것이 우리가 두 전쟁을 노동·지정학·국제질서 관점에서 다시 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결론: 반복되는 역사에서 드러난 국력의 현실, 사회적 유럽의 붕괴, 더 가혹한 세계질서
한국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사건이지만, 정치·군사·제도·외교적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의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 준다. 미국 민주당이 개입을 결정하고, 공화당이 종전을 주도하며, 당사국 정부는 부패·무능과 외세 의존으로 협상에서 배제되고, 전쟁의 결말은 강대국 간 정치적 타협 속에서 결정되는 패턴까지 흡사하다.
두 전쟁의 가장 큰 차이는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1950년대 미국은 압도적 패권국이었고, 미군의 직접 개입은 전쟁 자체를 전환시키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한국전쟁이 전쟁 전과 유사한 경계에서 정전되었던 이유도 미국의 군사력 투입이 가능했던 “단극 체제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반면 2020년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더 이상 직접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단순한 신중함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국력의 상대적 쇠퇴와 세계 다극화가 만들어 낸 구조적 현실이다. 이 변화는 전쟁의 결말, 즉 러시아가 점령한 약 11만5000~11만6000㎢를 우크라이나가 되찾지 못한 채 전쟁이 종료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했다. 한국전쟁 당시 유럽은 미국의 확전론과 핵전쟁 가능성을 억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은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의 가치—사회적 권리, 노동권, 환경, 공존—을 상실하고, 군사동맹의 정치기구로 변질된 NATO의 하위 전략체로 편입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전략적 자율성을 상실한 채 형해화되고, 유럽 각국은 오히려 정전 반대와 전쟁 장기화를 주장하는 호전적 세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은 유럽이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세계의 규범을 선도하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전쟁경제화는 노동권을 약화시키고, 군비 경쟁은 환경·기후 정책을 후퇴시키며, 비군사적 국제 협력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민주주의, 인권, 노동권, 환경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주변화되고, 전쟁경제와 군사동맹의 논리가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이번 전쟁은 단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아니라,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는 세계사적 전환, 사회적 유럽의 붕괴와 군사적 유럽의 부상(지난 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노동·환경·사회권의 총체적 후퇴, 약소국의 더욱 가혹한 국제질서, 그리고 강대국 정치가 전쟁과 평화를 독점하는 미래를 예고한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 반복은 결코 같은 모습이 아니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이 가져온 질서는 불완전했지만 복구 가능한 틀을 남겼다. 그러나 2025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기는 질서는 더 분열되고, 더 위험하며, 더 불평등한 세계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의 전쟁을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이 아니라, 노동·민주주의·사회적 가치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계질서의 근본적 변화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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