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13화. 사표
- hpiri2
- 10월 10일
- 6분 분량
2025-10-10 정욱식

"기밀을 유출한 게 맞습니까"
“이 차장님이 기밀을 유출한 게 맞습니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물었다. 10월 15일 오후 한 일간지의 보도를 시작으로 여러 언론들이 앞 다퉈 속보를 쏟아냈다.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군산공군기지에 F-35 수십대 추가 배치, 제주해군기지에도 핵항모 기항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보도가 나간 직후 주한미국 대사관과 주한미군 사령부뿐만 아니라 미국 본국에서도 항의가 빗발쳤다. 또 제주해군기지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은 미국 항모의 입항을 막겠다며 강정마을로 집결하고 있었다. 일부는 해상 시위를 벌이겠다며, 카누를 바다에 띄우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심한 몸싸움도 벌이고 있었다. 군산공군기지 앞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속보를 접한 이한결은 방금 전 오찬 모임을 떠올렸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외부 전문가와 야당 의원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안보실장 주재로 비공식 간담회를 가졌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이한결은 흡연실로 이동해 담배를 피우면서 몇몇 전문가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중에 한 전문가가 물었다.
“이 차장님이 예전에 우려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겁니까? 대만 유사시 미국이 F-35를 군산공군기지에 추가 배치하고 제주해군기지에도 핵항모를 보낼 것이라고 썼던 글이 기억나네요.”
이한결은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주장을 담은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한 적이 있었다. 이한결은 짙은 한숨이 담긴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생각해보니 제 책임이 맞습니다.”
이한결이 흡연실에서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말했다. 흡연실에서 질문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본인 책임이 맞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흡연실에 같이 있던 전문가들이 언론에 전달한 것인지, 주변에 있던 기자가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기사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에서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미국은 이 차장님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습니다. 보수 언론과 전문가들도 차장님을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으로 공격하고 있고요.”
공직기강비서관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 차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오늘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 가운데 미측 및 언론사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차장님과 흡연실에서 얘기를 나눈 사람도 그렇고요. 차장님이 덫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제 부주의입니다. 마땅히 책임을 지겠습니다.”
주한미군 투입과 한국군 역할 요구의 해석 차이
공직기강비서관실을 나오면서 이한결은 올해 봄에 백악관에서 미국 측 정책 담당자들과 논쟁을 벌였던 일이 떠올랐다. 미국은 2025년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영역을 인도·태평양으로 확대하자며 한국 정부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는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의 주한미군 투입 동의뿐만 아니라 한국군의 역할도 요구하는 것이었다.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는 상호방위조약의 3조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한결은 조약문에 밑줄을 그으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건 앞뒤를 잘라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그 앞에 ‘타 당사국의 행정관리 하에 있는 영토 또한 금후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관리 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영토에 있어서’라고 되어 있어요. 또 뒤에는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상호방위조항 발동 요건이 양국의 영토에 국한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국회의 동의와 같은 헌법상의 수속도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자가 후자를 구속하는 게 아니라는 게 우리의 해석입니다. 병렬적인 것이라는 뜻이죠.”
미 국방부 차관이 얼굴을 붉히며 반박에 나섰다. 영토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도 상호방위조약 발동 요건에 해당된다는 주장이었다.
“아닙니다. 영문에는 보다 명확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an armed attack in the Pacific area on either of the Parties in territories’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태평양 지역에 있는 각 당사국의 영토에서 발생한 그 당사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의미합니다.”
이한결은 영문 조약문에 거듭 밑줄을 그으면서 말했다.
“더구나 한미는 상호방위조약에 관한 양해각서에서 ‘타 당사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따르면 한국군은 물론이고 주한미군도 대만 유사시에 투입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됩니다.”
“그건 70년 전 얘기 아닙니까?”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말을 받았다.
“2년 전 미한 대통령들께서는 미한동맹을 현대화하기로 합의했어요. 그럼 거기에 맞게, 그리고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상호방위조약도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유진영은 중국공산당의 위협에 맞서 힘을 결집하고 있는데, 한국만 빠지겠다는 것입니까?”
“이 차장은 가만히 계세요.”
이중식 안보실장이 이한결을 손으로 제지했다.
“우리는…”
“귀측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미한동맹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이중식의 말을 끊고 몸을 뒤로 저치며 말했다. 당황한 이중식이 말하려고 하자 안보좌관관이 일어서면서 한국 대표단 일행을 쭉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냅시다. 잘 생각해보세요.”
‘이 놈의 담배가 웬수군.’ 이한결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찾아가 사의를 표했다. 내부의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안보실 1차장으로 기용한 최서희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백악관 회의 이후 이한결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최서희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가겠다며 그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이 차장이 부주의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보긴 어려워요. 공직기강비서실의 판단도 그렇고. 지금은 매우 중대한 시기이니 업무에 집중해주기 바랍니다.”
최서희는 비서실장으로부터 받은 사표를 이한결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대통령님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남아 있으면 대통령님과 정부에 더 큰 부담이 되고 맙니다.”
고개를 숙인 이한결이 대통령과 눈을 맞추지 못하면서 말했다.
“제가 남아 있으면 대통령님께서 미국의 요구와 다른 입장을 내놓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제 뜻을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 알겠소. 그럼 현 상황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해 주길 바랍니다.”
최서희의 부탁에 이한결이 주저하자 최서희가 다시 말했다.
“아니오. 사표는 1시간 후에 수리할 테니, 마지막 보고서를 올리세요.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도 좋소.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이 차장 사무실에선 집중해서 작업하기 힘들 테니, 여기에서 작업하세요.”
최서희의 말에 눈시울이 빨개진 이한결은 대통령의 책상에는 앉을 수 없다며, 펜과 종이를 받아 책상 앞 소파에 앉아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이한결이 집중해서 서너 줄을 썼을 때, 최서희가 그의 어깨 바로 뒤에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거 어디 글씨를 알아보겠소? 이 차장이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악필인 것만은 분명하구먼. 허허.”
당황한 이한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서희는 웃으며 말했다.
“비서한테 말해 둘 테니 그 분 컴퓨터를 사용하세요. 나는 회의에 다녀오리라.”
마지막 보고서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이한결의 핸드폰에 뉴스 속보 알림이 울렸다. 복수의 초대형 태풍이 동북아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북상 중이라는 소식이다.
***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북한 김정훈 위원장은 “조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미국은 대만 해협이 위기 상황이면 전투기, 핵항모 등 군사력의 입출입을 남한에 요구해 왔다. 최서희 대통령은 미국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순간 최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이 오는데...
중국과 대만의 해상 대치 이틀째. 중국에 가까운 대만의 섬, 금문도에 있는 진먼대 류 교수는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했지만 공항은 폐쇄된다. 대만 라이창더 총통이 내린 비상명령권 발동에 대해 입법원의 승인 선거로 대만 정국은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나눠져 혼란스럽다. 대만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수백 기의 드론이...
대만 중국 군사 충돌 위기 리얼픽션. 이 시각, 한 일간지 신문의 편집국장, 기후팀장, 국방팀장이 회사 앞 술집에 모였다. 당초 초대형 태풍 발생 급증을 다룬 기사가 머리기사였다가 급하게 바뀌었다. 중국이 대만 땅 진먼다오에 샤진대교를 연결하겠다는 발표와 대만이 실력 저지하겠다는 소식으로 교체되었다. 중국이 회색지대 전술로 부전승을 노렸다며 중국의 의도, 대만의 응전, 미국의 개입을 조망한다.
평화연구소 소장 이한결이 2005년 미국 펜타곤을 방문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대만 문제를 논의하며, 제주 해군기지와 평택 미군기지 이전 갈등 속에서 한국의 안보 딜레마를 고민한다.
중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만의 국립진먼대에서 간담회가 열렸다. 이한열은 ‘민간 차원에서라도 양안의 긴장 완화를 중재하고 싶다’고 발표한다. 이에 대만 쪽은 낙담과 탄식뿐이다. 중국쪽 샤먼대에서도 의견을 밝혔지만 중국쪽은 양안 문제가 국제화되는 걸 꺼린다. 한국 사람 이한열은 왜 이 주제를 꺼냈을까?
중국과 대만의 학자들과 대만 해협을 둘러싼 토론에 이어,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군비 증강을 요구하고 있고, 반면 러시아와 중국, 조선은 군비를 줄이거나 현상 유지를 말한다. 2026년 미국, 중국, 대만 모두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로 진입하고 …
중국과 대만 사이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돌핀스 포럼’이 개최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민진당의 ‘대만미래결의문’을 살펴보며, ‘미래 세대의 선택’을 화두로 던지고 중국과 대만의 입장을 알아보고 교류 협력의 타협점을 이야기한다.
양안 문제와 기후위기 군축 필요성. 중국과 대만 양안 갈등으로 군비를 증강시키는 와중에 이한결은 그레이스 리를 COP31에서 만난다. 리는 한국계 미국인 청년으로 군사비 증가가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군비통제를 통한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자고 연설한다.
대만 해협 무력 대치 3일째, 오산 기지에서 미국 대형 전략 수송기 글로브마스터가 이륙했다. 중국의 전투기가 대응 출격에 나섰했다. 미 수송기가 고도를 낮추자, 중국 전투기의 경고가 날카롭다. “미국 전투기가 락온(Lock-on) 했다! HQ, 명령을 내려달라.”
중국 전략로켓사령부 소속 장교가 화급하게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고가 올라온다. 미국도 중국의 전략로켓군이 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고 사일로를 개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일촉즉발 상태, 다행히 중국 첩보위성이 잘못 포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지만...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