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 기후 정책이 산업전략과 경제정책의 상위 원칙
- Theo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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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9 최민욱 기자
기후위기는 모든 사회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그래서 기후 정책은 국가 정책 체계의 최우선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 흐름은 이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 정부의 기후 정책은 산업정책에 종속되며 방향성과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다. 기후 대응이 산업정책보다 상위의 목표로 작동해야 하지만, 실제 정책 결정은 산업 논리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기후 정책의 기본 원칙을 약화시키고 우선순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 결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한국, COP30에서 ‘석탄발전 퇴출 연합(PPCA)’에 가입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한국은 세계 60여개 국이 참여한 ‘석탄발전 퇴출 연합(Powering Past Coal Alliance·PPCA)’에 가입하며 2040년까지 석탄발전 전면 폐지도 약속했다. 현재 61기 석탄발전소 가운데 40기는 2040년까지 폐지 시점을 확정했고, 나머지 21기에 대해서는 경제·환경성 평가와 공론화를 거쳐 내년 중 추가 폐지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한국은 브라질, 독일,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등과 함께 ‘글로벌 녹색산업화를 위한 벨렝 선언(Belém Declaration on Global Green Industrialization)’ 초기 서명국으로 이름을 올려, 철강·시멘트 등 중대 배출 산업의 탈탄소화와 녹색 산업 전환을 위한 국제 협력에도 참여했다.
기후 목표를 산업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
유럽연합(EU)은 기후 목표를 산업정책보다 앞세우는 구조를 확립해 왔다. EU는 2050년 기후 중립을 최종 목표로 정하고,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 목표를 법에 명시했다. 이어 2040년에는 90% 감축을 중간 목표로 제안하며 장기 전환 경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 목표는 EU 기후자문위원회가 권고한 90~95% 감축 기준을 반영한 것으로, 2030년과 2050년 사이의 정책 공백을 막기 위한 장치로 평가된다.
EU는 이렇게 확정된 기후 목표를 기준으로 각종 법안을 설계해 왔고, 2030년 목표 이행을 위한 종합 입법 패키지인 ‘Fit for 55’를 통해 부문별 규제를 체계화했다. 배출권거래제 개편, 재생에너지 확대, 내연기관차 규제 등은 모두 이 감축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EU 정책은 기후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산업정책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조정되는 구조를 유지한다.

EU의 산업정책도 같은 원칙을 따른다. EU집행위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해 2023년 ‘유럽 그린딜 산업계획’을 발표하여 청정기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간소화, 금융 지원, 인력 양성 등이 계획의 핵심이다. 2025년에는 ‘청정산업 계획’을 발표하며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탈탄소 전환과 청정기술 육성을 위한 조치를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중간목표의 중요성도 다시 강조됐다. 유로시티즈(Eurocities) 기후탄력성 부위원장인 미나 아르베(Minna Arve) 투르크 시장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2040년 감축 목표가 없는 산업계획은 완전한 정책 틀이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2030년과 2050년 사이에 명확한 중간 이정표가 있어야 기업과 지방정부가 전환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시티즈 기후재정 책임 부위원장인 알렉산드라 둘키에비치(Aleksandra Dulkiewicz) 그단스크 시장 또한 “중간 목표의 부재가 지역정부와 산업계의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고 언급했다.
기후 대응 정책 기조에 따라 조정되는 유럽연합의 산업정책
유럽연합의 기후 거버넌스 원칙은 “목표 설정 -> 법제화 -> 산업정책 조정”으로 요약된다. 우선 중장기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기후법에 담아 정치적 의지를 공고히 한다. 이후 각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세부 법안을 마련한다. Fit for 55와 이후의 각종 세부 입법이 이에 해당하며,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항공·해운 연료 규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규칙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산업계의 전환을 돕기 위해 재정·금융 지원과 규제 완화를 병행하는데, 그린딜 산업계획과 청정산업 계획이 이러한 산업정책 조정 단계에 속한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산업탈탄소은행(Industrial Decarbonisation Bank) 설립을 추진하여 1000억 유로 규모 재원을 동원, 산업 부문의 녹색 전환 투자를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는 배출권거래제 수입 등 기존 기금들을 모아 탄소 감축 기술에 보조금(탄소차액지원 등)을 투입하려는 구상으로, 산업이 기후 목표를 달성하도록 직접 지원하는 장치다.
그 밖에도 혁신 기금 확대, 친환경 설비에 대한 신속 인허가, 공공조달 시 “유럽연합산 청정제품 우대” 기준 도입 등 산업정책 수단들이 기후 목표에 부합하도록 새로 도입되고 있다 . 이렇듯 유럽연합은 기후 목표를 최상위에 둔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산업정책이 그 하위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만들고 있다.
산업계 요구에 따라 흔들리는 한국의 기후 목표
한국의 상황은 유럽연합과 대조적이다. 2020년, 한국 정부는 2050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법에 명시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기후 목표는 기후 정책의 후퇴를 거듭 불러일으켰다.
2021년 말, 문재인 정부는 한국은 2030 NDC를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대폭 상향했다. 그러나 이 목표조차도 법률에는 “35% 이상”으로만 완만하게 규정되었고, 정권 교체 후 구체적 이행계획 수립 과정에서 재차 하향 조정되었다.
2023년, 윤석열 정부는 2030년 부문별 감축 목표 조정안을 내놓았다. 산업 부문의 감축률은 당초 14.5%에서 11.4%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2030년 산업 배출 허용량은 222.6백만 톤에서 230.7백만 톤으로 확대되었다. 부족한 감축량은 에너지 전환 부문 감축을 강화하거나 해외 감축량 구매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메꾸게 되었다.
결국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산업 부문의 목표를 후퇴시킨 셈이다. 이러한 과정은 기후정책과 산업정책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지 못한 채 별개로 움직이는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2035년 중기 목표 수립 과정에서도 같은 혼선이 반복됐다. 한국은 파리협정에 따라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마련했다. 정부가 COP30에서 발표한 2035 NDC는 2018년 대비 53~61% 감축이라는 범위형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는 2035 NDC 최종 후보안으로 하한선을 50%까지 두는 것을 고려했다. 감축 경로를 후퇴시키는 논의가 반복되면서 정부가 2030년 이후 감축 속도를 높일 의지가 있는지조차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2035년 NDC 안은 오히려 2030년 목표보다 후퇴했다”며 “이는 파리협정이 요구하는 ‘진전의 원칙(progression)’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국정감사에서 비판했다. 국제 규범과 맞지 않는 목표 설정이라는 문제 제기다.
정책 논의의 초점이 기후위기의 성격보다 산업 부담 조정에 머물렀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부가 마련한 공개 토론회에서도 산업계 부담과 현실적 여건이 주된 쟁점으로 부각됐다. 반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규모나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은 논의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감축 시기를 늦출수록 미래의 정책·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플랜1.5는 "정부의 2035년 목표안이 파리협정의 감축 경로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며, 단기 감축을 미룰수록 장기적 회피 비용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목표 후퇴가 산업정책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기후 전환 준비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와 연결된다.
부처 간 엇박자, 혼란스러운 기후에너지환경부
이런 구조적 문제의 배경에는 정책 거버넌스의 분절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책임지고, 산업부는 에너지 공급과 산업 육성을 담당하는 구조에서 두 부처의 철학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이 빈번했다.
예컨대 환경부가 강화된 감축 목표를 추진하면 산업부는 산업 경쟁력과 전력 공급 안정을 내세워 난색을 표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2025년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했다.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재생에너지 확대·기후재난 대응 등 기후·에너지·환경 정책을 일원화하여 “유기적으로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전력 정책과 전기위원회까지 산업부에서 이관받아, 말 그대로 기후 대응과 에너지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조직 통합이 곧바로 정책 통합과 일관성을 담보한 것은 아니었다. 신설 부처 출범과 동시에 산업계는 장관 초청 간담회를 열어 전기료 인하, 2035 NDC 달성 지원책, 인센티브 확대 등을 건의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새 부처는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 등 기후 정책을 추진해야 하지만, 동시에 산업 경쟁력과 전기요금 등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난제가 주어졌다. 실제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이후 첫 중대 과제였던 2035년 감축목표안에서도 정부는 단기 감축 부담을 줄이는 데 치우친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후·에너지 정책을 한데 모으면 거버넌스 혼선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우선순위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생존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보다는 당장 산업계 부담과 에너지 가격 안정에 무게를 두는 기조가 여전해 보인다. 오히려 규제(기후정책)와 진흥(산업정책) 간의 내부 갈등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흔들리는 정책 신뢰, 기로에 선 한국
기후 정책에서 원칙과 일관성이 무너지면서 정책 신뢰도 역시 약해졌다. 목표가 자주 조정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뒤집히면서 산업계는 혼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요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이 전망한 2030년 산업부문 감축 목표 달성 가능성은 평균 38.6%에 그쳤다. 많은 기업이 정부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지난 몇 년간 정책 방향이 크게 변동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원전 강화 기조로 급변하고, 탄소가격 신호도 일관되지 않아 장기적 투자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2030년 감축 목표를 둘러싸고 상향과 후퇴가 반복되자, 기업들은 정책 일관성 부족을 주요 애로 요인으로 지적했다. 정책의 방향이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신호는 저탄소 투자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
규제가 느슨해지면 선제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손해를 볼 수 있고, 규제가 강화되면 대응을 늦춘 기업의 위험이 커지는 구조 때문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 정책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시민사회와 국제사회도 한국의 기후 정책 후퇴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2023년 기후소송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NDC 설정 방식이 헌법상 의무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입법 보완을 요구했다. 그러나 후속으로 제시된 2035년 감축목표안은 오히려 목표 수준을 낮추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민사회는 이를 “위헌적 후퇴”라고 규정하며 정부의 기후 정책 기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환경단체들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다시 기후 정책 후퇴 국가로 평가받을 가능성을 경고하며 신뢰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공식적으로는 강조하면서도 실제 정책에서는 산업계 요구를 우선한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정책 신뢰의 약화는 기후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정책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시민 참여도 약해지고, 산업계도 기술투자보다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대가 뒷받침될 때만 성과를 낼 수 있다. 원칙 없는 정책은 이 신뢰를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기후 대응 체계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기후를 최우선에 두는 거버넌스로
기후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기후 정책이 산업정책의 부속이 아니라, 산업전략을 포함한 모든 경제정책을 규율하는 상위 원칙이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기후 목표를 둘러싼 정치적 합의와 법적 안정성이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EU는 2050년 기후중립과 2030년 55% 감축 목표를 유럽기후법에 명시했고, 2040년 90% 감축 목표도 법 개정 절차를 통해 중간 이정표로 설정하고 있다. 장기·중기 목표를 법률에 고정하고, 이후 산업·에너지 정책은 이 목표에 맞춰 조정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이미 비슷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203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관련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법 개정 시한은 2026년 2월 28일로 제시되었고, 2031~2049년 구간에 대한 구체적이고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감축 경로를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었다. 중장기 목표 설정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헌법상 의무가 된 것이다.
다만 단순히 수치 목표만 채워 넣는 방식으로는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개정 과정에서 기후 목표를 다른 정책 영역보다 상위에 두는 원칙, 목표 후퇴를 어렵게 하는 절차,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되는 중장기 경로 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러한 법 개정 과정에서 기후·에너지·산업 정책의 조정을 책임지는 주체로, 산업 이해관계 조정이 기후 과학이 제시하는 한계를 넘지 않도록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산업정책은 이 위에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화석연료 기반 산업구조를 저탄소·녹색산업 구조로 전환하는 과정 자체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전제가 분명해야 한다. EU 사례에서 보듯이, 엄격한 감축 목표는 산업에 압박만 주는 것이 아니라 투자 방향을 분명히 하는 역할도 한다.
법으로 고정된 중장기 목표와 안정적인 규제 신호가 있으면 기업은 불확실성을 줄이고 장기 투자를 설계할 수 있다. 반대로 목표와 제도가 수시로 바뀌면 투자 판단도 지연된다. 기후 정책의 일관성이 곧 산업정책의 신뢰도와 연결되는 이유다.
한국 정부는 헌법재판소가 부여한 2026년까지의 입법 시한을 단순한 최소 이행 과제가 아니라, 기후를 최우선 원칙으로 두는 거버넌스를 재설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기후 정책이 산업정책의 하위에 놓이는 구조를 유지할지, 아니면 기후 목표 아래에서 산업전환 전략을 다시 짤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후위기를 생존 조건으로 전제하고 그 위에 산업발전의 경로를 설계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경쟁력이라는 두 과제에서 모두 뒤처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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