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부 시대 ③ㅣ토마스 페인 이후 공유부 배당론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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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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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8 금민, 유승경
토마스 페인의 공유부 배당론이 19세기 헨리 조지, 20세기 시장사회주의자들을 거쳐 현대 기본소득 논의로 발전한 과정을 살펴본다. 토지에서 시작된 공동소유권 개념이 자본, 데이터, 화폐로 확장되며 복지국가와 구별되는 선분배 원리를 제시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대안을 묻다 [유튜브]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지난 연재에서는 토머스 페인의 「토지 정의」를 중심으로, 토지와 재산, 그리고 ‘모두의 몫’에 대한 그의 사유를 살펴보았다. 페인은 토지를 둘러싼 소유 개념을 두 층위로 나눴다. 하나는 법과 제도가 인정한 사적 소유, 그가 말하는 인공적 소유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자연적 소유권이다. 그는 토지 사유제가 문명의 발전과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심각한 불평등을 낳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공유부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나누자고 제안했다. 이번 글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페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19세기와 20세기의 사상가들이 공유부 배당론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복지국가와 기본소득 논의와 어떤 접점을 갖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페인의 이중 소유권, 다시 한번 짚어보기
지난 글에서 정리했듯, 페인의 핵심 주장은 이중 소유권 이론에서 출발한다. 그는 토지 위에 서로 다른 성격의 권리가 겹쳐 있다고 본다. 하나는 국가와 법률이 인정하는 인공적 소유권이고, 다른 하나는 “만인의 공통적 권리(the common right of all)”로서 자연적 소유권이다. 사유재산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모든 사람은 여전히 토지에 대한 자연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는 실정법상의 소유권과는 별도의 층위에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페인이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적 소유가 인류의 “행복과 풍부”를 가져왔다고 분명히 인정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토지 사유제가 동시에 “고난과 결핍”도 함께 낳았다는 점이다. 페인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을, 사유재산제를 없애는 데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된 자연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몫을 공유부 배당의 형태로 제공하는 데서 찾는다.
그가 붙들고 있는 정의의 기준은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을 통해 토지를 개간하고 가치를 높인 사람의 몫을 인정하는 것은 “노력에 따른 획득”이라는 정의 원칙에 부합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졌던 자연적 소유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역시 정의에 어긋난다고 본다. 토지를 개간한 사람이 “지구 자체를 창조한 것은 아니므로”, 인공적 소유가 성립했다고 해서 자연적 소유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페인에게 공유부 배당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자선이 아니라, 공동소유권에 기반한 분배이며, 현실의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소유권 형태로 이해된다.
공유부 배당을 실제로 실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는 비교적 구체적인 구상을 제시한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기초지대(ground rent)’라는 이름의 조세를 부과하고, 그 수입을 두 갈래로 나누자는 것이다. 하나는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종자돈, 즉 사회적 지분급여이고, 다른 하나는 노년층에게 지급하는 노인기본소득이다. 이렇게 보면 페인은 토지사유제를 유지하되,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 일부를 자연적 소유권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되돌려야 한다고 본다. 이때 공유부 배당은 “가난해서 받는 돈”이 아니라, “공동유산에 대한 권리”에 기반한 소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페인 이후 공유부 배당론의 두 갈래
페인 이후 공유부 배당론을 전개한 사상가들도 기본적으로 규범적 차원의 공동소유권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점에서 페인은 소유권에 기반한 공유부 배당론의 사실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이들의 실질적 구상은 크게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첫 번째 방향은 토지 사유제도를 공동소유로 전환하되, 토지 사용은 개인과 기업에게 맡기고, 그 대가로 지불되는 임대료, 즉 지대를 모두에게 배당하자는 구상이다. 이 흐름을 가장 일찍 선명하게 제시한 인물이 토마스 스펜스다. 그는 페인의 열렬한 독자이자 동시대인이었으며, 『유아의 권리(The Rights of Infants)』에서 토지의 완전한 공동소유를 주장했다. 스펜스는 페인의 조세 방식으로는 지대 수익을 온전히 환수하기 어렵고, 자칫 “보잘것없는 후원금” 수준으로 머물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든 토지를 공동소유로 전환하고, 7년마다 경매를 통해 사적 이용자에게 임대하고, 그 임대료를 주민들에게 배당하자고 제안한다.
비슷한 시기 스코틀랜드의 사회사상가 패트릭 에드워드 도브도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용권과 점유권은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수익은 사회적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 수익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어떤 비율로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계를 내놓지는 못했다. 아일랜드 출신 차티스트 운동가 제임스 브론테레 오브라이언 역시 토지공유제를 지향했지만,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대신 국가가 시장에서 토지를 꾸준히 매입해 공공 소유로 전환하고, 이를 임대해 얻는 지대를 주민들에게 분배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토지 공유제를 이상 상태로 그리면서도, 토지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사적 이용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경매와 임대를 통해 지대를 환수하는 것이 목표이지, 토지의 공동 경영 자체를 원칙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프랑수아-노엘 바뵈프의 토지공산주의와 분명히 구별된다. 바뵈프가 상정한 재산공유제에서는 토지가 공동으로 소유될 뿐만 아니라 생산도 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지고, 사적 활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그 체계에서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노동공동체의 임금으로 분배될 뿐, 페인식의 무조건적 공유부 배당이 들어설 자리는 거의 남지 않는다.
두 번째 방향은 페인과 마찬가지로 조세를 통해 지대를 환수하되, 이를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모델이다. 이 전통이 바로 헨리 조지에게서 절정을 이룬다.
헨리 조지: 지대의 100% 환수와 효율성의 논리
헨리 조지는 페인의 후배 세대 사상가로, 토지 문제가 빈곤과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의 대표작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이라는 제목 자체가, 페인이 「토지정의」에서 지적했던 토지 사유제의 이중성, 즉 문명의 진보와 함께 심화된 빈곤이라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조지는 토지의 사적 이용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페인과 공통점을 갖는다. 토지 사유가 완전히 나쁜 것이 아니라, 잘 작동할 경우 생산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페인보다 더 급진적인 요구를 내놓는다. 정부가 조세를 통해 지대 수익을 100% 환수한다면, 토지는 가장 수익성이 높고 사회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토지 보유만으로 얻는 불로소득이 사라지기 때문에 투기 대신 생산적 이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조지가 제안한 제도가 바로 ‘토지 단일세(single tax)’이다. 이는 모든 조세를 토지 지대에 집중해 부과하는 체계다. 이렇게 하면 정부 재정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토지 투기를 억제하며, 생산적인 경제 활동을 장려할 수 있다고 본다. 지대 수익을 환수해야 하는 이유는 페인에게서처럼 “자연권의 실현”이라는 규범적 논증에만 기대지 않는다. 조지에게서 중요한 것은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라는 차원이다. 페인이 자연권을 강하게 강조했다면, 조지는 경제학적 효과에 대한 논증을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물론 조지의 이론에도 빈틈은 있다. 그는 지대수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진보와 빈곤』에는 페인식 공유부 배당론이 체계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지는 1885년 연설에서 페인과 유사한 배당 구상을 언급한다. 그는 토지세 수입의 일부를 “누구나 받을 자격이 있는 몫”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은 유해하다는 주장이야말로 오히려 해롭고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노년에 활동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남은 생애 동안 먹고 입을 수 있는 지불금을 토지세 수입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페인의 기초연금 구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점은 지대 수익을 개인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발상이 헨리 조지의 토지사상과도 모순되지 않으며, 조지 역시 토지 수익에 대한 일정한 개인 몫을 권리로서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토지에서 자본으로: 시장사회주의자들의 ‘사회 배당’
토머스 페인과 헨리 조지까지의 공유부 배당론은 대부분 토지지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산업자본주의가 무르익으면서, 공유부의 범위는 점차 자연적 공유부를 넘어 인공적 공유부로 확장된다. 여기서 인공적 공유부란 사회 전체가 함께 축적한 자본과 생산수단, 금융자산 등을 가리킨다.

1930년대 시장사회주의자들은 이 인공적 공유부에 기반한 배당을 “사회 배당(Social Dividends)”이라고 불렀다. 1937년 런던정경대학교(LSE)에서 열린 시장사회주의 논쟁에서 오스카 랑게는 자본에 대한 수익, 즉 이윤과 배당 등을 사회 배당의 재원으로 보았다. 그는 이 배당이 각 개인의 노동 기여와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독립적인 소득원으로 지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페인이 자연적 공유부인 토지를 둘러싼 공동소유권을 재구성했다면, 랑게는 산업·금융 자본을 사회공통자본으로 규범적으로 재설정한 셈이다. 자산에 대한 지분을 사회 전체가 나누어 갖는다는 발상이다.
이 흐름은 제임스 미드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된다. 미드는 사회 전체의 주식자산 가운데 대략 절반 정도를 국가가 보유하되, 국가는 기업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고 배당권만 행사하는 구조를 상상했다. 다시 말해 국가는 기업 운영에는 개입하지 않지만, 주주로서 배당금을 받을 권리는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공공 지분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의 자산소득의 절반을 “사회 배당(Social Dividend)”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하자고 제안한다. 이 구상은 토지에 한정됐던 공유부 개념을 산업·금융 자본 전체로 확장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제 공유부는 더 이상 자연 자원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가 공동으로 축적한 인공적 자본 전체로 넓어지기 시작한다.
디지털 전환 이후: 인공적 공유부와 데이터·화폐 배당
오늘날 공유부 배당론은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혁명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다시 한번 확장되고 있다. 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 낸 인공적 공유부의 범위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알고리즘, 디지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 도시 인프라, 통신망, 공공 운영 시스템, 심지어는 공공화폐 발행 체계까지 모두 사회적 협동과 공적 투자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데이터 배당, 인공지능 수익 배당, 디지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윤의 사회적 공유, 공공화폐 발행을 통한 화폐배당 등 여러 형태의 구상이 등장하고 있다. 각 구상의 구체적인 설계와 실행 방식은 다르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통된 규범적 전제가 자리한다. 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자산과 제도에서 생긴 수익은 일정 부분 공동소유권에 기반해 배당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인공적 공유부 배당과 공공화폐 배당은 기존의 토지지대 환수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공통자산에서 생긴 수익을 모두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큰 범주를 이룬다. 토마스 페인이 토지라는 자연적 공유부에 한정해 자연권 논증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다면, 오늘날의 공유부 배당론은 자연 자원, 자본, 데이터, 화폐까지를 아우르는 보다 포괄적인 “공유부 체계”를 설계하려는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페인의 지적 혁명은 여전히 중요한 출발점을 이룬다. 그는 공유부 배당을 소유권적 기초를 가진 무조건적 권리로 규정했다. 이 점에서 공유부 배당은 노동이나 기여에 따른 임금이나 이윤과는 다른 제3의 소득 원천이다. 그 실현 방식은 공유지분이나 공공화폐 배당처럼 직접적인 배당 방식도 있을 수 있고, 조세를 통해 수익을 환수한 뒤 보편적 배당을 통해 되돌려 주는 간접적인 방식도 있을 수 있다. 형태는 달라도 그 규범적 기초는 공동소유권이라는 한 점에서 만난다.
공유부 배당론과 현대 복지국가의 차이
현대 복지국가는 대체로 두 축 위에 서 있다. 하나는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필요에 따른 선별적 공공부조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적 기여, 즉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한 사회보험 체제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시장에서 소득이 결정된 이후, 그 결과를 사후적으로 교정하는 메커니즘이다.
공유부 배당론은 출발점이 다르다. 그것은 시장소득이 이미 분배된 뒤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소득이 발생하기 이전 단계에서 사회공통자산에서 나오는 몫을 미리 배당하는 구상이다. 흔히 말하는 ‘선분배’에 더 가깝다. 분배 원리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복지국가의 전통적 체계가 주로 임금, 기여, 보험료 납부 이력처럼 “성과에 따른 분배”에 기반을 둔다면, 공유부 배당론은 “소유권에 기초한 분배”와 더 닮아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소유권은 사적 소유권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사회공통자산에 대한 공동소유권이다.
이 점에서 토마스 페인은 현대 복지국가의 배아를 보여 주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유부 배당이라는 사고실험의 출발점에 가깝다. 공유부 배당론의 뿌리는 완전고용 가설과 체계적 조세국가를 전제로 한 복지국가 체제와는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지급되는 소득을 상정하는, 현대 기본소득 개념에 더 가까이 닿아 있다.
기본소득·공유부 배당이 던지는 질문
완전고용 가설이 무너지고, 고용 중심 복지국가의 한계가 점점 분명해지는 지금, 공유부 배당론은 사회정책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이 논의의 중심에는 몇 가지 단순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 놓여 있다. 땅과 자원, 인프라, 데이터, 통화 제도처럼 사회가 함께 만들어 낸 자산에서 생긴 소득은 과연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이미 가진 자산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그 일부를 모두에게 동일한 몫으로 나누자는 제안은 왜 여전히 급진적으로 들리는가.
토마스 페인은 18세기 말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이 지구를 만든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그 일부를 영원히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 공유부 배당론은 이 문장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려는 시도다.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것에서 나온 소득은, 최소한 어느 정도는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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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누구나 기본소득을 말한다. 그리고 걱정한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출발한 듯하다. 하지만 공유부의 역사는 깊고 넓다. 공유부는 공기와 바다, 토지와 광물이라는 자연 자원을 넘어, 일테면 탄소배출권, 인공지능의 바탕이 된 데이터, 화폐와 금융시스템, 행정·사법·의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인프라들로 확장한다. 그야말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적 협력으로 발전시켜 온 문명의 기반이 바로 공유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유부는 누구의 것인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필자들은 [공유부 시대] 연재를 통해 불평등과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언어로서 ‘공유부'의 철학과 역사를 살펴보고 경제학의 언어로, 사회 정의의 언어로 전진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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