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 풍경ㅣ내란과 권력 카르텔
- hpiri2
- 5일 전
- 4분 분량
2025-05-16 최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배 엘리트들의 증오, 그 권력 카르텔의 내란 시도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대중은 호남이어서, 노무현은 80년대 운동권의 상징이었고 많은 진보인사를 등용해서, 조국은 검찰 개혁의 진보적 행보로 지배 엘리트들에게 시달렸다. 소년공 이재명에 대해서는 아주 순수한 계급적 분노 외에 설명이 안 된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어쩌다 보니 5월이 정치의 계절이 되었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 몇 대목 올린다.
섬뜩한 막장 드라마는 외통수에 몰리고 있다
사실 작년 12월 3일 이른바 ‘계엄 내란극’ 이후 두 번, 혹은 세 번 벌어진 (구)집권세력의 내란 시도에 대해 나는 신박하게(?) 예견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계엄 선포야 논외로 치고, 판사 지귀연의 윤석열 석방, 대법원장 조희대의 파기환송, 새벽에 감행된 한덕수 옹립 시도 모두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마도 최후의 수는 물리적 테러 정도이지 않을까? 일련의 내란극을 기획한 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최초의 실패로부터 무리수와 강박, 섬뜩함이 섞인 이 막장 드라마는 점점 외통수에 몰리고 있다. 공화국은 10여 일 후에 다시 정상 궤도로 복귀할 것이다.
사법-검찰-언론-재벌-종교 권력 카르텔의 집착, 그 심성 밑바닥에
그래서 내 관심은 이 사태의 구체적 경과보다는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에 대한 권력 카르텔의 증오 혹은 혐오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굳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와 동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법부-검찰-언론-재벌-종교로 이어지는 권력 카르텔이 이재명에 보이는 집착은 단지 제 1야당의 대표에 대한 정치적 공격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그들과 일종의 지배 동맹 관계인 야당, 혹은 호남 출신 권력 엘리트 일부(이낙연과 같은) 역시 비슷한 집착을 드러낸다. 도대체 그들 심성 밑바닥의 무엇이 이런 집착을 낳은 것인가?
김대중, 노무현, 조국에 대한 증오
이런 종류의 맹목적인 증오와 공격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과거 김대중은 1971년 4월 대통령선거—부정선거였음에도 당선될 뻔했던—이후 거의 30년간 온갖 공격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남북화해에 대한 신념, 진보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 등의 동기 너머에는 명백히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가 절대적이었다. PK 출신 노무현이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고 2009년 5월 서거(자살이지만 타살에 가까웠던)할 때까지 시달린 이유는 그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고, 많은 진보적 인사들을 등용했던 데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조국 일가에 대한 토끼몰이식 공격은 어떠했나? PK출신이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엘리트(서울대 출신에 부유한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중 하나인 그가 취한 진보적인 행보(사노맹에서 검찰개혁까지)에 대한 증오가 이유였지 않았나.
소년공 출신에 대한 아주 순수한 계급적 분노
그렇지만, 이재명에 대한 증오과 공격은 궤를 달리한다. 내가 보기에 권력 카르텔, 혹은 지배동맹의 파워 엘리트들이 그를 증오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소년공’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주 순수한 계급적 분노가 아니라면 이 사태가 해석되지 않는다. 그가 TK 출신 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서 상경한 ‘무수저’ 출신이 감히 시장과 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권력 카르텔의 파워 엘리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인 것인가. 만약 그가 조금 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그래서 검정고시가 아니라 상고라도 나왔더라면, 4년 장학생으로 중앙대를 선택하지 않고 서울대나 고대에 갔더라면, 지역운동에 투신한 변호사출신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서초동의 로펌에서 그럴듯한 직함으로 활동하다가 인권변호사 출신 쯤으로 정계에 데뷔했더라면. 그랬다면 이런 식의 증오는 없었을 것이다.
기존 '문화자본' 소유자들이 내란을 일으켰다
아마도 피에르 부르디외라면 이 사태에 대해 ‘문화자본’을 둘러싼 쟁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른바 ‘문화자본’이란 화폐나 상품과 다른 지위, 혹은 질서상의 지속적인 우월적 위치를 말한다. 공고히 형성된 기존 질서하에서 획득한 ‘문화자본’의 소유자들은 이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묵과하지 않기로 결심한 성 싶다. 그래서 그들이 내란을 일으켰다.
예상 밖의 후보자들: 김문수, 이준석
웃기는 것은 그 내란의 결과로 치러지게 된 이번 6.3 대선의 주요 후보자들 역시 예상 밖이라는 점이다. 여당의 후보자인 김문수가 지난 12월 2일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올해 73세의 노령인 그가 고용노동부장관직을 넘어 대선에 도전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TK 출신이자 서울대를 나왔지만, 서노련과 민중당을 거쳐 급격한 우회전을 거듭한 그가 권력 카르텔의 주류였던 적은 없다. 하버드대를 나왔다는 학력이 경력의 전부인 이준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역대 제3지대 후보(정주영-박찬종-정몽준-문국현-안철수 정도일까) 중 가장 하위 버전이라는 점 정도, 영악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
민족주의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있었다
스위스 출신의 한국사학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1935~)가 쓴 『조상의 눈 아래에서』(너머북스, 2018)라는 책이 있다. 일종의 보학(譜學)이랄 수 있는 이 984페이지의 책에서 그녀는 아득한 1천 년 세월을 지나 명멸해 온 한국사회의 권력 카르텔을 낱낱이 소개한다. 고려 초기에 형성되어 거의 조선 말에 이르는 주요 가문들의 연대기와 왕씨(王氏), 이씨(李氏)의 두 왕족 가문을 더하면 1천 년간 유지되어 온 지배구조가 보인다. 1876년 개항(開港) 이후 깨진 질서의 새로운 승자는 기존 가문 중 일부(굳이 얘기하자면 노론 계열)와 소위 ‘제2 신분집단’(중인, 향리, 서얼, 무반, 서북인 등) 출신들이었다. 황경문이 쓴 『출생을 넘어서』(너머북스, 2022, 영서 원제는 『Beyond Birth』, 2004년 출간)를 보면 이 사정을 소상히 알게 된다. 짧은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통해 획득한 ‘문화자본’의 새로운 소유자들은 정부 수립 이후에도 그 기득권을 놓치지 않았다. 일본에 봉사하던 친일파 엘리트들이 미국의 지배에도 너무나 편안히 순응한 이유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실제로도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힘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p456에서)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김우영, 문옥표 옮김, 『조산의 눈 아래에서-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 너머북스, 2018. 황경문 지음, 백광열 옮김, 『출생을 넘어서 - 한국 사회 특권층의 뿌리를 찾아서』, 너머북스, 2022.
권력 카르텔에 편입되려면, '아래가 아니라 위를 봐야 한다'는 문제
오늘날,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승자독식’의 지배구조가 80년대 이후 서서히 무너졌다는 사실.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완성도 역시 높아졌다는 사실. 그래서 1998년 김대중과 2002년 노무현의 집권 이후 새로운 지배 엘리트가 편입되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지배 엘리트로 성장하여 권력 카르텔에 편입되려면 아래가 아니라 위를 봐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에 있다.
그걸 지키지 않은 김대중은 평생 고초를 겪었고, 노무현은 사실상 살해당했으며, 조국은 현재 옥중에 있다. 소년공 이재명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는가? 우리는 10여 일 후에 알게 될 것이다. 일단은.
지난 기사
권력카르텔의 이재명에 대한 묻지마 혐오와 두려움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