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⑫ 생물다양성 |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라
- planetssong03
-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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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 김성희 기자
한국의 생물다양성 보전 체계는 부처별로 쪼개진 관리 구조와 선언적 법률에 머무르며 실효성을 잃고 있다. 보호지역조차 개발 논리에 흔들리는 현실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2030년 ‘30×30 목표’ 달성에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기본법 격상과 제도 개혁을 넘어, 자연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지구법’이라는 새로운 법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무너지는 생명망, 문경새재에서 드러난 민낯
문경시는 2019년부터 새재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해 왔다. 문제는 해당 구간이 「자연환경보전법」상 1등급으로 분류된 생태·자연도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1등급 지역은 개발이 금지돼야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 조정으로 인해 전체 노선 중 약 1.6km 구간이 사실상 개발 가능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멸종위기종 서식지 훼손 우려가 제기됐고, 산림 단절·경관 파괴와 같은 환경영향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보전이 우선되어야 할 법적 장치가 오히려 개발 편의를 위해 조정되면서, 보호지역 지정의 근본 취지가 무력화되었다.
문경새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역사문화자산이자, 수많은 야생 생물의 서식처다. 개발 편의를 위해 보전 기준이 완화되면서 생태계 단절·문화경관 훼손·멸종위기종 위협이라는 삼중의 문제가 동시에 불거졌다.
보호지역은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 안전망이다. 문경새재 사례는 그 안전망조차 이해관계 앞에서 쉽게 뚫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단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부처별로 분절된 제도 속에서 보전의 원칙이 언제든 개발 논리에 밀려날 수 있음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보호지역도 지켜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문경새재의 사례는 한국의 생물다양성 보전 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신호탄이다.
법의 파편화, 보전 대신 분산된 관리
한국의 생물다양성 보전 체계는 제도적 허점을 안고 있다.
그 핵심은 부처별로 쪼개진 관리 구조다. 국가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KBR) 홈페이지는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현재 생물다양성 관련 제도는 「자연환경보전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10여 개 법률에 흩어져 있다.
관리 주체도 환경부, 산림청, 해양수산부, 문화재청 등으로 나뉘어 있어, 같은 보호지역이라도 적용 기준과 관리 방식이 제각각이다. 목록만 보더라도 관리 체계가 ‘환경부 중심 단일 법률’이 아니라, 여러 부처의 개별 법률에 분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제도가 통합되지 못한 채 ‘법의 파편화’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한계도 뚜렷하다. 평가가 부처별로 따로 진행되면서 종합적 검토가 어렵고, 정보 비공개로 시민과 전문가의 검증도 제한된다. 결국 영향평가는 보전을 담보하기보다 개발을 정당화하는 절차로 전락해 왔다.
이처럼 한국의 생물다양성 관리 체계는 보전을 위한 제도라기보다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제도에 가깝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의 ‘30×30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 원칙 빠진 선언적 법률, 실효성 없는 껍데기
현행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이름만 법률일 뿐, 사실상 국제협약 이행을 위한 선언적 성격에 머물고 있다. 보호지역 지정이나 개발사업 제재 같은 핵심 권한은 다른 개별법에 흩어져 있어 독자적 효력이 약하다. 이처럼 기본 틀이 허술하다 보니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기본 원칙조차 담아내지 못하고 비어 있는 상태다.
실제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가 강조하는 생태계 서비스, 세대 간 형평성, 취약계층 보호와 같은 가치도 현행 법률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의 제도는 국제 기준과 뚜렷한 괴리를 보인다. 국가생물다양성전략 역시 5년마다 수립되지만 구속력이 부족해 선언적 계획에 그치고, 지역과의 연계도 미약하다. 이행 점검과 예산 뒷받침이 부재해 현장 집행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생물다양성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상설위원회가 아니어서 권한과 위상이 제한적이며, 결정 역시 구속력이 약하다. 국가생물다양성센터 또한 정보 수집과 홍보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 정책 지원이나 집행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결국 현행 제도는 전략 수립부터 실행, 점검까지 전 과정에서 실효성이 결여돼 있으며, 보전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과학이 입증한 보전의 힘
보전 조치의 효과를 둘러싼 회의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보고서에서 실행한 대규모 메타분석은 이런 주장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전 세계 186편의 연구에서 도출된 665개 사례를 분석했는데, 보전 개입이 있었던 경우 66%에서 생태계가 개선되거나 종이 회복된 반면, 개입이 없었던 경우 72%에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보전 개입이 없었다면 훨씬 많은 종이 이미 멸종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연구진은 성과가 달라지는 이유로 관리 강도와 실행 방식, 충분한 시간, 재정·정책적 지원을 꼽았다. 결국 생물다양성 보전은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가 손을 놓을 때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해진다. 이번 연구는 보전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종과 생태계를 지켜 내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선언적 법률 넘어 ‘실질적 기본법’으로 격상해야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현행 법률을 기본법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산과자연의친구가 주관한 이번 논의에서 발제자들은 한국의 생물다양성 보전 체계가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구체적인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법의 목적에 세대 간 형평성과 취약계층 보호, 생태계서비스 보전, 국제협력 의무를 포함시키고, 국가와 지방정부가 각각 국가전략과 지역전략을 수립·이행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은 단순 수립에 그치지 않고 실행과 점검, 보고 절차를 의무화해 국회와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됐다. 현재 자문기구 성격에 머무는 국가생물다양성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상설위원회로 격상시켜 부처 간 조정 권한과 결정의 구속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생물다양성센터 역시 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역할에서 벗어나 정책 지원과 이행 점검을 맡도록 확대하고, 지역 단위 센터 설립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더불어 훼손지 복원과 주민 참여형 사업, 생태계서비스지불제 확대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보전 기금을 신설하고, 보호지역 지정·해제 기준을 강화해 개발 논리에 따라 임의로 조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발제자들은 “보호지역의 지정·해제, 훼손지 복원, 개발사업 제재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기본법 없이는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30×30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분절적 관리와 선언적 법률 체계를 넘어, 생물다양성 보전을 국가적 책무로 강제하는 법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해외는 법으로 강제, 한국은 여전히 선언적 수준
해외에서는 이미 기본법 수준의 제도 정비를 통해 생물다양성 보전의 실효성을 높여온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은 2008년 「생물다양성기본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의 책무를 명확히 규정했다. 이 법은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을 국가 목표로 천명하고, 내각총리대신을 본부장으로 하는 ‘생물다양성본부’를 설치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기본법이 각 부처의 개별 정책을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미국은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Endangered Species Act(ESA)」를 통해 보호종 지정과 서식지 보전, 개발사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 장치를 마련했다. ESA는 연방 정부뿐 아니라 주정부와도 긴밀히 연계돼 있으며, 법을 위반할 경우 막대한 벌금이나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다. 이는 ‘보호지역의 지정·해제는 물론 개발사업의 허용 여부까지 법적 구속력 아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본법 제정, 강력한 제재, 복원 의무화를 통해 국가 차원의 책임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여전히 선언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생물다양성·기후위기 시대, 인간 생존 지키는 새로운 해답 '지구법'
국제사회에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나아가고 있다. 바로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이다. 이는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가 2001년 제안한 개념으로, 자연을 단순한 자원이나 객체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도 ‘존재할 권리’, ‘서식할 권리’, ‘지구의 진화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구법은 세계 곳곳에서 법과 제도로 구체화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17년 황거누이강(Whanganui River)에 법적 인격을 부여해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했다. 에콰도르는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시해 무리한 개발과 벌채가 헌법 위반으로 판단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유럽에서도 자연권을 법체계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대상으로 생태법인 제도를 추진하는 등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지구법 논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단순히 생태계를 관리하거나 보전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을 독자적 권리 주체로 인정해야 인간의 생존 기반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위기와 기후위기라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한 지금, 지구법은 새로운 법적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 중심에서 지구 중심으로
지구법이 제기하는 물음은 단순한 법 개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연을 자원으로 보는 시각에서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시각으로의 전환, 곧 인간 중심에서 지구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다.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길은 단순히 ‘보전’만으로는 닿을 수 없다. 보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자연을 관리하는 방식일 뿐, 그 자체로는 언제든 개발 논리에 종속될 수 있다. 결국 자연을 인류의 조건부 자원이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가진 독립적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의 삶을 결정짓는다. 생태계는 인간이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전제가 되는 독자적 존재라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생물다양성 보전 체계는 부처별로 쪼개진 관리 구조와 선언적 법률에 머무르며 실효성을 잃고 있다. 보호지역조차 개발 논리에 흔들리는 현실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2030년 ‘30×30 목표’ 달성에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기본법 격상과 제도 개혁을 넘어, 자연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지구법’이라는 새로운 법적 상상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