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15화. 계류
- hpiri2
- 10월 24일
- 5분 분량
2025-10-24 정욱식

입항 가능한 항구가 어디인가?
“저는 이 자리에 서기 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과 중국 정부에 동시 철수를 요청했습니다. 공개적으로 거듭 요청합니다.”
기자 회견장에 선 최서희는 간절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복수의 태풍 위력과 대규모 전쟁 위기 앞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국가적, 국제적 역량을 동원해도 태풍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부디 무엇이 중요한지 자문해 보길 바랍니다.”
같이 북상하던 두 개의 태풍은 대만 남동쪽 1000㎞ 지점을 지나면서 하나는 대만 해협 쪽으로 다른 하나는 오키나와 쪽으로 분리되어 북상하고 있었다.
최서희의 기자 회견 직후 미중 정상은 전화 통화를 갖고 해군 전력을 동시에 철수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은 해당 부대에 즉각 전달됐다. 중국의 항모 전단은 남양 함대 기지와 인근 항구로 긴급 대피했다.
하지만 미 해군의 상황은 절박했다. 대만 해협에서 대치가 첨예해지면서 당초 제주해군기지에 입항 예정이었던 로널드 레이건호는 대만 해협 쪽으로 방향을 틀었었다. 그 뒤를 따르던 조지 워싱턴호는 태풍 경보가 격상되자 모항인 요코스카로 회항 길에 올랐다. 문제는 대만 해협 동북 쪽에서 중국 해군과 대치 중인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항모 전단의 운명이었다.
“입항이 가능한 항구가 어딘가요?”
레이건호 함장이 부관들과 지도를 펴놓고 물색에 들어갔다.
“대만에는 레이건호가 입항할 만한 항구가 없습니다. 다만 구축함과 호위함 일부는 대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오키나와 나하항은 어떻소?”
함장의 질문에 부관은 나하항은 계류 자체가 어렵고 이미 다른 선박들이 정박하고 있어 어렵다고 답했다.
“1000㎞ 거리에 있는 사세보 해군기지는?”
“태풍 이동 경로와 겹쳐 태풍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제주해군기지로 갑시다.”
남은 거리는 1100㎞. 레이건호의 최고 속도인 시속 55㎞로 이동하면 20시간 정도 소요될 터였다. 하지만 이미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 이 속도로 갈 수는 없었다. 태풍의 이동 속도는 시속 55㎞로 관측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이건호와 태풍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었다.
“저 놈의 중심 회전풍속은 시속 300㎞에 육박합니다.”
마치 추격전을 벌이듯 레이건호에 바짝 다가서고 있는 태풍의 눈의 가리키며 부관이 말했다.
“최대한 속도를 끌어올리시오. 태풍 중심부로 들어가면 우린 끝장이오.”
함장의 지시였다.
하지만 갈수록 강해지는 바람과 파고로 인해 레이건호는 최대 속도를 내지 못했다. 레이건호에 탑재된 F-35 한 대가 회전풍속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떨어졌다. 제주해군기지 도착 예정 시간은 5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살기 위해 온다니 도웁시다
미국 정부로부터 제주해군기지 입항 통보를 받은 최서희 정부는 현지 주민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비바람을 뚫고 방금 전에 강정마을에 도착한 이한결도 주민 설득에 나섰다. 연일 반대 집회를 이어가던 주민들도 이에 동의했다.
“전쟁하러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온다니 우리도 도웁시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에 소속된 주민 한 명이 말했다.
“태풍이 지나가면 먹으라고 음식도 준비합시다.”
제주 남방 해역이 훤히 보이는 옥상에 올라 바다를 주지하던 이한결은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다. 거센 비바람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수건으로 연신 창문의 밖을 닦아가며 바다를 응시하던 이한결의 눈에 레이건호가 들어왔다. 태풍이 거대한 산맥을 이뤄 그 뒤를 쫓는 모습과 함께.
“안전한 계류는 가능한 것이오?”
제주해군기지를 눈앞에 두고 레이건호 함장이 부두를 강타하는 파도와 비바람을 보면서 물었다.
“해군기지를 저런 곳에 만들다니.”
부관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제주해군기지가 육지 쪽으로 들어간 만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나와 있는 곶에 만들어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계류가 더 위험합니다. 계류 자체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성공하더라도 이 정도 태풍이면 선체가 부두에 부딪쳐 큰 손상을 입을 테고 계류줄은 5분도 못 버팁니다.”
“그럼 입항하지 말고 개방 해역으로 갑시다.”
부관의 다급한 설명을 들은 함장이 지시했다.
***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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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 사이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돌핀스 포럼’이 개최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민진당의 ‘대만미래결의문’을 살펴보며, ‘미래 세대의 선택’을 화두로 던지고 중국과 대만의 입장을 알아보고 교류 협력의 타협점을 이야기한다.
양안 문제와 기후위기 군축 필요성. 중국과 대만 양안 갈등으로 군비를 증강시키는 와중에 이한결은 그레이스 리를 COP31에서 만난다. 리는 한국계 미국인 청년으로 군사비 증가가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군비통제를 통한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자고 연설한다.
대만 해협 무력 대치 3일째, 오산 기지에서 미국 대형 전략 수송기 글로브마스터가 이륙했다. 중국의 전투기가 대응 출격에 나섰했다. 미 수송기가 고도를 낮추자, 중국 전투기의 경고가 날카롭다. “미국 전투기가 락온(Lock-on) 했다! HQ, 명령을 내려달라.”
중국 전략로켓사령부 소속 장교가 화급하게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고가 올라온다. 미국도 중국의 전략로켓군이 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고 사일로를 개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일촉즉발 상태, 다행히 중국 첩보위성이 잘못 포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지만...
미중 간 무력 충돌이 임박한 상황, 청와대 국가안보실에는 다른 불똥이 튀었다. 미국이 F-35를 추가 배치하고 제주해군기지에 핵항모를 기항할 예정이란 뉴스가 나왔다. 과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과 한국군 역할을 요구했던 미국 측 담당자와 격론을 벌였던 이한결이 정보 유출로 의심을 받게 된다.
대만 해협을 두고 미중의 갈들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 초대형 태풍 두 개가 북상한다는 보도가 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먼저 대치를 풀지 못하고, 점점 태풍은 빠르게 세력을 키우고 있다. 그 시간, 최서희 대통령은 긴급 호소문을 발표한다고 긴급 메시지를 남긴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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