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8화.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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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9일
- 6분 분량
2025-08-29 정욱식

2026년 방위예산 책정을 놓고 일본 정부는 큰 시름에 빠졌다. 2025년 2월에 미일정상회담에선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올리기로 합의했지만, 이후 타럼프 행정부는 이것으론 부족하다며 최소한 GDP 대비 3%로 올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2035년까지 GDP 대비 5%로 인상하기로 합의했고, 중국이 2027년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방위비 규모는 GDP 대비 몇 %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필요한 대응 역량에 근거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수치를 중시하는 타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미국은 우리의 방위예산이 GDP 대비로 내년에는 2.5%를, 내후년에는 3%는 되어야 한다고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를 맞추려면 내년에는 약 12조엔, 후년에는 15조엔 정도를 방위비로 책정해야 합니다.”
외무상의 보고에 하시타로 내각은 침묵에 휩싸였다.
“재정 여력은 있는 건가요?”
총리가 물었다.
“불가합니다. 이미 국가 부채 비율이 GDP 대비 260%를 넘어서 추가적으로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 부담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집니다.”
재무상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세금을 크게 인상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특히 소득세·법인세·소비세를 인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내수와 수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서 시민과 기업의 저항이 매우 강해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인프라 예산을 축소해서 조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초고령화와 저출산, 지방 소멸 등의 문제로 오히려 이들 예산은 크게 늘여야 할 형편입니다. 현재 일본은 1960년 이래 최악의 민생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위예산 대폭 인상은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되겠군요.”
하시타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2025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추가적인 방위비 인상 요구에도 불구하고 방위비 인상과 증세에 관한 발언을 자제했었다. 하지만 생활비 부담과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자민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위예산을 대폭 인상하면 총리 퇴진과 의회 해산 요구가 거세질 터였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방위비 증액을 반대하는 비율이 60~70%에 달했다.
“12월인데도 후덥지근하군요.” 이한결이 후쿠오 기자와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오늘 25°C를 넘겼다고 하네요. 역대 최고 기온입니다. 작년 후지산에 눈 없는 시기가 가장 길었다고 하는데, 올해엔 후지산 첫눈이 며칠 전에서야 내렸다고도 하고요.”
“이거 따뜻한 사케를 마시고 싶었는데,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네요.”
후쿠오의 말에 이한결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중국 고사가 절도 떠오르는 현실입니다. 진시황이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호(胡=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정작 진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자식인 호해(胡亥)였잖아요. 한국, 일본, 대만할 것 없이 모두 미국의 방위비 인상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어요. 외부에 위협에 대처한다면서 군사비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리고 있는데, 정작 민생이 죽어가고 있어요. 기후위기도 그렇고요.”
술잔을 비우며 이한결이 내뱉은 탄식에 후쿠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타럼프가 꼭 진시황 같네요. 동맹국들을 족쳐서 조공을 많이 바치라고 하고 현대판 만리장성인 골든돔을 만들어 미국 본토를 철옹성으로 만들겠다고 하고.”
골든돔은 우주에 미사일방어망을 만들어 적대국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겠다는 구상으로, 이 사업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 타럼프 행정부는 기후와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동맹국을 상대로 골든돔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압박도 높이고 있었다.
“그게 군산복합체한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겠지만, 납세한테는 돈 먹는 하마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건 정작, 조선, 중국, 러시아는 여력이 있다는 겁니다.”
후쿠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이한결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지난 20년간 조선의 국방비 추이를 보면 정부 예산에서 16% 정도로 거의 고정되다시피 합니다.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도 분명 우려스럽지만, GDP 대비로는 2% 미만을 유지하고 있어요. 러시아도 내년부터는 국방비를 줄여나가겠다고 하고요. 그런데 미국의 동맹은 하나같이 군사비 증액을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잖아요.”
“아 여깁니다.”
후쿠오가 손을 들고 나사노 준코 교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한결과도 구면인 나사노는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도 겸직하고 있었다.
“이 소장님은 한국의 진보적 전문가이고, 나사노 소장은 일본의 보수적 학자인데, 두 분이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후쿠오가 내일 게이오대에서 열릴 토론회를 두고 한 말이다. 이한결은 양안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일 간의 시민 연대도 매우 중요하다며, 나사노에게 협력을 요청해서 마련된 자리이다.
“생존과 평화를 논하는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겠습니까?”
나사노가 말을 이었다.
“다만 저도 그렇고 일본의 대부분 학자들은 이 소장님과 의견을 달리 합니다. 중국의 위협은 실제로 존재하고 대만 사태는 곧 일본 사태라며 미국과 다른 우방들과 함께 중국에 맞서야 한다는 합의가 매우 강하죠.”
“저도 제 의견에 동의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견이 있어야 재밌지 않겠습니까?”
“자자, 토론은 내일 하시고 건배부터 하시죠. 다른 건 몰라도 동북아인들이 공유하는 게 있잖아요. 일본어로 간빠이, 한국어로 건배, 중국어로 간베이. 모두 같은 한자입니다.”
이들 세 개 언어에 능통한 후쿠오가 건배를 제안하면서 말했다.
다음날 오전에 토론회 참석을 위해 도쿄에 도착한 장승희는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설의 허와 실’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양안 문제의 대삼각관계에 해당하는 미국-중국-대만 모두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발표를 맡은 나사노는 일본 내에서 대만 사태가 곧 일본 사태라는 인식은 매우 강해지고 있는데, 대중 억제가 실패해 양안 사태가 발생하면 일본이 어디까지 관여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자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토론회의 초점은 이 부분에 맞춰졌다. 한국도 마찬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억제 강화밖에 답이 없습니다.”
게이오대의 한 교수가 말이다.
“대중 억제를 강화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못하게 하면 일본이나 한국이 대만 유사시 어느 수준까지 관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할 필요도 줄어들겠죠.”
“그건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한결이 반론에 나섰다.
“우선 억제의 비용이 너무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도 방위비 증액을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또 지난 20년간 미국과 동맹국들은 대중 억제를 위해 엄청난 군비증강을 해 왔는데, 정작 군사적 긴장은 높아지고 있지요. 최근 미국은 억제가 실패해 대만 해협에서 미중 충돌이 발생하면 동맹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치고 있어요.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정작 동맹에겐 전략적 명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억제와 대화의 균형부터 찾아야 합니다. 각국의 정부가 억제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민간이 나서 서로 대화도 하고 정부 간 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득도 하고 압박도 해야지요.”
“억제의 비용을 말씀하셨는데, 그건 전쟁이나 중국의 대만 점령으로 치르게 될 피해를 감안하면 새 발의 피죠.”
게이오대 교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민간 대화를 말씀하셨는데, 그게 가능하기나 합니까? 중국은 양안 문제의 국제화를 극구 반대한다며 중국의 민간 전문가조차 통제하고 있어요. 이 소장님의 취지는 이해하겠지만, 민간의 역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한결이 상기된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저는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해 그곳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눴고 일부는 참가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나 공산당이 극구 반대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저는 우선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비공식 포럼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힘에만 의존하는 평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대에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지요. 이름도 생각해봤습니다. 돌핀스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큰 고래가 다투지 않도록 돌고래가 지혜를 발휘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돌고래쯤은 되지 않았겠습니까? 하하.”
이한결의 눈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과 가로젓는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왔다.
***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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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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