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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수도권, 소비도시에서 생산도시로

2025-05-15 김성희 기자

수도권은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면서도 생산은 외부에 의존해 에너지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서울·경기·인천은 각각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기술·제도·시민 실천이 결합된 도시형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수도권은 이제 에너지 소비지역이 아닌 지역이 주도하는 ‘책임 있는 생산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감축과 생산, 책임지는 도시로


수도권은 그동안 대한민국 에너지 체계의 소비 중심축이었다. 에너지 다소비 구조와 낮은 자립률, 장거리 송전에 따른 갈등 비용까지 고려하면, 지금의 수도권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도시가 아니다. 전기를 쓰되 만들지 않는 도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책임이다. 서울·경기·인천은 각각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에너지 전환 전략을 수립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생산과 감축을 동시에 실현하는 자립도시로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주민들이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를 자각하면서 도시 전환의 문을 열었듯, 수도권도 이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축과 생산은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감축은 도시가 져야 할 기후책임이며, 생산은 그 책임을 지역 안에서 실천하는 방식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도시의 책임을 다시 묻는다. 수도권이 진정한 기후 리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이제 소비 중심을 넘어 생산과 감축, 정의와 참여를 함께 책임지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전기는 쓰지만 만들지 않는 수도권


서울·경기·인천으로 구성된 수도권은 단지 인구가 밀집된 생활권을 넘어, 우리나라 전력 소비의 중심지다. 특히 서울에서만 사용되는 전력은 연간 약 4만 7384GWh로, 이는 전국 전력 사용량의 약 9%에 해당한다. 면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토의 0.6%에 불과한 도시가 이토록 많은 전기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경기도와 인천까지 포함하면, 수도권 전체가 전국 전력의 약 25%를 사용하는 구조다.

그러나 서울의 전력 자립률은 고작 9%에 불과하다. 사용되는 전기의 91%는 서울 바깥 지역, 특히 인천·충남·강원 동해안 등지에서 생산되어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공급된다. 인천에는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있고, 충남은 전국 석탄화력 발전량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강릉·삼척 등 동해안 지역에도 신규 석탄발전소가 건설되며 수도권 전력 공급의 기지가 되고 있다.

이처럼 생산은 지역에서, 소비는 수도권에서 이루어지는 구조는 에너지 정의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를 낳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따르면, 수도권 송전을 위한 계통망 투자에 지난 10년간 2조 3000억 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수도권이 자립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막대한 인프라 비용과 지역 간 에너지 갈등은 앞으로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도시 내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의 ‘현지 생산-현지 소비’ 구조 전환을 제시한다. 하지만 서울의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자립률은 1% 미만에 머무르고 있어, 냉방·난방·교통·산업 공정 등 전력 수요 대부분을 외부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 수도권도 더 이상 전력을 ‘당연히 공급받는’ 소비지일 수만은 없다. 이제는 감축과 자립이라는 책임을 함께 감당해야 할 ‘생산도시’로의 전환이 시작되어야 한다.


탄소 감축, ‘줄이는 도시’가 먼저다


서울시 2050 온실가스 감축 추진계획 비전 및 목표. 사진 서울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서울시 2050 온실가스 감축 추진계획 비전 및 목표. 사진 서울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수도권의 에너지 전환 전략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생산보다 감축이다. 감축 없는 자립은 허상이며, 도시가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다면 어떤 재생에너지 확대도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않는다. 이에 서울, 경기, 인천은 각각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본격적인 실행에 돌입했다.

서울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7.8%, 2033년까지는 49.6%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건물, 수송, 폐기물, 에너지 등 5대 분야별로 세부 감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특히 공공 및 민간 건물의 그린리모델링, 제로에너지건축물(ZEB) 확대, 고효율 보일러 보급과 같은 건물부문 에너지 효율화 정책이 핵심 전략이다. 수송 부문에서는 내연기관 차량 퇴출, 전기·수소차 보급, ‘기후동행카드’와 같은 시민 참여형 교통전환 정책도 병행된다.

경기도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 2033년까지 45%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도내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물과 수송 부문에 각각 43.5%, 26.3%의 감축률을 설정했으며, 농축산과 폐기물 분야에서도 각각 48.6%, 37.5%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는 ‘Switch the 경기’라는 전략 하에 지역 RE100 컨설팅, 에너지협동조합 육성, 건물에너지 총량제 시범도입 등 지역 주도형 감축모델을 확산 중이다.

인천광역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에너지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는 도시지만, 도시 내 감축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인천시는 2030년까지 BAU 대비 31.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45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선언했다. 산업단지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연료전환 및 고효율 공정 전환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중교통 전환, 도시숲 확대 등 도시 구조 전반의 탈탄소화가 추진되고 있다.

모두 에너지 생산 이전에 '감축'이 우선이라는 인식 아래, 정량적 감축 목표 설정과 실행 수단 다변화를 통해 도시형 감축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감축정책의 실행력은 시민 참여와 지역 특화 전략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제도 설계뿐 아니라 실행 주체인 시민·기업·지방정부의 역할을 연결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감축에 참여하면 돌려 받는다


기후행동 기회소득 포스터. 사진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기후행동 기회소득 포스터. 사진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도시 전환은 자발적 참여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감축 목표는 명확하지만, 시민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없다면 실천은 지속되기 어렵다. 경기도는 이 인식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전국 최초로 ‘기후기회소득’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인센티브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이 시민의 권리이자 역할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다. ‘기후기회소득’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행동, 예컨대 자가용 운행 감축, 가정 내 에너지 절약, 대중교통 이용 등 녹색생활 실천 활동에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제도다. 전년도 대비 자가용 운행거리를 줄이면 자동차 탄소포인트가 지급되고, 전기·수도·가스 사용량을 줄여도 가구 단위의 감축률에 따라 인센티브가 돌아간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기도는 이러한 참여 기반을 확산시키기 위해 에너지 절약 실천가와 캠페인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기후행동을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과 조직 기반을 함께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감축은 고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감축은 기회’라는 새로운 전환 프레임을 만드는 이 실험은,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와도 궤를 같이 한다. 서울시는 일정 금액의 정액 교통비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교통 감축의 실질적 보상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있다.

이처럼 정의로운 전환이란, 감축과 보상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감축 실천에 보상이 따라올 때, 감축은 더 이상 시민에게 요구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실현하는 ‘기회’로 자리 잡게 된다. 경기도 기후기회소득은 바로 그 전환점에서 탄소중립 사회의 참여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기술이 보여주는 도시의 전환


서울에너지드림센터 전경. 사진 한국관광공사
서울에너지드림센터 전경. 사진 한국관광공사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에너지드림센터는 수도권이 ‘에너지를 소비만 하는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건축물이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에너지 제로 공공건축물로,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건물 스스로 생산한다. 외부 전동 블라인드, 일사량을 조절하는 경사진 창, 바람개비형 반사벽 등 건축적 요소를 통해 에너지 소비의 70%를 줄이고, 나머지 30%는 태양광과 지열냉난방으로 자체 충당한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도시가 어떻게 에너지를 덜 쓰고,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살아 있는 시스템’이다. 센터 내부에는 제로에너지 건축의 비밀을 모형과 시공과정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공간, 정전 상황을 체험하며 위기 대응법을 배우는 블랙아웃존 등이 마련돼 있다. 전기버스를 타고 월드컵공원 주변의 재생에너지 시설을 둘러보는 ‘에코투어’도 운영하며, 에너지 전환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체험하고 이해하도록 설계돼 있다.


주민의 생활 속에서 만들어 가는 에너지 자립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사진 서울시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사진 서울시

서울 동작구의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은 시민의 실천이 어떻게 도시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절전소’를 만들었고, 햇빛발전협동조합을 결성해 태양광을 설치하며 에너지 자립을 위한 실천에 나섰다. 에너지 강사를 양성하고, 에너지 슈퍼마켓을 열며 생활 속 전환을 실현한 이 마을은,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의 핵심 파트너가 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12년부터 251개소의 에너지자립마을을 조성해 스마트계량기(AMI) 설치, 옥상 쿨루프 설치, 에너지슈퍼마켓 운영, 에너지탐방길을 통한 마을관광 활성화, LED교체에 따른 에너지절감비용으로 경비실 직원 임금인상 등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에너지드림센터가 보여주는 기술 기반의 전환, 성대골이 실천한 생활 기반의 전환은 수도권이 ‘생산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양날개다. 시민이 전기 생산과 소비 구조를 이해하고, 기술이 그 실천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에너지 자립도시는 현실이 된다. 수도권이 지금 할 일은 거창한 신기술보다, 일상의 구조를 되돌아보고 바꾸는 일이다. 기술과 제도, 시민의 실천이 맞물릴 때, 수도권도 마침내 '전기를 만드는 도시'로 전환할 수 있다.


수도권의 유일한 행정이 만든 전환의 현장, 노원구


노원구 한 시민이 전기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 지역연합신문
노원구 한 시민이 전기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 지역연합신문

서울 노원구는 2024년 10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탄소중립 선도도시 조성사업’의 수도권 유일 선정 지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제주특별자치도, 충남 당진시, 보령시와 함께 2030년까지 탄소중립 도시 모델을 구축하는 이 사업은 지역과 민간 중심의 이행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한다.

노원구는 특히 건축 분야의 탄소중립 전환 전략을 핵심 정책으로 제시하며 ‘Rebuild First 탄소중립 신도시 노원’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노원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68%가 건물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에 따라 공공건축물 제로에너지건물(ZEB) 로드맵을 수립해 2024년부터 연면적 1500㎡ 이상 공공건물에 ZEB 4등급 의무화를 시행 중이며, 2028년까지는 3등급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이는 국가 로드맵보다 1~2년 앞서는 수치다.

‘태릉어울림센터’와 ‘중계1동 주민센터’ 등 주요 공공건축물에도 이미 이 기준이 반영되고 있다.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도 2024년부터 연면적 1000㎡ 이상, 공동주택 30세대 이상 건물에 ZEB 5등급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2030년부터는 500㎡ 이상 민간 건물에도 ZEB 4등급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에는 민간 분야 최초로 ZEB 5등급이 적용된다.

도심형 태양광 보급, 분산형 전원 도입, 재개발지구 에너지 효율 개선도 포함한 이 계획은 단순한 건축 기준 강화에 그치지 않고, 정비계획 인센티브 제공, 시민참여형 탄소배출 크레딧 플랫폼, 탄소 숲 조성, 발전수익 공유형 SPC 등 참여 기반 확대 전략까지 포함한다. 노원구는 현재 서울시, 한국전력공사, 서울과기대, 민간 에너지기업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산·학·민 협력체계를 구축해 탄소중립 모델을 실행 중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는 도시의 전환


에너지드림센터가 기술 기반의 전환을, 성대골이 생활 기반의 실천을 보여 주었다면, 노원구는 행정과 제도가 도시 전환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를 입증한 모델이다. 여기에 경기도의 기후기회소득처럼, 감축을 실천하는 시민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정의로운 전환 구조가 더해진다면, 수도권은 기술·시민·제도·보상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생산 도시’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그려나갈 수 있다. 지금의 시도는 감축과 자립의 기초를 놓는 과정이자 탄소중립 도시로 향하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다. 기후위기 시대, 시민과 지역이 함께 움직이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쌓아간다면, 수도권은 감축을 넘어 생산까지 책임지는 진정한 기후 리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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