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⑫ 생물다양성 | 「지구생명보고서」, 야생동물 개체군 평균 73% 감소
- planetssong03
-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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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0 김성희 기자
생물다양성 보전은 환경 보호 차원의 선택이 아니라, 인류 생존을 지탱하는 최소 조건이자 경제·사회·문화 전반을 지키는 안전망이다. 기후위기와 맞물려 가속화되는 손실은 곧 문명의 붕괴로 이어지며, 이를 막기 위해 국제적 합의의 구체적 이행과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정의로운 전환, 그리고 ‘보전에서 회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 인류가 지켜야 할 약속
매년 5월 22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로, 생태계와 생명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날이다. 생물다양성은 유전자·종·생태계 차원에서 인류 생존과 직결된다. 안정적인 먹이사슬과 기후 조절, 식량과 의약품 확보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기후변화, 오염, 불법 포획으로 서식지가 줄면서 멸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결국 생물다양성 보전은 특정 종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지속과 직결된 과제이며, 자원 소비 절감·탄소 배출 최소화·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같은 실천이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티핑 포인트에 다가선 지구 생명망
1970년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지구 생명망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가 2024년 발표한 「지구생명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495종, 3만5000여 개체군을 추적 조사한 결과 야생동물 개체군 규모가 평균 73% 감소했다. 특히 담수 생태계는 85% 줄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으며, 육상은 65%, 해양은 56%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가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의 직격탄을 맞아 무려 95% 감소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감소의 주요 원인은 식량 시스템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를 비롯해 자원 남용, 남획, 외래종 침입, 질병 등이다. WWF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이미 17% 파괴되었으며, 25% 이상 훼손되면 복원 불가능한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전 지구의 탄소 흡수 능력을 급격히 약화시키고 기후 불안정성을 가속화할 것이다. 해양 역시 위기다.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 시 산호초의 70~90%, 2℃ 상승 시 99% 이상이 소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는 지난 30년간 산호의 절반 이상이 백화현상으로 소멸했다.
WWF는 “향후 5년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라며, 지금 전환하지 않으면 지구 생명망은 되돌릴 수 없는 붕괴 지점을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물이 지켜 주는 인간의 삶

생물다양성 위기는 단순한 자연 훼손이 아니라 인류 생존 기반의 붕괴로 직결된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숨 쉬는 공기, 먹는 식량, 질병으로부터의 방어까지 모두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꿀벌은 전 세계 농작물의 약 75%에 수분을 매개하며 인류 식량의 3분의 1을 책임진다. 농약 사용과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로 꿀벌 개체군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과일·채소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이 관측되고 있다.
습지와 갯벌 역시 인류의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다. 습지는 홍수와 가뭄을 완충하고, 탄소를 저장하며, 수많은 생물종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네이처에 등재된 논문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전 세계 습지의 35% 이상이 사라져 홍수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갯벌 매립으로 멸종 위기 철새의 개체 수가 급감하며, 이는 국제적 생태 연결망까지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일상에서 ‘숨은 보험’ 역할을 한다. 도시의 가로수와 숲은 여름 폭염을 식히고, 겨울에는 미세먼지를 줄인다. 강과 하천의 건강성은 수돗물의 품질을 좌우한다.
생물다양성이 줄어드는 결과는 단순한 종 손실이 아니라, 극한 폭우와 가뭄 같은 기후재난, 식량 공급망 불안정, 그리고 코로나19처럼 인간과 야생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발생하는 신·재생 감염병 확산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생물다양성이 약화될수록 우리의 사회적 안전망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인류 전체가 다층적 위기에 노출된다.
국제사회는 실행과 회복으로, 한국은 여전히 지체 중
국제사회는 아이치(AICHI) 목표 실패 이후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를 채택했다. 핵심은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전하는 ‘30by30’ 약속으로, 침입외래종 절반 감축, 플라스틱 제로화, 연간 200억 달러의 개도국 지원 등 정량적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닌 행동 계획으로,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얼마나 보호·감축할 것인지”를 수치로 합의한 사례였다.
한국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 국토의 보호지역 지정률은 16.7%, 해양은 2% 남짓으로 국제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 관리 체계도 환경부·해수부·지자체로 분산돼 정책 속도를 늦추며, 개발·생계와 충돌하는 이해관계도 보전을 가로막는다. 지역 협력이 부족한 중앙집중형 행정은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 WWF가 지적했듯 향후 5년이 골든타임이지만, 한국은 아직 ‘준비 중’에 머물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를 내세우고 있다. 단순한 손실 중단이 아니라 훼손된 생태계를 회복해 자연 자본을 순증가(Net Gain) 상태로 돌려놓자는 접근이다. 기후위기의 공동 목표가 ‘넷제로(Net-Zero)’라면, 생물다양성 위기의 해법은 ‘네이처 포지티브’라는 것이다. 결국 KM-GBF와 30by30이 구체적 수단이라면, 네이처 포지티브는 이를 포괄하는 최종 비전이다.
GDP 절반이 의존하는 생태계, 글로벌 금융시장도 주목한 자연자본 리스크
생물다양성의 손실은 단순히 생태계의 붕괴를 넘어, 세계 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에서는 전 세계 경제 생산량의 55%, 약 58조 달러가 숲·습지·바다 같은 자연자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지구가 자연자본 손실과 생물다양성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매년 2.7조 달러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농업, 어업, 임업뿐 아니라 식품 가공, 제약, 에너지 등 주요 산업이 자연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 없이는 존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 아니라, 단순한 환경 보전 비용이 아닌 글로벌 금융과 무역 질서를 흔들 충격으로, 각국의 산업 경쟁력과 고용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이 2024년 발표한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는 향후 10년 인류가 직면할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를 3위에 올려놓았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이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 악순환을 강화하는 이른바 ‘이중 위기(twin crisis)’는, 더 이상 환경단체의 경고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과 정책 리더들이 주목하는 핵심 리스크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자연자본 리스크가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고서에서 한국 증권시장 상장기업의 71%가 자연자본 리스크에 노출돼 있으며, 특히 디지털 통신·에너지 산업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구조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리스크임을 보여 준다.
문화적 DNA, 생태계와 함께 사라진다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단순히 생물종의 소멸에 그치지 않는다. 생태계의 균열은 곧 사회와 문화의 균열로 이어진다. 원주민 사회의 언어와 전통 지식은 특정 생태계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북극의 이누이트족은 얼음과 눈의 특성을 세밀하게 구분해 생존 방식을 전승해 왔고,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인 미크맥어에서는 바람 소리에 따라 나무 이름을 달리 붙였다. 이처럼 언어와 문화는 자연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축적된 ‘문화적 DNA’다.
한국에서도 갯벌과 철새 이동 경로는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생계와 문화유산과 연결돼 있다. 새우젓, 김 양식 같은 식문화와 축제는 생태계와 맞물려 있다. 생태계가 붕괴하면 이러한 생활 기반과 문화적 자산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다양성은 생존이다. 종의 다양성은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고,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은 인류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다. 이 둘이 동시에 무너질 때, 위기는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보전에서 회복으로, 정의로운 전환이 해법
생물다양성 보전은 단순히 보호지역의 면적을 늘리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계 회복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자연기반해법(NbS, Nature-based Solutions)이다. IPCC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은 지난 10년간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약 54%를 흡수하며 기후 안정화에 기여했다.
자연기반해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환경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생계와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대규모 개발 이익은 중앙정부와 기업이 가져가고, 보전의 비용은 지역이 떠안는 구조에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바로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이다.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가 생태계 관리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을 결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국제협약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는 단순히 보호 면적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기반 보전조치(OECM)를 통해 원주민과 지역사회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생태계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생물다양성 보전, 인류 생존의 최소 조건
WWF는 향후 5년이 인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라고 경고한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은 평균 73% 감소했고,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는 앞으로 100만 종의 생물이 수십 년 내에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조건을 무너뜨리는 신호다.
생물다양성 보전은 곧 인류 생존을 위한 최소 조건이다. 숲, 바다, 습지, 갯벌은 인류가 의지하는 안전망이자 미래를 담보하는 자산이다. 다양성은 생태계와 인류 문명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자연을 지키는 일은 먼 미래 세대를 위한 추상적 선택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지키는 가장 구체적이고 시급한 과제다. 우리가 지금 그 기둥을 지켜 내지 못한다면, 무너지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앞으로 5년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라고 합니다. 5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인데,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걱정이 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