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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풍경ㅣ우리의 1980년대 ④ 논쟁의 시대가 개막되고

2025-11-14 최은

80년대 학생운동 NL PD논쟁, 1980년대 학생운동의 사상과 이념을 살펴본다. 민주·민족·민중의 삼민 지향과 NL-PD 논쟁, 그리고 복합적이었던 당시 청년들의 고민과 일상을 당사자의 시선으로 회고한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 넘게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오버하지 마시라


그렇다면 이렇게 격렬한 시위의 나날을 보낸 80년대의 청년들은 도대체 무슨 사상과 이념을 가졌던 것일까? 당시의 군사정권에서 했던 얘기는 공산주의에 경도된 극소수 극렬 분자들이 암약하는 거대한 세력이 순진한 청년들을 대거 세뇌했다는 식이었다. 이런 레토릭을 극우파 인사들 몇몇이 수년째 줄기차게 주장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인다. 개중엔 당시 학생운동에 깊이 몸담았다가 후에 변절(본인들은 개전, 혹은 반성이라고 하겠지만)한 분들도 있고. 그런 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오버하지 마시라’는 말씀뿐이다.


당대의 우리는 어떤 주의자였던가


물론 굉장히 많은 활동가들이 맑스 레닌주의 서적을 읽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중국의 모택동사상과 중국혁명사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사상에 대해 알고 싶어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이른바 원전(『자본론』에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논설들까지)과 중국혁명사를 애독했고, 주체사상에 관한 지하 문건들 역시 탐독해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맑스 레닌주의자가 되거나 마오이스트, 혹은 주체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이른바 좌파 사상의 세례가 있었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당시 아직 굳건해 보였던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20대라는 세대적 특성은 정권이나 체제가 강력히 금기시하는 이른바 ‘불온사상’에 대해 열려있게 마련이다. 그토록 강고했던,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런 위험성이 더 그런 호기심과 탐닉을 가져왔던 게 아닐까?


민주, 민족, 민중


이런 식의 질문. 즉 당대의 우리가 어떤 주의자였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이중의 답변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적 규정으로서 80년대 청년들이 지향한 사상과 이념의 틀은 지극히 서구적인 의미의 민주주의와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의 성원으로서 민족주의, 그리고 당대의 계급적 격차에 대해 예민한 민중주의(인민주의)였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민주, 민족, 민중’ 그래서 보통 삼민(三民)이라고 표현했다.


1984년, 현재 국무총리인 김민석이 의장이었던 전학련과 쌍을 이룬 삼민투(三民鬪)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문화원점거투쟁으로 유명했던 이 조직을 이끈 두 인물이 현재 민주당 삼선의 중진의원인 신정훈과 국민의힘 소속 당협위원장인 함운경이다. 80년대 내내 거의 모든 학생집회에서의 최대 요구는 이 세 가지 지점에서 만난다.


80년대 내내 학생집회의 최대 요구는 '민주, 민족, 민중' 세 가지 지점에서 만난다. 사진_ 1985년 국립영화제작소가 생산한 대한뉴스 제1550호 영상에서 캡쳐, 국가기록원
80년대 내내 학생집회의 최대 요구는 '민주, 민족, 민중' 세 가지 지점에서 만난다. 사진_ 1985년 국립영화제작소가 생산한 대한뉴스 제1550호 영상에서 캡쳐, 국가기록원

NL-PD논쟁, 현 체제를 대체할 새 시스템은?


하지만, 학생운동 진영의 핵심에서 벌어진 논쟁들은 이러한 삼민적 차원을 넘어서서 진행되었다. 특히나 후대에 마치 운동 전체를 대변했던 것처럼 전해지는 NL-PD논쟁의 핵심은 현재의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시기적으로 1987년부터 1990년 즈음까지, 이 논쟁은 대단히 격렬했다.


이 논쟁만 아니었다면, 백년지우로 지낼만한 친구와 지독하게 싸우다가(말싸움으로 시작했다가, 멱살잡이로 끝나는) 지금껏 소원해진 벗들을 둔 경험이 없는 활동가가 없을 정도로. 30년 넘게 흐른 지금에 와서, 누가 옳았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아직도 술자리에서 그런 논쟁으로 안주거리를 삼는 게, 주식이나 골프, 아파트에 대해서 논하는 것보다 나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논쟁 혹은 분열의 여파는 199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두 그룹은 학생운동의 전성기가 지나고 운동의 주도권이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평행선을 그리게 된다.


전투적 민주주의자이지만 하드락을 논하던 시대


더군다나 복잡한 문제는 그런 논쟁 안에 있던 우리가 품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실로 복합적이었다는 점이다. 당대의 한국자본주의가 세계 체제 안에서 체급을 불렸듯, 우리의 갈망 역시 대단히 다양하게 방사하고 수렴되었다. 한편으로 전투적 민주주의자로서, 당대의 군사독재정권을 대체할 민주정부 수립을 요구한다는 것은, 부르조아혁명의 대체재(고색창연한 표현이지만)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 국수주의에 가까운 강렬한 민족주의적 목표(대단히 우파적인)를 내세우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필자 개인에 빗대어 말하자면, 낮에 반정부 가두시위에서 어깨를 같이 한 친구와 밤에는 청량리 재개봉관에서 알쏭달쏭한 할리우드 영화나 <영웅본색>이나 <천녀유혼> 같은 홍콩 영화를 보면서 낄낄대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넌 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곤 했는데, 나는 도대체 그게 어때서라고 반문했었다). 언젠가 신촌 어딘가에서 짱돌을 날리던 어떤 쪼그마한 친구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타고, 세미나를 같이 하던 동지와 하드락에 대해 논한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학내 시위 10초 컷이던 시대가 지나고


물론 이러한 부조화(?)는 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심화된 일이다. 전사(前史)로서 6,70년대의 학생운동 특히, 75년 이른바 ‘긴급조치9호’시대 이후 1979년,12월까지 엄혹했던 시대 상황은 당대의 학생운동가들에게 견결한 희생을 요구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광주의 비극으로 끝나고 1983년 이른바 ‘유화조치’를 통해 일정한 훈풍이 불기까지, 거의 모든 학내 시위가 10초 컷으로 진압당하던 상황에서, 도서관 창틀에 자신을 매달아 시위를 지휘한 운동가들을 나는 지금도 탄복하고 존경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한 『학생운동의 시대』(도서출판 선인, 2013)나 서울대 무림사건의 주동자격인 김명인이 쓴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를 보다 보면, 1980년대 전반기까지 얼마나 지독한 탄압 속에서 학생운동가들이 살았는지 알게 된다.


진정한 논쟁은, 1985년 이후 NL세력, CA그룹, PD 정파가 생겨나면서부터


결국 당대의 질곡을 깨기 위한 논쟁의 시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80년대 전반기에 벌어진 이른바 ‘무림-학림 논쟁’이나 ‘깃발-반깃발 논쟁’같은 것들은 사실 서울대 운동권 내에서 선도투쟁과 준비론을 둘러싸고 벌어진(야구로 빗대어 말하자면, 착실히 번트를 대어 주자를 2루에 갖다 놓을지, 아니면 강공으로 득점을 기대해 볼지) 작은 싸움이었지만, 당대의 현실에서는 격렬한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논쟁은 1985년 이후, NL세력이 평정하고 여기에 CA그룹이 맞서고, PD 성향의 여러 정파가 생겨나면서부터다. 앞으로 몇 차례 이 논쟁에 참전한 세력들에 대해 얘기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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