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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먹거리 정의ㅣ우리가 녹지 빈곤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

 

박진희 2024-04-04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높은 산중에 집이 있어, 숲에 둘러싸여 산다. 푸른 나무, 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자라있는 풀. 푸르름 속에 살고 싶어 십수년 전 농촌에 이사 왔다. 아이들은 마을 숲과 키다리 수풀 사이를 뛰어놀며 자랐다. 벌이 날아드는 정원을 가꾸겠다고 마당에 꽃과 나무를 열심히 심었다. 지역 학생들과 함께 꽃과 채소를 심는 밭을 일구기도 했다. 푸르름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만족했고, 날마다 숲을 마주하는 일상이니 자연환경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사는 셈이다.



지역 학생들과 함께 가꾼, 마당의 식물 밭. 박진희 제공
지역 학생들과 함께 가꾼, 마당의 식물 밭. 박진희 제공



국민들이 녹지 환경에 만족한다고?

다른 이들은 삶에서 얼마나 자연환경에 만족하며 살아갈까? 국민 삶의 질을 평가하는, 통계청의 여러 지표 중에 ‘녹지환경만족도’가 있다. ‘녹지환경만족도’는 생활환경이 제공하는 주관적 웰빙의 정도를 측정해 만든 지표로, 현재 사는 곳의 녹지 환경이 좋다고 체감하는 인구의 비율이다.

2022년 기준 우리 국민의 녹지 만족도는 59.1%인데, 농촌 사람들의 녹지환경만족도는 68.7%, 도시 사람들의 만족도 57.1%로 조사되었다. 2021년 기준 전국의 도시화율은 90.7%이다. 지금 도시화율은 이보다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국민의 90% 이상이 도시에 산다. 대한민국 90% 이상의 국민, 그 국민의 절반 이상이 녹지 환경에 만족하는 편이니, 대한민국의 녹지 수준은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소득 편차에 따른, 녹지 불평등

도시의 녹지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성된 도시공원을 비롯해 길가의 가로수, 공동주택의 식생 공간 등을 모두 포함한다. 도시의 나무와 숲 같은 녹지는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서비스이자 생태계 서비스이다. 이런 녹지가 도시 안에 사는 모두에게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고가의 아파트 밀집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간, 다시 말해 소득 구조에 따라 지역간 편차를 보인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원도심보다 신도시에서, 연립주택 밀집지보다 아파트 밀집지에서 도시공원이 가깝고, 식생 분포가 높다. 저소득층 밀집 거주지는 도시공원 접근성이 떨어지고, 식생 분포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녹지 빈곤 거주지는 기후 위기에 취약하다

미국 등 다른 나라도 경제적 차이에 따라 거주지간 녹지가 불평등하게 조성되고 있으며, 녹지 빈곤 주민들의 기후 위기 취약성이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숲이 없는 황폐한 지역의 주민들은 불볕더위에 그대로 노출돼 화상을 입기도 한다. 이처럼 녹지 불평등은 환경재난 대응력 불평등을 초래한다. 녹지 불평등 지역은 숲이 주는 그늘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 점점 더 뜨거워지는 기후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도시 환경 연구자들은 녹지 빈곤 지역의 도로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온도가 높은 점도 주민들의 기후 위기 취약화에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녹지 빈곤은 예측 불가능한 가뭄과 홍수에 대한 대응을 취약하게 하며, 황사와 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켜낼 수 없게 만든다. 녹지는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시의 숲에서는 다양한 치유 활동이 일어난다. 정신 건강 연구자들은 녹지가 풍부할수록 아동의 정신 건강이 좋아지고, 녹지 비율이 낮을수록 아동의 정신 건강이 나빠지는 경향성이 뚜렷하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공공재로서의 녹지는 얼마나 위대한가!



필자의 집 마당에 갖가지로 핀 꽃들. 박진희 제공
필자의 집 마당에 갖가지로 핀 꽃들. 박진희 제공



녹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식목일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속가능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1번은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환경정책 기본법의 기본 이념은 환경적 혜택과 부담이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질 것을 명시하고 있다. 집 가까이 숲과 나무가 있고, 숲과 나무가 주는 혜택을 누리는 일. 나무 그늘에서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숲을 즐기는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일.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녹지 빈곤을 해소하는 일은 환경재난 시대의 필수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이다.

식목일이 있는 주간이다. 씨앗 하나라도, 작은 묘목 하나라도 녹지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심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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