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14화. 태풍
- hpiri2
-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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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7 정욱식

초대형 태풍 두 개가 북상 중
“뉴스 속보입니다. 동중국해 남단 약 1000㎞에서 동시에 발생한 초대형 태풍 두 개가 동북아시아를 향해 빠르게 북상 중입니다.” 세계 여러 언론이 일제히 태풍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대만 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의 해상 대치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메가톤급 뉴스가 전해진 것이다.
세계기상기구를 비롯한 여러 기상 관측 기관들은 이미 초대형 태풍 발생을 경고한 터였다. 최근 들어 탄소 배출 증가에 따른 온실 효과와 오존층 손상 재발에 따른 자외선 증가가 맞물리면서 해수면의 수위와 온도가 상승하고 대기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최서희 대통령은 긴급 재난 대책회의 주재를 마치고 이한결이 남긴 보고서를 다시 검토했다. 보고서 말미에 태풍의 진행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재난 대비와 복구에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사 대치 상태의 종식을 촉구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서희는 연설비서관 등 참모를 집무실로 불러 연설문 작성에 들어갔다.
그 시간. 두 개의 태풍은 빠르게 세력권을 키우면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태풍의 특이점에 주목했다. 두 개의 태풍이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위력을 더하고 있는 것이 포착된 것이다. 위성 영상에서도 두 태풍이 ‘∞(무한대)’ 형태로 합쳐지며 동중국해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북상한다고 표시되었다.
‘태풍도 체인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제주공항에서 뉴스 속보를 보던 이한결은 공항 내 찻집에 자리를 잡고 공책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Climate, Human, Alliance, Instinct, Network … CHAIN! 기후위기, 인간 활동, 동맹, 권력과 생존 본능, 그리고 이것들의 연결."
그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돌핀스’ 회원들에게도 긴급 타진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우리 항모 전단에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대피하지 않으면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대만 해협에서 중국 해군과 대치 중인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호 함장이 본국에 긴급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워싱턴에선 중국 해군이 철수하기 전까지 현 태세를 유지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먼저 물러서는 쪽이 지기라도 하는 양, 양측의 대치 상태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태풍의 위세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갈수록 커져만 갔다. 항모 활주로에 계류 중인 F-35의 흔들림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저건 태풍이 아니라 움직이는 산맥이군.’ 초정밀 망원경으로 남쪽 바다를 응시하던 레이건호 부함장이 중얼거렸다.
“빨리 대피처를 찾아야 합니다.”
부함장이 함장에게 서둘러 보고했다.
강풍과 폭우와 파고를 동반한 태풍 앞에서 중국 항모전단도 속수무책이었다.
“아직도 대피 명령이 없는 거야.”
항모 활주로에서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전투기 계류줄을 점검하던 해군 한 명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지금 우리의 적은 미군이 아니라 태풍이라는 말이야!”
그의 외침은 거대한 비바람과 파도 소리에 묻혔다.
그 시간 두 개의 태풍은 서로의 측면을 치고받으면서 괴물처럼 커져 갔다. 두 태풍의 중심 간 거리는 약 500㎞에 불과했고, 중심 기압을 900hPa 밑으로 끌어내렸다.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은 초속 90m에 육박했고 파도의 높이도 30m를 넘나들었다. 시간당 최대 200㎜의 폭우가 대만 전역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만 언론의 헤드라인도 바뀌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태풍 피해는 피할 수 없잖아"
“중국의 침공 위협은 피할 수 있지만, 태풍 피해는 피할 수 없잖아.”
이한결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류페이치 진먼대 교수는 라이창더 총통의 리신센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총통이 군대를 포함한 모든 국가적 역량을 전쟁 대비가 아니라 재난 대비와 피해 복구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해야 해.”
하지만 수화기 넘어 들려온 소리는 얕은 신음 소리와 통화 단절음이었다. 일본 후쿠오 기자도 총리실 지인들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1시간 후에 내외신 기자 회견을 갖겠습니다.”
최서희가 NSC 회의를 마치면서 말했다. 홍보수석과 대변인실은 기자단과 외신기자클럽에 긴급 메시지를 전송했다.
‘금일 저녁 8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제사회를 향한 긴급 호소문 발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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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북한 김정훈 위원장은 “조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미국은 대만 해협이 위기 상황이면 전투기, 핵항모 등 군사력의 입출입을 남한에 요구해 왔다. 최서희 대통령은 미국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순간 최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이 오는데...
중국과 대만의 해상 대치 이틀째. 중국에 가까운 대만의 섬, 금문도에 있는 진먼대 류 교수는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했지만 공항은 폐쇄된다. 대만 라이창더 총통이 내린 비상명령권 발동에 대해 입법원의 승인 선거로 대만 정국은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나눠져 혼란스럽다. 대만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수백 기의 드론이...
대만 중국 군사 충돌 위기 리얼픽션. 이 시각, 한 일간지 신문의 편집국장, 기후팀장, 국방팀장이 회사 앞 술집에 모였다. 당초 초대형 태풍 발생 급증을 다룬 기사가 머리기사였다가 급하게 바뀌었다. 중국이 대만 땅 진먼다오에 샤진대교를 연결하겠다는 발표와 대만이 실력 저지하겠다는 소식으로 교체되었다. 중국이 회색지대 전술로 부전승을 노렸다며 중국의 의도, 대만의 응전, 미국의 개입을 조망한다.
평화연구소 소장 이한결이 2005년 미국 펜타곤을 방문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대만 문제를 논의하며, 제주 해군기지와 평택 미군기지 이전 갈등 속에서 한국의 안보 딜레마를 고민한다.
중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만의 국립진먼대에서 간담회가 열렸다. 이한열은 ‘민간 차원에서라도 양안의 긴장 완화를 중재하고 싶다’고 발표한다. 이에 대만 쪽은 낙담과 탄식뿐이다. 중국쪽 샤먼대에서도 의견을 밝혔지만 중국쪽은 양안 문제가 국제화되는 걸 꺼린다. 한국 사람 이한열은 왜 이 주제를 꺼냈을까?
중국과 대만의 학자들과 대만 해협을 둘러싼 토론에 이어,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군비 증강을 요구하고 있고, 반면 러시아와 중국, 조선은 군비를 줄이거나 현상 유지를 말한다. 2026년 미국, 중국, 대만 모두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로 진입하고 …
중국과 대만 사이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돌핀스 포럼’이 개최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민진당의 ‘대만미래결의문’을 살펴보며, ‘미래 세대의 선택’을 화두로 던지고 중국과 대만의 입장을 알아보고 교류 협력의 타협점을 이야기한다.
양안 문제와 기후위기 군축 필요성. 중국과 대만 양안 갈등으로 군비를 증강시키는 와중에 이한결은 그레이스 리를 COP31에서 만난다. 리는 한국계 미국인 청년으로 군사비 증가가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군비통제를 통한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자고 연설한다.
대만 해협 무력 대치 3일째, 오산 기지에서 미국 대형 전략 수송기 글로브마스터가 이륙했다. 중국의 전투기가 대응 출격에 나섰했다. 미 수송기가 고도를 낮추자, 중국 전투기의 경고가 날카롭다. “미국 전투기가 락온(Lock-on) 했다! HQ, 명령을 내려달라.”
중국 전략로켓사령부 소속 장교가 화급하게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고가 올라온다. 미국도 중국의 전략로켓군이 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고 사일로를 개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일촉즉발 상태, 다행히 중국 첩보위성이 잘못 포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지만...
미중 간 무력 충돌이 임박한 상황, 청와대 국가안보실에는 다른 불똥이 튀었다. 미국이 F-35를 추가 배치하고 제주해군기지에 핵항모를 기항할 예정이란 뉴스가 나왔다. 과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과 한국군 역할을 요구했던 미국 측 담당자와 격론을 벌였던 이한결이 정보 유출로 의심을 받게 된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어떻게 마무리 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