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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풍경ㅣ우리의 1980년대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2025-09-05 최은

"시리즈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의 면면과 인물들, 다양한 이야기들과 후일담을 다룬다. 세대와 사람, 폭력, 이념과 주요 논쟁들, 전학련과 전대협, 미국과 반제국주의운동, 녹화사업과 군대, 북한과 통일운동, 공산권 몰락 이후, 열사들 이야기, 시위 전술…. 바라건대, 사사로운 야사(野史)나 인상비평 수준의 사회학적 보고서 정도로 봐 주시길."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 넘게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나는 정청래라는 정치인과 아무런 인연이 없다. 물론 그가 나온 방송이나 유투브를 본 적도 많고, 그가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에 꽤 모범적인 활동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구체적인 인생 이력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고, 지금도 잘 모른다. 다만 최근 그가 여당의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후, 후문처럼 들린 얘기에 속된 말로 ‘긁혔다.’ 


그러니까, 민주당과 그 근처 쯤에서 그의 당선을 두고 ‘어디 족보도 없는 놈이 당대표를’ 뭐 이런 소리를 공공연히 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이른바 SKY 출신도, 전대협 간부도, 하다못해 소속 대학의 총학생회 출신도 아니라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한다.(대학 노래패 출신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처음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기가 막혔다. 한국 사회의 변혁을 위해 그 세월을 싸운 세대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과거 전대협 집행부 중 지금 중량감 있는 정치권 인사로 생존한 이가 몇이나 되는가?


결국 문제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오해와 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운동이 그저 전국적인 학생자치조직을 만들고, 간부가 되어 집회를 주도하고, 정국에 파장을 던질 만한 사안을 중심으로 데모를 주동한 정치지망생들의 연대기였다면(혹은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정. 하지만 나는 그 수준이 대단치 않았더라도, 분명히 한국 사회의 변혁이라는 큰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행동했던 무수한 청년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운동이 당대에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지만, 이후 40여년 간 우리 사회를 바꾼 가장 큰 계기였다고 본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의 면면과 인물들, 다양한 이야기들과 후일담을 시리즈로 다뤄보고자 한다. 거칠게나마 주제로 삼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세대와 사람, 폭력, 이념과 주요 논쟁들, 전학련과 전대협, 미국과 반제국주의운동, 녹화사업과 군대, 북한과 통일운동, 공산권 몰락 이후, 열사들 이야기, 시위 전술…. 대략 10여 회 정도라면 이 시대와 운동에 대한 소묘(素描)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바라건대, 사사로운 야사(野史)나 인상비평 수준의 사회학적 보고서 정도로 봐 주시길. 아울러, 심각한 이야기는 지양(止揚)하고 좀 우스운 얘기도 섞어 볼 생각이다.

1987년 7월 9일 시청 앞 보행로에 독재를 규탄하는 문구가 붉은 색으로 쓰여 있다. 사진_서울역사아카이브,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84-1988』(2019)
1987년 7월 9일 시청 앞 보행로에 독재를 규탄하는 문구가 붉은 색으로 쓰여 있다. 사진_서울역사아카이브,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84-1988』(2019)

민주시민이자, '내부 망명자'로서 화자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이 글을 쓰는 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운동을 평가하고, 인사들을 품평할 수 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 결국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거 자신이 다녔던 학교나 특정 정파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굳이 밝혀두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본인의 출신 학교는 수도권의 특정 대학(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학교 중 하나)이었다는 점. 그래서 지역적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는 데는 부족하다. 동시대라 하더라도 부산이나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고, 기사나 소문, 전언(傳言)으로 건너 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일종의 ‘문자중독자’로서 80년대 내내 매일매일 일간지에 코를 박고, 작은 기사들부터 훑어보았고, 시대상에 대해 추가해야 할 정보들에 대해서는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 1980년대편』을 참조한다는 점을 첨언한다.


둘째, 정파적으로 말해서 주류보다는 비주류였고, 심지어 나중엔 그 조직마저 탈퇴한 소위 독고다이였다는 점. 그래도 자부할 만한 점은 여러 정파 혹은 그룹들의 논리와 전략을 이해하고자 다양한 문서와 자료들을 검토한 경험이 많았다는 것. 당시 특정 대학의 언론사 기자로서 학생운동 특집기사를 연재하면서 이런저런 온갖 자료를 섭렵했었다. 지금 그 기사들을 보면 정말 이불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유치찬란할 뿐이다. 더군다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른바 사투(死鬪가 아니라 思想鬪爭)과정에서 얼마나 살벌했던지, 아마 당시 운동권 출신이라면 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셋째, 80년대 끝자락엔 출신 대학의 총학생회에서 일하면서 지하 정파모임을 주재하기도 했고(진짜 지하실에서 주로 회의했다), 팔자에 없는 대중집회의 연사로서, 교투(교문돌파투쟁)와 가투(가두투쟁)를 기획하고 지휘한 경험이 있다는 점. 그러다 보니 구속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은 여러 번 이었지만, 운 좋게 빵에 간 경험은 없다. 대신에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연행되어 옥에 갇히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고, 90년 10월에 터진 소위 ‘윤석양이병 폭로사건’과 관련되어 공개된 보안사령부의 블랙리스트에 희미한 가명으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저 민주시민으로서, 어떤 당에도 가입하지 않은 ‘내부 망명자’에 불과하다. 선거 때면 꼬박꼬박 투표하고, 간혹 좋은 정치인이나 단체에 후원하는 것으로 사회적 의무를 다할 뿐이다. 그토록 미워했던 특정 정파(主로 시작하는)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이 없다. 아마도 대학 졸업 이후 사회운동을 뛰어들고, 정치권과의 인연으로 엿보게 된 현실 정치판에서 맛본 쓰디쓴 경험들 속에서 나의 무능력과 부도덕성에 대해 크게 자각(自覺)하며 얻은 소중한 관점 탓일 것이다. 세계를, 인간을 변혁한다는 것은 조지프 콘레드(Joseph Conrad)식으로 말하자면, ‘어둠의 심연’을 마주하고도 휩쓸리지 않고 건너갈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하는 법이다. 물론 나에겐 그런 용기와 지혜가 없었다.


도처(到處)에 심연(深淵)이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우리의 1980년대’를 기억하고 써내려갈 뿐이다. 모든 평가들은 내 개인적인 관점일 뿐이다. 전범(典範)을 찾자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나의 1960년대』(돌베개, 2017)일 것이다. 그가 일본 전공투운동을 기록하고 물리학자로서 과학기술운동에 헌신한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누군가 그이만큼 뛰어난 분이 이 주제에 대해 발표할 날이 오길.


한때, 나는 어느 시인의 팬이었다.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가, 치과의사로 일하던 그가 발표한 시집의 이름은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였다. 너무 멋있고, 울림 있었던 그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마음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후에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충북도지사가 되었다. 그는 오송 참사 당시 술판으로 논란이 되었고, 돈 봉투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하고 내란을 옹호한다.


도처(到處)에 심연(深淵)이다. 그저 이름 석 자 붙들고 사는 것조차 어려운 법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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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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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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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김영환...정말 도처에 심연 입니다. 쉽지 않은 시도 인데 기대와 함께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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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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