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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부 시대 ⑨ㅣ산업정책의 귀환, 이제는 그 성과를 모두의 몫으로

  • 20시간 전
  • 6분 분량

2026-03-20 금민, 유승경

"이제는 다른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인내자본'을 투입해 미래 산업을 과감하게 육성해야 한다. 동시에 그 산업정책이 만들어 낸 성과를 사회 전체의 '공유부'로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실은 '국민공유부기금'이라는 투명한 그릇에 담아 '모든 시민에게 배당'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대안을 묻다 [유튜브]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시장만으로는 미래 전환을 충분히 설계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산업의 구조를 다시 짜고 있고, 기후위기는 에너지 체계와 생산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시장은 여전히 혁신과 자원 배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러한 대전환을 오로지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분산된 정보와 경쟁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데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기술 주권의 확보, 탄소중립 인프라의 구축, 전략 산업의 육성처럼 장기적이고 집합적인 목표가 걸린 영역에서는 시장의 가격 신호만으로 충분한 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 불확실성이 크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주요국들은 하나같이 국가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산업정책의 귀환이다.


다만 돌아온 산업정책이 과거식 보조금 행정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국가는 단순히 시장 실패를 사후적으로 보완하는 소극적 관리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장 형성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조정자이자 투자자로 기능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산업정책은 단기 경기 부양책이 아니라 미래의 생산구조를 설계하는 국가 전략에 가깝다.


전환의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의 '인내자본'


문제는 이러한 전환이 결코 짧지 않다는 데 있다. 전력망을 바꾸고, 에너지 시스템을 재편하고,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산업 생태계와 노동시장을 다시 조직하는 일은 몇 년 안에 끝날 사업이 아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더욱이 초기에는 성공 여부를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혁신은 본래 불확실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오래 버틸 수 있는 자본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서 오늘의 민간 금융은 때때로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민간 자본은 혁신의 중요한 동력이며, 실제로 많은 기술 발전은 민간 기업가 정신을 통해 확산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자본시장이 대체로 단기 수익률과 유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라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주도하는 자산관리 자본주의 아래에서 기업은 장기 투자 못지않게 주가 관리, 배당, 자사주 매입 압력에도 노출된다. 이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고 회수 기간이 긴 기후 기술, 첨단 제조, AI 기반 공공 인프라 같은 분야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인내자본’이다. 장기간을 감내할 수 있고, 실패 가능성까지 고려하면서도 공공적 목표를 위해 버틸 수 있는 자본을 말한다. 이 점에서 국가는 단순히 민간의 위험을 덜어 주는 보험자에 그치지 않고, 일정한 경우에는 선도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가 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음성 비서 같은 핵심 기술의 배경에는 공공의 장기 투자와 선행 위험 부담이 자리하고 있었다. 혁신은 종종 공공이 먼저 길을 내고 민간이 그 길을 따라 확장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사회가 함께 위험을 나눴다면, 성과도 더 넓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의 자본주의는 중요한 긴장을 드러낸다. 혁신의 초기 위험과 비용은 사회적으로 분담되지만, 이후의 성과와 수익은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국가는 세금으로 기초 연구를 지원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규제 환경을 정비하고, 초기 시장 형성을 뒷받침한다. 시민도 에너지 전환 비용, 산업 구조조정의 충격, 고용 불안, 생활비 상승 같은 부담을 감내한다. 다시 말해 혁신과 전환의 비용은 적지 않게 사회화되어 있다. 그러나 기술이 상용화되고 시장이 커진 뒤 발생하는 초과수익은 대기업, 플랫폼 기업, 그리고 그 주주들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공공이 판을 깔았지만 결실의 상당 부분은 사적으로 귀속되는 구조가 형성되기 쉬운 것이다.


이 구조는 공정성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민이 전환 비용만 부담하고 성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어떤 산업 전환 전략도 장기적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에너지 전환도, AI 혁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묻게 된다. 왜 혁신의 위험은 사회적으로 나누면서, 그 열매는 제한된 주체에게만 집중되는가?


바로 그래서 이제 산업정책은 투자 정책인 동시에 분배 정책이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업정책의 성과를 사후적으로 일부 환수할 대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회가 함께 소유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산업정책의 성과는 단지 특정 기업의 영업 성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일종의 '인공적 공유부'다. 프롬프트_ pandet03, 제미나이
산업정책의 성과는 단지 특정 기업의 영업 성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일종의 '인공적 공유부'다. 프롬프트_ pandet03, 제미나이

산업정책의 성과를 국민의 공유부로


공유부라고 하면 흔히 토지, 석유, 광물, 숲, 바다 같은 자연자원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핵심 공유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공 R&D가 축적한 지식, 시민의 삶을 바탕으로 형성된 데이터, 국가가 구축한 인프라, 교육과 제도, 그리고 장기간 투입된 공공의 인내자본이 함께 만든 혁신 생태계 역시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형성한 부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산업정책의 성과는 단지 특정 기업의 영업 성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일종의 ‘인공적 공유부’다. 공공이 위험을 감수하고, 시민이 전환의 비용을 분담하고, 사회 전체가 제도적·재정적 기반을 제공해 만들어 낸 성과라면, 그 결실 역시 일정 부분은 사회 전체에 귀속되어야 한다. 바로 이 원칙이 오늘날 산업정책의 핵심 원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현실적 장치가 '국민공유부기금', 곧 배당형 국부펀드이다. 국민공유부기금은 단순한 재정 계정이 아니다. 국가가 소유하거나 사회적으로 환수한 자산을 바탕으로 장기 투자하고, 그 수익을 다시 시민 전체를 위해 사용하는 공적 자산 장치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래 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자 역할을 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성과를 시민 전체의 몫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재원도 반드시 증세 하나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장기 국채를 통한 초기 자본 조성, 국유자산 활용 수익, 공공 R&D 성과의 로열티, 공공투자 수익의 일부 환수, 상속세와 자산 과세의 일정 부분 적립 등 다양한 방식을 조합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성된 모펀드는 AI, 반도체, 해상 풍력, 전력망, 저장 기술, 공공 데이터 인프라 같은 전략 분야에 자펀드 형태로 투자하면서 앵커 투자자가 될 수 있다. 공공이 먼저 일정한 위험을 부담함으로써 민간 투자도 함께 유인하는 구조다.


그렇게 되면 산업정책은 한 단계 다른 수준으로 올라선다. 단순히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라, 사회가 미래 산업의 공동 투자자가 되는 정책으로 바뀌는 것이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과는 사후적으로 세금으로 조금 환수하는 대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민의 공유부로 축적되어야 할 자산이 된다.


국민공유부기금과 시민배당


그렇다면 그 공유부의 수익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모든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시민배당, 국민배당이다. 국민공유부기금이 만들어 낸 배당금과 투자 수익을 모든 시민에게 균등하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것은 복지의 시혜라기보다 공동으로 형성한 부에 대한 정당한 배당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은 이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알래스카는 석유라는 공동 자원에서 나온 수익을 기금으로 만들고, 그 운용 수익을 주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중요한 것은 단지 돈을 나누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자원에서 나온 부를 정부나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주민 모두의 권리로 제도화했다는 점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원리를 21세기 산업정책에 맞게 확장해 볼 수 있다. 오늘의 공유부는 땅속의 석유만이 아니다. AI 혁신도, 에너지 전환도, 첨단 제조 역량도, 공공이 구축한 인프라도 모두 사회가 함께 축적한 공동 자산의 성격을 지닌다. 그렇다면 그 성과 역시 시민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한다. 산업정책의 성과를 공유부로 보고, 그 수익을 시민배당으로 연결하는 순간, 산업정책은 비로소 분배 정의를 내장한 체제로 바뀔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다. 정치적 이유도 크다. 전환의 시대에 시민이 계속 비용 부담의 주체로만 남는다면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가격 상승도, 일자리 재편도, 기술 격차 확대도 결국 전환 자체에 대한 저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시민이 자신을 단순한 납세자가 아니라 미래 산업의 공동 투자자이자 공동 소유자라고 느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공공투자의 성과가 해마다 배당의 형태로 자신의 삶에 돌아온다면, 산업 전환은 더 이상 남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시민 자신의 프로젝트가 된다.


바로 그때 산업정책은 정치적 닻을 갖게 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 사회적 지지 기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가 사후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제도 안에서 결합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의 시작


앞으로의 산업정책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누가 성과를 소유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한 첨단 산업 전략도 결국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성장 모델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다른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인내자본을 투입해 미래 산업을 과감하게 육성해야 한다. 동시에 그 산업정책이 만들어 낸 성과를 사회 전체의 공유부로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실은 국민공유부기금이라는 투명한 그릇에 담아 모든 시민에게 배당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위험을 사회가 함께 부담했다면, 이익 역시 더 넓게 공유되어야 한다. 바로 그 원칙 위에서만 산업정책은 성장 전략을 넘어 분배 정의의 제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는 전환의 고통을 넘어 전환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새로운 사회계약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

[편집자 주]

누구나 기본소득을 말한다. 그리고 걱정한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출발한 듯하다. 하지만 공유부의 역사는 깊고 넓다. 공유부는 공기와 바다, 토지와 광물이라는 자연 자원을 넘어, 일테면 탄소배출권, 인공지능의 바탕이 된 데이터, 화폐와 금융시스템, 행정·사법·의회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인프라들로 확장한다. 그야말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고, 사회적 협력으로 발전시켜 온 문명의 기반이 바로 공유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유부는 누구의 것인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필자들은 [공유부 시대] 연재를 통해 불평등과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언어로서 ‘공유부'의 철학과 역사를 살펴보고 경제학의 언어로, 사회 정의의 언어로 전진시키고자 한다.



*

글쓴이의 과거 기사들 - [기후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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