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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⑨ 대규모개발사업 | 케이블카, ‘관계인구’의 정체, 개발사업=지역발전 공식 깨져야

2025-08-21 김복연 기자

전국적인 케이블카 건설은 '관계인구' 유치라는 명분과 달리 대부분 적자로 운영되어 그 부담이 결국 주민 세금으로 전가된다. 나아가 기후변화 시대에 산림을 파괴하는 사업은 산사태, 폭염 등 재난 위험을 키우며 지역의 안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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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세금으로 ‘손님 잔치’ 여는 지방도시


40여 년의 논란 끝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첫 삽을 뜨자, 기다렸다는 듯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 케이블카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지리산, 속리산 등 이름난 산마다 케이블카 계획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 기현상의 이면에는 ‘관계인구’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자리 잡고 있다. 인구 소멸 위기 속, 정주인구가 아닌 외부 방문객이라도 끌어들여 지역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우후죽순 생겨난 케이블카 수만큼 안전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0일 멈춘 사고가 있었던 화성 서해랑 케이블카. 사진 연합뉴스
우후죽순 생겨난 케이블카 수만큼 안전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0일 멈춘 사고가 있었던 화성 서해랑 케이블카. 사진 연합뉴스

주요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논의 현황
주요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논의 현황

언뜻 들으면 절박한 지방의 현실을 타개할 묘수처럼 보이지만, 이는 주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 특히 기후변화가 매년 여름 재난의 현실로 닥쳐오는 지금, 이 ‘관계인구’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본질적으로 ‘주민의 세금으로 외부 손님들을 위한 화려한 잔치를 열고, 그로 인해 망가진 집과 불어난 빚,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를 재난의 위험은 고스란히 집주인인 주민들이 떠안는’ 비극적인 구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관계인구’라는 허울 좋은 명분, 그 실체는 ‘손님을 위한 잔치’



관계인구 정책의 본래 취지는 지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에서 이 개념은 단기적인 관광객 수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케이블카 사업이 그 대표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관계인구 개념도. 사진_국가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
관계인구 개념도. 사진_국가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

문제는 이 잔치의 비용을 누가 대고,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며, 뒷감당은 누가 하느냐에 있다. 케이블카 건설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은 대부분 주민들의 혈세로 충당된다. 하지만 그 시설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 즉 ‘손님’들이다. 지자체는 이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지역 경제 전체에 퍼져나갈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주장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실제로 전국의 관광용 케이블카 40여 곳 중 70% 이상이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는 ‘낙수효과’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증명한다. 이 적자를 보전하는 것은 결국 지자체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 다시 말해 주민들의 세금이다. 


결국 수익은 소수의 관광업체와 토건 세력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갈 뿐, 대부분의 주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교통체증, 소음, 쓰레기 같은 생활 불편과 실패한 사업의 재정적 부담뿐이다. 이는 주민의 안전과 복지에 쓰여야 할 예산을 외부 방문객의 일시적인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과 같다.


‘반짝 효과’ 이후의 추락은 관계인구 형성의 실패


더 큰 문제는, 케이블카 하나만으로는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개장 초기의 ‘반짝 효과’는 일회성 호기심을 가진 방문객을 끌어모을 뿐, 지역과 꾸준히 교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인구’ 형성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성공 신화’로 불렸던 통영 케이블카마저 전국의 경쟁 시설이 늘어나고 새로운 심화 콘텐츠가 부족해지자 이용객 감소를 겪었던 사례가 이를 명확히 보여 준다. 지역의 다른 관광 자원이나 특색 있는 경험과 연계되지 않은 케이블카는 결국 거대한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이다.


숲을 베어 재난을 키우고, 세금으로 위험을 짓다


7월 20일 3시 56분 경, 설악산 국립공원 해발 700m 권금성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운행 중 갑자기 멈춰 섰다. 약 2시간 동안 갇혀 있던 시민은 탈수와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응급처치가 이루어졌다. 안전조치에 대한 안내나 상부역사에서 대기하던 관람객에 대한 안전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이 가중되었다. 사진_네이트
7월 20일 3시 56분 경, 설악산 국립공원 해발 700m 권금성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운행 중 갑자기 멈춰 섰다. 약 2시간 동안 갇혀 있던 시민은 탈수와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응급처치가 이루어졌다. 안전조치에 대한 안내나 상부역사에서 대기하던 관람객에 대한 안전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이 가중되었다. 사진_네이트

과거 케이블카 사업의 문제점이 환경 훼손이나 경제성에 머물렀다면, 기후변화 시대에는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직접 위협하는 ‘재난 유발’ 문제로 격상되었다. 폭염이나 강풍, 낙뢰 등 예측 불가능한 기상 이변으로 케이블카 운행이 갑자기 중단되는 사례는 이미 현실이다. 폭염으로 케이블카가 멈춰 수십 명의 관광객이 공중에 고립되는 사고는 케이블카 자체가 기후변화에 얼마나 취약한 시설인지를 보여 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산림 훼손이다. 산비탈을 깎고 수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는 행위는 산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나무뿌리는 토사를 붙잡고, 숲은 폭우를 흡수하며 온도를 낮추는 핵심적인 자연 재난 방재 시스템이다. 이를 파괴하는 것은 결국 산사태와 토사 유출의 위험을 키우는 행위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산 아래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의 재정적 부담은 지역의 재난 대응 능력을 약화시킨다. 케이블카의 만성적인 운영 적자를 메우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 재난으로 파손된 시설을 복구하는 데 막대한 세금이 계속해서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인구 유출을 막고 재정 안정을 위해 써야 할 ‘지방소멸대응기금’이나 재난과 같은 비상시에 대비해야 할 ‘재정안정기금’까지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이 위험한 잔치에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양양군은 사업비 확보를 위해 재난 등 비상시에 사용해야 할 재정안정기금 수백억 원을 전용해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정작 주민의 안전을 위해 시급히 투자해야 할 하천 정비, 노후 축대 보수, 재난 예경보 시스템 구축과 같은 필수적인 안전망 예산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외부 손님을 위한 잔칫상에 올릴 화려한 음식은 사면서, 정작 우리 가족을 지켜줄 구급상자는 텅 비워두는 꼴이다.


이제는 ‘되먹임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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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업이 반복되는 것은 단순히 일부 정치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는 정치인과, 가시적인 건설 사업을 곧 지역 발전이라 여겨온 시민들 사이에 형성된 위험한 ‘되먹임의 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재선을 위해 단기 성과가 확실한 토건 사업을 공약하고, 시민들은 개발 시대의 관성 속에서 그 화려한 조감도에 표를 던진다. 이 악순환 속에서 주민의 삶을 지탱할 안전, 복지, 교육 같은 보이지 않는 기반은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


이 고리를 끊어낼 힘은 결국 시민들의 ‘각성’에서 나온다.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우리 지역에 무엇을 지었습니까?”라는 낡은 질문 대신, “우리의 삶을 얼마나 더 안전하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장밋빛 개발 공약에 환호하는 대신, 아이가 아플 때 밤새 달려갈 수 있는 병원, 배차 간격이 짧아진 버스, 폭우에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제방을 요구해야 한다.


시민의 요구가 바뀌면, 정치의 공급도 바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쳐 지나갈 손님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회성 잔치가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한 견고한 ‘삶의 기반’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은 우리의 생존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이자 안전 자산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손님 잔치’를 거부하고 ‘우리 집’을 돌보는 데 집중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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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8월 24일

되먹임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지역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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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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