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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한반도의 교훈

2025-10-24 윤효원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으로 본 미중 관계와 남북 관계의 나아갈 길. 한반도 평화,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을 통해 미중 갈등과 남북 관계를 분석하고, 두려움 대신 신뢰와 협력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의 조건을 제시한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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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의 전환, 전쟁의 유혹


하버드대학교 교수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패권국과 신흥국이 충돌할 때 전쟁은 거의 불가피하다"는 역사적 패턴을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이라 불렀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부상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고 썼다. 그 한 문장은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제정치의 가장 냉혹한 공식으로 남아 있다.


앨리슨은 지난 500년 동안 벌어진 16번의 패권 교체 중 12번이 전쟁으로 끝났다고 분석했다. 남은 4번의 평화적 전환은 극히 예외적이었다. 그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단지 군사력의 균형 문제나 외교적 실수의 결과가 아니라, 패권이 이동하는 시기에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두려움, 오만, 오판의 정치적 심리 구조라고 본다.


이때 지도자들은 자신의 체제를 지키려는 본능적 공포에 휩싸이고, 그 공포가 새로운 충돌의 정당화를 낳는다. 이 점에서 앨리슨의 논의는 현실주의 정치학의 냉정함을 넘어 심리적 차원의 역사철학에 가깝다.


2018년 9월 "중국과 미국 사이 전쟁은 불가피한가?"를 주제로 테드 강연을 하고 있는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 사진_테드
2018년 9월 "중국과 미국 사이 전쟁은 불가피한가?"를 주제로 테드 강연을 하고 있는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 사진_테드

미국과 중국의 투키디데스 함정


오늘날 미중 관계는 이 함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룰 메이커'로서 2차대전 이후 자신이 구축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의 70%를 넘어선 이후, 세계 권력의 무게중심은 점점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은 "백 년의 굴욕을 끝내고 중화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중국몽'을 내세워 국가 자부심을 결집시키고,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를 통해 유라시아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경제 성장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기술굴기와 군사력 확대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이념 대립을 넘어 패권의 중심 이동을 예고하는 구조적 도전이다. 그래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Quad), 오커스(AUKUS) 같은 안보 동맹망을 강화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를 '포위 전략'으로 인식한다. 이 상호 불신의 악순환은 냉전의 재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냉전보다 더 복합적이다. 이념보다는 경제·기술·체제 경쟁이 얽힌 복합 냉전, 즉 21세기형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전쟁을 피한 예외, 미·영 관계의 교훈


앨리슨은 16개의 역사적 사례 가운데 전쟁을 피한 몇 안 되는 예외로 20세기 초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든다. 당시 미국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 패권을 장악한 영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었다. 영국은 그 부상을 위협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협력과 제도적 동맹의 길을 택했다.


양국은 공통의 언어, 문화, 제도, 가치 위에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구축했다. 영국이 미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자신의 역할을 조정했기에 두 국가는 전쟁이 아닌 협력의 역사를 썼다.


앨리슨은 "두려움이 아닌 상호 인정의 정치가 전쟁을 피하게 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외교적 기술이 아니라 문명적 태도의 문제다. 상대의 성장을 억누르는 대신, 새로운 질서를 함께 설계하려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패권의 시대'를 넘어설 유일한 길임을 시사한다.


남북 관계, 또 다른 투키디데스의 함정


한반도의 현실도 이 함정과 무관하지 않다. 남과 북은 80년 가까이 서로의 부상을 두려워하며 대립해 왔다. 북한은 체제 안전을 위해 핵무장을 선택했고, 한국은 동맹 강화와 군사 훈련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언어는 달라졌지만, 그 근본 감정은 같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다. 북은 '체제 생존'을, 남은 '안보와 경제 번영'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양측 모두 상대의 공포를 정확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한쪽의 안보는 다른 쪽의 불안을 자극하고, 제재와 군사 훈련이 반복되며 긴장은 일상화된다.


이는 미중 관계의 축소판이며, 한국 내부에서도 같은 심리가 작동한다. 남북 관계는 단순한 군사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인정과 두려움의 정치가 교차하는 복합적 구조다.


생존 협력으로의 전환


그럼에도 한반도에는 희망의 가능성이 있다. 미중이 세계 질서의 재편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갇혀 있다면, 남북은 '공동 생존'이라는 구체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인구 감소, 고령화, 기후위기, 에너지 안보 등 이념을 넘어선 구조적 위기 앞에서 양 체제는 공통의 생존 과제를 안고 있다.


바로 체제 경쟁을 생존 협력으로 전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컨대 한반도의 기후변화 대응, DMZ 생태 보존과 재생에너지 협력 같은 주제들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면서 신뢰를 축적할 수 있는 실질적 출발점이다. 남북 모두 '누가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전쟁을 피하는 세 가지 조건


앨리슨은 전쟁을 피한 사례에서 세 가지 공통점을 도출한다. 첫째, 지도자의 상상력이다.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군사 충돌을 피한 것은 힘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과였다. 둘째, 국내 정치의 자제력이다. 지도자가 내부의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통제하지 못할 때, 외교는 파국으로 향한다. 셋째, 새로운 질서의 수용이다. 영국이 미국의 부상을 받아들였기에 평화적 전환이 가능했다.


이 세 가지는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반도의 평화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자제력과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지도자가 국민의 공포를 자극하지 않고 상호존중의 언어를 선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이 열린다.


신뢰의 균형을 세우는 일


오늘의 동북아 정세를 보면 '냉전의 귀환'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냉전은 단순히 군사적 대립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문제는 남북 모두 여전히 그 낡은 세계관의 포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한쪽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다른 한쪽은 '자주'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절대화한다.


이념이 아니라 신뢰의 균형(balance of trust)을 세워야 한다. 힘의 균형이 일시적 평화를 보장했다면, 신뢰의 균형은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든다. 이는 외교의 언어이자 사회적 상상력의 과제다. 노동, 복지, 기후, 기술. 이 모든 영역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상상력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패권의 시대마다 인간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두려움이 이끄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상상력이 여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레이엄 앨리슨이 경고한 것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불러오는 인간의 사고방식이었다. 그의 책은 단지 국제정치의 이론서가 아니라 문명적 자기 성찰의 거울이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는 미중뿐 아니라 남북의 미래를 함께 비춰 봐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은 패권의 충돌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 틈새에서 새로운 질서와 상상력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려움 대신 존중, 경쟁 대신 협력, 배제 대신 공존의 정치가 가능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함정'을 넘어설 수 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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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11월 13일

패권경쟁에 대한 통찰...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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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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