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재생에너지 분산형 기술로, 남북 에너지 협력 다시 시작
- planetssong03
-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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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월 23일
2025-05-21 김성희 기자
남북 간 기존 에너지 협력은 번번이 좌초됐지만,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협력의 돌파구가 된다. 북은 에너지 빈곤과 기후위기에 처해 있다. 신재생에너지 협력은 기술 지원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기후 안보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남북 에너지 협력, 군사 목적 전용 가능성 우려로 번번이 좌초
남북 에너지 협력의 역사는 정치와 군사, 제재와 여론의 장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초되어 왔다. 특히 기존의 에너지 협력 사업들은 석유나 전기 등 직수지원 방식이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속에서 추진이 어려웠고, 남한 내에서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웠다. 재생에너지는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 수 있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은 군사 전용 가능성이 낮고, 분산형·비집중형 기술 기반 덕분에 민간 활용도가 높으며, 인도주의적·민생협력의 성격을 띤다. UN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7번째 항목은 "모두를 위한 현대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보장"이다. 이 목표는 에너지 접근권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고, 특히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에 대해 에너지 기술과 기반시설을 확대할 것을 강조한다. 북한과의 재생에너지 협력은 단순한 환경사업이 아니라, 인권, 민생, 평화가 교차하는 접점에서 국제사회의 공감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사안이다.
“공해 없는 도시” 북한을 뒤흔드는 기후위기 실상
북한은 오랜 경제난과 낙후된 산업 구조로 인해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는 남한의 1970년대 후반 산업화 시기와 유사한 상태로 평가된다. 초기부터 조림사업과 공원 건설 등 환경정책을 추진해 온 북한은 ‘공해 없는 도시’ 등을 표방하며 환경관리에 관심을 보여 왔으나, 중공업 중심의 경제정책과 무분별한 광물 채취, 노후화된 산업설비로 인해 대기와 해양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제련·제철 공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폐기물과 오염물질이 정화 없이 방류되며 동해와 서해 일대의 해양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다. 미국국가정보국은 북한을 ‘기후변화 대응 취약 우려국’으로 지정했으며, 글로벌 위험지수(INFORM)에서도 북한은 191개국 중 65위(4.3점)로 위험 수준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기후위기와 맞물린 북한의 에너지·식량·보건 위기는 정치적 불안정성과 국제적 갈등 가능성을 키우고 있으며,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관련 대응 차원에서 환경·에너지·자연재해 관련 법령을 총 29건 제·개정했다. 특히 전체의 72%가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북한이 기후변화를 국가의 생존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질적인 대응 역량은 취약하며, 기후변화에 따른 복합위기는 구조적 한계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북한 에너지 시스템의 한계와 공급 구조의 위기
북한의 에너지 시스템은 양적 부족과 질적 취약성이 중첩된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 자력갱생을 기조로 석탄(50.4%)과 수력(33.8%)에 의존하는 에너지 공급체계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으며, 전체 에너지 공급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2021년 기준 북한의 발전설비 용량은 약 822.5만kW로, 이는 한국의 1억 3402만kW에 비해 6.1% 수준에 불과하고, 연간 발전량도 한국의 4.4% 수준에 그친다. 수력발전은 빈번한 가뭄으로 불안정하고, 석탄화력발전소는 노후화와 고장으로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태다. 특히 석탄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채탄 장비와 운송 인프라의 노후화, 자본 부족으로 인해 저질탄 사용이 불가피해지면서 에너지 효율 저하와 대기오염이 심화되고 있다. 주요 오염원은 제철, 화학, 시멘트 등 중공업 부문에 집중되어 있으며,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환경오염 역시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민생 에너지 빈곤이 부르는 그림자
북한의 에너지 소비는 단순한 양적 부족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다. 연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0.291TOE로 남한의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그나마 대부분이 취사(36%)와 난방(51%) 등 일상적 생존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 전기나 가스 등 상업에너지 시스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서는 전체 가정용 에너지의 65%가 구멍탄, 땔감용 나무, 신탄류 등 전통적인 생물성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 연료는 동일한 열량을 내기 위해 석유나 석탄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에 달하는 미세먼지(PM), 탄화수소,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이는 북한 내부의 대기오염을 넘어 남한과 일본 열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경을 넘는 환경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08년 기준 북한의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은 각각 남한보다 2.6배, 2.3배 높았고, 이는 중국발 오염물질과 뒤섞여 수도권 대기질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나무 연료 소비의 급증은 산림 황폐화와 토양 유실, 수질 오염을 초래하며, 이는 결국 백두대간 산림 생태계의 붕괴, 대형 산불, 수계 감염병 확산으로 연결된다. 더욱이 북한 가정의 에너지 소비는 1985년에 비해 67.2% 감소한 상태이며, 당시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만도 약 350만5천TOE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제는 북한 주민의 일상적 에너지 사용을 단순한 인도주의 문제가 아닌, 기후위기와 안보 리스크, 보건 위협이 중첩된 복합 현안으로 인식하고, 재생에너지 기반 기술 이전과 에너지 인프라 협력을 통해 민생에너지 체계 전환을 구조화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는 곧 우리의 숨결, 우리의 하천, 우리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
남북 재생에너지 협력 가능성의 희망

북의 에너지 산업은 석탄, 석유, 전력, 설비 전반에 걸쳐 심각한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석탄은 무연탄과 갈탄을 합쳐 205억 톤에 이르는 매장량을 보유해 남한보다 압도적 자원을 갖추고 있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 외화벌이를 위한 수출 위주 정책과 배급체계 붕괴로 내수 공급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김정은 정권 이후에는 민간 자본(‘돈주’) 중심의 무연탄 수출 인프라가 형성됐으나, 2017년 유엔 안보리 제재로 수출이 전면 차단되며 생산과 유통이 급격히 위축됐다. 석유 부문도 1990년 250만TOE였던 수입량이 2019년 53만TOE(21%)로 급감했고, 현재는 중국 송유관에 전량 의존하고 있다. 전력 부문에서는 수력 대 화력 비율이 6 대 4로 유지되나, 대부분의 발전소는 중~하 수준의 노후 설비로 교체가 시급하며, 소형 수력발전소의 상당수는 유지관리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동부망과 서부망의 분리 운영으로 전력 수급의 비효율성도 심각하다. 그나마 조력발전은 해주만 일대에 4개 소가 가동 중이고, 북한은 7차·8차 당대회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남북 협력의 기술·정책적 접점을 시사한다. 2019년에 에너지기술연구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재생에너지 이론적 잠재력은 남한과 큰 차이가 없으며, 조력, 소형 수력, 태양광 등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향후 협력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평가된다. 전력망 보수, 발전설비 교체, 기술 이전과 같은 인프라 협력을 통해 북한의 에너지 체계를 구조적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전략에 부합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북은 기후위기를 국제 협력과 외교 채널로 활용하고 있어
북한은 기후위기 대응을 국제 협력의 창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탄소 크레딧과 기후 금융을 확보하고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와의 협력을 통해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국제 탄소시장에 참여해 외화를 합법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수단으로 CDM(청정개발체제) 사업을 활용해 왔다. 실제로 2016년 UNFCCC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유엔 탄소시장에서의 탄소 크레딧 판매를 통해 연간 약 5백만 달러(한화 약 66억 원)의 수익을 희망한 바 있다. 북한은 체코, 영국 등 외국 기업과 협력하여 수력발전과 메탄가스 관련 총 8건의 CDM 사업을 유엔에 등록하였으며, 이들 사업은 국제사회의 재정 및 기술 지원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북한은 유엔기후행동 정상회의(2019)에 대표단을 파견해 선진국의 책임 있는 기후 금융 이행을 촉구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덕적‧윤리적 책임을 강조한 바 있으며, 자국 내에서도 환경보호와 재생에너지, 산림, 에너지 관리에 관한 법제도 강화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 역량을 제고하고 있다.
에네르기법에서 태양광 보급까지, 진화하는 북의 재생에너지

북한은 1990년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은 이후, 국가 차원의 대응체계를 구축해 왔다. 1998년 제정된
'에네르기관리법'은 지역의 수력과 풍력 자원을 활용한 중소형 발전소 건설을 장려하며, 해당 전력의 수요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어 2007년 '중소형발전소법'을 통해 발전소의 역할과 운영 기준을 보다 명확히 했고, 2013년에는 '재생에네르기법'을 제정해 태양광, 지열, 풍력, 바이오가스 등의 에너지 설비 설치와 이용을 허용하였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재생에너지 확산에 박차를 가해 왔다. 가정용 태양열 온수기, 농장 단위의 태양광 전력 설비, 개인용 풍력발전기 등이 점차 보급되었고, 국가 차원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 태양빛전지제작소,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 등이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공공시설과 살림집에 결합하는 정책도 추진되고 있으며, 농촌지역에는 주민용 연료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려는 시도가 법적으로 명문화되었다. 북한은 기술을 보급할 뿐 아니라 이를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으로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 기반이 전무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북의 재생에너지 발목 잡는 국제 제재와 인프라 부재
그러나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법적 기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확대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크다. 태양광 패널과 일부 설비는 자체 생산하고 있으나, 태양광 셀과 같은 핵심 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제재가 기술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 내 재생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했지만, 전체 에너지 소비 중 비중은 오히려 2015년 14.5%에서 2019년 11.4%로 하락하는 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도시와 농촌 간 격차도 심각하다. 2014년 기준 난방과 취사 용도로 전기·가스·중앙난방을 사용하는 가구는 도시에서는 각각 12.4%였지만, 농촌은 0.5%, 2.4%에 불과했다. 2017년 청정연료 사용 비율도 도시 15.8%, 농촌 1.5%로 집계됐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기술보다 에너지 인프라·송배전망·저장장치(ESS)·유지관리 등 시스템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북한의 과학기술 역량은 연구개발 수준에서는 일정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이를 상용화하고 대중화하기 위한 제도적 투자와 국제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술보다 제도에서 시작해야 할 남북 기후공동체의 출발점
현재의 대북 제재 상황에서는 대규모 설비 제공이나 장비 직접 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남북 간 재생에너지 협력은 기술 이전이나 설비 건설보다도 제도 설계, 연구 협력, 정책 자문, 인력 양성 등 구조적 협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태양광 분야는 북한 내 가정과 농장에서 활용도가 높아 소규모 분산형 협력사업이 가능하며, 기술 교육과 표준화 지원도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바이오매스는 초기 비용이 크지만, 농촌 폐기물을 활용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분야다. 풍력의 경우, 북한은 이미 국제기구와 협력 경험이 풍부하고, 풍력 자원도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점에서 향후 남한 기업의 진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재생에너지는 북한 주민의 삶과 직결된 인권의 문제이자, 향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직접 교류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는 국제기구, 제3국 기관을 통한 간접 협력과 함께, 북한의 정책 동향과 기술수준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협력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기술은 한계가 있지만, 협력의 상상력은 제한될 필요가 없다. 한반도 기후공동체의 씨앗은 바로 이 재생에너지 협력에서 틔울 수 있다.
북한도 이미지와는 달리 환경오염국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