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6화. 워싱턴
- hpiri2
- 8월 15일
- 5분 분량
2025-08-15 정욱식

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북한 김정훈 위원장은 “조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미국은 대만 해협이 위기 상황이면 전투기, 핵항모 등 군사력의 입출입을 남한에 요구해 왔다. 최서희 대통령은 미국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순간 최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이 오는데...
중국과 대만의 해상 대치 이틀째. 중국에 가까운 대만의 섬, 금문도에 있는 진먼대 류 교수는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했지만 공항은 폐쇄된다. 대만 라이창더 총통이 내린 비상명령권 발동에 대해 입법원의 승인 선거로 대만 정국은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나눠져 혼란스럽다. 대만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수백 기의 드론이...
대만 중국 군사 충돌 위기 리얼픽션. 이 시각, 한 일간지 신문의 편집국장, 기후팀장, 국방팀장이 회사 앞 술집에 모였다. 당초 초대형 태풍 발생 급증을 다룬 기사가 머리기사였다가 급하게 바뀌었다. 중국이 대만 땅 진먼다오에 샤진대교를 연결하겠다는 발표와 대만이 실력 저지하겠다는 소식으로 교체되었다. 중국이 회색지대 전술로 부전승을 노렸다며 중국의 의도, 대만의 응전, 미국의 개입을 조망한다.
“You are notorious here.(당신 여기서 악명이 높아요.)”
펜타곤 정문에서 이한결을 맞이한 마이크 파네건 대령이 악수를 청하면서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한결은 귀를 의심했다. “농담입니다. 당신이 쓴 글들은 주한미국 대사관에서 계속 보내 줘 우리도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을 세게 비판하시던데, 좀 살살하시지요. 하하.”
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여러 매체에 칼럼도 썼던 이한결은 2005년 5월 주한미국 대사관에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들과의 면담을 요청했었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대사관에서 면담을 주선해 줬다. 본국과 연락을 취해 본 결과 백악관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국무부의 동아시아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 그리고 국방부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와의 면담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다. 일정을 잡아 준 대사관의 한국인 직원은 한국의 반미 성향 전문가와도 소통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국을 설득했고 이한결이 쓴 글을 계속 번역해 본국에 보고한 것도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면담 시간은 30분입니다. 모든 소지품은 놓고 들어가야 합니다.” 파네건의 안내를 듣고 이한결은 가방과 주머니에 있는 물건들을 바구니에 놓고 부차관보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은 사진관 암실을 연상시키듯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검은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국말로 할래요, 영어로 할까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한결은 한국말로 하자고 답하려는 순간, 리처드 힐리스 부차관보는 영어로 하겠다고 말했다. 힐리스는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을 지낸 인물로 부인도 한국 사람이다. 또 그는 2003년 발족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미국 측 대표를 3년째 맡고 있었다. 면담 주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맞춰졌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으로 출동하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이게 ‘플로우 아웃(flow out)’이라면 밖에 있는 미국 군사력이 한국으로 전개되는 ‘플로우 인(flow in)’도 있고 한국을 경유하는 ‘플로우 쓰루(flow through)’도 있어요. 모두 한국 방어를 위한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최정예입니다. 미국의 군사적 필요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요. 한국이 주한미군을 붙박이 형태로 한국에 묶어 두자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요?”
면담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영어도 서툰 이한결은 반박을 하기보단 힐리스의 말을 듣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만 문제는 꼭 거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와는 달리 대만 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이 출동하면 한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 전수방위를 원칙으로 하고 있잖아요?”
“그건 한국이 북한보다 약할 때나 하는 얘기죠. 지금 한국은 북한보다 월등히 강하고 그래서 전시작전통제권도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면 한국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워져요. 그래서 북한의 위협은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억제하고 주한미군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게 양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당신의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미국 군사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주권 사항입니다.”
벽시계를 본 힐리스는 40분이 지났다며 면담을 이것으로 끝내자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한 이한결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우리의 취지는 중국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주한미군을 포함해 미국 군사력을 총동원해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확고히 해야 중국이 도발하지 못합니다.”
배웅하는 길에 파네건이 말했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뜻이군요. 그런데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 중국도 계속 군사력을 키우겠지요. 이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계속 곤란해지고요. 미국이 동맹과 함께 대만 방어 의지를 강하게 표출할수록 대만이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고요.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면 전쟁이 터질 수도 있어요.”
이한결이 들어갈 때는 한없이 길게 느껴졌던 펜타곤의 복도가 파네건과 말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현관 앞에 다다랐다. 현관 밖으로 나서면서 며칠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으로 있는 대학 선배가 술자리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한결아, 벌어지지도 않을 일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머리털만 더 빠진다.”
호텔로 돌아온 이한결은 노트북을 열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제주신문의 기자가 보내온 메일에는 기사 링크가 있었다. 제주해군기지 추진단장을 맡은 해군 준장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한결이 가짜 정보로 제주 도민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하면서도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며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뜻을 밝혔다. 이로 인해 제주도에선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한결은 지정학적 요충지인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미국도 기항지로 이용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 논리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럴 경우 대만 해협 등에서 미중 무력이 발생하면 제주도를 포함해 한국이 전쟁에 연루될 위험을 키울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해군 준장의 비난은 이를 겨냥한 것이었다. 제주해군기지는 한국 해군기지인데 왜 미국을 끌어들여 반미감정을 조장하고 한국 해군의 숙원사업을 반대하느냐는 것이었다. ‘공개 토론 제안에는 일체 응하지 않더니만….’ 기사를 읽은 이한결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냈다.
워싱턴에 오기 직전에 평택 대추리에서 겪었던 일도 떠올랐다. 미국 정부는 2003년부터 서울 용산기지와 경기 북부에 있는 2사단을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었다. 이를 위해서는 약 400만 평의 공여지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이한결은 미군기지 재배치는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해 해외, 특히 중국과의 유사시에 투입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현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도 거세지고 있었다. 국방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대집행에 나섰지만 주민과 활동가들의 격렬한 반대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자 정부는 대추리 일대와 도두리 일부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급기야 5월 4일 새벽, 경찰과 군인이 마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를 목격하고 소식을 들은 주민과 활동가들이 몰려들었다. 불도저와 포클레인 등 중장비가 속속 도착했고 하늘에선 헬기가 곳곳에 철조망을 내렸다. 이를 본 주민과 활동가가 격렬하게 저항하자 군인들이 포박에 나섰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으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하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대추리로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과 군인에 막혀 먼발치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이한결도 그 속에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한결은 내일 백악관과 국무부 방문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지만, 잡다한 생각과 시차가 그의 잠을 밀어냈다. 푹신한 베개에 기댄 그의 머리가 힐리스와의 면담, 제주와 대추리에서 겪었던 일들이 교차하면서 어지러워졌다. ‘나는 이렇게 편하게 누워있는데….’ 그는 제주와 평택 등에서 본인의 강연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당한 저항의 명분을 제공한다는 생각과 자기는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닌가 하는 게 하는 자괴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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