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블루카본, 기후국가로 가는 복합 해법
- planetdami
-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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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30 이담인 기자
지구 최대의 탄소 저장소인 블루카본 생태계가 기후위기와 연안 개발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바다를 탄소중립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도적 공백 속에 머물러 있다. 탄소 흡수는 물론 재난 완충, 생태관광까지 아우르는 블루이코노미와 블루카본이 해양정책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블루카본(blue carbon),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
해양 탄소 흡수원으로서 '블루카본'은 2009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유네스코(UNESCO) 등이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 「Blue Carbon: The Role of Healthy Oceans in Binding Carbon」를 통해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2013년 개정된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작성 가이드라인에 반영되며 탄소 감축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맹그로브, 잘피, 염생식물과 같은 식생 기반 서식지뿐만 아니라, 퇴적물 기반의 비식생 갯벌이나 해조류, 미세조류, 산호초 등으로 논의 범위가 확대되며 블루카본의 가능성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잘피, 염생식물, 맹그로브, 갯벌 등으로 구성된 '블루카본’은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를 뜻한다. 이들의 서식지는 육상 생태계보다 탄소 흡수 속도와 저장력, 장기 저장능력이 매우 뛰어나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잘피림의 29%, 염습지의 67%, 맹그로브의 35%가 소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잘피 생육지는 70~80%가 사라졌고, 계속된 연안 개발과 기후위기에 의해 한국의 블루카본 생태계는 위협받고 있다.

세계는 블루카본으로 탄소중립 전략 강화 중
기후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전 세계 주요국들이 블루카본을 중심으로 한 해양·연안 생태계 기반의 탄소흡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블루카본이 탄소중립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일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바다의 가치를 재정의하며 국가 탄소중립 전략에 블루카본을 통합하고 있다.
EU : 갯벌 복원, 해양 보호구역 확대, 해조류 농업 활성화
EU는 해양 및 연안 생태계의 탄소흡수 기능에 주목하며 ‘EU 해양전략 프레임워크 지침(Marine Strategy Framework Directive)’을 중심으로 블루카본 기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 지침은 연안 해양 생태계의 ‘좋은 환경 상태(GES: Good Environmental Status)’ 유지를 목표로 삼으며, 해양 생태계의 회복력과 탄소흡수 능력 강화를 핵심에 두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기후 중립 전략에서 갯벌 복원, 해양 보호구역 확대, 해조류 농업 활성화를 병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탄소 흡수와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 특히 ‘EU 생물다양성 전략 2030’은 2030년까지 육상 및 해양의 각각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이 중 10%는 엄격히 보호되는 핵심구역으로 설정된다. 또한 블루카본 생태계의 보호를 통해 기후 목표 달성을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으로 삼고 있다. 녹색금융과 블루카본의 연계를 위한 분류체계 구축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 해양공간계획(MPS)을 통한 블루카본 측정체계 구축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당시 해양 공간을 탄소중립과 그린경제의 전략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했다. 연안 생태계 보호와 생물다양성 증진, 어업권 보장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를 고려한 해양공간계획(MSP)과 함께 NOAA(해양대기청)를 중심으로 해양 블루카본 측정 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블루카본을 비롯한 자연 기반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은 사실상 배제되는 중이다. 해양 생태계 보호보다 자원 개발과 산업적 탄소 제거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로, 연방 차원의 블루카본 정책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 블루카본 정량화를 위한 데이터 수집, 거버넌스 모델로 발전 중
중국은 국가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블루카본 생태계 복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14차 5개년 규획’과 ‘탄소중립 업무 의견’ 등 정책을 통해 해양 및 연안 생태계의 탄소 흡수 기능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주요 연안 지역에 블루카본 시범지구를 지정하여 해안선 개발을 제한하고 생태 회복지대를 설정하는 공간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괄목할 만한 점은 블루카본 정량화를 위해 해양 환경 데이터, 생태계별 탄소 저장량, 탄소흡수율 등의 과학 기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있으며, 시계열 기반의 동적 평가 모델까지 도입해 탄소 흡수 효과를 정밀하게 추정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블루카본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닌 에너지, 산업, 토지 이용과 연계된 종합적인 거버넌스 모델로 발전하고 있으며, 국가 단위의 정책 설계와 지역 단위의 생태복원 프로젝트가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블루카본 추진 전략
2021년 10월 기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한 118개국 중 71개국이 해양 생태계를 활용한 감축원, 즉 블루카본을 포함하고 있으나,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23년 5월, 한국의 해양수산부는 ‘블루카본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해양수산 탄소중립 대전환과 기후위기 대비 태세 완비를 비전으로 해양의 탄소 흡수 및 기후 재해 대응 능력 강화와 민간, 지자체 등 참여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2030 NDC 및 2050 탄소중립 로드맵 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하겠다는 목표였다. 2030 NDC 달성과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 △해양의 탄소흡수력 및 재해대응력 강화 △민간·지자체 참여 확대 및 국제협력 △신규 블루카본 인증과 연구 인프라 구축을 3대 축으로 제시했다. '블루카본 추진 전략'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블루카본 생태계(잘피림, 염생식물)에 대한 보호와 복원 확대가 핵심으로 2030년까지 염생식물 면적을 220% 확대하고, 바다숲을 조성해 약 41만 톤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목표다.
갯벌, 해조류, 비식생 갯벌 , IPCC 국제인증 받지 못한 상태
해양부문 통계가 '국가온실가스 인벤토리'에 포함된 것은 2022년이 처음이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연안습지의 면적과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통계로 공식 반영하고, 향후 해초대·해조류·비식생 갯벌 등 다양한 생태계에 대한 정량화된 자료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030 NDC 감축목표 중 해양 부문에서 차지하는 4.2%(약 106만 톤) 달성을 위한 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블루카본 실증연구센터를 신설하고 해양연구기관 및 대학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R&D 투자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수심 1000m 이상의 심해 탄소침전과 해조류 바이오매스의 장기 격리 가능성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등 해역별로 잠재적인 블루카본 후보군을 평가하는 사업도 병행한다고 한다.
탄소중립을 넘어 해양수산 분야에서 발생하는 탄소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하는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블루카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갯벌, 해조류, 비식생 갯벌 등은 아직 IPCC 국제인증도 받지 못한 상태다. 보호구역 확대가 곧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은 여전히 존재하며, 정책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블루카본 정책, 탄소 흡수량 증대에 집중되어 있어 한계 도출
현재 한국의 블루카본 전략은 탄소 흡수량 증대에 집중된 측면이 강한 점이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제 사례를 살펴보았을 때 블루카본 생태계는 탄소흡수원에 그치지 않고 침식방지, 수질정화, 어장 제공, 재난완충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자연기반해법(NbS)'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기반해법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기후적응력과 회복력을 높이는 정책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은 블루카본 생태계의 보호와 복원이 인간의 복지와 생물다양성 모두에 기여하는 상생의 해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전략은 기후 적응력과 회복력을 증진하는 사회적 편익의 요소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연안 재해 대응 외에는 사회적 편익 증진 영역이 미약하며, '자연기반해법'으로서 블루카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화 수준도 미흡하다. 생태계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다차원적 평가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고, 주민참여형 제도 설계 또한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블루카본, '탄소 흡수량'에서 '생태계 기반 지역 안전망'으로 인식 확장되어야
한국 블루카본 정책은 중앙정부 주도의 기술개발과 보호구역 확대가 중심이다.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지역 기반의 실행력이 중요하다. 지자체의 제도적 권한과 사업 참여를 확대하고, 어업인·시민과의 파트너십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역 생태계 복원과 지역경제 회복이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는 외부사업으로서의 배출권거래제 연계는 실효성 있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일부 시범사업을 통해 지자체가 해조류 조성사업 등을 추진하고, 감축량을 배출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의 참여를 단순한 위탁사업자가 아닌, 감축주체로서 위상을 격상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블루카본 생태계의 복원과 관리 활동이 NDC 달성뿐만 아니라, 지역의 재난 회복력 증진과 생물다양성 보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처와의 협력, 연계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블루카본을 단순한 '흡수량'이 아닌 '생태계 기반 지역안전망'으로 재인식하는 전환이 요구된다.
블루카본의 가치평가체계와 기술적 제도화 추진해야
블루카본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생태계서비스 전반에 대한 다차원적 가치 평가가 필수적이다. 블루카본의 수질 정화, 수산자원 제공, 침식 방지 기능 등은 지역 사회의 기후 적응력과 생계 기반을 강화하는 데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편익을 구체적으로 측정하고 제도에 반영하는 정책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블루카본 복원 기술의 혁신은 정책 실행력을 높이는 기반이다. ‘Blue C’라는 수중드론을 활용한 잘피 복원 기술은 이식 성공률을 높이고 작업 효율을 개선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블루카본 생태계 보호와 대체서식지 조성, 정량적 흡수효과 산정 등을 법제화하고 정책화한 바 있으며,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기술적 제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블루카본이 지역공동체의 경제 회복에 기여되도록
현행 추진 전략은 탄소 감축과 흡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블루카본이 제공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 즉 지속가능한 어업, 생태관광, 교육 자원 등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전략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단일 기능이 아닌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생태계로서 블루카본의 가치를 확대하는 다부처 협업체계가 요청된다. 특히 지자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해조류 조성사업을 통한 감축량을 배출권으로 인정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책의 단순 수혜자에서 지방정부가 주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의미 있는 시도다. 블루카본 생태계 복원은 지역재난 회복력과 생물다양성 보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다부처 협업과 연계 정책을 필요로 한다. 블루카본 기반의 '녹색 지역산업 모델'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경제 회복과 기후 대응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블루카본 정책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해양과 지역사회의 공존을 도모하는 복합적 해법이다. 블루카본 생태계의 회복은 탄소를 저장하는 공간을 넘어, 재난에 강하고 지속가능한 해양국가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블루카본은 해양정책의 변방이 아닌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탄소중립을 넘어 해양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기자수첩
잘피림 바닷물에서 자라는 거머리말, 새우말과 같은 현화식물의 군락지를 말한다. 잘피류는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 탄소중립에 기여하고, 해양 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는 중요한 해양 생태계 요소로 인정 받는다.
염습지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해안 습지로, 염생식물(salt-tolerant plants)이 주로 서식하는 곳이다. 국내 염습지는 주로 서해안 및 남해안의 갯벌 지대에 위치하며, 갯벌에서 육지 쪽으로 확장된 넓은 초원 형태를 띠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 염습지로는 전남에 위치한 순천만이 있다.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National GHG Inventory Report, NIR) 각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량 및 제거량을 산정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작성하는 보고서. UN 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라 각 당사국은 매년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원 목록별로 자료를 구축하여, 주어진 기간 동안 해당 국가의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 및 제거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기반해법(NbS, Nature based Solution) 자연을 활용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일컫는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유지 및 보전을 통해 기후변화, 재해 위험, 식량, 물 관리, 생물다양성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인간의 복지와 생태계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연기반해법은 국립공원 같은 보호지역뿐만 아니라 이미 훼손된 도시, 연안, 하천 생태계 전체를 대상으로 하며, 이들 지역의 보호·보전·복원·지속가능한 이용과 관리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잘 보전된 자연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거나 농지 전환을 막는 일, 훼손된 산림·습지·하천·연안 생태계를 복원하는 활동, 도심과 하천변에 녹색통로나 도시공원, 옥상정원을 조성하는 것 모두가 자연기반해법에 해당한다.
"블루카본 정책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해양과 지역사회의 공존을 도모하는 복합적 해법이다." 이 대목이 인상 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