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9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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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2일
- 5분 분량
2025-09-12 정욱식

“우리 모임 명칭은 ‘돌핀스 포럼’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돌고래는 집단 지혜와 협력의 상징이니까요.”
한국 평화연구소의 1년간의 노력 끝에 2026년 2월에 ‘돌핀스 포럼’이 첫 모임을 가졌다. 온라인 포럼에는 중국, 일본, 대만 전문가들도 여러 명이 참여했다. 포럼을 구성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중국 전문가의 참여 문제에 있었다. 이한결과 장승희는 중국 전문가를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답변을 못 받거나 일정상의 이유로 불가하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중국 학자들과 오랜 친분이 있는 한국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이들은 중국 당국이 허가해야 민간 전문가의 참여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기대를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대만 문제를 외부인이 거론하는 것 자체를 중국은 불편해합니다. 더구나 대만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리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이제 고집을 꺾으시죠. 대만에서 정 권교체가 일어나면 양안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될 겁니다.”
이한결과 오랜 기간 친분을 맺어온 중국 정부 관료가 베이징을 찾아온 이한결에게 말했다.
“제가 고집이 세다는 건 잘 아시잖아요. 제가 구성하려는 포럼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될 겁니다. 중국 주석은 ‘인류운명공동체’를 주창해 왔는데, 대만 문제의 앞날이야말로 인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해 양안 문제에 합당한 우려와 선의의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외부인이라고 보지 말고 친구로 봐야 합니다. 중국이 민간 전문가의 참여조차도 반대하면,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장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에 중국 관료는 “그럼 제가 섭외해 보고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날 이한결은 일전에 여러 차례 만났던 칭화대의 리창쓰 교수로부터 참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돌핀스 포럼, 좋습니다.”
참석자들이 모임 명칭 제안에 동의하자 이한결이 기조발제를 이어갔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이견을 좁히는 게 핵심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불편하시더라도 솔직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르면 대만도 중국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통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통일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진당이 1999년에 채택한 ‘대만미래결의문’을 보면, 대만은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라면서도 국민투표를 통한 현상 변경의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습니다. 즉, 양안관계의 미래는 미래 세대의 선택에 맡겨 두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도 민진당은 ‘통일 불가와 독립 추구’라는 입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가급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고, 대만은 현상 변경 여부는 미래 세대에 맡겨 두자는 취지를 살려 가급적 ‘독립’을 언급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통일과 독립이라는 대립적인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용어가 바로 ‘통합’입니다. 통합은 한 국가 내에서도 언급되고 있고 통일까지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입니다. 중국이 고려했으면 하는 까닭입니다. 한편, 대만 민진당의 결의문에서도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낮은 단계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만이 유념했으면 하는 이유입니다. 하여 통합이라는 개념은 적대적인 현상 유지를 평화적인 현상 유지로 전환하고, 교류 협력을 증진하며, 양안의 미래는 미래 세대에 맡겨 두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양안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말씀드리지요.”
중국의 리창쓰가 말을 받았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고 통합도 통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즉, 통합이 통일을 대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중국은 2023년에 푸젠 통합 개발 시범구를 제정해 푸젠성의 샤먼과 인접한 섬인 마쭈 및 진먼을 연결해 경제통합구로 만들려고 합니다. 샤진대교도 그 일환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대만의 분리주의자들은 이러한 교류 협력조차도 반대합니다. 그리고 이 소장께서 미래 세대 말씀하셨는데, 교류 협력을 확대해 통일로 가는 것이야말로 대만 청년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저도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먼대의 류페이치 소장이 말했다.
“진먼도에 살고 있는 저는 양안간의 교류와 평화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대만인들이 갖고 있는 우려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리 교수님의 말씀처럼 중국은 통합도 통일의 과정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대만인들에겐 통합이 결국 대만의 자율성과 주권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또 진샤대교, 저희는 이렇게 부릅니다만, 이 다리를 연결하면 교류와 협력이 증진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인프라 사업이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진먼은 군사전략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대만 청년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이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솔직한 의견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을 맡은 장승희가 말했다.
“양안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는데, 양측 전문가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처음 보고 그래서 감격 그 자체입니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관점에서 말씀을 계속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보다는 미래를 중심에 놓고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자녀들, 미래 세대를 더 중시하니까요. 하하.”
“네 좋은 말씀입니다.”
일본의 후쿠오 기자가 말을 받았다.
“제가 말씀을 들어보니 리 교수님께선 미래 세대에게 더 좋은 기회를, 류 소장께서는 미래 세대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신 듯합니다. 미래 세대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방식을 놓고선 이견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셈인데요.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의 양안 관계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만 청년에게 중국은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상대라기보다는 툭하면 대만 포위 훈련을 하는 위협으로 소비되고 있어요. 또 대만 정부의 ‘반중’ 기조는 대만 청년의 기회와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미래 세대는 더 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몇 차례 의견을 두고 받은 후에 이한결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한 신뢰구축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이나 대만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추구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또 소중한 재원을 군비경쟁에 탕진할수록 민생의 어려움도 가중될 터이고요. 미래 세대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기후위기라는 점도 직시해야 합니다. 사실 기후정의를 위한 군비통제와 군축은 우리 모임에겐 실존적인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임 이름이 돌핀스인데, 기후정의 실현은 돌고래가 사는 바다를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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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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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돌고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