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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노동은 인격, 일을 규제해야

2025-08-01 윤효원

노동과 일을 구분해 보자. 몸과 머리의 힘을 쓰는 노동은 인간과 분리될 수 없다. 일은 세 가지 현실이 있다. 스스로 일을 통제하거나, 남들의 일을 통제하거나, 남에게 일을 통제당하거나 한다. 노동법은 어린이들의 일하는 시간을 규제하려는 시도로 19세기에 탄생했다. 노동법의 규제는 노동이 아니라 일이다. 현실태로 노동법이 노동자가 아닌 일(사용자)를 보호하는 사례를 자주 접한다. 인적 자원은 나치, 인적 자본은 스탈린의 어휘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존재를 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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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일은 다르다


말과 글의 세계에서 노동(labour)과 일(work)을 분리해 사고할 필요성을 자주 느낀다. 그래야 세상과 현실이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과 머리를 쓰는 것을 노동이라 할 때, 인간은 노동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노동은 노동력, 즉 몸의 힘과 머리의 힘을 쓸 때 이뤄진다. 노동이 그치면 인간의 삶도 그친다.


인간과 노동을 분리할 수 없다. 노동은 인간과 일체다. 반면 노동을 통해 이뤄지는 일은 인간의 외부에 분리돼 존재한다. 인간이 노동하는 동안에만 일이 인간과 붙어 있는 듯 보일 뿐이다. 인간에게 노동은 내재적 행위가 되고, 일은 외재적 행위가 된다.


일의 세계: 세 가지 현실


일의 세계(world of work)는 세 가지 현실로 나뉜다. 첫째 자기가 하는 일을 스스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의 세계(자유인), 둘째 남들이 하는 일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의 세계(착취자), 셋째 자기가 하는 일을 남에게 지배받고 통제당하는 사람들의 세계(피착취자)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현실은 일의 세계에서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다. 노동을 통해 일이 이뤄진다고 할 때, 일에 대한 지배와 통제는 노동에 대한 지배와 통제로 이어진다. 노동과 인간을 현실에서 분리할 수 없기에, 결국 일에 대한 지배와 통제는 노동하는 주체인 인간에 대한 지배와 통제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과연 노동법이 보호하려는(protect) 것은 일인가 노동인가.


ILO, ‘노동의 보호’와 ‘일의 규제’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가을 미국 워싱턴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1호부터 6호까지 여섯 개의 협약을 제정했다. 제조업에서 일의 시간(hour of work)을 최대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으로 규제한 1호 협약, 실업 방지 및 구제에 관한 2호 협약, 임신과 출산시 여성노동자 보호를 명시한 3호 협약, 여성의 밤일(night work)을 금지한 4호 협약, 14세 미만 어린이의 고용을 금지한 5호 협약, 18세 미만 청소년의 밤일을 금지한 6호 협약이 그것이다. 100년 전 ILO가 만든 최초의 여섯 개 협약에서 우리는 ‘일의 규제(regulation of work)’와 ‘노동의 보호(protection of labour)’를 꾀했던 ILO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시민법에 대한 노동법의 도전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법은 어린이들의 일하는 시간을 규제하려는 시도로 19세기에 탄생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이라 썼다. 노동법이 규제할 대상은 노동자와 붙어 있는 ‘노동’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한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자본가가 지배하고 통제하는 일의 세계를 규제함으로써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등장했다.


1908년 12월 3일 미국 뉴베리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몰로한 방직공장(Mollohan Mills)에서 작업 중인 어린 댓실배틀 작업 소녀. 촬영자가 남긴 듯한 코멘트가 있다. "그녀는 마치 오랜 경력자처럼 자신의 '담당 구역'를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찍고 나서, 감독관이 다가와서 불쌍할 정도로 미안한 어조로 '그 애는 그냥 우연히 들어온 거예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 그는 다시 한번 그 말을 반복했다. 이 공장들은 ‘그냥 우연히 들어왔다’거나, ‘언니를 도와주러 왔다’는 어린이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사진_미국 의회도서관
1908년 12월 3일 미국 뉴베리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몰로한 방직공장(Mollohan Mills)에서 작업 중인 어린 댓실배틀 작업 소녀. 촬영자가 남긴 듯한 코멘트가 있다. "그녀는 마치 오랜 경력자처럼 자신의 '담당 구역'를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찍고 나서, 감독관이 다가와서 불쌍할 정도로 미안한 어조로 '그 애는 그냥 우연히 들어온 거예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 그는 다시 한번 그 말을 반복했다. 이 공장들은 ‘그냥 우연히 들어왔다’거나, ‘언니를 도와주러 왔다’는 어린이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사진_미국 의회도서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법제사 측면에서 19세기는 타인의 노동을 자본가의 재산으로 취급했던 시민법에 대한 노동법의 도전으로 얼룩져 있다. 이는 노동자를 기계보다 못하게 취급했던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투쟁과 맞닿아 있다.


이런 이유로 저명한 프랑스 노동법학자 알랭 쉬피오는 노동법의 역사적 임무를 두고 노동을 사물이 아니라 인격(person)으로 대접하는 것이라 주장했다(그는 『필라델피아 정신: 사회정의 대 시장전체주의』(L'Esprit de Philadelphie, 2010)에서 노동법이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하는 법체계임을 강조한다).


1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그리던 ILO는 1919년 창립헌장에서 자기 목표를 “사회정의를 통한 항구적 평화의 실현”으로 천명했고,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그리던 ILO는 1944년 필라델피아 총회에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ur is not a commodity)”고 선언했다. 이는 노동을 보호하고 일을 규제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과제였다.


노동을 보호한다는 것은 노동하는 노동력의 담지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일을 규제한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에 대한 지배권과 통제권을 행사하는 사용자를 규제하는 것을 뜻한다.


‘시장전체주의’의 용어: 인적 자원과 인적 자본


이상태로서 노동법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현실태로서의 노동법이 일(사용자)을 보호하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접한다. 노동법이 노동(노동자)을 규제하고 일을 보호하는 전도된 현실은 노동을 인격이 아니라 사물로 전락시켜 ‘인간의 사물화’를 초래한다. 이는 ‘인적 자원’ 혹은 ‘인적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알랭 쉬피오에 따르면 인적 자원은 나치의 어휘고, 인적 자본은 스탈린의 어휘였다.


인간을 자원이나 자본으로 간주할 때, 자연 자원을 ‘개발’하듯이 인간에 대한 ‘착취’도 가능해진다. 이때의 개발과 착취는 영어로 ‘exploit’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기업할 권리” 운운하며 재산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보다 앞세우는 작태를 보인다. ‘기업할 권리’ 뒤에 숨어 ‘자본가할 권리’를 강화하려는 속내다.


“노동자는 자신의 존재를 건다”


이탈리아 법률가 루이기 멘고니는 “사실상 노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노동하는 사람들뿐이다.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격)을 제공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건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그의 대표적 논문 「헌법 속의 노동(Il lavoro nella Costituzione)」은 『Scritti giuridici』 제1권, 2009년 재판본에 수록돼 있다. 여기서 그는 노동이 단순한 기능이 아닌 인간 존재 전체의 표현임을 강조한다.


노동에는 자유를, 일에는 규제를


자본가가 노동을 사물로, 노동자를 재산으로 취급하도록 허용하는 권리는 폐지해야 한다. 그 첫 작업은 일의 세계에서 노동의 세계를 분리해 내어 노동의 세계를 온전히 인간의 세계로 복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일과 노동의 개념적 차이를 부각시켜 현실을 바로 이해하는 작업에서 출발할 수 있다.


우리가 보호하려는 것은 노동이지 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일로 인해 노동의 자유로운 행사가 억제된다면 일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노동은 적절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는 사용자가 지배하고 통제하는 일에 대해 적절한 규제가 가해지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규제해야 할 것은 일이지 노동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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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13시간 전

"노동법의 규제대상은 노동이 아니라 일이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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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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