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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계통 | ‘지산지소(地産地消)', 한국의 전력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할지 묻는 또 하나의 질문

2025-11-27 김복연 기자

한국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도권 집중 수요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며, 전력 이동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지산지소(地産地消)’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한다” 뜻으로 지역순환 전략이다. 지산지소는 송전 부담을 줄이고 지역 계통을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지만, 지역 수요 부족과 기업 이전의 어려움 등 현실적 한계가 크다. 잘못 설계될 경우 재생에너지 생산은 지방이 맡고 이익은 수도권에 집중되는 ‘재생에너지 식민화’로 흐를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적절한 거버넌스와 지역 의사결정 구조가 갖춰진다면 지산지소는 전력망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유효한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개최된 ‘재생에너지 활용 및 RE100산단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전북·전남은 재생에너지 생산 1·2위 지역이지만, 대규모 소비는 수도권·충남·경북에 몰려 ‘공급-수요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 사진 에너지플랫폼뉴스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개최된 ‘재생에너지 활용 및 RE100산단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전북·전남은 재생에너지 생산 1·2위 지역이지만, 대규모 소비는 수도권·충남·경북에 몰려 ‘공급-수요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 사진 에너지플랫폼뉴스

중앙 집중 전력체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전력체계는 지금 구조적 피로에 가까운 변화를 겪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가속화되면서, 더 이상 전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전력이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질문으로 떠올랐다.


수도권에 집중된 수요를 지방에서 끌어다 쓰는 중앙집중형 전력망은 이미 곳곳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송전선 증설은 갈등과 시간, 비용을 고려할 때 더는 과거처럼 손쉬운 대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 방식은 전력망 부담을 완화하고 지역 계통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산지소는 매력적이지만 만능해법은 아니다


2025.07.31 환경단체들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LNG 발전사업 허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그린피스
2025.07.31 환경단체들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LNG 발전사업 허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그린피스

그럼에도 지산지소는 흔히 기대하듯 만능해법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생산이 많은 지역의 소비 규모는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작고, 지역 내 수요만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흡수하기 어렵다. 산업 기반이 약한 지역에서는 생산된 전력이 남고, 수도권에서는 여전히 전력이 부족한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업이 재생에너지 생산지를 중심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력 접근성, 공급망 네트워크, 시장 접근성, 금융 인프라, 무엇보다 수도권 부동산 자산 가치가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절감만으로 기업의 이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역으로 내려오는 것은 기업 전체가 아니라 전력을 대규모로 소비하는 데이터센터 같은 시설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잘못 설계된 지산지소는 ‘재생에너지 식민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지산지소는 의도하지 않게 재생에너지 식민화 구조로 흐를 위험도 갖고 있다. 발전은 지방에서 이루어지고, 에너지집약적 설비는 지방에 들어오지만, 이익과 고급 일자리, 의사결정권은 여전히 수도권에 남는 구조가 재생에너지 시대에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해외 여러 사례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한국처럼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이 극단적인 국가는 그 위험이 더 크다는 평가도 있다.


전남 ‘분산에너지특구’는 지산지소의 첫 시험대다



최근 전남이 ‘분산에너지특구’로 지정되면서 지산지소 논의는 실질적 실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전남은 전국 최고 수준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출력제어·계통제약 등으로 생산한 전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특구 지정은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전력을 지역 산업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전력 직거래를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지산지소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첫 제도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실험 역시 아직은 시작 단계다. 데이터센터나 전력집약형 설비가 지역에 들어온다 해도 그것이 지역경제의 구조 자체를 바꾼다고 보긴 어렵다. 본사와 핵심 조직은 그대로 수도권에 남고, 지역에는 전력 소비 시설만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


특구의 성과가 지산지소의 장점으로 이어질지, 혹은 지역이 전력 생산과 계통 부담만 떠안는 또 다른 불균형으로 귀결될지는 제도 설계와 지역의 참여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냐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남 사례는 지산지소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 어떤 이익과 위험이 동시에 나타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된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산지소는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분산에너지의 정의. 사진 한국에너지공단
분산에너지의 정의. 사진 한국에너지공단

그럼에도 지산지소는 불필요한 개념이 아니다. 현재의 전력망 공백과 계통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지역 단위에서 일부 소비라도 충당할 수 있다면 장거리 송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급증하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지역 ESS나 마이크로그리드로 흡수할 여지가 생긴다. 지산지소는 지역 계통 투자를 정당화하고,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며, 산업 분산의 새로운 경로를 만들 수 있는 유효한 전략 중 하나다.


지산지소가 작동하려면 거버넌스 설계가 먼저다


다만 이 전략이 과도하게 이상화되면 현실의 한계를 가릴 수 있다. 지산지소를 전력망 문제의 만능키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완전한 자급자족 모델로 이해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지산지소가 지역과 재생에너지 정책의 중심축이 되기 위해서는 전력 직거래 제도의 실질적 개방, 지역 산업과 전력 공급의 결합, 데이터센터 유치 시 지역기여 패키지 설계, 배전망 투자 확대와 같은 구조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이 전력정책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지산지소는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


2024. 4.15 제33차 전력정책포럼에서 김형중 에너지공단 분산에너지실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 대한전기협회
2024. 4.15 제33차 전력정책포럼에서 김형중 에너지공단 분산에너지실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 대한전기협회

지산지소는 정답이 아니라, 전환의 조건을 묻는 질문이다


지산지소는 명확한 정답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망 위기와 산업 전환 속도에 비추어볼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 중 하나인 것도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 전략의 장점과 위험을 동시에 인식하며 정책적 설계를 정교화하는 일이다. 지산지소는 해결책 그 자체라기보다, 한국의 전력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지 묻는 하나의 질문에 가깝다. 전남의 실험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사회적 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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