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강익구 노후희망유니온 기후정의위원장 | 기후위기 취약계층 노인, 보호 대상에서 위기 극복의 주체로
- Theodore
- 10월 3일
- 4분 분량
2025-10-02 최민욱 기자
기후위기는 노년층에게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강익구 기후정의위원장은 산업화 세대의 책임감을 안고 기후정의 운동에 나섰지만, 현실은 냉방비조차 감당 못하는 재난 취약계층으로 내몰린다. 강 위원장은 보호받는 노인이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후불평등을 완화할 국가적 대응 체계와 노인의 조직적 참여를 촉구하며, 노년층 생존권이 기후정의의 핵심 중 하나임을 분명히 한다.

강익구 위원장은 공직에서 은퇴한 후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기후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환경운동 이력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계기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산 유출 사고였지만, 극독성 물질이 대구 시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으로 유입된 중대한 재난이었다. 당시 경남 창녕에서 근무 중이던 그는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진 사건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그에게만이 아니라 같은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도 기후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노후희망유니온 회원들 다수는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 결과가 현재의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자각과 책임감이 남아 있다. 미래 세대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은 그들을 기후정의 활동에 나서게 했다.
기후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2025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온열질환자는 지난 6일 기준 4370명, 추정 사망자는 29명이었다. 2011년 감시체계 도입 이후 2024년까지 온열질환으로 인한 누적 사망자는 238명이며, 이 중 약 65.5%인 156명이 60세 이상 고령자다. 고령자는 체온 조절 기능이 약해져 극심한 온도 변화에 취약하다. 노화로 인해 땀 배출과 체온 조절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폭염이나 혹한에 노출되면 건강한 성인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한다.
노인을 하나의 균질한 집단으로 보는 접근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와 사회 양극화는 노년기에 더욱 극심한 K자 구조로 나타난다. 경제력과 건강을 모두 갖춘 노인, 건강하지만 소득이 부족한 노인, 소득은 있으나 건강하지 못한 노인, 그리고 경제력과 건강 모두 취약한 노인으로 나뉜다. 이 중 가장 취약한 계층은 기후재난에 대한 대응력이 거의 없다.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냉난방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건강 악화로 인한 의료비 부담은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기후위기는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위협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킨다.
무더위 쉼터는 어째서 모두의 쉼터가 되지 못하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기후재난 대응은 주로 폭염과 혹한을 대비한 대피소 운영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대피소들은 지역에 따라 실효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지방의 경우, 마을회관이 대피소로 활용되며 비교적 잘 작동한다. 어르신들이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여 공동 식사와 숙박을 함께하면서, 공동체 중심의 자율적 대피소가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도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노인복지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이 대피소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저소득 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쉼터를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운영되지 않는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스티그마’ 현상이다. 대피소를 방문하는 것이 주변으로부터 빈곤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많은 노인들이 대피소 이용을 꺼리는 것이다.
이처럼 심리적 장벽은 물리적 인프라보다 더 강력한 제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쉼터가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게 이용되는 공간이 되지 않는 한, 정책의 실효성은 확보되기 어렵다. 이는 정책이 지역 현실과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노인들에게 기후정의는 배부른 소리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2024년 기준 38.2%로, OECD 평균(13.6%)의 두 배를 넘는다. 일본(25.7%)보다도 높은 수준이며, OECD 회원국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 활력의 지표라기보다는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인해 고령자들이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 구조를 보여 준다.
2025년 기준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는 약 106만 명이다. 초기에는 빈곤 노인을 대상으로 제한적 수당을 지급하는 구조였지만, 최근에는 장기 경력자들을 공공 영역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공익형 참여자는 월 29만 원 수준의 수당을 받고, 사회서비스형은 주 5일 근무가 요구된다.
이처럼 생계를 위해 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후정의나 생태 담론은 많은 노인들에게 현실과 괴리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당장의 생존이 위태로운 이들에게는 기후위기 대응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는 K자 구조 속에서 이런 상황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정의가 사회 전반의 관심사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중요한 내 고향의 개발
기후 정책 실패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지방정부의 구조적 재정 한계다. 현재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3.6%로, 절반 이상의 재원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평균 이하의 재정 자립도를 가진 지역일수록 기후 대응 능력이 더 낮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방정부는 무더위 쉼터나 대피소를 확충하고, 숲 조성이나 도시 녹지 확대 등 기후 적응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반면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는 이러한 장기적 대응을 후순위로 미룰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지역 자원을 개발하고 매각하는 것이 더 시급한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는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지역 간 격차를 더 크게 만들고, 대응 역량의 불균형을 고착화시킨다. 재정이 취약한 지역일수록 기후위기에 더 쉽게 노출되지만, 정작 기후적응을 위한 투자를 하기 어려운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후위기는 기존의 지역 불균형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후적응은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국가적 대응 체계를 만드는 것
기후적응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기후적응을 개인의 인내나 체감온도에 대한 적응 정도로 오해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기후적응은 기후위기의 도래를 전제로 하여,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국가적 정책 체계를 수립하는 일이다. 최근 빈발하는 집중호우, 가뭄 등 기상이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했다. 기후위기를 독립적으로 다루는 정부 부처가 생긴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만 이 부처가 실질적인 기후적응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과제다. 정책 발굴과 집행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주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 정책과 병행하여, 시민사회의 조직화 역시 중요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체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사업과 실행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규모와 조직력을 갖춘 연대는 정치권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지난 9월 27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는 환경·생태·노동·청년 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했으며, 이는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기후정의 실천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다.

보호받는 노인에서 정책을 만드는 노인으로
노년 세대는 더 이상 기후위기의 수동적 피해자이자 보호 대상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정책을 제안하고 만들며, 기후 대응의 주체로 나서고자 한다. 그러나 노인이 기후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경제적 조건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주체는 국가다.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은 폭염과 혹한 시 대피소 운영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치유 프로그램이나 재정 지원 제도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입법 시도로 노인인권기본법이 제안되었다. 해당 법안에는 기후위기로 피해를 입은 노인에게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법이 제정되고 하위 법령이 마련되면, 초고령 사회와 심화되는 기후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노년층 대상 재정 지원 제도가 제도화될 수 있다.
노년층의 목표는 분명하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기후재난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심각한 피해를 입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기후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적 배려가 실현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가장 잘 아는 당사자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적 역량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기후정의위원회는 노인이 주체가 되는 기후적응 정책을 만들고, 점점 벌어지는 사회적 격차를 완화하는 구조를 구축하고자 한다.
기후적응은 참고 견디는 순응이 아닙니다. 대응 체계 안에서 처한 현실에 따라 안착하는 것입니다. 학교급식를 둘러싸고 스트그마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무상급식으로 해결한 것처럼 기후재난 쉼터도 보편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