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 염형철 |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공동대표 | '개발' 관점에서 '문화' 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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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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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월 31일
2025-05-29 최민욱 기자
물 정책이 변해야 한다. 1960년대 물 공급에서 시작해 치수, 수질 개선을 거쳐 2000년대 생태회복단계까지 발전했지만, 여전히 개발과 시설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물 관리 예산이 전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강은 토목공사의 대상일 뿐이다. 반면 산림청은 이미 절반을 산림복지와 환경 분야에 할애하며 '숲문화'를 꽃피웠다. 이제 '강문화'가 필요한 때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염형철 공동대표는 환경부 조직 개편을 통한 강문화국 신설과 자연기반해법 도입, 시민 참여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31년간 물 정책 현장을 지켜본 그가 말하는 한국 물 정책의 대전환 방향을 들어 봤다.

달수집 염형철 대표는 1994년부터 31년간 물과 관련한 환경운동을 해 온 물 정책 전문가다. 청주에서 환경운동을 시작해 하천 도로 건설 반대, 생수공장 반대, 온천 개발 반대 등의 활동을 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수질, 홍수, 댐 건설 관련 정책을 담당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제1기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국토수자원분과 민간 간사, 2004년 수자원장기종합계획 정책협의회 민간 간사로 활동했다. 2019년 출범한 대통령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수립 등 정부의 물 관리 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2018년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을 창립해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강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잇고 있다.
국가 물 정책의 전환, 물 공급에서 생태계를 가꾸는 단계로
우리나라의 강과 물 관리는 상당히 빠르고 명확하게 발전했다. 초기 물 관리 사업의 핵심은 물 공급이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농사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다. 농사용수와 생활용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1970년대에는 홍수를 대비하는 치수 정책이 물 관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당시 국토부 또는 건설부에 물 관련 부서들이 대부분 집중되어 있었다. 제방 건설과 댐 건설이 주요 사업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도 일부 구간에서는 수영할 수 있었지만, 1970년대 말 들어서 수영이 금지되었다. 급속한 산업화의 부작용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질 문제 해결을 중점으로 정책이 짜였다.
우리나라 환경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91년 두산 페놀 사건이다. 낙동강 상류 구미 공장에서 페놀 누수가 발생해 대구까지 흘러내려왔다.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오염 물질이 확산된 것이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악취를 정화하기 위해 염소를 투입했는데, 염소와 페놀이 결합해 클로로페놀이라는 되려 페놀보다 1만 배 악취가 강한 독성 물질이 만들어졌다. 두산 페놀 사건은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 인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 환경 문제가 단순히 가까운 곳의 쓰레기나 악취 수준이 아니라, 먼 거리에서 발생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전개되어 광범위한 사회적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지방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직원 6명이 구속되는 등 전례 없는 강력한 처벌이 이어졌다. 환경 4법이라 불리는 대기, 수질, 토양, 폐기물 관련 법률들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두 번째 큰 전환점은 2000년 6월, 동강댐 백지화였다. 동강댐 건설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비인간 존재를 위한 정책 결정이 이뤄졌다. 동강의 할미꽃과 백룡동굴 등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댐 건설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이후 생태 정책이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다. 2000년대에 와서 우리나라 물 정책의 가닥이 잡혔다. 물 공급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치수 시설도 충분히 구축되고, 수질도 개선되었다. 이제 생태를 가꾸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퇴행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이다. 2000년대 생태 중심으로 발전하던 물 정책이 다시 1970년대 치수 정책으로 되돌아갔다. 댐을 만들고 제방을 쌓고 상하수도 시설을 계속 확충하는 방식이었다. 4대강사업의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였다. 사업 이후 수질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수질 개선은 거의 정체 상태다. 물 공급량도 과잉 상태가 되었다. 당시 국민 1인당 필요한 물의 양보다 2배를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정수 시설이 늘어났다. 현재는 시설 일부를 폐쇄해서 1.5배 수준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과잉 공급 체계다.

시설이 늘어나면 관리비와 보수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이명박 정부 이전 연간 물 관련 예산은 10조 원 수준이었는데, 4대강사업을 거치면서 20조 원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사업이 끝난 후에도 예산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시설 중심 정책의 한계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산림은 보호 대상, 강은 100% 개발 대상, 환경부나 지방정부의 조직체계부터 바뀌어야
산림 분야와 비교하면 물 분야의 후진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산림청에는 산림산업정책국과 함께 산림복지국과 산림환경국이 큰 축을 이룬다. 산림복지국에 산림복지교육과, 산림휴양치유과, 숲길등산레포츠팀, 산림안전보건일자리팀 등이 있고, 산림환경국에 산림환경보호과, 산림생태복원과, 도시숲경관과, 수목원정원정책과, 수목원조성사업단 등이 있다. 산림청 행정의 상당 부분이 숲을 가꾸고 이용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산림 분야에서는 30여 년 전 '숲과문화연구회'라는 단체가 창립되면서 숲의 가치와 문화적 활용이 이슈화되었다. 그 결과 숲은 자연의 대명사가 되었고, 국가 보호지역의 대부분이 숲에 지정되어 있다. 숲가꾸기, 휴양림, 숲해설사, 산림치유사, 숲교육 등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평가하고 활용하는 문화 활동과 사업들이 활발하다. 강 분야에서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강가꾸기, 강안내자, 강교육, 강문화, 강숲 등은 사회적으로 거의 유통되지 않는 개념들이다. 대부분이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 새롭게 만들어서 실험적으로 쓰고 있는 개념이다.
강 분야는 100% 개발 중심이다. 환경부의 조직 체계가 이런 문제를 잘 보여 준다. 물관리정책실 산하에 수자원정책관, 물이용정책관, 물환경정책관이 배치되어 있다. 수자원정책관에는 수자원개발과, 하천계획과, 물재해대응과, 하천안전팀이 있고, 물환경정책관에는 수질수생태과, 생활하수과가, 물이용정책관에는 수도기획과, 토양지하수과, 물산업협력과 등이 있다. 물환경정책관에서 수질과 생태 관련 사업을 벌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토목공사와 시설 운영이 목적이다. 지자체 상황도 비슷하다. 하천과나 하천팀이 있는 경우도 많지 않을뿐더러, 이들의 과제도 홍수 관리에 한정된다. 체육과에서 체육시설을, 도로과에서 자전거도로를, 문화관광과에서 문화시설을, 환경과에서 수질 관리 시설을, 공원과에서 조경시설을 각각 관리한다. 이들을 종합하는 부서나 기능은 없다.
환경부에 기존 개발부서 축소하고 '강문화국' 설치를 제안한다
환경부에 기존 개발부서들을 대폭 축소하고 강문화국 설치를 제안한다. 강문화국 아래 강생태복지과, 강습지휴양과, 강길레포츠팀, 강가꾸기일자리팀, 강경관관리과, 강생태복원과, 강공원조성사업단 등의 업무를 배치해야 한다. 지자체들에도 하천 주무 부서를 정하고, 이들의 주요 기능이 강문화와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하천은 산과 바다를,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특성이 있어 생태 통로로서 가치가 높고 시민들이 곳곳에서 접근하기도 쉽다. 우리 역사가 강변에서 발전하고 강을 따라 길을 연결해 왔기에, 하천에는 문화적 교육적 콘텐츠도 매우 풍부하다. 한국의 하천은 높은 하상계수 때문에 외국 강들에 비해 폭이 매우 넓다. 한국의 하천은 법정하천만도 5만8000㎞에 달하며, 면적으로도 국토의 5%를 차지할 정도다. 더구나 대부분이 공유지 또는 국유지다.
좋은 강문화는 강의 고유성, 역사성, 장소성이 드러나고, 생물학적 다양성과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모두 확대하는 문화다. 강과 지역사회가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문화다. 운동 시설과 잔디밭 활용 정도를 넘어서 문화, 교육, 생태, 공동체 기반시설 등의 측면에서 하천의 가치를 찾고 활용 방안을 구상해야 할 때다. 강의 기능과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면 시민들과 강을 가깝게 연결하는 사업들을 다양하게 발굴할 수 있다. 무분별한 하천 이용을 자제시키고, 하천 관리의 목표와 방법을 마련하고, 시민들이 강에서 좋은 경험과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의 역할이 가능해진다.

자연기반해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른 예측 가능성이 감소하고, 고도로 전문화된 하천 시설의 증가에 따른 관리의 어려움과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자연기반해법(Nature Based Solution)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연기반해법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근거를 두며, 자연을 모방하는 정책이다. 생물다양성의 보호와 시민들 삶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며, 환경적·사회적·경제적 과제의 해결을 함께 도모한다는 특징이 있다.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인간의 개입과 관리를 최소화하여 강과 상생하는 철학이다. 2022년 유럽의 홍수와 2023년 가뭄은 기록적이었는데, 이를 인간의 시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평가였다. 이에 자연의 공간을 확충하고, 사람들의 활동 공간을 후퇴시키며, 그 사이에 완충구역을 확보해서 피해를 줄이자는 논의가 확산되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EU의 그린딜이다. 2030년까지 자유롭게 흐르는 하천을 2만5천㎞ 만들겠다는 의욕적인 계획이다. 강이 자유롭게 흐르게 하기 위해 댐들을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개발 중심 물 관리와 정반대 방향의 정책 전환이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제방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피해를 덜 입기 위해 '후퇴하는 방식'으로
유럽의 강과 하천, 댐에 대한 접근 방식은 구체적이다. 지난 400년 동안 유럽은 제방을 계속 쌓아 왔는데, 기후변화로 예상을 넘어서는 홍수가 발생하자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방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제방을 뒤로 빼거나 사람들을 뒤로 물리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완충지역을 만들고 그 끝에 낮은 제방을 하나 더 쌓거나, 사람이 사는 도시 주변에만 제방을 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천을 따라 투자하던 돈을 사람이 사는 도시 주변에만 투자하게 되어 투자 범위가 훨씬 줄어든다. 제방 밖은 범람원으로 두거나 농사를 짓는다. 유럽에서는 목초지로 활용한다. 홍수가 났을 때 며칠 침수되어도 그 피해 금액이 얼마 안 되는 구조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제방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피해를 덜 입기 위해 사람이 후퇴하는 방식이다.

자연기반해법은 인간의 적정한 개입과 적당한 관리를 방향으로 하고, 피해를 원천 차단하기보다 사회의 회복력을 제고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강 가까이서 생활하며, 강을 깊숙이 알고,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지역의 주민들과 공동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한국에서도 자연기반해법 도입이 시급하다. 중앙정부가 시설 중심의 계획을 세우고 생태계나 시민 이용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집행 구조를 전면 철폐해야 한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연친화적인 물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제방 건설, 준설, 벌목, 자전거도로 증설, 파크골프장 설치 등도 제한해야 한다.
대신 공유지인 하천의 생태계를 가꿔 습지보호지역이나 자연공존지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정책을 가져야 한다.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보호지역을 각각 국토의 30%로 확대해야 한다. 한국의 육지 보호구역의 경우 지정 비율이 아직 18%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국토의 5%를 차지하는 하천을 보호지역 확보의 공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천의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활용하는 데, 시민들과 공동체의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복잡한 제도나 행정의 간섭 때문에 시민들이 강을 가꾸고 관리하는 활동이 어려운데, 이를 정비하고 지원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토목사업이 불러오는 하천 기능의 향상이나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이 미미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하천 관리나 공원화 등의 활동을 통해 생물다양성 증진, 기후 위기 대응, 시민의 삶의 질 향상, 신규 일자리 창출,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강문화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시민이 직접 강을 경험하고 가꾸는 '강문화'를 통해 시민참여형 생태회복 모델을 만들고 있다. 강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그 힘으로 강을 지키는 선순환 구조다.
하천 플로깅에 의미를 담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 카약을 타고 플로깅을 하거나, 프로그램 앞뒤로 생태 체험과 자연 산책을 포함한다. 단순히 일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그것이 그 공간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지 설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강 유람단은 한 달에 한 번씩 운영되는데 금방 매진된다. 버스로 가서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지역 안내자가 설명하는 형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하고 공유하며 배우는 과정이다. 강좌 이후에는 포틀럭 방식으로 음식을 나눈다. 강사로부터 지식만 듣고 가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과 교류하면서 다차원적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런 식으로 강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연결되고 커뮤니티가 되도록 하는 것이 활동 방식이다.
현대인들의 공동체에 대한 요구를 느슨한 연대 형태로 충족시키면서, 자기가 가고 싶을 때 가고 가능한 수준에서 소통하는 것이 성공 요인이다. 여의샛강에서 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유례없이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커뮤니티의 힘이었다.
2019년부터 시민 관리모델을 시작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여의샛강에서 이런 방식을 적용한 결과 이용하는 시민들은 5배 이상 늘었고, 그곳에 사는 생물들도 훨씬 늘었다. 수달이나 원앙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돈이나 시설이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환경을 훼손해서 얻는 이득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지만, 환경 보존의 혜택은 광범위해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 불일치가 환경운동의 어려움이다. 세금을 통해 자연보호를 국가에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강을 정비하고 동식물을 만나며 생태감수성을 높이는 것이다. 자연을 훼손한 것에 대한, 그 가치를 부정한 것에 대한 저항이나 반감이 우리 시민들 안에 존재한다. 한국 시민들의 생태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높다. 무엇이 진짜 환경을 위한 일이고, 강을 위한 일인지 안다. 결국 시간문제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 만들고 있는 시민참여형 생태회복 모델을 적극 응원합니다. 강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그 힘으로 강을 지키는 선순환 구조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궁극의 모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