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큰 눈이 내리는, 대설
- hpiri2
- 8시간 전
- 8분 분량
2025-12-05 배이슬
대설 절기 농사 갈무리, 대설 절기를 맞아 기후변화로 달라진 겨울 날씨와 농촌의 풍경을 담았다. 눈이 보리의 이불이 되는 이치, 씨앗 갈무리와 메주 만들기, 풀로 생활재 만들기 등 농부의 겨울 농살림을 전한다.

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큰 눈이 내리는, 대설
대설은 큰 대(大) 눈설(雪)로 큰 눈이 내린다는 뜻이다. 대설 즈음에 겨울이 긴 진안은 종종 눈이 오기는 했지만, 대설은 이름과 달리 큰 눈이 잘 내리지 않는다. 소설과 동지 사이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되어 땅이 얼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때다.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초겨울 기온이 높아진 탓에 대설에야 소설에 만났던 추위가 든다.
종종 어느 해에는 대설이 되기도 전에 한낮의 기온이 여름날같다가 갑작스레 큰 눈이 내리기도 한다. 재작년에는 예기치 않은 때에 첫눈이라기에는 아주 큰 눈이 내려 차량 이동이 어려울 정도였던 날도 있었다. 이는 느슨해진 제트기류에 때문에 ‘평균’이라 이야기하던 통계를 벗어난 급작스런 변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20년 전 만해도 이미 날씨가 추워서 눈이 내릴 즈음일 텐데 근래에는 눈이 아닌 비가 추적추적 종일 내리는 날이 많았다. 대설을 며칠 앞두고 진안은 밤중에 작은 눈이 흩날렸다. 다른 지역들은 작년처럼 큰 눈이 내리기도 했다. 대설이 지나면 비보다 눈이 오는 날이 많았던 시절에는 곶감이 추위에 얼었다 녹아가며 마르고, 담가 둔 김장김치가 익지 않게 잘 보관되었다. 이르게 싹틀 준비를 마친 보리나 밀에는 두터운 이불이자 마실 물이 되었다.
대설부터는 이른 아침 바스락 살얼음처럼 언 흙을 밟아가며 겨울을 만나는 때다. 작년에 이어 한걸음 멀어진 겨울은 동지나 되어야 땅이 얼고 물이 얼지도 모르겠다. 입동을 지나면서부터 겨울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대설까지는 늦가을의 날씨에 가깝게 달라졌다. 겨울 지나 싹이 터야 할 겉보리가 한 뼘만큼 자라버려서 큰 눈 없이 맞을 겨울을 어찌 날까 걱정이 든다.
겨울이 짧아지는 추세니 가을 작물을 언제 심고 거둘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늦어지는 겨울이라도 겨울이 오는 소식을 먼저 알아차렸는지 이른 아침과 해질녘 부산스럽게 울던 새소리 없이 고요한 아침을 맞는다. 바스락거리는 길에 코끝 손끝이 시린 고요한 시간을 만나면 겨울에 왔구나 하고 깨닫는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도시에서는 쓸어도 쓸어도 쌓이는 예쁜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뿐이랴, 눈이 익숙지 않은 따뜻한 지역에서는 조금만 쌓여도 이동을 불편하게 하고 갖은 사고가 나니 사람들은 눈 내리는 일을 불편해 한다.

겨울이 내 길고 눈이 많은 진안은 엥간치 쌓은 눈에는 어디고 잘 다닌다. 논밭에서는 긴 겨울에 꼭 필요한 마실 물이자 속해이불(솜이불)과 같다. 긴 겨울을 농한기라 하지만 이맘때 할머니는 종종 시장에 솜틀집에 가서 솜이불을 다시 타왔다. 그러고 나면 방바닥에 죽 펼쳐 놓고 솜이불을 꿰맸다. 김장 이후 집에서 하는 또 다른 겨울 준비였다.
새로 타와 꿰맨 두터운 솜이불을 덮고 누우면 처음에는 서늘하고 무겁다가 포근하고 따스했다. 유독 화려한 반짝이는 원단의 속해이불은 덮고 누우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황량해 보이는 논밭과 들판에 펑펑 내리는 눈은 딱 그 속해이불과 같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대설 즈음에 속담은 낮에 볕들 때와 냉기가 머무는 새벽과 밤 사이 보리에게 안전한 이불이 되어 준다. 온도와 수분을 유지하니 낮에 녹은 눈이 눈사이를 흘러 보리를 적시고 덕분에 부지런히 싹이 튼다. 여름에 씨앗을 날려 땅바닥에 딱지 멩키로 붙어 자라는 달맞이 꽃이나 냉이도 이불 덮을 준비를 한 셈이다.
여름날 키만큼 자라, 씨앗을 맺은 풀들에게도 두터운 솜이불은 줄기를 누르고 흙 가까이에 뉘인다. 덕분에 마른 줄기와 씨앗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매서운 겨울의 냉기에 든든한 속해이불 덕이다. 급변하지 않고 안정적인 덕에 흙 속에 숨은 수많은 생명들이 겨울을 난다.
같은 추위에서 두터운 눈 속과 눈 없이 얼어버린 땅은 천지 차이다.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 쪽파, 마늘이 더러 솟더라도 눈이 많은 해는 말라죽지 않지만, 눈이 적은 해는 솟아올라 얼어서 말라 죽어 빈 곳이 많다. 소설 전까지 두툼하게 낙엽 이불을 덮은 곳은 눈이 녹아 나뭇잎을 적셔 두니 더할 나위 없이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기에 좋다.
큰 눈은 제자리를 찾는 일을 생각하게 한다. 논밭에서 온 먹을거리가 똥이 되어 논밭으로 가면 다시 생명이 되지만 물로 버려지면 많은 힘을 들여 회복시켜야 하는 폐기물이 된다. 대기를 지나 다시 땅을 찾은 물이 흙과 땅속으로 스며야 이듬해 가뭄이 덜할 텐데, 두껍게 깔린 아스팔 트위 눈은 위험한 물건이 된다. 어디에 머무를지, 어디에서 왔는지 들여다보면 아주 단순한 일이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오는 때
대설 즈음의 농삿일은 ‘갈무리’다. 일 년간 이 밭 저 밭에 들고 댕기다가 흙을 덮어쓰고 더러는 잃어버리고, 더러는 놓고 오기도 한 삽이며 호미며 농기구들을 모아 갈무리한다. 흙을 잘 씻어내고, 힘이 닿으면 기름칠을 하고 날을 벼린다. 사도 사도 매년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는 농기구들을 이맘때 정갈하게 갈무리하며 내년에 더 사야 할 게 얼마나 될지 파악해 본다. 목이 빠져 덜그럭대는데도 바쁘다고 막무가내로 쓰던 괭이며 삽의 자루를 갈고 못을 박아 둔다.
손에 딱 맞는 호미는 찾기도 어려운데 늘 들고 다니며 쓰다 보니 부러 신경 써서 찾으면 없다. 밭에 던져 둔 물조리개를 비워 삭지 않게 들이고, 물호스도 찬찬히 물을 뺀다. 논밭에 양수기도 물을 빼 둔다. 바쁘다고 놓쳤다가 물이 얼며 깨져서 해 먹은 양수기가 여러 대다. 남은 농자재는 천막을 덮고, 갈무리해 둔 야콘관아, 생강, 고구마도 단디 이불을 덮어 둔다.
급하게 비를 피해 들이기만 해 두었던 씨앗들을 갈무리한다. 여름날 말려 두고 여적 손대지 못했던 배추씨앗, 무씨앗 꼬투리를 타작하고 비벼 밟아 챙이질은 한다. 동짓날 먹을 팥은 명절과 제사 때 시루떡할 것, 내년에 심을 것, 겨우내 먹을 것으로 나누어 보관한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지고 나누어져 온 씨앗들이니 그렇게 갈무리한 씨앗들은 내년에 심을 것, 혹시 씨를 못 받을지 모르니 오래 저장해 둘 것과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따로 나누어 표시한다.
특히 어느 해에 어느 밭에서 씨앗을 받았는지, 어디에 누구로부터 이어져 온 씨앗인지 기록해 두지 않으면 다음 해 농사를 계획할 때 아주 곤란해진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온 것들을 하나씩 체에 거르고 챙이질해서 검불을 날려가며 고르다 보면 1년 동안 힘들었던 것은 홀딱 까먹고는 내년에는 더 많이 심어서 뭐해 먹어야지 하는 설레는 마음이 든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오는 농사를 짓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작에 농사를 때려쳤을 거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심어 애지중지 살피다 몽창 물에 쓸리거나, 말라죽거나, 풀밭에서 씨앗만 겨우 건질 때에는 ‘아고 못 해 먹겠다’ 하고 퍽퍽 울면서도 씨앗은 갈무리해 둔다. 그러고나면 ‘이 씨앗을 어쩔꼬’ 하고는 또 심고 또 심을 궁리에 설레어한다.
10년이 훌쩍 넘으니 겨울이면 씨앗을 갈무리하며 앉아서는 내년에는 농사짓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요 토마토는 작은 밭에 심어야지 하고 있다. 씨앗을 나누고 앉아서는 늘 땅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것이 농부의 1년 갈무리가 아닐까. 결국 열매도 중하지만, 그 안에 씨앗으로 짧은 호흡으로 다시 1년, 또 1년 농사짓게 하는 힘이 씨앗에 있다.
그렇게 씨앗으로 돌아온 씨앗을 다시 나누기 위해 하나하나 담는다. 나누어질 씨앗은 또 다른 이에게 계속 농사짓게 할 설렘이자 농부의 마음이 되는 ‘농부 씨앗’이기도 하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그 마음처럼 말이다.
씨앗으로 돌아온 씨앗을 다시 나누기 위해 하나하나 담는다. 나누어질 씨앗은 또 다른 이에게 계속 농사짓게 할 설렘이자 농부의 마음이 되는 ‘농부 씨앗’이기도 하다. 사진_배이슬
된장, 간장, 고추장의 씨앗, 메주 만들기
대설 즈음의 농살림으로는 김장보다 중요한 ‘메주’ 삶고 띄우는 일이 남았다. 밤마다 콩을 가리는 가장 큰 이유다. 날이 더우면 메주가 잘못 떠 새까맣게 곰팡이 피는 일도 더러 있다. 콩이 잘 여물어 마르고 도리깨질로 타작을 하고도 긴 시간이 지나 대설이 지나야 메주를 띄운다.
타작을 하고도 바람에 검불을 날리고 하나하나 콩 가르는 일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메주를 잘 띄운 뒤 보관하기에도 날이 건조하고 추운 것이 좋기 때문이다. 메주는 된장, 간장, 고추장의 씨앗이다. 그해 띄운 메주 맛에 모든 장맛이 달렸다. 장맛에 따라 그해 음식맛이 달라진다. 매년 콩농사가 녹록지 않아도 콩을 꼭 심는 이유다.
잘 가린 메주콩을 씻어 불린다. 날씨와 물을 받아 놓은 양에 따라 콩의 종류와 마른 정도에 따라 불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메주 만들기에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잘 불리는 것이다, 메주 만들 때 제일 힘든 것은 콩을 적당하게 잘 퍼지면서도 질지 않게 삶는 일인데, 콩이 덜 불면 콩 삶는 일이 아주 어려워진다. 할머니는 물속에 담궈 놓았다가 소쿠리에 받혀 놓고는 늘 강조해서 말하곤 했다.
“콩을 잘 불궈야 혀. 이 속에가 그렇게 노오랐 게 심지가 백혀 있으면 암만 삶아도 메주는 글렀어.”
덜 퍼진 콩을 삶느라 물을 보태면 질어지고, 오래 끓이면 밑에가 눌러 탈수 있다.
“콩을 삶는게 기술이여, 이마만치 마침맞게 물을 부어 갖고 수시로 봐야지 까딱하면 탄다이?”
잘 불린 콩을 마침맞게 물 잡아서 불 떼서 끓인다는 것이 말이야 쉽지, 그놈의 마침맞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장작불을 넣었다가 뺐다가 불 조절해 가며 콩을 삶으면 온 가족이 무산스러워진다.
콩이 따끈할 때 찧어 메주를 만들어야 하니 동생들과 양동이로 뜨끈한 콩을 마루로, 방으로 날라댄다. 어릴 때는 큰 나무 절구로 찧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에는 도톰한 김장 봉투 여러 겹에 삶을 콩을 넣고 자근자근 밟았다. 잘 삶아진 콩은 스르르 녹듯이 부스러지지만 밟으면 밟을수록 찰져저서 서둘러 밟고 꺼내서 메주 모양을 잡을 때면 손에 한가득 달라 붙었다.
또 다른 씨앗인 메주를 만드는 때다. 집의 '맛의 씨앗'이 될 메주는 메주콩을 고르고, 불리고, 삶고, 찧고, 만들고, 띄우고, 말리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사진_배이슬
“할매, 메주를 때려서 네무지게 하라는데 내 손에가 다 붙어서 안 되겠어! 너무 찐득해!”
투덜거리면 철퍽철퍽 메주를 때려 가며 할머니는 “그전 콩에 비해 덜 차진 것이여, 괜찮어 그냥 단단하게 이렇게 들어 쳐, 괜히 메주 같다고 하겄냐” 하신다.
진안에서는 부엉다리콩이라는 메주콩을 먹었었는데 아주 찰져서 메주를 만들라치면 절구공이가 뜰먹도 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만든 메주가 참 달고 맛있었다고 했다. 부엉부엉 많이도 열려서 부엉다리콩이라고 하신 그 콩을 나눔 받아 씨앗을 늘리던 중에 밑졌다.
어느 해에는 할머니가 말한 뜰먹도 못하게 차지고 달디단 부엉다리콩 메주를 다시 맛보여 드리고 싶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메주는 아랫못에 볏짚이불 곱게 깔고 누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아랫못이 뜨끈해 말라버릴 세라 덮었다가 돌아 뉘였다가 내내 들여다보다 잘 뜨면 볏짚에 묶어 방바닥이나 비닐하우스에 매달아 말렸다.
메주 만드는 날 밟히지 않은, 한 대야 양의 콩은 속해이불 덮고 제일 따순 곳에 있었는데 3일이면 쿰쿰한 냄새 진동하는 청국장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 둔 메주는 잘 말려 두었다 음력 정월달이 오면 장을 담았다. 된장, 간장, 고추장의 씨앗을 심는 때다.
진안에서는 부엉다리콩이란 메주콩을 먹었는데, 아주 찰져서 메주를 만들라치면 절구공이가 뜰먹도 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사진_배이슬
농부의 겨울
더 자도 되는데도 눈이 떠지면 몸에게 봄이 온 것을 들킨 것처럼, 하염없이 방바닥에 가까워지면 겨울이 온 것을 몸이 알아챘구나 한다. 겨울이 오면 씨앗을 갈무리하며 한해 농사를 챙겨 본다. 산 밑 밭에 옥수수와 호박이 멧돼지가 다 먹었으니 내년에는 들깨를 심어야지. 아랫 논에 늦게 익는 벼를 심었더니 물 떼기가 어려웠으니 내년에는 윗 논과 자리를 바꿔야지. 하고 벌써 내년 농사를 시작한다.
와중에도 일년 내 바쁘다고 못했던 많은 일들을 작당하는 때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읽고 싶었던 책을 머리맡에 가득 쌓아 이책저책 둘러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때다. 다만 욕심이 많은 탓에 책상에서 농사짓느라 바쁜 사이로 풍족하게 거둔 것들을 잘 먹을 궁리하느라 바쁘기도 하다.
밭에 남겼던 대가리파는 보대에 흙 조금 보태어 옮겨 심었다. 마루에서 겨우내 하나씩 뽑아 먹는다. 온실에 덜 익은 토마토를 잔뜩 따다 소스도 만들고 피클도 만든다. 겹겹이 입고도 추운 겨울이 오면 커다란 호박을 잡는다. 호박은 먹는다기보다 잡는다고 표현해야 알맞다. 하나를 가르고 나면 씨앗을 말리고, 죽을 끓이고 장독 위에 말리고 한번에 다 못 먹으니 일이 많다. 제철을 맞은 쌀로 떡도 해 먹고, 술도 담그고 조청 고을 준비도 한다. 호박은 죽도 끓이고 쨈도 만들어 두고, 떡도 시루떡에 화과자도 만들어 먹는다.
호박을 잡는다. 맷돌호박, 긴청호박, 동호박, 떡호박. 옛날에는 항아리에 얹어 오래 고아 약으로 먹었단다. 호박죽을 끓이고, 쨈을 만들었다. 사진_배이슬
그렇게 겨울에는 다르게 잘 먹을 궁리하며 부엌을 온통 어지럽히고, 바느질한다고 방바닥을 어지른다. 할머니는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내내 길쌈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솜씨 좋은 집은 하룻밤에도 많이 짜서 솜옷을 해 입는다고 했다. 길쌈 대신 숲 밭에서 거두어 말리거나 오일로 추출해 둔 것들을 가지고 샴푸도 만들도 샴푸마도 만들고 립밤도 만든다.
농부의 겨울은 바쁜 손으로 머리를 비운다. 동생은 장작을 패어 놓았다. 할머니는 길쌈으로 바빴다는데, 나는 풀로 생활재를 만든다. 제철 맞은 쌀로 뻥튀기를 잔뜩 튀어다 놓고, 온갖 떡도 만들어 먹는다. 대가리파는 포대에 옮겨 심어 들였다. 사진_배이슬
밭이나 방이나 다를 바 없이 풀과 흙이 가득하게 어지르며 1년 거둔 것들을 갈무리한다. 그렇게 바삐 손을 움직이며 머릿속을 비우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동지를 맞으며 팥을 고른다. 아궁이 불에는 무엇을 굽든 맛이 짙어지는 때, 농부의 겨울은 농한기라고도 하지만, 내내 손이 바쁜 시간이다. 농촌의 삶에는 일과 쉼의 경계가 흐릿하다. 결국 삶을 두 손으로 만져 가며 만드는 것들이라 농부의 겨울은 여전히 부산스럽다.
연재 보기
소서, 작은 더위의 시작
대서, 염소 뿔이 녹는다는
입추, 벼 크는 소리에 놀라 개 짖는
처서, 모기 입이 삐뚤어지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