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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④ 폭염 (2) | 당신의 집은 재난에 안전하십니까?

2025-07-16 김복연 기자

폭염 대응책의 근본적 해결책은 안전한 주거환경 마련이다. 취약계층 대상 단열·냉방 시설 지원, 에너지권 보장 등 주거권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누구도 피난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무더위쉼터, 재난의 피난처인가


폭염이 매년 재난으로 반복되는 시대다. 정부와 지자체는 점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대응책을 강화하고 있다. 살수차를 늘리고, 그늘막을 세우고, 이동노동자 쉼터를 마련하며, 폭염구급대를 운영한다. 이런 수많은 대책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상징적인 대응은 ‘무더위쉼터’다.


무더위쉼터는 말 그대로 집이 너무 더울 때 피난할 수 있는 공공공간이다. 주민센터, 경로당, 복지관 등 동네 곳곳의 공공시설이 문을 열고 냉방을 제공한다. 정부는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재난문자와 방송에서 “가까운 무더위쉼터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이런 권고는 점점 더 일상화되고 있다.


사실 무더위쉼터는 꼭 필요하다. 폭염이 오면 집 안조차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옥상 단열이 부실한 꼭대기층, 반지하, 쪽방, 비닐하우스 숙소는 한낮이면 오븐처럼 달궈진다. 냉방기가 있어도 전기료가 무서워 틀지 못하는 저소득층 가구는 여전히 많다. 그럴 때 잠시라도 몸을 식히고 생존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공공의 역할이다.


무더위쉼터의 한계


폭염취약세대 수와 무더위 쉼터 수용 가능 인원의 불일치를 나타내는 자료. 이미지 감사원
폭염취약세대 수와 무더위 쉼터 수용 가능 인원의 불일치를 나타내는 자료. 이미지 감사원

현실에서 무더위쉼터는 이상적인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쉼터의 수와 취약세대 수가 불일치하거나, 취약세대 근거리에 쉼터가 부재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무더위쉼터가 있음을 알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거나 위험할 수 있다. 폭염 속을 걸어야 하는 노인이나 장애인, 어린아이를 동반한 부모에게는 심각한 부담이다. 농촌이나 교통사각지대에서는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운영시간의 한계가 크다. 대부분 쉼터는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폭염 피해가 가장 치명적인 시간대는 종종 밤이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밤에는 실내 온도가 내려가지 않고, 건강 피해가 누적된다. 문을 닫은 쉼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쉼터의 공간적 한계도 있다. 다수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시설이다 보니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누워서 쉴 수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 반려동물을 두고 가야 하는 노인이나 저소득 가구는 집 비우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심리적 장벽도 무시할 수 없다. “공공시설을 빌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이용을 꺼리게 한다. 일부 쉼터에서는 주민등록이 없거나 노숙인, 이주노동자에게 이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위치나 운영시간을 정보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무더위쉼터는 냉방이 제공되는 “서비스”인 동시에, 재난 상황에서의 “임시 피난처”다. 모든 피난처가 그렇듯, 거기에는 이동의 불편, 사적 공간의 상실, 낙인과 차별, 심리적 저항감이 따른다. “가까운 무더위쉼터를 이용하세요”라는 문장은 국가가 최소한 대책을 안내하는 말이면서도, 동시에 “당신의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냉정한 사실을 고지하는 말이기도 하다.



피난하지 않아도 되는 집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난하지 않아도 되는 집을 만드는 일이다. 폭염이 재난이 된 시대에 주거권은 곧 생존권이다.

폭염이 사람을 위협하는 이유는 단순히 신체적 약함 때문이 아니다. 노령, 질병, 장애 같은 조건도 있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주거환경의 차이다. 집의 구조와 단열, 냉방기기의 유무, 전기료를 감당할 경제력, 사회적 지원망과 정보 접근성까지 모두 폭염 피해의 규모를 결정한다.


더 시원하고 안전한 집으로


먼저 주택의 물리적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와 단체는 저소득층 주택의 단열 개선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창문에 차열필름을 붙이고, 노후된 창호를 교체하고, 벽체에 단열재를 시공하는 간단한 개량으로도 실내 온도를 1~3도 이상 낮출 수 있다.


비닐하우스 숙소를 사용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내부 차광막과 이동식 단열캔버스를 제공하는 시범사업도 있었다. 서울 일부 자치구는 옥상 표면을 밝게 칠해 태양열 흡수를 줄이는 쿨루프(Cool Roof) 사업을 했다.

이런 시도들은 적지만 의미 있다. 집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는 출발점이다. 정부는 이런 사업을 전국 단위로 확장해, 저소득층과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단열·차열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해야 한다.


냉방권은 에너지권이다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취약계층에 에어컨 설치. 사진 한국에너지재단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취약계층에 에어컨 설치. 사진 한국에너지재단

냉방기기 보급과 에너지권 보장이 필요하다. 냉방비 바우처가 있어도 냉방기가 없는 가구에는 소용이 없다. 정부는 2025년부터 고효율 에어컨 설치 지원을 일부 시작했지만, 대상이 한정적이고 신청절차가 까다롭다.

보다 적극적으로 임대주택에는 냉방설비를 의무화하고, 노후 공공임대에는 냉방기를 일괄 설치해야 한다. 사회복지관이나 주민센터를 통한 방문설치 서비스, 저소득·에너지빈곤층 대상 무상설치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냉방권은 곧 에너지권이다. 누진제 완화, 기초생활수급자 추가 전기요금 지원, 주택용 태양광 지원 확대 같은 장기적 대책이 함께 가야 한다. 전기료가 무서워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현실은 에너지 빈곤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다.


주거권이 곧 생존권


거시적으로 주거권의 구조적 전환이 따라야 한다. 폭염은 단열이 부실한 반지하, 옥탑방, 창문 없는 고시원 같은 주거취약지를 재난지대로 바꾼다.

공공임대주택의 신축과 리모델링에는 냉방과 단열성능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쪽방촌,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단계적으로 공공임대나 공공기숙사로 전환해야 한다.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택 바우처 제도를 확대하고,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주거 기준을 명확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시장의 재화이기 이전에 생존을 보장하는 권리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도시가 더워지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도시 공간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폭염은 도시문제이기도 하다. 불투수성 포장, 초고층 밀집, 녹지 부족이 도시를 거대한 열섬으로 만든다.

해법은 잘 알려져 있다. 가로수와 공원을 늘리고, 백색도로포장, 쿨루프, 지붕녹화 같은 기술을 지원하고, 살수차나 분수 같은 수변 냉각시설을 도입해야 한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폭염안전”을 설계하고, 공공쉼터와 대피 인프라를 생활권 안에 확보해야 한다.


진짜 폭염 대책은 무엇인가


폭염이 재난이 된 시대에 무더위쉼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임시 피난처일 뿐이다. 진정한 대응은 사람들이 피난하지 않아도 되는 집과 마을,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거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냉방비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냉방기를 갖추고, 단열된 공간을 제공하고, 전기료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도시가 열을 흡수하지 않도록 만들고, 그늘과 물을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

폭염 대응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권리의 문제다. 그것은 기후위기가 재난이 된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누구도 피난하지 않도록 만들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그것이 진짜 폭염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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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1일

안전한 집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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