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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 박성율 홍천풍천리양수발전소건설반대위원 | 양수발전이 흔든 건 숲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였다

2025-08-28 김복연 기자

박성율 목사가 홍천 풍천리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을 통해 경험한 민주주의 실천 과정을 담았다. 주민 주도의 만장일치 회의 운영과 절차적 정의 추구, 그리고 개발논리에 맞선 7년간의 투쟁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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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율 목사는 강원 홍천 출신으로, 농촌 목회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활동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 이후 지역의 골프장 개발 반대 운동에 참여하며 주민들과 대책위를 꾸렸고, 이를 계기로 환경·사회 현안에 본격적으로 결합했다. 이후 송전탑 설치 반대, 노동 문제, 도시 재개발 현장 등에서 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며, 토지 강제수용과 절차적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2019년부터는 홍천 풍천리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해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종교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풀뿌리 주민운동의 한 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숲을 잃는다는 건 삶을 잃는 것이다


박성율 목사, 홍천 양수발전 건설 부지 상황 설명. 사진 플래닛03
박성율 목사, 홍천 양수발전 건설 부지 상황 설명. 사진 플래닛03

홍천 풍천리에서 7년째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주민들과 함께 길바닥에서, 경찰서에서, 군청 앞에서 버티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골프장 난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주민들이 숲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며 불안과 분노를 말할 때, 곁에서 같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회자로 살아왔지만 이건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였다. 그렇게 주민들과 대책위를 꾸렸고, 다양한 현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골프장, 송전선로, 도시 재개발 현장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분명해졌다. 누가, 어떤 절차로, 누구의 삶터를 결정하는가.


양수발전은 이름 때문에 전기를 생산한다고 오해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렸다가 낙차로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낮과 밤의 전력 수요와 공급의 흔들림을 맞추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거대한 토목과 긴 공사 기간, 수몰과 이주, 그리고 절차의 불투명성이다.


이 사업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묻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자료를 요구했고 설명을 요청했다. 베어질 나무의 규모,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장기간 토목공사가 남길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삶의 터전이 수몰될 수 있다는 현실. 돌아온 대답은 “나무는 다시 심으면 되고, 동물은 다른 곳으로 가서 살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 논리가 사람에게도 똑같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현장에서 본 양수발전의 얼굴이다.


모두가 당사자로 서는 법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에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수몰 지역을 설명하는 박성율 목사. 사진 플래닛03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에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수몰 지역을 설명하는 박성율 목사. 사진 플래닛03

이 싸움은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아닌 줄 알았다”라는 주민의 말은 분노의 수사만이 아니다. 회의장마다, 길 위의 현장마다, 주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결정을 만들어 가는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7년을 싸우는 동안 우리 안에 민주적 방식과 절차를 실현해 온 덕이다.


우리 회의는 항상 만장일치로 운영했다. 감정의 만장일치가 아니라 논리의 만장일치다. 주장을 말할 땐 이유와 근거를 함께 낸다. “월요일에 군청으로 가자”라고 말하면, 왜 월요일이어야 하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분명히 밝힌다. 발언은 3분을 넘지 않는다. 시간이 모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발언이 끝난 뒤에 이어서 말한다. 회의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번 이상 발언한다. 말하지 않으면 회의는 끝나지 않는다. 50분 회의하면 10분 쉰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원칙들은 사람을 수동적 청중이 아니라 능동적 당사자로 세운다.


때로는 엄격함이 필요했다. 회의 초반, 휴대폰을 모두 모아 두고 문을 걸어 잠갔다. 그저 상징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우리는 절박했다. 합의가 안 되면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밥 시간이 되면 전원이 멈춰 서서 함께 밥을 먹고 밥값은 각자 부담했다. 사소한 일 같지만 작은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세심함이 사람을 하나로 묶었다. 주민 모두에게 “누구 회의에 가는 게 아니라 내 회의에 간다”는 감각이 생겼다.


그리고 늘 시뮬레이션을 했다. 군수 입장에서 어떤 답을 할지, 담당 과장이 어떤 절차를 언급할지, 대화가 막히면 어떻게 할지, 끝까지 버티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연행의 가능성과 벌금, 전과의 부담까지 가감 없이 공유했다. 정확한 정보가 두려움을 이긴다. 알고 가면 주민 모두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갈등의 현장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토지 강제수용 반대를 주장하는 박성율 목사. 사진 박성율
토지 강제수용 반대를 주장하는 박성율 목사. 사진 박성율

표면만 보면 지역마다 사안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곳은 송전선로, 어떤 곳은 골프장, 어떤 곳은 도시 재개발. 그러나 현장을 걷다 보면 금세 무늬가 겹친다. 토지 강제수용이 뒤따르고, 절차는 형식이 되고, 삶터의 결정에서 주민은 밀려난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서울의 재개발 구역에서, 안산과 시흥의 철거 현장에서 보았던 것은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갈등의 바탕에는 국가, 기업이 주도하는 개발주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논리 앞에서 주민들의 삶과 목소리는 반복해서 절차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연대는 피해를 나누는 일이 아니라 구조를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 다른 현장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의 실패와 성공을 공유하며, 제각각의 사안을 하나의 질문 아래로 모았다. 개발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모든 결정에서 과연 누구의 삶이 지워지고 있는지 말이다.


절차를 묻고 상식을 지키는 방법


군청과 도청, 부처 문을 수없이 두드렸다. 자료를 요구하고, 설명회를 요청하고, 왜 주민과 함께 보지 않는지 물었다. 정보공개소송으로 필요한 서류를 받아내려면 대개 3년이 걸린다. 절차는 진행되고 허가가 나는데, 서류는 그 뒤에 온다. 이게 공정하고 투명하다는 말과 어떻게 같은 문장에 놓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이 편의적으로 적용되거나 예외를 빌미로 왜곡되는 순간 법의 의미는 사라진다. 중요한 건 법이 어떻게 쓰이느냐다. 공무원이 재량을 행사할 때, 그 재량이 주민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는 방향으로 쓰이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되묻는 “왜 우리에게 묻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단순한 권리 다툼이 아니다. 그보다 앞선 상식의 문제다. 사람의 삶터를 바꾸는 중대한 결정이라면 당연히 그곳의 주민에게 먼저 물어야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는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말할 용기에서 시작한다. 옳은 것은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상식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다수결은 빠르지만 위험하다. 다수가 내세운 힘이 소수를 누르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삶은 지워져 버린다. 우리는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만장일치를 고집했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더디고 피곤해도, 끝내 모두가 납득할 때까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파리기후협정도,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도 만장일치를 따르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불협화음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넘어서


양수발전소 건설 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풍천리 주민. 사진 플래닛03
양수발전소 건설 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풍천리 주민. 사진 플래닛03

현장에서 말이 실제를 가리는 방식을 여러 번 봤다. 지역의 작은 대책위 소식은 데스크에서 잘려 나간다. “클릭 장사”가 더 중요하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언론이 다루는 단어 하나가 현장의 성격을 바꾼다. 우리는 군청 앞에서 자료를 요구하며 앉아 있었다. 폭력도 위협도 없었다. 내가 붙인 이름은 분명했다. “점거가 아니라, 답변을 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럼에도 기사에는 “점거”라는 말이 들어갔다. 단어 하나가 행정을 정당화하고 주민을 불법으로 만든다. 언어의 싸움이 필요했다. 우리의 언어를 지키는 일이 곧 민주주의의 과정을 지키는 일이다. 기다림을 기다림으로, 질문을 질문으로 기록하자고 끝없이 요구했다.


상식으로 돌아가 민주주의와 기후정의를 묻다


풍천리 싸움은 단순한 지역 개발 갈등이 아니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묻는 싸움이었다. 주민들이 주체로 서고, 서로 다른 현장과 연대하며, 정치적 압박을 통해 절차의 비민주성을 드러내고, 언론의 언어와 싸우는 과정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였다.


정부는 법을 들먹이고 소송으로 대응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법 이전의 상식이다.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존중하는 질서, 그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풍천리 주민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우리는 살던 대로 살고 싶다.” 그러나 이 바람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정부의 말은 공허하다. 지켜야 할 것은 국책사업의 돈줄이 아니다. 주민들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권리, 더 나아가 인간의 지나친 성장 주도 활동으로 망가지는 자연과 생태계를 복원하고 지켜내는 것,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다. 풍천리의 싸움은 바로 그 상식을 회복하라는 주문으로 이해되길 바란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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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루 전
별점 5점 중 5점을 주었습니다.

개발 뒤엔 돈이죠. 사람과 생태는 죽어가고. 박성률님과 마을분들 꼭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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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하늘
2일 전
별점 5점 중 5점을 주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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