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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풍경ㅣ유시유종, 내란 1년

2025-11-28 최은

12·3 내란 1년을 맞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전환점을 조명한다.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제7공화국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사회 저변의 갈등과 국제정세 속에서 창조적 개혁 주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 넘게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


옛 말에 ‘유시유종(有始有終)’이라 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뜻이다. 대개 이치(理致)가 그렇다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는 당위(當爲)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12·3 내란’이 어느덧 1년 전의 일이다. 정권이 바뀌고, 조사와 심판이 진행 중이다. 그 경과에 대한 여러 염려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맞물려 이런저런 얘기가 있지만, 유시민의 표현대로 ‘재래식 언론’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법원 개혁’을 포함한 내란 정리는 유종(有終)할 것이다.


지난 4월 11일 내란종식 긴급행동 보고 대회에서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_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노동과세계
지난 4월 11일 내란종식 긴급행동 보고 대회에서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_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노동과세계

다만,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건대, 이 1년은 우리 공화국 역사에서 결정적인 변곡점(變曲點)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칼럼들, 특히 80년대 세대를 다룬 일련의 글들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80년 광주와 5공화국 출범 이후 몇 번의 전환이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국면이었던 ‘87년 체제’의 등장과 91년의 퇴조, 97년 ‘IMF사태’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장시스템과 안정적인 정권교체에 기반한 민주주의 질서의 동거’를 기반으로 한국은 그럭저럭 선진국의 말석을 차지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은 우리가 80년대에 제기한 민족주의(내셔널리즘)와 민주주의, 그리고 민중주의(한때는 사회주의인 줄 알았던) 간의 길항(拮抗) 속에서 긴장과 해소, 고조와 퇴조를 겪으며 이루어졌다.


기적이 항상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2010년대 이후 우리가 겪고 있는 일련의 혼란들이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치러 낸 두 번의 탄핵과 정권 교체는 (그것을 아무리 촛불과 빛의 혁명이라 부르더라도) 정상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OECD국가 어디에서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냉소적으로 말해서, 아프리카 어디쯤에나 발생할 만한 일이었고, 다행히 아무런 인명의 희생이 없었기 때문에 ‘K-민주주의의 기적’이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할 뿐이다. 그리고 기적은 항상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결국 개헌(改憲)을 통한 제7공화국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도 2026년 지방선거로부터 2028년 총선 전이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한다. 불과 8년 전이었던, 17년 문재인정부 초기에도 이런 기대가 있었지만,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을 돌이켜 보건대, 개혁 주체의 명확한 플랜과 의지가 없는 전환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제도를 좀 손보고, 쓸 만한 사람으로 인재를 등용한다는 식의 미봉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검찰권력을 정상화시키려 등용한 윤석열이 괴물이 되고, 조희대와 같은 부역자가 개아리를 트는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사회 저변에 깔린 증오와 혐오의 단층선


특히나,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증오와 혐오의 단층선이다. ‘서울의 똘똘한 집 한 채’를 가진 계급과 그렇지 않은 계급 사이의 단층선뿐인가? 지역과 성(性)과 세대를 가르는 단층선은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적 정체성 간의 대화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이것은 그저 ‘한 줌 밖에 안되는’ 극우파의 발호라던지, 이단 사이비종교의 술수라 치부할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서울의 한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살아오면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건대, 이 단층선은 거의 절망적이다. 멀쩡한 허우대와 지식과 재력을 갖췄음에도(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가짜 뉴스와 편견으로 범벅이 된 환상을 가진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자 중의 하나가 3년간 권좌에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어떻게 색출하여 청소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가? 이런 종류의 ‘적폐청산’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역사적 전환으로서 개헌을 준비하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맞닥뜨린 역사적 전환의 목표가 그저 잘못된 제도나 ‘한 줌의’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지금 벌어지는 내란 청산은 시작에 불과하며, 역사적 전환으로서 개헌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모두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올해 출간된 여러 국제관계 도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헬렌 톰슨의 책 『질서 없음: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윌북,2025-원서는 2022년 출간)에서, 그녀는 오늘의 세계가 이미 'Disorder'하며, ‘에너지’, ‘금융’, ‘민주정치’라는 세계 체제의 3가지 축이 급격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가 겪어온 세계와 다르며, 도무지 알 수 없는 구렁 속에서 다음 Order로 갈 뿐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첨예한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할 것이다. 기존의 ‘개방과 혁신’전략이 다음 Order로 가는 데 계속 유효할 것인지, 미국과 중국의 세가 언제 기울지, 임박한 기후위기를 해결한 뾰족한 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바라건대, 지금 우리 공화국의 미래를 짊어진 개혁 주체들이 역사적 전환기 앞에서 토인비식으로 말하자면, 창조적 소수로서 도덕적 다수의 지지와 성원을 끌어낼 플랜과 의지로 무장하길. 그래서 적어도 다시 ‘탄핵의 강’을 건너는 일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시유종(有始有終)!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행복한 연말을 기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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