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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풍경ㅣ여름 휴가용 SF 소설- 세 명의 중국계 작가

2025-07-25 최은

한여름에 읽을 SF 소설. 세 명의 중국계 SF작가 책을 소개한다. 인간 역사에 내재한 잔혹함과 광기를 다룬 류츠신의 『삼체』, 연약한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이야기하는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와 『은랑전』, 그리고 철학자가 시로 수학 논문을 쓰듯 집필한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숨』이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한여름이다. 여기저기 너무나 많은 피해를 낳은 괴물 폭우가 지나가고, 다시 폭염이 찾아왔다. 바다로, 산으로 쏘다니는 행락을 즐기지 않는 분들이 읽을 만한 세 명의 중국계 SF작가를 소개해 본다. 하필! 중국계라니!라고 하실 분이라면 굳이 아래 내용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적어도 오늘날의 SF소설이나 영화를 조금이라도 아실 만한 분은 이 선택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은 왜 SF소설이 약할까


소개에 앞서, 한국의 현재에 대해 한 마디. 오랫동안 한국의 문화계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항상 아쉽게 여긴 것이 ‘한국에는 왜 장르소설이나 SF소설의 풍토가 정착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이른바 ‘K-컬쳐’ 붐이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 된 국면이 낯선 이유 중의 하나다. 음악과 영화,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내세울 만한 작품의 리스트가 늘어날수록, 이런 괴리감은 더해진다. 정말 뛰어난 감독이자 상상력의 소유자인 천하의 봉준호조차도, 영화 <미키17>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시도되었던, SF영화나 드라마 중, 기억할 만한 작품은 솔직히 없다. 그래도 한국이 순위권 안에 드는 과학기술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최근 3년은 좀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많이 아쉽다. 오늘 소개하는 작가들의 국적 혹은 종족적 배경이 부러운 이유다.


류츠신의 『삼체』, 인간 역사에 내재한 잔혹함과 광기


가장 먼저, 류츠신(Liu Cixin). 그는 1963년에 태어나 오랫동안 중국 내지의 수력발전소 엔지니어(심지어 작가로 성공한 이후에도 꽤 오래)로 일한 공학자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SF작가다. 아마도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2024)의 원작자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삼체>는 원작 소설의 강렬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에 거의 대부분의 SF독자들이 동의한다. 소설 『삼체』(1부-삼체문제, 2부-암흑의 숲, 3부-사신의 영생)의 과학적 상상력과 완성도는 압도적이다. 동시에 인간의 역사 속에 내재한 잔혹함과 광기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흔히 평하길, 이과생과 문과생이 동시에 좋아할 만하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류츠신 지음, 이현아·허유영 옮김, 『삼체』(1부-삼체문제, 2부-암흑의 숲, 3부-사신의 영생), 자음과모음, 2022


스포가 될까 봐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인 이야기는 외계의 삼체문명(세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항성계에서 끊임없이 종말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문명)이 지구의 존재를 인식하고 침략하는 과정에서, 지구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관한 얘기다. 특히 소설을 처음 볼 때 가장 강렬했던 장면(드라마에서도 그랬지만)은 1960년대 문화혁명의 광기 속에서 예원제라는 한 과학자가 겪는 비극과 이로 인해 외계 문명을 불러오게 되는 배경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개인의 잔혹한 운명과 상실에 대한 복수’라는 껍데기 안에 이성과 광기가 뒤섞인 인류사 전반에 대한 메타포로서 작용한다. 처음 이 대목을 읽을 때, 이상하게 생각났던 것이 프리모 레비(Primo Levi, 유대계 작가이자 화학자)가 저 아우슈비츠의 광기에서 살아나고도 결국 자살을 택했던 운명이었다. 소설 속 외계인이 지구인을 일컬어 벌레라고 칭하듯이, 오늘날 인류가 가이아를 어지럽히는 일종의 바이러스이자 암세포일 수도 있다는 제임스 러브록(James E Lovelock)의 파격적인 주장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첨언하자면, 3부는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2부로 충분하다. 소설 『삼체』는 2008년에 중국에서 출간되었고, 영역되어 알려진 후 2015년 SF소설계의 노벨상이라 할 휴고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 외 류츠신의 단편 몇 개가 청소년용으로 출간된 바 있고,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유랑지구> 역시 류츠신의 소설이 원작이다.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와 『은랑전』, 연약한 것들에 대한 기억과 공감


이렇듯, 중국을 대표하는 류츠신의 대표작 『삼체』를 영역해서 소개한 분이 두 번째로 언급하는 켄 리우(Ken Liu)다. 그는 1967년, 중국의 간쑤성에서 태어났지만 11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장한 작가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SF작가인 그는 2011년 작 『종이동물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단편으로 그는 휴고상과 네뷸러상, 세계 환상문학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야구에 비유하자면, 타율 타격 홈런왕을 동시에 석권한 격이다) 그의 단편집 『종이동물원』, 『은랑전』,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너무나 매혹적이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그는 많이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태어난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기타 동아시아의 역사와 설화, 민속을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들은 따듯하고 아름답다. 특히 그는 연약한 것들,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더불어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진보적인 시선 역시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특별히 (SF소설로서 특이하게도) 여성 독자를 많이 확보한 배경이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10대 시절에 즐겨 보았던 오 헨리(O.Henry)의 단편이 생각난다.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 『은랑전』, 『민들레왕조 연대기1-제왕의 위엄(상)』


그리고 그의 작품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민들레왕조 연대기』 3부작이다. 켄 스스로 실크펑크(Silkpunk)라 이름 붙인 이 대체역사물은 중국의 초한지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에는 1부 『제왕의 위엄』, 2부 『폭풍의 벽』이 출간되었다. 아쉽게도 2부가 3백 여부 밖에 팔리지 않아서 3부는 출간되지 않는다고 한다.(해당 출판사의 편집자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초한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익숙함이 원인일 것이라고)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숨』, 철학자가 시를 써서 수학 논문을 집필하듯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작가는 위대한 테드 창(Ted Chiang). 1967년생이고, 아마도 현존하는 최고의 SF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30여 년간 장편 없이 불과 17편의 중,단편소설만을 발표했다. 사실 그는 단지 중국계라는 종족적 배경만 있을 뿐, 미국에서 태어나 브라운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정통파 하드 SF작가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작품들은 철학과 과학 모두에 걸쳐 있는 쟁점과 딜레마를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특히나 그가 높이 평가받는 데는 마치 철학자가 시를 써서 수학 논문을 집필하는 듯한 필력이다. 그의 소설은 대단히 정치(精緻)하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EXHALATION)』


그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EXHALATION)』은 오늘날 SF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성취의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전자의 작품을 배경으로 한 영화 <컨텍트>(원제는 Arrival, 2017년 작품인데 왜 한국개봉을 이 이름으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는 보기 드물게 영화가 소설에 못지 않은 작품이라 비교해서 볼 만하다. 감독은 드니 빌뇌브(영화 『듄』의 감독)이고 사실 봉준호에게 먼저 제의가 있었다는 후문.


언젠가, 한국의 SF작가를 소개할 때도 이런 상찬(賞讚)을 할 날이 올까.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웹툰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정말로 강렬한 충격을 안겨 주는 아름다운 SF장르의 작품이 나오기를 바란다. 우리의 ‘K-컬쳐’가 단지 덧없는 유행이나, 미국 문화의 보수적인 대체재 이상의 그것으로 나아갈 것. 그것이 참으로 바라고 바라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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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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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8일

삼체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추천해주신 다른 책들도 챙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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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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