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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특별법 | 산불특별법, 회복 중심 로드맵으로 본래 취지 되살려야

최종 수정일: 6시간 전

2025-10-23 김복연 기자

산불특별법은 피해 지역의 신속한 복구를 명분으로 제정됐지만, 실제로는 산림보호구역 해제와 개발 특례를 허용하며 ‘복구의 법’이 아닌 ‘개발의 법’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자체와 정치권은 단기 성과 중심의 개발 계획을 재검토하고, 피해 주민의 생존권 보장과 환경 복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회복 중심 로드맵’을 다시 세워야 한다. 특별법의 본래 취지인 사람과 숲의 공생,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회복은 투명한 제도 설계와 상생 구조를 통해서만 되살릴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숲은 개발의 도구가 아닌 생존 조건이다. 사진 플래닛03
기후변화 시대에 숲은 개발의 도구가 아닌 생존 조건이다. 사진 플래닛03

“복구”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


지난 3월, 경북·경남·울산 일대를 휩쓴 초대형 산불은 수천 헥타르의 산림과 수백 채의 민가를 앗아갔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국회는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재난 직후의 긴급 지원을 넘어, 피해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복구’라는 단어는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그 말 안에는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라는 선택이 숨어 있다. 산불특별법이 열어 놓은 수많은 특례 조항 속에서, 숲은 생태가 아니라 토지로, 회복이 아니라 투자로 재정의되었다.


권한은 이동했지만, 책임은 남지 않았다


특별법의 가장 큰 변화는 권한의 이동이다. 법은 국무총리 산하 재건위원회를 두고, 산림청장의 권한 일부를 시·도지사에게 위임하도록 했다. 지자체는 이 권한을 근거로 피해 지역을 ‘산림투자선도지구’로 지정할 수 있고, 그 안에서는 보전산지의 경사도·표고 기준을 완화하거나,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할 수 있다.


결국 중앙정부의 보호 권한은 지자체의 개발 권한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법 통과 직후, 경북도지사는 산불피해 지역에 리조트와 골프장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피해 복구라는 명분으로, 숲은 다시 자본의 계산서 위에 올려졌다.


“국립공원 관리권 이관”에서 시작된 구조의 변형


중재 산불에 경남도 제도 개선 촉구와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는 박완수 경남도지사. 자료 경남TV

이 흐름은 법 제정 이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4월 초 국회 본관에서 열린 ‘산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경남도지사는 “산불 예방과 진화의 일원화를 위해 국립공원 관리청을 산림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결과적으로는 산림 관리의 철학을 ‘보전’에서 ‘활용’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재난의 해법으로 제시한 신호탄이었다. 국립공원이 산림청 소관으로 옮겨 오면, 생태보전의 기준은 느슨해지고 개발의 속도는 빨라진다. 특별법은 그 변화를 제도적으로 완성한 셈이었다.


‘피해 복구 vs 환경 보호’라는 가짜 대립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울환경연합 등 환경·시민단체가 '산불특별법'의 독소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사진 플래닛03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울환경연합 등 환경·시민단체가 '산불특별법'의 독소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사진 플래닛03

법 제정 이후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보호구역 해제와 환경영향평가 단축은 난개발을 부추긴다.” 하지만 지역 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이 목소리를 “피해 복구를 방해하는 외부 세력”으로 바꾸어 버렸다.


복구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복구의 방식이었다. 복구가 개발로 대체되는 구조, 산림복원이 레저단지 조성으로 변질되는 현실이었다. 환경단체가 복구를 막는다는 구도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착시다. 법이 복구와 개발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구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곧 ‘지연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복구의 언어로 포장된 개발의 현실


특별법 제33조는 자연휴양림 조성 기준을 완화했고, 제41조는 산림투자선도지구를 허용했으며, 제60조는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간을 45일로 단축했다. 표면적으로는 ‘신속한 복구’를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는 조항이다. 피해 복구라는 표현은 ‘산림 복원’이 아니라 경제 회복을 위한 토지 전용의 의미로 변했다. 복구의 이름으로 개발은 제도화되고, 재난은 투자 기회로 바뀌었다.


탄소중립 시대의 산림, 정치가 놓친 좌표


국제사회는 산림을 탄소 흡수원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이에 따라 산림을 국가 탄소 감축 전략의 주요 축으로 삼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숲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인프라이자 생태적 기반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의 언어 속에서 숲은 여전히 개발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산림정책은 국가의 약속, 즉 탄소중립 로드맵의 일부로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지자체와 정치권은 그 약속의 의미를 잊은 채, 지역경제의 이름으로 숲을 다시 소비하고 있다. 숲은 단기 성과의 무대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지구의 시간 속에서 함께 가꾸어야 할 공공재다.


선출직 권력의 단기성과, 사라진 책임


지자체장과 의원은 선출된 권한을 갖지만, 그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공적 책무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그 권한을 개발 실적과 단기 성과로 환원하고 있다.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숲은 수십 년 단위의 계획 속에서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선출직의 시간은 너무 짧다. 임기의 시간은 숲의 생명 주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 사이 정책의 목표는 복구에서 성과로, 숲의 시간은 정치의 시간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복구의 진짜 의미를 다시 묻는다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그들이 다시 살아갈 터전, 다시 숨 쉴 수 있는 숲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주민을 복구의 주체로 세우지 않는다. 그들을 개발사업의 수혜자로만 본다.


복구는 건설이 아니다. 복구는 생태적 회복의 언어이며, 사람과 숲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다시 묻는 일이다.


“다시 심는 일”의 상상력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구를 다시 상상하는 능력이다. 피해 지원이란 단순히 도로를 다시 깔고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탄소중립 실현 과정 속에서 사람과 숲이 어떻게 함께 공생해 나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그 상상력은 행정의 속도와 개발의 논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시간을 다시 길게 보고, 숲을 공동체의 일부로 되살리는 능력이다. 숲을 인간의 외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관계망으로 되돌려보는 일이다.


복구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공생의 미래화


산불특별법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복구의 방식이 곧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난 회복 중심의 국가 로드맵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지자체는 개발 계획을 재검토하고, 피해 주민의 생존권 보장과 환경 복구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복구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 안에 지역공동체의 상생 구조가 포함되어야 한다.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개발 이익을 지역사회와 피해민에게 환원할 수 있는 수익 공유 모델, 생태 복원형 일자리, 지역 탄소상쇄사업 참여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특별법의 본래 취지, 즉 피해 주민의 회복과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다.


탄소중립은 행정의 목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재난 이후의 복구는 과거를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숲이 함께 지속할 미래를 다시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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