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리얼픽션 '더 체인'ㅣ#10화. cop

2025-09-19 정욱식

ree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도시 애들레이드.


2026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1)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 대표단과 NGO 활동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한국계 미국인 청년 그레이스 리도 있었다. 올해로 20세가 된 그레이스는 5년 전부터 청소년 기후활동에 참여해왔고 작년부터는 전 세계 청년 NGO 연합체인 YOUNGO 소속 상임 활동가를 맡아왔다. 그녀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오대산 월정사에서 이한결의 강연을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한결은 자신이 쓴 『청소년을 위한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를 읽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었는데, 그레이스도 아버지의 권유로 이 행사에 참석했다. “선생님, 혹시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안 그래도 아버지와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보죠.” 그레이스 아버지는 미국 유학 전에 평화연구소 인턴으로 활동한 바 있었고 조지워싱턴대 교수로 있으면서 ‘돌핀스’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이한결과 대화를 나누면서 군사 부문이 기후위기 대처에 큰 사각지대이자 군비통제와 군축이 기후정의 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COP31 회의에 앞서 열린 청년 기후회의에서 COP 본회의 청년 대표 연설자로 선정되었다.


“제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몇 년 후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다짐한 1.5도마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사말과 본인 소개를 마친 그레이스는 준비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연설을 이어갔다.


길은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전 세계에 몰아치고 있는 전쟁과 군비경쟁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직시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처럼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세계 군사비 총액은 약 2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군사비가 크게 늘어나면 탄소 배출도 크게 늘어날 텐데, 20조 달러의 군사비 지출로 배출될 탄소량은 185억톤 정도로 추산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탄소예산이 불과 500억톤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레이스의 발제가 끝나기도 전에 장내는 술렁거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옆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런 소리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하잖아요. 전기 아껴 써라, 쓰레기 줄여라,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해라... 그래야 너희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요. 그런데 어른들은 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외면하고 있는 건가요?” 잠시 숨을 고른 그레이스는 발표를 이어갔다. 실망과 질책이 담긴 눈빛과 목소리는 이내 단호하면서도 간절한 어조로 바뀌었다.


“절망의 이유는 이 지점에 있지만, 기회의 창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화면을 보십시오. 올해는 이미 늦었지만, 2026년부터 5년간 세계 군사비를 3조 달러로 동결하면, 예상 증가액에 비해 5조 달러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탄소 배출 저감으로도 이어지는데 그 양은 40〜50억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약 90억 대의 내연기관 차량을 1년간 운행하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효과는 더 클 수 있습니다. 군사 활동의 많은 부분이 공중에서 이뤄집니다. 그런데 공중에서 내뿜는 탄소는 지상 발생 탄소 배출보다 지구온난화에 3배 가량 영향을 미칩니다.


기대효과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5조 달러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기후재정에 투입하면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COP29에선 선진국이 ‘손실과 보상’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기후재정으로 2035년까지 매년 30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들의 군사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 약속은 또다시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선진국들의 모임이라는 G20이 올해에 쓰고 있는 군사비가 3조 달러에 육박합니다. 국제 평화와 안정을 지키라며 특권을 누려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이 쓰는 군사비가 올해만도 2조 달러가 넘습니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는데 군비경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냄비 속의 개구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외계인의 침공에 해당하는 모두의 위협


우리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지구촌의 나라들이 서로 다투다가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같이 맞서 싸우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오늘날 외계인의 침공에 해당하는 모두의 위협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 회의의 약어가 COP입니다. 경찰이라는 뜻입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우리 청년들과 청소년들도 여러분이 어리고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꿈을 꿀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미래 세대를 걱정한다고 합니다. 그럼 제발 군비경쟁의 불부터 꺼주십시오. 갈수록 거주불능이 되고 있는 지구를 둘러싼 허망한 경쟁을 멈추고 살만한 지구를 만드는 데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쯔쯔, 저러니까 내가 기후협약에서 탈퇴한 거야.”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그레이스 리의 연설 내용을 접한 타럼프는 혀를 차면서 SNS에 글을 올렸다. “기후 사기꾼들이 급기야 신성한 국가안보까지 건드리고 있다. 가짜뉴스에 현혹된 젊은이가 COP를 오염시키고 있다. ‘힘에 의한 평화’만이 당신들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북한 김정훈 위원장은 “조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미국은 대만 해협이 위기 상황이면 전투기, 핵항모 등 군사력의 입출입을 남한에 요구해 왔다. 최서희 대통령은 미국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순간 최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이 오는데...



중국과 대만의 해상 대치 이틀째. 중국에 가까운 대만의 섬, 금문도에 있는 진먼대 류 교수는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했지만 공항은 폐쇄된다. 대만 라이창더 총통이 내린 비상명령권 발동에 대해 입법원의 승인 선거로 대만 정국은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나눠져 혼란스럽다. 대만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수백 기의 드론이...



대만 중국 군사 충돌 위기 리얼픽션. 이 시각, 한 일간지 신문의 편집국장, 기후팀장, 국방팀장이 회사 앞 술집에 모였다. 당초 초대형 태풍 발생 급증을 다룬 기사가 머리기사였다가 급하게 바뀌었다. 중국이 대만 땅 진먼다오에 샤진대교를 연결하겠다는 발표와 대만이 실력 저지하겠다는 소식으로 교체되었다. 중국이 회색지대 전술로 부전승을 노렸다며 중국의 의도, 대만의 응전, 미국의 개입을 조망한다.


평화연구소 소장 이한결이 2005년 미국 펜타곤을 방문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대만 문제를 논의하며, 제주 해군기지와 평택 미군기지 이전 갈등 속에서 한국의 안보 딜레마를 고민한다.


중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만의 국립진먼대에서 간담회가 열렸다. 이한열은 ‘민간 차원에서라도 양안의 긴장 완화를 중재하고 싶다’고 발표한다. 이에 대만 쪽은 낙담과 탄식뿐이다. 중국쪽 샤먼대에서도 의견을 밝혔지만 중국쪽은 양안 문제가 국제화되는 걸 꺼린다. 한국 사람 이한열은 왜 이 주제를 꺼냈을까?


중국과 대만의 학자들과 대만 해협을 둘러싼 토론에 이어,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군비 증강을 요구하고 있고, 반면 러시아와 중국, 조선은 군비를 줄이거나 현상 유지를 말한다. 2026년 미국, 중국, 대만 모두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로 진입하고 …


중국과 대만 사이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돌핀스 포럼’이 개최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민진당의 ‘대만미래결의문’을 살펴보며, ‘미래 세대의 선택’을 화두로 던지고 중국과 대만의 입장을 알아보고 교류 협력의 타협점을 이야기한다.



ree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댓글

별점 5점 중 0점을 주었습니다.
등록된 평점 없음

평점 추가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