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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 탈성장과 대안연구소 | '탈성장'은 이미 존재했다

최종 수정일: 2월 15일

 

박성미 총괄 2024-02-08


사진: planet03 DB


김현우 소장은 '성장과 대안연구소 '소장으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매진해 왔다. 지금은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 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탈성장을 화두로 꺼내다


전공이 사회학이었다. 그래서 에너지도 사회학적 관점으로 봤다. 에너지 문제를 민주주의 혹은 인권의 측면으로 보게 되었고, 경제학자들이 보지 않는 지점들이 보였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에너지 기후정책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다. 기후 위기는 에너지 기술이나 제도 변화로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성장주의'에 문제 제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다.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다.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대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탈성장'이라고 답한다. 탈성장의 대안을 물으면 그것을 연구하는 곳이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라고 답한다. (웃음)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 않으면서 '탈성장'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탈성장은 이미 존재했다.


한국에서는 기후 위기에 필요하고 중요한 정치적 변화 혹은 제도적 변화,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 장벽에 가로막힌다. 하나는 남북이 대치하는데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분단 장벽'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 살고, 성장으로 먹고 사는데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성장 장벽'이다. 그 장벽들을 부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변화를 할 수가 없다.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그러나 이 장벽을 넘어서야 된다는 당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밀고 나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탈성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살림 선언(현 한살림협동조합)은 이미 80년대, 90년대에 탈성장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외에도 비록 성장주의에 제한되긴 했지만 대안을 찾고자 한 사회운동도 있었고 분배 투쟁을 우선시하는 노동조합운동 등이 있어 왔다. 이런 많은 운동을 해 왔던 분들을 말하고 싶었다. 여러분이 하고 있고 해 왔던 운동이 바로 '탈성장'이었다고.


현실 정치적인 '곤란'이 존재한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https://www.nature.com/ncomms/) 에 실린 논문인데 번역본이 '생태적 지혜'라는 웹사이트에 있다. (https://buly.kr/BTMi2lh)  'GDP가 증가하지 않거나 마이너스가 될 때,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더라도 훨씬 여유 있게 1.5도로 안착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논문의 결론에 ‘현실 정치적인 곤란이 존재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 정치가 상상하거나 돌파하지 못하는 '탈성장'의 경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면 되는 게 아닌가 판단했다.


무한 성장은 자연스럽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에서 생물이 무한 성장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신체에서 성장기가 지나도 계속 자라나는 세포가 있다면 그건 암세포다. 그래서 성장이 과연 좋은 성장인가, 지속 가능한 성장인가를 환기하게 된다. 지구 행성적 한계의 경계를 연구하는 요한 록스트룀(지구 한계의 경계에서』의 저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후 운동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고 영감을 주기도 한다. 성장의 한계도 마찬가지다. 온난화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도 티핑 포인트가 있다. 그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려면 '멸종도 제로', '빈곤도 제로', '온실가스 배출도 제로'로 기업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전과 전선 정비가 필요하다. 사회 변화의 티핑 포인트, 기후 위기를 대응하는 사회 변화가 이루어지면 '탈성장'은 성공한 것이다.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다


탈성장과 대안 연구를 하려면 사고의 족쇄를 깨야 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논의와 행동이다. 도시 텃밭 운동, 귀농, 귀촌 운동, 대안 화폐 등이 탈성장과 관련이 있고 자신 삶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과 행동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입법의 방향이 되고 국방이나 토건 등의 다른 예산을 전환하게 하는 선택을 강제할 수 있다. 이런 축적된 행동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기후 운동가도 현실 국회에 들어가면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실 정치의 곤란함이 이것이다. 거대한 화석 자본주의의 성장 체제는 이미 엄청난 힘이 축적되어 있다. 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관성을 바꾸려면 반대쪽이 동력을 축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두 명이라도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다른 힘을 동원하고 축적하는 데 작용점으로 역할할 수 있을 것이다.


탈성장은 '성장'을 줄여가는 것이다


탈성장에서 말하는 대안은 거창한 게 아니다. 수축과 수렴이라는 원칙이 있다. 오브리 마이어라는 사람이 90년대에 했던 주장이 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구 행성 한 개 안으로 수축하고, 1인당 배출량이나 각 국가당 평균 배출량을 점점 수렴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탈성장'의 개념은 '성장을 덜해도 되는 것, 또는 성장해서 나쁜 것들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탈성장의 여러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대안을 찾기 위해 올해는 '한국의 성장주의 분석에 관한 연속 세미나'를 진행하고 책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한국의 성장주의와 에너지 제도 등에 관한 이야기와 한국의 탈성장 '나우토피아'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연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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