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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대한이 놀러 왔다 얼어 죽는, 소한


2026-01-09 배이슬

소한은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대한보다 더 춥다. 이 시절 농사 준비와 겨울나기 지혜를 소개한다. 고추장 담그기, 월동 준비, 그리고 추운 겨울 사람들과 모여 따뜻한 시간을 나누는 소한의 의미와 풍습을 담았다.


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대한이가 놀러 왔다가는 얼어 죽을 만큼 춥다는데 천천히 추워지는 게 아니라 불쑥 추위가 든다. 사진_배이슬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대한이가 놀러 왔다가는 얼어 죽을 만큼 춥다는데 천천히 추워지는 게 아니라 불쑥 추위가 든다. 사진_배이슬

이름보다 추운, 소한


소한은 작을 소(小), 찰 한(寒)을 써서 '작은 추위'라는 뜻입니다. 대한보다 덜 추워서 소한이라 이름 붙었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장 추운 시기다. 맹렬한 겨울 한복판을 지나는 때입니다. 낮 12시보다 오후 2~3시가 가장 온도가 높은 것처럼, 동지를 지났으니 길어졌던 밤 만큼 추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차곡차곡 쌓인 어둠 덕분에 쌓인 냉기가 머무는 소한은 해가 노루 꼬리만큼 길어졌다지만 해가 늦게 뜨니 농부도 잠이 많아진다.


한기가 땅속으로 스미며 온통 하얗게 어두운 갈색으로 말라 들었다. 온갖 데를 둘러봐도 초록이었던 시간은 꿈처럼 멀게 느껴진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땅속 풀과 나무들은 가장 치열하게 살아남는 중이다. 내년 봄에 틔울 싹을 보호하기 위해 수분을 줄이고 당도를 높이며 몸을 움츠린다. 물도 산도 얼어붙는 추위를 겪어야 싹이 트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혹독하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퍽 위로가 된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지나면 활짝 필 날이 온다는 희망 같은 것이 추위를 버티게 한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


24절기는 중국의 기후에 맞춰 한자 말을 가져 오다 보니 실제 우리 기후와 다소 차이가 난다. 그 차이를 할머니들의 입말과 속담들로 우리 절기에 맞게 보태어 맞춘 예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보탠 소한과 대한의 추위에 대한 속담으로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가 있고,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가 있다. 더 춥다던 대한이 와서 얼어 죽는 것도 놀라운 데, 없는 추위는 꿔서라도 온다니 너무하네 싶다. 그래서 긴긴 월동 준비들이 있었구나.


꽃눈과 씨앗이 추위로 봄을 준비하는 때, 더운 날에 철 모르고 늘어나던 곤충도 동물도 수가 줄어든다. 할머니는 오히려 소한에 덜 추운 일을 걱정했다. 특히 2025년은 달라진 기후로 곤충들이 때 아니게 많아졌다. 농사짓고 나서는 곤충들을 좀 더 세심히 살펴왔지만, 참나무를 뒤덮은 검은 진딧물을 처음 봤다. 숲 밭에 심은 어린 참나무 몇 그루에 진디물이 땅에 접한 데부터 줄기 끝까지 가득 덮힌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후에 찾아보니 밤나무왕진딧물이 날이 추워져서 수가 줄어야 하는 때인데, 그만 추위가 늦어져서 알을 왕성하게 낳다보니 생긴 이상 현상이었고,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다는 뜻의 ‘삼한사온’이 사라지고 있다. 소한 시기인데도 한낮에 두꺼운 패딩 없이 걸어 다닐 만큼 따뜻하다가도 하룻밤 사이 맹렬히 추워진다. 예기치 못한 기온차를 보였다. 추위가 차곡차곡 쌓여 저수지와 냇가가 꽁꽁 얼던 겨울 풍경을 보기 어려워지니, 이른 봄 씨앗을 틔우면 모종 키울 일이 벌써 걱정된다.


풀과 나무들이 긴 추위를 견뎌 낸다. 추위를 온전히 견뎌야만 꽃이 핀다. 사진_배이슬


추위 덕에 서로 가까워지는 때


겨울의 한복판에 이르면, 못다 한 일과 오지 않은 일 사이에서 아무리 마음 써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때가 된다. 마음 같아서야 무성하게 자라다 누운 풀씨 맺힌 자리에 풀이라도 걷을라 치면, 눈에 덮이고 땅이 얼었다. 뿐이랴 전보다 겨울이 덜 추워졌는데도 밖에서 몸을 쓰자면 한기가 에인다. 겨울을 알아챈 몸은 천근만근이 된다. 잘 쉬고 보태야 다시 일 년 잘 쓸 수 있으니 몸을 아끼라는 신호다.


찾아와 준 추위 핑계 삼아, 꽃 피는 때는 심느라고 단풍 들 때는 거두느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는 때다. 2박 3일 동안 퍼머컬처네트워크 대표활동가들과 만나 한 해를 돌아보고 올해 벌일 작당을 했다. 농장에서 시작해 이제는 각자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는 '지구로온' 친구들과도 찐하게 이야기하고 밥해 먹고 놀다 왔다. 일 년에 한두 번 일과 추위 핑계 삼아 방구석에 모인다. 살아온 이야기와 꿈꾸는 이야기 온갖 넋두리를 나누다 보면 구들방 온기처럼 은근하게 다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온기가 든다. 이상하리만치 가끔 만나도 매일 만난 것 같고 나도 모르는 새, 재고 따질 것 없이 온전히 나로 머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쉬겠다더니 눈 한질래 오는데 싸돌아 댕긴다"고 잔소리를 들었다.


매년 겨울이면 '우리끼리 좋아서', '지구로온', '퍼머컬처네트워크', 심지어 굴 먹는 모임까지 온갖 핑계로 농장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멀지만 추위 덕에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사진_배이슬


사실 할머니도 월동 준비 마치고 설날이 오기 전 이 시기에 모여 놀았던 문화가 있었다고 했다. 눈은 쌓이고, 베 짜고 장 담고 해 두었으니, 동네 할머니들 그때는 젊은 각시들이 삼삼오오 이 집에서 하루 저 집에서 하루 모였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저씨들도 이 날만큼은 군말 없이 집을 내주고 친구들을 대동한 아내의 쓴소리도 꾹 참았단다.


“그렇게 모여서 뭐 하는데?”

모였다 하면 쉼 없이 고추 꼬다리도 따고, 마늘도 까는 할머니들을 보아온 터라 뭔 일을 하는가 싶어 물었다. 할머니는 “뭐 더긴, 놀지.” 했다.

“할머니들도 놀 때가 다 있었어? 시부모님 눈치에 길쌈하랴 놋그릇 닦으랴 겨울에도 바빴다며”

“그때는 다 각시들잉게. 헐 것 다하고 놀았지!”


그 후로 어느 집 할머니가 노래 부르던 이야기, 어느 집 할머니가 춤 추던 이야기, 노상 무섭던 어느 집 할아버지가 찍소리 못하고 술을 내오던 이야기를 신나게 들었다. 대학교 때 놀러갔던 얘기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얼굴로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젊은 날이 그려졌다. 농촌에서는 ‘서로 옆집 숟가락 개수도 다 안다’고 할 정도로 가까웠다. 일 년 지지고 볶으며 농사짓다 긴 겨울이 만들어 준 시간 덕에 서로 마음을 내어놓은 까닭이다.


애쓴 젊은 각시들이 나누는 일종의 일탈과도 같았을 귀한 시간, 누구는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노래도 하고 놀이도 해 가며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서로의 속사정을 나누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두서없이 말주변 없이 내어놓아도 서로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었을 테니. 그 젊던 각시들은 나이가 들어 하나 둘 떠났다. 어쩌면 어디 요양병원이나 몇째 자식의 집에 있던 그 친구들이 이제야 다시 모여서 오랜만에 잘 놀고 계시지 않을까 그려 본다.


겨울이 추운 덕에 서로가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소한에 가장 중요한 농사가 아닐까. 일 년 농사지은 고구마에 부침개를 부쳐 나가며 다시 마음을 다독이며 힘을 내는 시간이다.


소한의 농살림, 고추장 담기


날이 춥기 전에 띄우는 발효를 도와야 하는 메주와 달리 고추장은 추워야 맛이 변하지 않는다. 소한에서 대한 무렵에는 고추장을 담는다. 겨우 내 방바닥에서 꼭지를 딴 건고추는 고추장용으로 곱디 곱게 갈아온다. 묵은찹쌀과 멥쌀을 불려, 죽을 되직하게 끓여 엿기름을 섞는다. 장작불을 빼고 잔잔한 온기로 하룻밤 돌보면 말금하니 죽이 삭는다.


온기가 있을 때 주머니에 넣고 짠다. 한 방울이 아까워서 장갑 낀 손을 찬물 담궈 가며 짜 모은 뒤 다시 솥에 넣고 끓인다. 조청보다는 묽고 식혜보다는 되직하게 끓여 낸다. 윤기가 반짝 거리게 도는 되직한 식혜물은 충분히 식힌다. 뜨거우면 메줏가루의 균이 다 죽어 발효가 되지 않는다. 식혀 낸 조청물에 고춧가루를 섞고, 메줏가루를 섞는다. 고춧가루가 고와서 덩어리지기 쉽다. 고춧가루까지 더해져 되직해진 고추장을 고춧가루를 풀어내느라 여러 번 구석구석 섞다 보면 팔이 아프고 코가 맵다.


충분히 풀어지면 여러 해 간수를 뺀 소금을 넣는다. 조청의 단맛 덕에 발효가 잘 되지만 충분히 간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상하기도 쉽다. 특히 날이 덜 추운 겨울이 오고 있어 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익기 전에 쉬어 신맛이 나는 고추장이 된다. 소금은 넣고 섞느라 한참을 뒤적이지만 간을 보고도 하룻밤 마루에 두고 다음날 간을 맞춘다. 소금이 녹아 적절한 간을 맞춰야 한다. 그렇게 단지에 넣고 긴긴 겨울 동안 천천히 익어야 고추장은 제맛을 낸다.


햇고추장으로 해야 맛있는 떡볶이를 한솥 끓여 먹는다. 생으로 찍어 먹을 때나 반찬을 할 때는 일 년 이상 묵은 검붉어진 고추장으로 해야 맛있다. 고추 농사가 잘된 해에는 부러 넉넉히 담아 여러 해 고추장을 묵히는데 깊어진 매운맛을 아껴 먹는다. 해가 지날수록 수분이 날아가 꾸덕해지면 고추장 담을 때 덜어 놓은 묽은 조청물을 묵은 고추장에 넣어 뒤적뒤적 섞는다. 묵은 고추장은 그렇게 해마다 덧입혀진다.


가장 추울 때 고추장을 담는다. 고춧가루 곱게 빻고, 잘 띄운 메주 빻고, 죽은 맹간하게 식히고, 엿기름으로 삭혀 묽은 조청을 끓인다. 짜고 다시 끓이고 3~4일이 걸린다. 사진_배이슬


조청을 고아 내는 일이 오래 걸리고 힘 드는 일이라 마을의 할머니들은 진작에 물엿으로 고추장을 담는다. 조청으로 고추장을 담으면 아무리 잘 두어도 발효하며 끓어오른다. 중간에 한 통 담아 내고 나면 다시 포르르 끓어오르니 어디에 싸 보내는 일이 조심스럽다. 물엿을 사다 담는 고추장은 그럴 일이 없다고 좋아하지시만 쌀로 만든 깊은 단맛이 매운맛이 더해져 발효되어 나는 풍부한 맛은 따라올 수가 없다. 그마저도 넙죽넙죽 받아다 먹다가 사다 먹으면 맛이 안 난다. 요즘에야 사 먹어 온 장맛에 길들여져 외려 집된장, 집고추장을 맛없다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집마다 이어져 온 ‘맛’을 잃는다. 일이 많아도 아무리 추워도 놓치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집의 맛이다.


소한의 농살림은 다가올 설을 준비한다. 들깨를 가려 기름을 짜다 놓고 두부를 만들 콩을 가렸다. 설이 지나면 부지런히 고추 씨앗, 가지 씨앗 싹을 틔워야 하니 씨앗도 가려 놓는다. 추위가 깊을수록 고구마도 당근도 맛이 들고 곶감도 하얗게 분이 난다. 몸과 마음을 잘 쉬어가며 마음을 뜨뜻하게 데우는 시간이다.

몸과 마음을 잘 쉬어 가며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시간이다. 사진_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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