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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 기후재난, 인류의 '취약성'이라는 장애를 일깨우다

2025-10-02 김복연 기자

전장연 박주석 정책실장은 기후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이 희생되는 것은 개인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애초에 장애인을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재난 담당 부처와 장애인 부처 간의 책임 전가(핑퐁), 그리고 '도와줄 사람을 지정하라'는 식의 개인 책임만 묻는 매뉴얼이 문제의 근원이다. 특히, 폭염에 전동 휠체어가 고장 나거나 공공임대주택 설계 시 배리어 프리가 배제되는 등 일상적인 취약성이 재난 시 생존권 위협으로 이어진다. 박 실장은 이러한 기후위기를 "인류가 장애를 입게 되는 것"에 비유하며, 성장 중심주의를 버리고 장애 운동의 연대와 상호 의존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주석 정책실장. 사진 플래닛0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주석 정책실장. 사진 플래닛03

지난 몇 년간 경북 지역을 휩쓴 산불 현장이나 예측할 수 없이 쏟아진 폭우와 폭염 속에서, 우리는 재난 보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목격한다. 사망자 및 실종자 명단에는 소아마비 환자, 청각장애인, 와상 환자 등 스스로 대피할 수 없었던 장애인들의 이름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 비극은 단순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애초에 특정 시민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배제했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 참사임을 시사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주석 정책실장은 기후위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장애인이 장애가 있어서 피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피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단언한다. 기후변화는 그저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인 셈이다.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 핑퐁과 '개인 책임'으로의 전가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정부 부처 간의 책임 전가(핑퐁)이다. 재난 대응을 맡는 행정안전부나 환경부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장애인 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재난 현장에서 대응 능력이 없다. 이들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장애인 재난 대응 체계 자체가 아예 부재한 상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매뉴얼의 내용이다. 현재의 재난 매뉴얼은 국가나 지자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역할 규정 대신, '미리 도와줄 사람을 지정해라', '도와 달라고 소리쳐라' 등 오직 장애인 개인의 책임과 노력만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가 해야 할 근본적인 안전망 구축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행위이다.


기후위기가 드러낸 일상의 취약성


재난 후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재난 지원금은 주로 '가구의 재산 피해'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이 때문에 산불로 인한 주거지 손실이 크지 않은 청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이 겪는 트라우마 치료, 호흡기 장애인의 긴급 치료 지원 등 비물질적이고 생존과 직결된 지원은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또한 안전 문자 메시지가 시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이며, 긴급 상황 발표에 수어 통역이 누락되는 등 정보 불평등이 생존권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취약성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거대한 재난뿐만 아니라 일상의 작은 불편함조차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존을 위협하는 순간이 되고 있다.


활동 지원의 공백, 밤과 휴일의 위험


일상적인 돌봄의 공백이 재난 시 치명적인 순간이 될 수 있다. 많은 장애인이 24시간 활동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야간이나 휴일에는 돌봄의 공백’이 발생하며, 이는 곧 화재나 긴급 상황 시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활동 지원을 받는 중이라도 폭우나 산불 같은 재난 상황에서 활동 지원사들이(활동지원사 상당수는 중장년층 비율이 높다) 중증 장애인을 대피시키는 데 물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또 다시 장애인 안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활동 지원 서비스의 질과 안전 대응에 대한 시스템 부재가 곧 재난 대응의 취약점으로 작용함을 보여 준다.


전동 휠체어와 폭염

지면의 열과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전동 휠체어. 사진 구글AI생성이미지
지면의 열과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전동 휠체어. 사진 구글AI생성이미지

기후위기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인 전동 휠체어를 위험에 빠뜨린다. 폭염 시 휠체어가 검은색 차량처럼 뜨거워지고, 아스팔트 위의 열 때문에 컴퓨터 부품이 달린 전동 휠체어가 쉽게 고장 나거나 배터리가 방전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정부의 보험 급여를 받는 납 배터리는 수명이 짧아 기후변화로 인해 더 빨리 고장 나지만, 교체 주기(1년 6개월)가 정해져 있어 제때 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장애인들이 더 오래가는 리튬 배터리를 사비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배터리 폭발 사고와 같은 안전성 문제와 공동주택 화재 등 안전사고에 노출되는 위험을 키운다. 생존을 위한 개별적인 선택이 또 다른 위험을 낳는 모순을 드러낸다.


주거 환경과 피난권의 박탈

누구나 탈출 가능한 유니버셜디자인. 이미지 네이버 블로그
누구나 탈출 가능한 유니버셜디자인. 이미지 네이버 블로

주거 공간 역시 재난 대피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요소이다. 입구의 턱 등으로 인해 휠체어 사용자가 혼자 대피하기 어려운 주거 환경에 놓여 있다. 집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재난 발생 시 오히려 가장 먼저 피난을 막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장애인에게 일정 비율을 할당하는 제도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주택 설계 단계부터 배리어 프리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임대주택조차 베리어 프리가 의무가 아니어서 장애인의 입주를 가로막고 있는 실효성 없는 제도로 전락했다. 이 역시 장애인의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비용 측면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거된 것이다.


단수 사태와 기본 생존권의 위협


극단적인 기후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재난조차 장애인에게는 생존권의 위협이 된다. 강릉 가뭄으로 단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중 목욕탕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뒤늦게 단체의 지원으로 물티슈나 생수등이 공급되긴 했지만, 물 공급이 끊긴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위생과 생존이 막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대안 부재가 얼마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는지 보여 준다.


기후 정의를 외면하는 '에코 에이블리즘'과 개발 논리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과 전환에 대한 요구는 기후정의에 입각해야 한다. '에코 에이블리즘(Eco-ableism)'이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맙시다"와 같은 단편적인 소비 중심의 환경 운동을 펼침으로써 오히려 종이나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배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기후정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애인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에코 에이블리즘'의 문제점은 개발 사업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자체나 개발 주체들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처럼 자연 파괴적인 개발을 추진할 때,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환경 단체가 개발에 반대하면, 외부에서는 마치 장애인과 환경 단체가 대립하는 것처럼 비춘다. 이는 개발 논리에 장애인이 이용당하는 것일 뿐, 정작 지자체와 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은 장애인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사자인 장애인에게 비파괴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는 자리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행정을 통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파괴적 설계(Non-destructive Design)를 고민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장애인의 권리와 환경 보전이 상충하지 않는 길을 찾는 일이다.


기후위기가 드러낸 인류의 '장애'


장애운동을 통해 오히려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에 전환을 이룰 해안을 얻을 수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드러나는 것은 사실상 인류가 '장애를 입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인류는 풍요로운 자원을 잃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기존의 성장 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상호 의존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는 장애인이 제한된 몸의 기능과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시스템을 구축하며 살아온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장애 운동의 성과 중 하나는 오히려 취약성이 역량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 문명들을 계속 탄생시켜 왔고, 인류가 스스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연대의 지혜를 발휘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을 수 있었다. 기후위기를 단순한 멸종의 두려움이 아닌, 지구가 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 성장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행복과 사회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언


결국 기후재난 시대에 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은 단순히 소수자를 돕는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다. 이는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 시스템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할 것임을 깨닫고,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과제이다. 장애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재난 대응 종합 계획을 마련하고, 장애인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며,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사회 변화를 이끄는 노동으로 인정받는 권리 중심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부터 새로운 사회의 설계는 시작되어야 한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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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2025년 10월 10일

케이블카 개발 사업에 '장애인 접근 보장'을 명분으로 삼는 건 치졸한 발상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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