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의 에너지 꽈당 | ⑤ 기후에너지부, 에너지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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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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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 이순형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소규모 인력이 총괄하는 에너지 정책 체계로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권역별 에너지청(호남청, 경상청 등) 도입이 필요하며, 이는 지역 맞춤형 재생에너지 확대와 분산형 시스템 구축의 기반이 될 것이다. 동시에 정책 혼란을 야기하는 '신재생에너지' 용어를 국제적 기준에 맞춰 '재생에너지'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수소·연료전지 등 신에너지를 혼용할 경우 정책 목표 설정과 평가가 왜곡될 수 있다.

이순형 교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에너지안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전기기술사이다. 전력계통 운영과 신재생에너지 접속 문제, 분산형 전원 기술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주도해 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 표준모델 실증’ 연구의 책임자로서 농촌 기반 에너지 전환의 현장 모델을 설계했다. 2020년 은탑산업훈장, 2024년 전라남도지사 표창과 대한전기학회 춘계학술대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대표 강의는 ‘전력계통’, ‘에너지변환공학’, ‘신재생에너지공학’ 등이며, 저서로는 『신재생에너지공학』과 『계통연계기술』 등이 있다. 전라남도 정책자문위원회 전략산업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지역 기반 에너지 정책의 실용화와 대중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1. 기후에너지부, 에너지청을 신설하자
소규모 인력으로 막중한 업무를 담당하는 현실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조직’이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실은 소규모 인력으로 막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핵심 정책 전략 수립과 실행을 전담하는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기후·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장기적으로 추진하기엔 조직적·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이러한 상황은 지속가능한 정책 설계·이행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의 재편과 전문 인력 확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제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에서, 이런 식의 구조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도로는 도로공사가 따로 있듯이, 에너지도 ‘에너지청’이 필요하다. 아니, 더 나아가 ‘기후에너지부’ 수준의 중앙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문제는 단지 행정 조직의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는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이며, 산업구조 전환의 중심축이고, 지역균형발전과도 직결된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주제를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단일 부처, 단일 과(課), 단일 인사로는 제대로 된 과학적 검토, 정책 설계, 실행, 평가가 불가능하다.
탄소배출 저감, 신기술 도입, 소비 구조 변화, 지역 분산 등 종합 설계 필요
지금 산업부는 기본적으로 '산업 진흥'이 중심인 부처다. 에너지는 어디까지나 산업을 위한 수단으로 다뤄진다. 전력, 석유, 가스 모두 '공급 안정성' 중심이다. 그런데 에너지 전환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공급 안정성뿐 아니라, 탄소배출 저감, 신기술 도입, 소비 구조 변화, 지역 분산 모델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설계가 필요하다. 이걸 산업부의 일부 부서에서 맡는 건 불가능하다.
호남청, 경상청, 중부청 식의 권역별 에너지청이 필요
게다가 지금처럼 ‘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체계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별 에너지 수요와 공급, 계통 구성, 산업 구조까지 다 따로 설계돼야 한다. 예컨대 제주도는 전력 자립률이 높지만 계통 연결이 약하고, 수도권은 수요는 많지만 발전이 부족하다. 광주는 에너지 자급률이 9.3%에 불과하고, 전남은 198.9%나 된다. 이런 격차는 지역 단위의 독립적 정책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호남청', '경상청', ‘중부청’ 식의 권역별 에너지청이 필요하다.
에너지는 지역이 주도해야 한다. 태양광, 풍력, 수소 등 다양한 에너지원은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다. 똑같은 모델을 전국에 적용할 수 없다. 그러니 지역이 직접 수립하고 추진하는 권한과 조직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중앙에서 일괄 계획을 세우고 일률적으로 하달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지역 맞춤,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의 출발점
에너지청은 이런 권역별 특성과 행정 구조를 동시에 반영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에 맞는 계통 설계, 재생에너지 발전소 입지, 수요처 개발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 해수담수화 시설, 수소 생산 기지 등도 지역 맞춤형으로 분산 배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의 출발점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이런 조직을 갖추고 있다. 독일은 연방정부 차원의 에너지부가 있고, 지방 정부도 자체적인 에너지 정책 조직을 운영한다. 일본도 경제산업성 산하에 에너지 관련 전문 부서가 있고, 도도부현별로 지역 에너지 정책을 수행하는 조직이 있다. 심지어 미국은 연방 에너지부(DOE)가 전체 정책을 조정하면서, 주별로 에너지청이 따로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비해 조직이 너무 약하다.
핵심 기술을 다룰 인력이 행정조직에 거의 없다
정책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조직이 없으면 전문인력도 없다. 에너지 정책을 담당할 공무원이 승진할 자리가 없고, 이직도 어렵고, 책임도 지지 않으니 아무도 전문성을 키우려 하지 않는다. 전력계통, 송배전 기술, 수요 관리, 무효전력, ESS(에너지 저장 장치) 같은 핵심 기술을 다룰 사람은 행정조직 안에 거의 없다. 정책은 있는데 실행력이 없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 정책을 통합해 다룰 ‘기후에너지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기후에너지부가 필요하다. 이 부처는 에너지 전환을 기후 정책과 통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신재생에너지 보급, 산업구조 개편, 지역균형발전, 기술 혁신 등을 통합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탄소중립도 가능하고, 에너지 안보도 확보되며, 산업 전환도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단순히 전기 많이 쓰는 나라에서, 지속가능한 전환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첫걸음이다.
‘기후에너지부’와 ‘에너지청’은 단지 행정조직의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새로 짜기 위한 구조적 개혁이다. 지금처럼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장기적 추진에 한계가 있다. 전력은 나라의 핏줄이다. 핏줄 설계를 바꾸지 않고, 에너지 전환을 말할 수는 없다.
2.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는 다르다
용어부터 바로잡자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혼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용어’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기본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위에 아무리 정교한 설계를 얹는다 해도 결과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이라도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유럽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라고 부른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신재생에너지’라고 부른다. 이게 단순한 말의 차이 같지만, 실제로 정책과 행정에서 혼선을 유발하는 가장 뿌리 깊은 문제 중 하나다. 왜냐하면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는 애초에 성격이 다른 기술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자연에서 반복해서 얻는 에너지
신에너지, 기존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
‘재생에너지’는 우리가 흔히 아는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에너지 등을 말한다. 자연에서 반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반면 ‘신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다. 연료전지, 수소에너지, 석탄액화가스화, 폐기물에너지 같은 것들이다. 기술적으로도, 시스템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이 둘을 하나로 묶어 ‘신재생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관련 정책과 예산도 이 범주 안에서 집행된다. 이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목표치를 설정할 때도, 그리고 관련 사업을 추진할 때도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30%로 설정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연료전지 같은 ‘신에너지’ 비중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국민이 정책 목표를 정확히 이해할 수도 없고, 정부도 정책 성과를 투명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예산 편성과 정책 평가에서 통계 왜곡
이 같은 혼란은 행정적, 통계적 왜곡으로도 이어진다. 예산 편성이나 정책 평가에서 ‘신재생에너지’라는 큰 틀만 놓고 보게 되면, 태양광·풍력 등 순수 재생에너지의 실질적인 확대 여부는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연료전지 사업이 급격히 늘어나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고 발표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태양광이나 풍력 비중이 제자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책이 가리키는 방향과 실제 에너지 구조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용어의 정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정책의 철학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가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행정 편의 때문이다. 과거부터 그렇게 써왔고, 법령에도 그렇게 규정돼 있으니, 바꾸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대로 끌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번거로움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다. 정책은 명확하고 정직해야 한다. 용어에서부터 개념이 흐려지면, 그 뒤에 따라오는 모든 정책 설계도 뒤틀릴 수밖에 없다.
국제적 소통에서 오해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국제적 소통이다. 기후위기 대응이나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해외 연구자나 정책 담당자들이 ‘renewable energy’를 말할 때, 우리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신에너지’까지 포괄하는 ‘신재생에너지’로 해석한다. 이 차이가 논문, 정책 보고서, 국제회의에서 오해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이 오해가 실제 정책 수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용어는 철학이다.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는 기술적으로 부정확하고, 정책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며, 국제적 소통에서도 장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우리가 에너지 전환을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 정치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은 기술이자 설계이고, 그 설계는 철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용어를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책 문서, 법령, 교육자료 등에서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를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신에너지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별도로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고, 정책의 실효성도 담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단어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자 방향이다.
에너지 전환이란 결국 하나의 개념에서 시작된다. 개념이 흐리면 철학도 흐리고, 철학이 흐르면 정책도 표류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 흐릿한 개념을 명확하게 바로잡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라는 낡은 용어를 걷어내고, 국제 기준에 맞는, 기술적으로 정확한 용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전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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