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빚을 내서라도 추운, 소설
- hpiri2
-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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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배이슬
“먹고사느라 부지런히 초록이었다가 긴 겨울을 맞으며 내려 놓는다. 단풍이 드는 것은 색을 입는 게 아니라 덜어내 본연의 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봄부터 열심히 머금은 초록을 이제는 안으로 들이기 위해 잎을 내려놓는다. 살아낸 시간은 뿌리를 덮는 이불이 되고, 이불은 다음 해 다시 자라날 생명이 되는 흙이 된다. 나무와 풀의 월동 준비처럼 논과 밭도 이불을 덮어야 하는 때다."

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첫 눈이 내리는, 소설
소설은 작을 소(小) 눈 설 (雪), 작은 눈이 내린다는 뜻이다. 다음에 오는 절기인 대설에 비해 작다는 의미다. 또 상강, 입동 지났으니 더욱 추워지며 살얼음이 얼 정도로 추워진다. 그렇게 눈이 내리기 시작할 만큼 추워지는 때다. 겨울이 깊어지는 대설보다 소설이 더욱 춥다. 외려 눈이 펑펑 내리면 덜 추운데, 소설 추위는 유독 매섭다.
소설이 가까워져 오니 손이 시려워진다.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온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깜짝 놀랄 만큼 추워지는 겨울의 길목인데 소설 아침에 물이 얼었던 것이 삼사년 전인가 싶다. 근래 들어서 한없이 더워진 여름, 비가 잦아진 가을과 함께 겨울에 들어서며 만나는 기후위기의 모습 중에 하나다. 빚내서라도 온다던 소설 추위가 얕다. 빚을 덜 졌나 싶다가도 빚진 것들을 떠올리면 이자를 언제, 얼마나 내면 될런지 무서운 일이다.
추위가 늦고 얕아지다가도 아닌 때에 턱! 하니 닥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3년 전쯤에는 늦어진 추위에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때인데도 그해 초가을에 뿌린 상추와 당근이 꽃을 피는 일도 있었다. 상추는 낮이 길어질 때 꽃이 피고, 더워지면 씨앗을 남기는 친구고, 당근은 충분히 자란 뒤 얼지 않게 겨울을 난 뒤에 꽃이 피는 친구다. 가을 끝에 통통하게 맛이 들어 싸릿문 닫고 먹는다던 가을 상추를 기대했는데 볼품없이 꽃이 피더니 씨앗도 맺지 못한 상추를 보며 퍽 서운하고 무서웠다. 추위를 많이 타는데도 매년 이번 소설에는 한껏 춥기를 하고 바라게 되는 이유다.
그렇게 겨울에 들어서는 길목인 소설은 대설보다 추워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도 있다. 얇은 여름 옷을 입었었는데 한 달 사이 솜을 단단히 기운 옷으로 바꿔 입을 만큼 기후의 변화가 큰 때다. 겨울의 시작이라는 소설을 ‘소춘’이라고도 한다. 빚내서라도 춥다더니 작은 봄이라니 의아하다. 소설은 겨울의 문 턱이다. 점차 추워지는 때라 추위가 매섭고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번씩 따순 날도 있다. 다가올 대설과 동지는 내내 추운 시기다. 그러니 다가올 긴 겨울 앞에 가끔 따순 날 품은 소설이 작은 봄으로 느겨질 수밖에 없다.

이런 소설의 특징이 지금도 같아서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두꺼운 옷을 들었다 얇은 옷을 들었다 패딩을 꺼낼까 말까 고민한다. 그래서 이때는 톡톡한 조끼를 꺼내 입는다. 일이 많아 두꺼운 옷은 거추장스러운데 얇게 입기에는 퍽 춥다. 밭에 나가도, 마당에서 솥 걸고 일을 할 때도 할머니와 나는 이때쯤부터는 교복처럼 조끼를 챙겨 입곤 했다.
대설보다 춥다던 소설에 때아닌 봄 이야기는 '앞으로 진짜 추울 거니까 겨울 날 준비해야 해!'라는 신호다. 이렇게 추운데 이게 봄이라고? 그럼 얼마나 더 추우려고? 마음먹고 준비한다. 월동, 겨울을 맞는 게 아니라 겨울을 지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때가 소설이자 소춘(小春)이다.
겨울에도 살아야 하니까, 월동 준비
소설에는 올해 마지막으로 따뜻할 시간이니 부지런히 월동 준비를 한다. 말 그대로 겨울을 넘어갈 준비다. 겨울에도, 겨울을 지나서도 먹고살 준비를 해야 해서 집 안팎으로 바쁘다. 입동부터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하지 못했거나, 기후가 맞지 않아 기다린 것들부터, 지금부터 부지런히 할 수 있는 것들까지 쉼 없이 연결되어 있다. 비로소 추워졌으니 감을 깎아 달기도 하고 추위를 맞아 달아진 배추로 김장을 한다.
올해는 딱 소설에 김장을 하기로 했다. 된서리 몇 번 맞았으니, 배추가 제법 짱짱해졌다. 덜 거둔 것들이 있으면 차근히 거두어 들인다. 갈색의 콩들을 거두고, 급하게 된서리를 피해 수확해 흙 털고 말려 두었던 뿌리작물들을 갈무리한다. 늙은 호박을 얼지 않게 마루나 집안으로 들이고, 풋호박들은 잘게 썰어 장독 위 채반에 널었다.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마른다. 꼬들꼬들 호박고지가 된다. 배춧잎, 무청도 빨랫줄에서 겨울 맛이 잘 든다.
겨울을 넘길 수 있게 준비한다. 콩을 말려 도리깨질하고, 호박을 들이고, 씨앗을 가리고, 김장을 한다. 사진_배이슬
도리깨질 열심히 한 콩과 팥은 해지고 나면 눈꺼풀이 내려앉아 자울러가며(졸아가며) 가려낸다. 도리깨질하고 자루에 담을 때는 많다고 신이 났는데 끔적끔적 졸린 눈 비벼가며 밥상 위에 촤르르르르륵 굴려가며 고를때는 콩이 징글징글 너무 많다. 천천히 겨우내 가리면 좋으련만 당장 날 좋을 때 메주 띄울 것을 먼저 가리느라 마음이 급하다. 메주를 띄워야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을 수 있다. 뿐이랴 동짓날 팥죽도 먹어야 하니 그 사이 팥도 알알이 가려내야 한다. 추위에 오돌거리며 볏짚을 걷어 갈무리하고, 땅콩을 떼느라 해질녘에 집에 왔어도, 밤이면 따끈한 아랫목에서 노곤해진 몸으로 콩과 팥을 가려야 했다.
메주 쑬 콩, 팥죽 쑬 팥, 손 빈 땅콩까지 밤에 방에서 겨울날 준비할 것이 많다. 사진_배이슬
그나마 콩개리는 시간이 빨리 가는 건 할머니가 좋아하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를 틀어 놓고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왜 보는 거야 싶었는데 빠져 들어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 덕에 할머니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더, 고난과 역경을 어거지로 만들어 낸다 싶을 만큼 못되먹은 악역 앞에 주인공은 너무 착해서 늘 넘어가고 또 당하는 이야기들이다.
“저렇게 구는데 왜 또 봐준데? 바보여, 바보. 저래서야 자가 더 만만하게 보지, 잘해주겠어?” 하고 답답해 하면 할머니는 방금까지도 ‘오사랄년이네’ 욕을 해 놓고는 슬그머니 한마디를 덧붙인다.
“본디 넘 미워하면 내가 못나져서 못써, 나보다 못한 사람한테는 잘해 줘야 허는 것이고 미워하는 마음 지고 살면 못나지는 거여.” 한다. 할머니는 잘난 놈한테는 바른말 똑바로 하고 막해도 되는데, 어렵고 힘든 사람은 넘들이 괄시하든 어쩌든 귀하게 대하라고 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내가 못나지지 않게 미운 마음은 홀딱 버리라고 이야기했다. 미운 마음지고 살면 못생겨진다고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참 진부한 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평생 봐 온 할머니의 삶이 온전히 그러해서 순순히 듣게 되곤 했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사는 일이 가능은 한가, 나는 못하겠다 싶다.
그렇게 겨울을 살아내야 하니 바쁘게 월동 준비로 많은 것들을 여미고 돌보는 때다. 할머니는 긴 겨울 이후까지 돌보는 월동 준비를 했다. 그때마다 “나 죽으면 누가 할래, 이런 거시 너 먹여 살리는 것인게 니가 다 배워야지.” 하며 수업을 나간다고 하면 날을 미뤄서라도 나를 데리고 월동 준비를 했다. 액젓을 내리고, 콩을 가리고 솥 걸어 불 지피고, 메주콩을 적당히 불리는 일 같은 것들을 차근히 함께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월동 준비는 할머니 없이 살아갈 내게 종종 찾아들 인생의 겨울을 날 준비도 함께 시키셨던 게 아닐까.
논밭에 겨울 이불 덮어 주는 때
먹고사느라 부지런히 초록이었다가 긴 겨울을 맞으며 내려 놓는다. 단풍이 드는 것은 색을 입는 게 아니라 덜어내 본연의 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봄부터 열심히 머금은 초록을 이제는 안으로 들이기 위해 잎을 내려놓는다. 살아낸 시간은 뿌리를 덮는 이불이 되고, 이불은 다음 해 다시 자라날 생명이 되는 흙이 된다. 나무와 풀의 월동 준비처럼 논과 밭도 이불을 덮어야 하는 때다.
숲의 나무들이 그렇게 덮은 이불을 걷어오면 다음 해 그 다음 해를 살 힘을 뺏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공정하게 나누어 덮는 일을 생각한다. 뿌리를 덮을 수 없는 나무들의 잎을 거둔다. 쓰레기 취급을 받는 길가의 낙엽이나 마을회관 앞 커다란 둥구나무가 나누어 준 낙엽을 모아 밭의 두둑을 덮는다. 논에서 온 것에서 나누어 논으로 밭에서 온 것들을 밭으로 돌려보낸다. 모자란 것은 그렇게 쓰임을 찾아 모아 나른다.
논밭에 겨울 이불을 덮는다. 논밭에서 온 것들로 일 년 먹을 것을 챙겼다면 논밭도 먹여야 한다. 사진_배이슬
입동 전에 거둔 벼를 말리고 탈곡한 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때에 넉넉히 벼를 도정한다. 자루 가득 담긴 쌀을 창고에 들이면 왕겨와 쌀겨, 볏짚이 남는다. 논에선 가져온 힘이니 논으로 돌려보낸다. 대부분의 볏짚은 푸른끼가 돌 때 썰어서 논을 덮었다. 쌀겨는 겨울 동안 닭을 먹이고 왕겨는 포대에 담는다. 달장 밑에 깔기도 하고 모종낼 때 요긴한 왕겨숯을 만들기도 한다. 할머니는 벼 못자리할 때, 고추모종을 키울 때 왕겨숯을 썼다고 한다.
벼를 잘 말려 씨나락을 두고, 일부는 수매를 하고, 봄까지 먹을 쌀을 찧어다가 쟁였다. 사람들은 벼가 밥이고 쌀이 밥인 것은 아는데, 벼에서 쌀까지의 여정을 잃어버렸다. 사진_배이슬
벼에서 쌀까지, 쌀에서 밥까지, 밥이 내가 되기까지. 베고 말리고 탈곡하고 도정해서 각각의 분도수 별로 냄비밥을 짓는다. 오롯이 밥만 찬찬히 먹는다. 쌀이 제철이다. 사진_배이슬
벼를 찧고 나서는 마당에 쌓아 천천히 숯을 만들었다. 몇 해 연통을 달고 시린 손 비벼가며 지키고 서서 검게 타기 시작하면 왕겨를 덮고 또 덮어가며 만들었는데 힘이 들어 포기했다. 대신 왕겨로 밭두둑을 덮고, 어린나무라 낙엽이 적은 어린 숲밭에 두툼히 덮었다. 회관 앞 둥구나무 낙엽은 아스팔트 위에서 처치 곤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낙엽이 잔뜩 쌓이면 할머니들은 한테다 모아 태워 버린다. 태우기 전에 모아 밭으로 보내기 위해 눈치 싸움을 한다. 큰 포대를 사다 주며 동생에게 일거리로 부탁했다. 가득 모은 낙엽을 동생에게 사서 밭에 나른다.
마을 길을 따라 곱게 물들었던 은행은 따로 모아 마늘밭 이불로 쓴다. 노랗게 물들 때까지 기다려 마늘을 놓고도 괴자리 파리 들쎄러 마늘밭에는 늘 황금빛 이불을 덮었다. 다만 은행잎은 넓어 보이지만 침엽수라서 밭은 산성화한다. 그래서 꼭 마늘밭은 여러 해 같은 자리에 심지 않고 돌아가며 심는다. 이때 덮는 겨울 이불은 급격한 온도 변화에 흙 속 생명과 논밭에서 함께 먹고 사는 것들이 춥지 않게 한다. 겨울 이불은 겨울 동안 천천히 썪는다. 그렇게 덜 춥고 덜 말게, 덜 축축하게 흙과 생명을 보호하고 나면, 내 그들의 먹을거리이자 보금자리 가된다. 논밭에서 온 것들로 한 해를 먹을 준비를 했다면 당연히 그 논밭도 먹여야 하는 게 아닐까.
마을 길을 따라 곱게 물들었던 은행잎은 마늘밭 황금빛 속에 이불이 된다. 사진_배이슬
기계 쓰기에 함께 일하기에 좋게 평평하게 치운 밭은 늘 이불이 부족하다. 어느 해 부지런 떨었던 해에는 아주 넉넉히 종이 박스부터 왕겨와 볏짚, 톱밥과 달장 밑에 깔았던 왕겨 거름까지 넉넉히 덮었다. 이른 봄 얼었던 땅이 녹아 흙이 질척해 심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때에 그해는 이불 속 흙이 아주 포실했다. 씨 넣기 전부터 솟아나던 풀들도 이불 속 늦잠을 자느라 기세도 덜했다. 논과 밭이 다랭이로 경사지고 그 경계마다 덤불과 작은 나무들이 숲 가까이에 있을 때는 자연스레 덮히던 이불 덕에 그렇게 포근한 봄의 흙을 만났겠구나 싶었다. 논은 품이 커서 덕분에 빈곤한 밭에 이불을 나누어 준다. 논에 남은 벼 그루터기에서 벼가 다시 잎은 낸다. 논을 덮은 볏짚, 함께 떨군 나락들, 끈질긴 벼의 생명력의 초록잎들이 겨울 동안 논을 오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월동 준비가 되었다.
벼그루터기에서 벼가 다시 자란다. 논에도 볏짚 이불을 덮었다. 올해는 논이 질어 벼베기가 아주 어려웠다. 깊게 패인 논이 안쓰럽다. 사진_배이슬
불 앞에 사는 때
추워지면 불 앞에 있는 것이 감사하다. 월동 준비는 불로 시작해서 불로 끝나는 일이다. 김장한다고 애젓을 내리고 풀을 쑤느라 솥을 걸어 불을 땐다. 밤마다 쌀쌀하니 손 시려워지니 간간히 방을 덥히느라 아궁이에도 불을 놓는다. 메주를 쑤기 위해 메주콩을 적당히 삶아내느라 또 불 앞에 앉고, 묵은쌀로 일 년 먹을 조청을 곱느라고 잔잔한 불을 3일은 뗀다. 곧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또 밥 짓고 엿 질금 넣어 또 불을 땐다. 가스레인지불 전깃불 난로에 지피는 불 온갖 데 불이 지천이지만 나무로 지핀 불은 생각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다.
일렁이는 움직임과 타닥거리는 소리, 메케한 듯 속까지 잘 구워 줄 것 같은 냄새와 온기가 그렇다. 시린 손으로 물 길어다 붓고 뜰먹도 안 할 것 같은 불린 콩을 양동이로 퍼 나르며 씩씩대다가 불 앞에 앉으면 누구에게지지 않을 말 많은 나도, 할머니도 잠시 말을 잃는다. 불 앞에서 월동 준비를 하는 시간은 내게도 낙엽이 지는 시간이다. 농촌에서 먹고사는 일 중에 가장 귀한 시간으로 아파트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일 중 하나다. 가스렌지 인덕션으로 만든다면 할머니 표현으로 ‘누구 코에 붙이지도 못할’ 양이다. 일 년 식구 먹을 장을 담는 불 앞의 일은 그에 맞는 적당한 규모가 있다.
농촌에서 먹고사는 일로 불은 아궁이 앞에만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겨울이 오면 논밭에 불을 놓고는 했다. 산불이 나고 나면 잔대나 약초가 많고 더 잘 자랐다 했다. 논을 묵힌 해 덤불처럼 쌓인 마른 풀들이 로타리를 쳐도 엉키기만 할 뿐 갈아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려 불을 놓았다. 불은 금방 꺼져 버리고 타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찰나 바람과 함께 불씨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볏짚 삼겹살이 짧은 시간 고온으로 익힌다더니 장작이 없이 마른 풀이 타며 붙은 불은 다가가기 어려울 만큼 뜨거웠다. 친구들과 물을 떠다 뿌리고 삽으로 때려 가며 불을 잡겠다고 동동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수시로 아궁이 불 지폈으니 밭에 놓는 불쯤이야.’ 쉽게 보았다가 정말 큰일을 냈다. 큰 불이 나겠다 겁이 났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싶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우리 필지에서 불이 번진 것을 본 할머니가 부리나케 오시더니 빗자루 하나로 불을 잡았다. 어디 겁도 없이 마른 검불에 불을 놨냐며 혼이 났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때 어느 논밭이던 불을 놓고 사는 때려니 자만했었다. 가스가 없던 시절 불로 먹고 만들고 자며 불을 내 다뤄 온 어른들이나 불을 가늠해가며 하는 일이었다. 이후 할머니와 아버지 도움으로 밭에 불을 놓았고, 그 이후로는 절대 불을 놓지 않는다.
옛날에 논밭에 불을 놓았던 것은 밭과 논두럭을 태운 재로 거름을 더했다. 화전민이 산에 불을 놓아 밭으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부피를 키우는 질소 만큼이나 식물이 꽃피우고 열매 맺는데 꼭 필요한 인산 같은 것들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논밭에 있던 벌레나 병을 없애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탄저병이나 풋마름병이 들면 흙으로 돌아가서도 병이 남는다. 요즘도 그런 병이든 작물은 뽑아 태워 더 퍼지는 것을 예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논밭에 놓은 불은 함께 먹고 사는 생명들, 좋은 것 나쁜 것 할 것 없이 태웠을 것이다.
겁 없이 불을 놓았던 경험, 겨울이면 늘 불 앞에 살던 경험으로 그 이후에는 아이들과 불을 피웠다. 내가 배운 불을 만나는 지혜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들과는 원주민의 지혜라는 주제로 불을 붙이는 법, 불의 종류, 살아있는 불로 만든 요리, 불을 잘 끄는 법을 함께했다. 성냥이나 파이어스틱 같은 것으로 불을 피우고, 함께 농사지은 쥐이빨옥수수로 팝콘을 튀겼다. 밭에서 홀딱 따다 배추전을 부쳤다. 불 앞에서 우리는 먹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추위 덕에 내내 ‘불 앞에 사는 때’를 나누었다. 우리에게 느닷없이 올 겨울과 불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우리는 배워야 한다. 불 앞에서 충분히 머무른 덕에 겨울을 난다.
아궁이 앞에서 논밭에서 내내 불앞에 사는 때다. 논밭에 불 놓았다가 호되게 놀란 뒤로 아이들과 안전하게 불을 만나는 수업을 한다. 불 앞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것이 월동 준비가 아닐까. 사진_배이슬
연재 보기
소서, 작은 더위의 시작
대서, 염소 뿔이 녹는다는
입추, 벼 크는 소리에 놀라 개 짖는
처서, 모기 입이 삐뚤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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